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향해 러브콜 보낸 트럼프, 정치권도 촉각···“김정은 결단에 달려”

지난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난 김정은 국방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만남을 갖고 있는 모습. ⓒ뉴시스(조선중앙TV 캡쳐)
지난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난 김정은 국방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만남을 갖고 있는 모습. ⓒ뉴시스(조선중앙TV 캡쳐)

[시사포커스 / 이혜영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대화 의지를 내비치자 정치권도 북미회담 성사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운 분위기다.

◆ 트럼프, 김정은 향해 대화 구애···‘대북 제재’ 완화 시사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방한을 앞두고 김정은 위원장에게 공개적으로 만남을 제안했다. 그는 지난 27일(현지시간) 일본으로 향하는 전용기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고 싶다”며 “아직 (공식적으로 북한에) 제안하지는 않았지만, 김 위원장이 원한다면 기꺼이 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정 연장 가능성도 열어뒀다. 그는 “한국이 이번 순방의 마지막 방문국이기에 일정 조정은 쉽다”며 “김 위원장이 만나자고 하면 판문점으로 바로 갈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북미 대화의 유인책으로 ‘대북 제재 완화’ 가능성도 내비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는 대화를 시작하기에 충분히 큰 사안”이라며 “북한이 얻을 수 있는 건 많다”고 강조했다. 지난 24일에는 북한을 “일종의 핵보유국(sort of nuclear power)”으로 지칭하며,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한국 정부도 북미회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2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이번 APEC 기간 중 북미회담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본다”며 “정부는 어떤 상황에도 대비해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오늘이나 내일 중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등을 통해 북한의 입장이 나올 것으로 본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했다. 이제 김정은 위원장의 결심이 남았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또 “김 위원장은 하노이 결렬의 트라우마를 딛고 이번에 나설지, 판문점이냐 평양이냐를 두고 전략적 판단을 하고 있을 것”이라며 “북핵 문제는 본질적으로 북미 적대관계의 산물인 만큼, 북한도 결국 대화의 입구로 들어서야 한다”고 분석했다.

◆ 북한, 러시아와 밀착 행보 왜?…‘미국과 협상력 높이기 전략’ 분석도 나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모습 / ⓒ뉴시스-노동신문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모습 / ⓒ뉴시스-노동신문

트럼프 대통령이 잇달아 러브콜을 보냈지만, 북한은 현재까진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러시아와의 외교 행보를 강화하며 ‘침묵 전략’을 유지하는 모습이다.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은 28일,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27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김정은 위원장의 뜨거운 인사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에 “따뜻한 인사를 전해달라”고 답하며 양국의 ‘특수한 동맹 관계’를 강조했다.

북한 측은 이례적으로 최 외무상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진행한 회담 공보문도 공개했다. 북한 외무성은 “(양국은) 건설적이며 유익한 전략적 의사소통이 진행됐다. 토의된 모든 문제에서 견해 일치를 이룩했다”며 “최고위급에서 전략적 인도 밑에 양국 관계의 다방면적인 강화 발전을 가속화해 나갈 의지를 재확언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을 앞둔 상황에서 치러진 북러 만남은 북러 관계 강화를 비롯해 양국 간 긴밀한 협력 의지를 과시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동시에 북한의 외교 채널 확대와 북한의 국제무대에서의 입지 강화에 나서기 위한 전략적 행보라는 해석도 나온다.

외교가는 이번 북러 회동을 “북한이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포석”으로 보고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날 국회 외통위에서 열린 종합감사에서 “2017년, 2018년과 비교해 보면 그동안 북한 입장에서 러시아와 군사동맹을 맺었고 또 중국과의 관계도 강화했다”며 “(북한이 북미대화에서) 조금 더 청구서를 키우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고 해석했다. 

◆ 북미회담 성사 가능성 두고 촉각 세운 정치권, 반응은?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과거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시사포커스DB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과거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시사포커스DB

정치권에서도 북미회담 성사 가능성을 두고 다양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가정보원장을 역임한 바 있는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8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서 “이번에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날 것으로 확정적으로 생각한다”며 북미회담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박 의원은 북미회담 성사 가능성을 전망한 근거로, 김일성 주석의 유훈을 제시했다. 그는 “제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두 달 뒤인 8월 15일 평양에 갔을 때, 당시 김정일 위원장이 저에게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며 “첫째는 미국과 관계 개선을 해서 체제 보장을 받아라, 두 번째는 경제제재 해제를 받아서 경제발전을 하라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서 김일성 주석의 유훈 두 가지를 세계만방에 확인하는 것만으로 큰 소득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 의원은 북미회담이 성사됐을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개성에 방문할 가능성도 언급했다. 박 의원은 “판문점에서 30분에서 40분 정도 가면 개성”이라며 “지난번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탈북해 우리 판문점인 ‘자유의집’에서 한·미·북 정상회담을 했지만,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월북해서 북측의 판문각 혹은 개성호텔에서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고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야권에서도 북미회담 성사 가능성을 두고 관전평이 나왔다. 다만 여권과는 바라보는 시선은 사뭇 다르다. 홍준표 전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노리고 김정은 위원장과 또 회동을 시도하고 있다”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다. 홍 전 의원은 이어 “DJ(김 전 대통령)는 남북정상회담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며 “꼭 그것만이 아니라 인동초 같은 시련을 견뎌낸 인고의 세월이 있었던 것도 수상 이유였다”고 에둘러 비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독재자 김정은을 만나 또다시 2018년 6월의 ‘위장평화쇼’를 재현하겠다는 건가”라며 “그건 아니지 않은가”라고 에둘러 비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합의를 이끌어낸 바 있다.

나아가 ‘탈북민’ 출신인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YTN라디오 ‘김영수의 더 인터뷰’에 출연하여 “기존에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얻으려고 했던 건 ‘핵 보유국 인정’과 그에 따른 대북 제재 해제, 체제 안전 보장 등 세 가지 니즈였는데, 이미 북한의 핵은 세계 정상급 수준에 도달한 상황”이라면서 “북한 김정은으로선 실익이 없기 때문에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이 낮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박 의원은 “중국의 80주년 행사에서 북중러가 천안문 망루에서 동맹을 과시하는 상황에서 시진핑 주석이 김정은과 푸틴을 나란히 세움으로써 북한의 지위를 묵시적으로 인정해 주면서 (이러한 니즈가) 일정 정도 해소된 측면이 있다”며 “다만 김정은 위원장이 만약 계속 러브콜을 보내는 트럼프 대통령의 면을 세워주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깜짝 회동’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여지를 남겼다.

박 의원은 “지금 현 상황에서 김정은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라서, 그 시간을 벌기 위해 미국과 잘 지내는 모습을 보이면서 국제사회를 속이려는 스탠스를 취할 수는 있다”며 “하지만 북한이 현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미국에서 제시하는) 대북 제재 해제에 목을 매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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