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항해·기관 직별 맡은 해양경찰 삼부자
함정의 ‘귀’, ‘눈’, ‘심장’ 역할로 동해 지켜
세 개의 함정이 각자 항로지만 ‘한 가족’
[대구경북본부 / 김영삼 기자] 푸른 동해 위에서 세 개의 함정이 각자의 항로를 따라 움직인다. 그 안에는 한 가족이 있다. 통신장으로 바다의 귀가 된 아버지, 항해사로 바다의 눈이 된 큰아들, 기관사로 바다의 심장이 된 작은아들. 이들은 서로 다른 배에서, 서로 다른 직무로, 하나의 바다를 지킨다.
박길호 경감이 해양경찰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1993년이었다. 통신 직별 특채로 입직한 그는 30년 가까이 동해 바다를 지켜왔다. 그의 두 아들 박정환 경사와 박진수 순경은 아버지가 지켜온 바다를 함께 지키기로 결심했다. 첫째는 항해를, 둘째는 기관을 맡았다. 한 배의 필수 요소를 가족 셋이 나눠 맡게 된 것이다.
“이 삼부자 셋이 모이면 배를 몰고 출항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웃음 속에 담긴 진실이다. 통신은 함정의 귀가 되어 해상 상황을 파악하고, 항해는 함정의 눈이 되어 안전한 운항을 책임지며, 기관은 함정의 심장이 되어 엔진과 장비의 작동을 관리한다. 한 가족이 바다를 지키는 세 가지 핵심 역할을 모두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이 모두 동해를 근무지로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부산이 고향인 박 경감은 해양경찰 생활을 하며 동해로 이주했고, 두 아들은 그곳에서 자랐다. 동해는 이들에게 단순한 근무지가 아닌 ‘고향’이자 ‘지켜야 할 곳’이다. 아버지가 지켜온 바다를 자신들도 함께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이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같은 조직에서 일하는 가족은 종종 있지만, 세 가지 다른 직별에서 각자의 전문성을 발휘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각자의 적성과 역량, 그리고 가족 간의 깊은 이해가 만들어낸 결과다. 박정환 경사는 아버지의 조언으로 항해를 선택했고, 이후 동생에게는 기관 직별을 추천했다. 서로의 선택에 가족의 경험이 더해져 삼색의 해양경찰이 탄생한 것이다.
“같은 조직에서 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도 많아지고, 일에 대한 공감도 커졌습니다” 서로 다른 함정에서 근무하다 보니 얼굴을 자주 보기는 어렵지만, 시간이 맞을 때면 함께 식사하며 업무에 대한 고민과 조언을 나눈다. 동료 이상의 깊은 유대감이 이들을 지탱한다.
이들이 공유하는 가장 큰 감정은 ‘책임감’이다.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아들들은 아버지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항상 스스로를 단속한다. 가족이라는 관계는 오히려 더 엄격한 기준이 된다. 단지 ‘같이 일하는 가족’이 아니라, 서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더욱 단단히 다잡는 존재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버지는 3016함에서, 큰아들은 3017함에서, 막내는 306함에서 바다를 지키고 있다. 위치도, 직별도 다르지만 이들의 마음은 하나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는 것.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박정환 경사의 이 말은 단순한 가족 이야기를 넘어선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되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공동체의 본질이 아닐까. 동해의 푸른 물결 위에서 세 가지 색으로 빛나는 이들의 헌신은, 가족의 의미와 국가에 대한 봉사가 어떻게 하나로 융합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