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원 사업”…“중국 자극 불가피”, 핵잠수함 두고 정치권 술렁

(왼쪽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이재명 한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뉴시스
(왼쪽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이재명 한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뉴시스

[시사포커스 / 이혜영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요구한 한국의 ‘핵추진잠수함’(핵잠수함) 건조를 전격 승인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 세계 8번째 핵잠수함 보유국으로 가는 길목에 서게 됐다. 다만 이 대통령이 ‘중국 추적’ 발언을 공개적으로 한 것을 두고 정치권의 해석이 엇갈리면서 한중관계에 미묘한 파장이 예상된다. 

◆ 한미 정상회담 성과…이재명 정부, 핵추진잠수함 개발 ‘가속’ 전망?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경북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디젤 잠수함은 잠항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북한이나 중국 잠수함 추적 활동에 제한이 있다”며 “핵추진잠수함의 연료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결단해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루스소셜을 통해 “한국이 구식이고 기동성이 떨어지는 디젤 잠수함 대신 원자력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한국은 미국의 필라델피아 필리조선소(한화오션 산하 조선사)에서 핵잠수함을 건조하게 될 것”이라며 “핵잠수함은 한미동맹의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십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핵잠수함은 미국을 비롯해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인도 등 6개국이 보유하고 있으며, 2030년쯤엔 호주가 미국의 기술지원을 받아 핵잠수함 보유국이 된다. 이어 계획대로 차질없이 진행된다면 한국이 여덟 번째 보유국 대열에 오르게 된다. 한국 정부는 5천 톤급 이상의 핵추진 잠수함을 4척 이상 건조하겠단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30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종합 국정감사에서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는 여러 여건을 이미 갖춰 놨다”며 “해군과 협의해야겠지만 4척 이상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진단했다.

핵잠수함은 디젤을 원료로 하는 잠수함보다 속도가 2배 이상 빠르고, 소음도 적어 성능이 월등한 전략자산으로 꼽힌다. 과거 1차 북핵 위기가 불거졌던 김영삼 정부 때부터 핵잠수함 필요성이 언급되어왔다. 지난 노무현 정부 때 4천톤급 핵잠수함 건조가 비밀리에 추진됐다가 돌연 언론에 노출(공개)되면서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압박으로 중단된 전례도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핵잠수함 요구는 여야를 막론하고 꾸준히 제기돼왔다. 한국은 잠수함 건조 기술과 소형원자로 기술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어 핵연료 공급 문제가 해결되면 빠른 핵잠수함 건조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 이 대통령 ‘중국 추적’ 공개 발언 도마위…여야 반응은 엇갈려

(왼쪽부터) 이재명 대통령,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사시포커스DB
(왼쪽부터) 이재명 대통령,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사시포커스DB

트럼프 대통령의 핵잠수함 승인 발언이 알려지면서 국내 정치권에선 환영의 메시지가 나왔다. 다만 여야의 평가는 엇갈렸다. 이는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중국 잠수함 추적 활동에 제한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한 영향이다.

야권에서는 이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중국’을 언급한 것을 두고 ‘말실수’라고 규정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야당 간사이자 외교통으로 알려진 김건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30일 BBS라디오 ‘금태섭의 아침저널’에 출연하여 이 대통령의 ‘중국 잠수함 추적’ 언급에 대해 “실언처럼 보인다”고 평가했다. 김건 의원은 “중국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사안을 공개 석상에서 언급한 것은 외교적 실책”이라며 “한중관계를 불필요하게 자극했다”고 비판했다.

김건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도 “핵추진잠수함 승인 논의는 의미있는 진전이지만, 민감한 군사기밀 사안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적절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며 “게다가 한중정상회담을 불과 이틀 앞둔 시점에 이런 언급이 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끝까지 국익을 위한 진정한 실용외교의 시간이 되도록 노력해줄 것을 당부한다”고 했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채널A 라디오쇼 ‘정치시그널’에 출연하여 이 대통령의 중국 핵잠수함 발언에 대해 “사실 보수 정권에서 했을 법한 이야기”라며 “사실 북한 견제용이라기보단 중국 견제용”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정부가 그동안 보여왔던 뭔가 친중 노선과는 배치되는 느낌”이라고 꼬집었다. 사실상 한중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적절치 않았다는 비판을 에둘러 한 셈이다.

반면 여당 측에서는 이 대통령의 말실수 논란에 대해 ‘협상 전략’이라며 엄호에 나선 상태다.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하여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듣고 싶은 얘기를 함으로써 이걸 받아들이게 한 것이다. 만약 그런 얘기가 없었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밤 사이에 전격 결정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우리가 핵잠수함을 얻기 위한 고도의 협상술이었다”고 반박했다.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의 핵잠수함 승인에 대해 이 대통령의 외교 성과라고 극찬했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30일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서 “우리는 한반도 평화를 지킬 결정적 전략자산을 갖추게 됐다”며 “경제에 이어 안보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고 강조했다.

연일 칭찬 세례에 나선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정청래 민주당 대표도 전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협상 내용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한미 모두에 도움 되는 최고의 협상이었다. 특히 핵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은 놀라움, 그 자체”라며 “자랑스럽다”고 평가했다. 정 대표는 중국 발언 논란에 대해서도 “주변국과의 외교적 부담이 될 수 있는 것을 솔직하고 공개적으로 해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한 것을 보면, 이것이 이 대통령의 외교 스타일”이라며 “이 대통령은 참으로 똑똑한 협상가”라고 치켜세웠다.

이성윤 민주당 의원도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핵추진 잠수함은 노무현 대통령님의 꿈이었다. 그 꿈을 이어받은 이재명 민주당 국민주권정부가 이루게 됐다”며 “핵추진 잠수함은 우리도 이제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자주적 방위력을 갖춘 나라가 되었다는 걸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경제와 안보,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며 “이번 APEC 한미정상회담은 역대급 성과를 거뒀다. 실로 엄지척이 나온다”고 힘을 보탰다.

◆ 한국 ‘핵잠수함’에 중국 “한미, 핵 비확산 이행하길”···한중관계 우려도 솔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하고 있다. ⓒ뉴시스

눈여겨볼 부분은 중국의 반응이다. 중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승인 소식이 전해지자 즉각 논평을 내놨다.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정례 브리핑에서 “모든 국가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의무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며 “중국은 한미 양국이 핵 비확산 의무를 실질적으로 이행하고 지역 평화와 안정을 촉진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궈 대변인은 이어 “중국은 방어적 국방 정책과 평화 발전의 길을 걸어왔다”며 “한국의 핵잠 보유는 동북아 해군력 균형을 흔들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전했다.

중국이 날 선 반응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이 대통령이 ‘중국 잠수함 추적 활동’을 언급한 영향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미중정책연구소장인 김흥규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하여 “(이 대통령의 발언은) 중국을 겨냥한 군사력 강화의 차원에서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보유가 필요하다고 설득한 논리였다”며 “중국 입장에서는 당연히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보유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논평을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에서도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로 분류되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전날 성명을 통해 “정부는 ‘핵무기가 아닌 추진체 기술’이라며 선을 그었지만, 당초 산업 목적이라던 핵연료 재처리 협의가 군사적 용도로 전환된 것이 확인된 셈”이라며 “핵잠수함 건조 추진 결정은, 당장은 핵무기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핵무기 개발로의 경로를 다시 열어놓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경실련은 한반도 비핵화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이번 결정을 강력히 비판한다”며 “정부는 유엔총회에서 약속한 평화와 비핵화의 원칙을 다시 천명해야 한다. 정부는 '동맹 현대화'라는 명분 아래 군사기술 의존을 확대하기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자주적 안보전략 수립에 전념해야 한다. 정부가 비핵화·평화의 원칙을 국가안보정책의 최우선 기준으로 삼을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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