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구기자 (본지 편집주간)
이찬구기자 (본지 편집주간)

[시사포커스 / 이찬구 기자] 중국 국가박물관이 고구려와 발해를 뺀 한국사 연대표를 버젓이 전시하고 있다. 지난 7월 26일 개막한 ‘동방의 상서로운 금속(東方吉金): 한·중·일 고대 청동기전’은 한·중 수교 30주년과 중·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계기로 기획된 것이라서 더 씁쓸하고 안타깝다. 

13일자 중앙일보 단독보도에 의하면, 석기·청동기·철기로 나눈 ‘한국 고대 역사 연표’에 철기시대는 고조선 후기부터 신라·백제·가야·통일신라·고려·조선 순서로 구분했지만, 고구려와 발해는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설상가상으로 유독 눈에 띤 것은 중국 식민지라는 소위 한사군(漢四郡)이었다. 한사군에 대한 중국 측의 설명문은 다음과 같다.

“기원전 108년 서한(西漢, 중국 한나라 전기) 정부가 한반도 북부와 중부에 낙랑(樂浪)·현도(玄菟)·진번(眞番)·임둔(臨屯) 네 개 군을 설치했다. 역사는 ‘한사군’이라고 칭한다. 한반도 남부 지역에 세 개의 부락 연맹(마한·진한·변한)이 형성됐다. 세 개 부락은 이후 백제·신라·가야로 발전해 한반도 남부의 고대 국가 기초를 이뤘다. 한사군 설립 이후 한반도 남부는 한사군 문화의 영향을 받아 진흙회색도기(泥質灰陶·이질회도)가 출현하기 시작해 3세기까지 이어졌다. 이 시기 한반도 남부 지역의 역사를 ‘원삼국시대’라고 부른다. 시기는 약 기원전 1세기부터 서기 3세기까지다.”

이 구절 중에 원삼국(原三國)이라는 말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어디에도 근거가 없으나 어느 때부터인가 한국 박물관이 금과 옥조로 애용하는 용어가 되었는데, 이번에 중국 측에 사용된 것을 보면 한국측이 제공한 것이 분명하다. 

    문제많은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

본래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는 김원용이 제창한 용어로서 대개 기원후 1년~300년 사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는 이 시대가 삼국사기에 의하면 삼국시대지만, 실제로는 국가에 이르지 못한 단계로서 이를 삼국시대 원초기(原初期) 또는 원사(原史) 단계의 삼국시대라는 의미로 proto - 삼국 즉 원삼국시대라고 정의했다. 원(原)이라는 말에는 원초적인 또는 미개하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국가에 이르지 못해서 삼국시대 초기를 원삼국이라고 했다는 것은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불신하여 믿지 못하겠다는 이른바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견해를 그대로 답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신라, 고구려, 백제 등의 기원전의 건국과 가야의 42년 건국을 ‘건국의 역사’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주장이다. 참으로 자기 역사에 대한 자학적인 괴설이며. 이런 괴설을 여과없이 받아쓰고 있는 박물관을 과연 세금으로 운영해도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국립중앙박물관은 고구려와 발해 건국 시점 등을 표기한 연표 자료를 지난 6월 30일 중국 측에 보냈으나, 중국 측에서 일방적으로 왜곡하였다며 “즉각적인 수정과 사과를 강력히 요구했다”고 하고, 이어 MBC는 1주일 내에 중극측이 연표를 수정하지 않으면 우리 정부가 전시장에서 유물들을 철수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어정쩡한 한국 교육부의 국사교육과 이를 그대로 받아쓰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에 우리 한국사교과서에서 한사군을 삭제하지 않는 이유를 전화로 묻자, 담당 공무원은 전문 학자들의 학설이 정리되어야 삭제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투의 답변을 우리는 해방 이후 70여 년 동안 줄곧 들어왔다. 남의 나라 역사 교과서를 말하듯이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학자들을 핑계 댄다. 교육부가 무엇하는 곳인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은 일은 교육부의 고유한 권한이 아닌가. 이를 일일이 학자들에게 물어 보와야 한다는 핑계는 학생들에게 바른 역사교육을 영원히 포기하겠다는 말과 같다. 학계가 식민사학을 스스로 청산하지 않는 한 요원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부, 국립중앙박물관의 책임이 막중한 때

그러면 국립중앙박물관은 어떤 곳인가? 2019년 12월 가야본성 전시회에서 드러난 것처럼 철저하게 일제 식민사관을 그대로 사용하여 시민단체들의 질타를 받은 적이 있다. 예컨대, 가야 건국을 신화라 매도하고, 3~4세기 한반도 지도에 삼국 표기 없이 삼한과 낙랑으로 표기했으며, 임나일본부설의 유일한 근거인 일본서기에만 있는 내용을 ‘가야 연표’에 삽입하였고, 일본 우익 교과서의 임나일본부설 지도 지명인 ‘기문, 다라’ 등의 일본식 지명을 우리의 가야지도에 그대로 표기하는 역사 왜곡을 스스로 자행했던 전력을 가지고 있다. 다음 달에 이 가야본성 전시회가 일본에서 한일 공동으로 다시 전시된다고 하는데, 전시내용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일본인들의 극우적 역사관 못지않게 한국의 박물관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회가 국민혈세의 낭비라는 지탄을 받지 않길 바랄 뿐이다.  

지금 동북아 3국은 스스로 말하기를 ‘역사전쟁’이라고 한다. 역사전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총칼없는 전쟁이지만, 그 결과가 가져올 파급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자국의 역사를 지키며, 바른 역사를 서술하는 것은 어느 정부나 마찬가지겠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 정부와 교육부,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의 책임이 막중한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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