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학술발표회와 국립중앙박물관의 가야실 그리고 한국사교과서 개정문제

16일 사단법인 가야연구원의 가야학술발표를 마치고 (사진 / 가야연구원 제공)
16일 사단법인 가야연구원의 가야학술발표를 마치고 (사진 / 가야연구원 제공)

대구지역에 거주하는 가락 후손과 시민들이 우리 역사를 바로 지키자는 취지에서 사단법인 '가야연구원'을 설립하고 첫 번째 ‘가야학술발표회’를 개최했다.

역사 지키기에 나선 분들은 김성문, 김일배, 김창진, 김종호, 김병욱씨들이다. 가락중앙종친회 임원이면서 가락대구종친회 김성문회장이 본 법인 원장을 맡고 있다. 법인명에 ‘가야’가 들어간 것은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과 허왕후의 후손들이기 때문이다. 역사학자가 나서는 것이 아니고 후손과 시민들이 나섰다. 후손들은 항상 뒤에 서서 보는 것이지만, 시민들이 나섰다는 것은 끝판까지 왔다는 신호이다. 그동안 학자들이 겁 없이 가야사를 왜곡하고 탄압해왔기 때문에 종친과 시민들이 앞장서 우리 역사인 가야사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는 취지이다.

지난 16일, 대구교육대학교 인문사회관에서 열린 가야학술발표회에는 이덕일 교수, 이매림 선생 등이 가야사의 문제점과 진실에 대해 각각 발표했다. 첫 번째 발표회인 만큼 김성문원장이 첫 연사로 나섰다. 김 원장의 발표주제는 ‘가야는 임나가 아니다’. 김 원장은 현재 진행 중인 문화재청의 가야고분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사업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다.

합천은 다라국, 남원은 기문국이 아니다...국회 본회의장까지

김 원장은 합천 옥전고분군을 다라국으로, 남원의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을 기문국으로 등재하는데 있어서 ‘다라국’과 ‘기문국’이 “일본서기”에 나오는 지명으로 우리나라 역사서에 없는 지명이라는 지적이다. 우리 “삼국사기”에 의하면, 합천은 대야 또는 대량이고, 남원은 고룡인데, 왜 “일본서기” 지명으로 세계무대에 우리 고분을 올리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식민사학에서 “일본서기”는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을 옹호해 온 사서(史書)라고 하지만, 식민지 침탈에 이용된 사서(詐書)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런 일제의 침략을 옹호한 서적의 지명으로 우리 가야 고분군을 유네스코에 등재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라는 말이다. 이는 일본 극우세력이 외치는 임나일본부설을 국제무대에 정당화 시켜주는 일이라는 것이 김원장의 지론이다.

그 다음 가야문제의 핵심은 한국학자들이 김수로왕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가야를 일본식 임나(任那)로 인식하여 역사를 서술한다는 점이다. 김원장의 발표문을 보겠다.

“가야국은 서기 42년부터 서기 562년까지 존속했고, 임나국은 “일본서기”에 기록되기를 숭신천황 65년인, 기원전 33년부터 효덕천황 2년인 서기 646년까지 존속했다. 건국과 멸망 연도가 다르다.~~가야를 임나(任那)라고 주장하는 배경에는 일본 메이지(明治) 시대의 정한론(征韓論)이 있다. 일본은 언젠가는 조선을 정복하여 일본 땅으로 만들어야 하겠다는 야욕을 품었다. 그 명분으로 가야를 임나라고 우긴다”

이러한 가야사에 대한 문제 제기는 20일, 국회 본회의장으로 이어졌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당일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민홍철(더불어민주당·김해 갑)국회의원의 질문을 받았다. 국회발언을 녹취해서 옮겨본다. 

▶민홍철 의원: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게시 중인 가야사 연표가 상당히 왜곡되어 있습니다. 2021년 이전에는 ‘서기 42년 가락국의 수로왕이 즉위였고, 가야가 건국되었다’라고 표기되었는데, 지금은 수로왕 즉위도 삭제되었고, 가야가 (건국이 아니고) 성립(成立)되었다고 표현이 바뀌었어요. ...이게 상당히 시정되어야 하는데...조치를 취해주시구요. 그 다음에 정부가 가야 고분군에 대해서 세계 유네스코 등재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일본서기에 근거한, 임나일본부설에 근거한 명칭으로 등재할려고 하고 있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서 심각한 문제로 인식을 해주시고요. 시정할 수 있도록 총리님께서 살펴봐주시기 바랍니다.

▶한덕수 총리: 의원님께서 여러번 지적도 해주시고, 정부에도 말씀을 해주시고요, (박물관내) 가야실 연표는 지적사항을 반영해서 국립중앙박물관이 오늘 교체작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보고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적하신 유네스코 시정문제는 올해 4월에 (문화재청이) 유네스코에 시정 요청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민홍철의원: 임시신청을 했는데요. 그 명칭 중에 임나일본부설을 부활시킬 수 있는 명칭이 두 군데가 있다는 것입니다. 합천고분군과 남원고분군을 그렇게 표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총리님께서 다시 살펴주십사 말씀드립니다. 

이처럼 한덕수 국무총리는 민의원의 질의에 대해 사전에 답변을 준비해온 듯 “오늘(20일) 교체 작업이 진행되는 것으로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 국립중앙박물관의 가야사 연표 왜곡의 시말(始末)을 알아보겠다.

국립중앙박물관 가야실에 게시되었던 수정전의 가야연표.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사진 / 이찬구 기자)
국립중앙박물관 가야실에 게시되었던 수정전의 가야연표.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사진 / 이찬구 기자)

2021년 12월 박물관 가야실이 리모델링되어 재개관 되었을 때, 게시된 가야사 연표에서 ‘가야 건국시조’인 ‘김수로왕’이 빠지고 말았다. 이는 주류역사학계가 김수로왕을 실존 인물로 인정하지 않고 상상과 허구의 인물로 보기 때문에 빼버린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시민 단체들이 수차례 연표를 바로 잡으라고 항의하였고, 필자도 현장 학예사에게 잘못된 이유를 설명해주며 항의한 바 있다.

박물관에서 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학예사들은 대부분 식민사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시민들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소귀에 경 읽기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대학교수중에는 알에서 태어난 사람 이야기는 역사가 아니고 신화라고 강변한다. 알 신화는 고유의 우리 원형신앙인데도 알에서 사람은 태어날 수 없다는 유치한 해석을 하며 삼국의 시조들을 부정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시민단체와 종친회의 압박에 김수로왕을 표기하다 

또 가락종친회 삼현파 김종철회장은 6월에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하여 가야연표를 바로잡아 김수로왕을 살려내라고 책상을 치며 항의를 하였다고 한다. 당시 민병찬 관장은 고치겠다고 대답만 해놓고 7월에 퇴임하였고, 현 윤성용 관장이 취임하였으나 미적미적하다가 이번에 국회 질의까지 온 것이다. 국무총리가 답변한 대로 20일에 정말로 연표가 교체되었는지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한문화타임즈’(박찬화 기자)가 22일 현장에서 확인한 결과 다음과 같이 수정되었다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가야실에 새로 게시된 수정된 가야연표. 수로왕이 표기되었다. (사진 / 한문화타임즈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가야실에 새로 게시된 수정된 가야연표. 수로왕이 표기되었다. (사진 / 한문화타임즈 제공)

새 가야연표를 보면, 일단 '가야 성립'은 그대로 두었고, 그 아래에 "수로왕 즉위, 금관가야 건국(삼국유사)"이라고 써놓았다. 그리고 괄호 안에 “삼국유사”라고 써 놓았다. 가야 건국의 주체인 수로왕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금관가야 건국이라고 써 있지만 종친회에서는 ‘가락국’이라는 국명을 더 선호하고 있다. ‘42년 김수로왕의 가야건국’이 누구나 아는 상식적인 일임에도 이렇게 원상회복되어 돌아오는데 거의 1년이 걸렸다. 그것도 국회에서 나서야 수정된다는 점에서 씁쓸함은 아직 남아 있다.

또 “삼국유사”라는 출처 표기는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이에 대해 박찬화기자는 가야 건국연대에만 출처를 표기한 것은 “삼국유사에는 (비록) 그렇게 적혀 있지만. 우리 학계는 이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숨은 뜻이 담겨져 있다”고 보았다. 아마 많은 국내학자들이 모여서 비밀 회합을 수차례 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박혁거세의 신라 건국도 주몽의 고구려 건국도 출처 표기를 하게 되면 이는 거기에는 적혀있지만 학술적으로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자체도 시정되어야 할 적폐 중의 적폐이다.

마지막 과제는 국사교과서를 고치는 일이다

또 다른 숙제가 남아 있다. 우리 국사교과서가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는 점이다. 현행 한국사교과서의 가야편을 보자. 소제목도 “삼국과 가야성립”이다.

“변한지역에서는 여러 소국이 가야 연맹을 이루었고, 3세기경에는 김해의 금관가야가 연맹을 주도하였다.” (고등학교 비상 교과서, 13쪽)

여러 말이 필요 없다. 우리 교과서는 철저하게 김수로왕의 42년 가야건국을 부정하고 있다. 이 주장이 국사학계의 주류학설로 고착된 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교과서는 3세기부터 가야역사로 본다. 그 앞에 있었던 1~200년의 역사는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믿지 못하겠다는 주장이다. 이것이 대표적인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이다. 중국학자도 아니다. 중국은 가야와 별 이해관계가 없다. 그러나 일본학자와 한국학자들은 다르다. 대부분 일본학자들과 한국학자들은 공히 가야의 건국을 인정하지 않는다. 42년 김수로왕의 가야건국을 말하면 그곳에 임나일본부설이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임나일본부설은 일본이 가야를 식민지로 점령했다는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만든 가짜 이론인데, 한국학자들과 일본학자들이 이 가짜 이론에 목을 매며 지키려고 한다.

결론은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변해야 한다. 학자들이 변하지 않으면 그 학자들을 내쫓는 퇴출운동을 전개라도 해야 한다. 역사는 힘 있는 자들이 밤에 몰래 모여 토론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다. 문헌에 따라 바르게 서술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힘을 이용해 자기들만의 편향된 해석으로 한국사의 역사서술을 왜곡한다. 그들에게 학문의 자유라는 말은 너무도 사치스런 말에 지나지 않는다. 한일합작으로 왜곡한 한국사의 복원은 가야사를 바로잡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가야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목소리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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