19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엄수
예산 윤봉길의사기념관, 특별기획전 ‘윤봉길의 마지막 하루’ 개최

매헌 윤봉길 의사 순국 90주기 추념식이 19일 11시,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엄수됐다. (사진 / 뉴시스)
매헌 윤봉길 의사 순국 90주기 추념식이 19일 11시,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엄수됐다. (사진 / 뉴시스)

매헌 윤봉길 의사 순국 90주기 추념식이 오늘(19일) 11시,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엄수됐다.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주관으로 개최된 이날 추념식에는 박민식 보훈처장과 명노승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장을 비롯해 윤 의사의 손녀인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 등이 참석했다.

추념식은 국민의례와 약전봉독, 추념사, 헌화·분향, 유시 낭독 등이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윤 의사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애국혼을 엄숙한 마음으로 되새겼다.

윤 의사는 거사 3일을 앞둔 4월 26일 한인 거류민단 사무실에서 한인애국단 입단 선서식을 거행했다.

“나는 적성(赤誠·참된 정성)으로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왜의 장교를 도륙하기로 맹세합니다.”

일왕(日王)의 생일인 천장절을 맞아 일본군의 상해 점령 전승 경축식이 열린 홍구공원(홍커우虹口公園)에서 4월 29일 오전 11시40분경에 수통형 폭탄을 단상 위로 투척했다.

시라카와 대장과 가와바타 거류민단장이 사망했고, 노무라 중장, 시게미쓰 공사 등이 중상을 입었다.

윤 의사의 의거는 전 세계의 이목을 한국독립운동에 집중시켰으며, 중국의 지원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의 구심체로 역할을 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였다.

어느 중국인은 “우리 4억 중국인을 부끄럽게 하는구나”라고 윤 의사를 칭송했다. 

의거 직후 윤 의사는 현장에서 일경에게 체포돼 상해 일본 헌병대에서 가혹한 고문과 취조를 받았다. 후에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순국하였다.

윤 의사의 유해는 김구 선생의 요청에 따라 이봉창·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봉환되어 1946년 효창공원(삼의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정부는 의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윤봉길 의사가 당시 두 아들에게 남긴 유언 또한 가슴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흐르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마라.”

한편 윤 의사의 고향인 예산군은 19일부터 내년 3월 1일까지 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상해의거 90주년 특별기획전 ‘윤봉길의 마지막 하루’를 개최한다.

상해의거 직전 3일간의 행적을 통해 청년 윤봉길의 인간적 고뇌와 독립에 대한 의지를 재조명하는 특별기획전은 의거 직전 3일간의 기록에 따라 관람객이 직접 윤 의사의 입장이 돼 보는 체험형 전시로 구성됐다. 4월 26일 한인애국단 입단, 27일 입단사진 촬영, 홍구공원 답사, 28일 이력서 작성, 폭탄 사용법 익히기 등 짧게나마 윤 의사의 행적을 경험할 수 있다.

                    예산군은 19일부터 내년 3월 1일까지 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상해의거 90주년 특별기획전   ‘윤봉길의 마지막 하루’를 개최한다. (자료 / 예산군)
                    예산군은 19일부터 내년 3월 1일까지 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상해의거 90주년 특별기획전   ‘윤봉길의 마지막 하루’를 개최한다. (자료 / 예산군)

특별기획전은 특히 보물 제568호로 지정되어 있는 청도와 상해에서 어머님께 보낸 편지 2점이 공개된다. 청도에서 보낸 ‘사랑하시는 어머니에게 올림’에서는 “나의 우로와 나의 강산과 나의 부모를 버리고라도 이 길을 떠난다는 결심이었다”라는 문구를 통해 윤 의사의 독립운동에 대한 굳은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