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잃어버린 자연의 언어 되살아나
식물들의 숨겨진 지혜, 화학신호로 소통
찻잔 정원에서 시작된 작은 대화 ‘삶의 변화’

경북천년숲정원 내에는 천년의 미소원, 암석원, 초화원, 종보존원 등 13개의 테마정원이 조성돼 있다.사진/엄지원 기자
경북천년숲정원 내에는 천년의 미소원, 암석원, 초화원, 종보존원 등 13개의 테마정원이 조성돼 있다.사진/엄지원 기자

[대구경북본부 / 엄지원 기자] 우리는 언제부터 자연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었을까. 도시의 회색빛 건물 숲에 갇혀 살면서, 식물들이 전하는 미세한 신호를 놓치고 살아왔다. 하지만 경북산림환경연구원 경북천년숲정원에서 만난 식물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 은은히 퍼지는 꽃향기, 계절마다 달라지는 색채는 모두 자연이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식물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지능적인 존재다. 해충이 나뭇잎을 갉아먹으면 주변 나무들에게 화학 신호를 보내 방어 태세를 갖추게 하고 수분을 돕는 곤충을 유인하기 위해 특별한 향기를 만들어낸다. 페퍼민트와 로즈마리 같은 허브들은 강렬한 향으로 해충을 물리치며 수양버들은 물가에서 자라며 끊임없이 수분과 대화를 나눈다.

경북천년숲정원 내 왕의 정원.사진/엄지원 기자
경북천년숲정원 내 왕의 정원.사진/엄지원 기자

신라의 천년 역사가 숨 쉬는 이 정원에서는 시간의 깊이마저 느껴진다. 왕의 정원에 피어난 매화는 신라 왕들의 이야기를, 종보존원의 고목들은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온 생명력을 전한다. 이곳의 식물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함께 써온 공존의 동반자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식물들의 '화학적 소통' 방식이다.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화학 물질을 만들어내며 주변 환경과 교감한다. 라벤더와 자스민이 피워내는 향기는 단순한 냄새가 아닌, 생존과 번식을 위한 정교한 전략이다. 이는 마치 우리가 언어로 소통하듯,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찻잔 정원을 만드는 체험(경북숲해설가협회 신청)은 이러한 깨달음을 더욱 깊게 한다. 작은 찻잔 속에서도 완전한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경이롭다. 배수층을 깔고, 알맞은 토양을 채우고, 식물을 심는 과정은 단순한 원예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연과 맺는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며 작은 생명체와의 대화를 시작하는 순간이다.

경북천년숲정원 내 외나무 다리.사진/엄지원 기자
경북천년숲정원 내 외나무 다리.사진/엄지원 기자

이제 우리는 알게 되었다. 정원은 단순히 식물을 심어놓은 공간이 아니라, 끊임없는 소통이 일어나는 살아있는 생태계라는 것을. 매일 아침 물을 주고, 잎사귀의 변화를 살피고, 꽃이 피고 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자연과의 대화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우리에게 정원이 필요한 이유는 명확하다. 그것은 잃어버린 자연과의 대화를 회복하고, 우리 역시 이 거대한 생태계의 일부임을 깨닫게 하는 소중한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작은 찻잔 정원에서 시작된 이 대화가, 언젠가는 우리의 삶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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