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년 전 용암이 빚은 협곡에 단풍 물결
신라시대부터 ‘석병산’으로 불린 기암절벽
10월말~11월초 오색단풍 절정 장관 연출

 11월 초 주왕산의 단풍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청송군
 11월 초 주왕산의 단풍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청송군

[대구경북본부 / 김영삼 기자] 1억 년 전 화산의 분노가 식은 자리에서 시간은 묵묵히 작업을 시작했다. 바람과 비를 도구 삼아 거대한 암반을 깎고 다듬었다. 수직의 절벽을 세우고 깊은 협곡을 파냈다. 그리고 마침내 주왕산이라는 걸작을 완성했다.

인간은 성급하다. 300년 전 조선의 농민들이 축조한 주산지 저수지도 우리에게는 ‘오래된 것’이다. 하지만 자연의 시계로 보면 찰나에 불과하다. 1억 년의 세월 앞에서 인간의 역사는 한 편의 짧은 시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 서두른다. 주왕산 단풍 절정이 10월 말에서 11월 초라고 하면, 그 짧은 기간을 놓칠까 봐 조급해한다. 용연폭포까지 왕복 3시간이 걸린다고 하면, 1시간 코스로 단축하려 한다. 마치 자연의 선물을 빨리 소비해야 할 상품처럼 대한다.

택리지의 이중환은 주왕산을 보고 “골이 모두 돌로 되어 있어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한다”고 했다. 300년 전 선비의 감탄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가 본 주왕산과 우리가 보는 주왕산은 거의 같다. 바위는 그대로고 폭포는 여전히 흐른다. 변한 것은 보는 이의 마음가짐뿐이다.

주산지 입구의 작은 비석이 의미심장하다. 이진표의 공덕비는 300년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인간의 노력을 기리는 돌이 자연 속에서 묵묵히 세월을 견디고 있는 모습이다.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룬 풍경이라고 할까.

 11월 초 주왕산의 단풍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청송군

솔부엉이가 주왕산의 깃대종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여름 철새인 이 올빼미는 계절을 따라 이동한다. 자연의 리듬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인간처럼 자연을 정복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할 뿐이다.

주왕산이 주는 진짜 선물은 단풍의 화려함이 아니다. 시간의 깊이를 체감하게 하는 것이다. 1억 년의 지질학적 시간, 300년의 역사적 시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현재적 시간이 한 공간에서 만난다. 우리는 그 시간들의 교차점에 서 있다.

급한 일상에서 벗어나 주왕산을 걷는다는 것은 시간의 속도를 바꾸는 일이다. 자연의 시계에 맞춰 천천히 걷고 깊게 호흡한다. 그때 비로소 보인다. 바위 하나하나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이, 폭포 소리에 담긴 영원의 메시지가.

신의 갤러리라고 불리는 주왕산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조급함이 아니라 인내다. 자연이 1억 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 앞에서 우리도 조금은 느려져야 한다. 그것이 자연을 제대로 만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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