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개천절이다.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참으로 뜻 깊은 날이다. 개천절은 역사적으로 보면 단군왕검께서 조선(고조선)을 건국한 날이다. 건국한 날이면 건국절이라 해야하는데, 우리는 개천절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개천절이 곧 건국절이다. 개천절을 건국절이라고 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대종교의 개천절 선의식(강화 마니산 참성단, 년도 미상). (사진 / 대종교)
대종교의 개천절 선의식(강화 마니산 참성단, 년도 미상). (사진 / 대종교)

건국절을 왜 개천절이라고 하느냐? 나라는 땅에 세운 것인데, 하늘이 우리에게 이 땅을 점지해주었다는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 하늘이 열렸다고 하고, 그 땅위에 나라를 세웠다. 우리 조상 대대로 하늘을 공경해온 경천사상이 천손의식과 개천사상으로 연결된 것이라고 본다. 지금은 개천절을 단군을 중심으로 말하지만, 본래 환인, 환웅으로부터 전해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개천절이 역사인지 신화인지를 궁금해한다. 단군를 신화로 보느냐, 역사로 보느냐 하는 혼란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일제 식민사관이 남긴 폐단이라고 생각한다. 일제는 단군역사를 말살하기 위해 맨 먼저 단행한 일이 단군역사를 신화로 조작하는 일이었다. 1894년에 일본인 백조고길이라는 학자가 단군역사는 불교의 전설을 따다가 만들어낸 허구의 신화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였고, 여기서 나온 단군신화라는 말은 지금까지도 한국 학계가 답습하고 있으니까 그 해독은 너무도 크다.

일본인들이 단군역사를 불교의 전설을 따다 만든 허구의 신화라고 주장하며 왜곡

그러면 우리 옛 역사를 실증할만한 기록이나 자료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지금은 고고학이 발달해서 4~6천년 요녕성, 내몽고의 홍산문화, 길림성, 한반도 일대의 발달한 문화가 있었다는 것이 발굴되고 있다. 역사를 소급해 올라가면 그 시대의 통치 지도자는 누구이겠는가 물으면 역사책에 나오는 대로 환웅, 단군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역사의 퍼즐을 그렇게 맞추어 가면 해결이 된다. 그래서 고고발굴에 대비하여 문헌은 문헌대로 중요한 것이다.

또 해마다 개천절이면 곰과 범(호랑이) 얘기를 하여 머리가 혼란스럽다. 그 시대 우리 조상들이 곰을 토템으로 숭배하는 부족과 범을 토템으로 숭배하는 부족과 같이 살았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이런 혼란은 극복될 것 같다. 환웅족과 곰부족 여인이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고 말하면 그런 오해는 사라질 것이다. 실제로 홍산문화의 우하량유적에서는 여신상과 흙으로 빚은 곰발의 일부가 발굴되었다. 이는 고조선의 곰토템과 관련있다. 

홍산문화의 우하량유적에서는 여신상(왼쪽)과 흙으로 빚은 곰발의 일부가 발굴되었다. (사진 / 이찬구)
홍산문화의 우하량유적에서는 여신상(왼쪽)과 흙으로 빚은 곰발의 일부가 발굴되었다. (사진 / 이찬구)

그럼에도 역사에서 신화를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신화가 담고 있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본래 신화라는 말이 나쁜 말은 아니다. 다만 우리에게는 대일 항전기에 역사를 부정하는 수단으로서 일제에 의해 신화라는 말이 쓰였다는 것이 불행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단군사화(檀君史話)라고 한다.

본래의 신화는 고조선 건국이라는 태초의 사건...천지인으로 나라를 세운 것

본래의 의미로 단군사화를 보면 한민족이 체험한 태초의 사건을 기록한 것으로 의미해석을 할 수 있다. 태초의 사건은 나라의 건국을 말한다. 조선의 건국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그 상징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신화처럼 거룩하게 기록에 남기는 것이다. 다시 말해 원형으로서의 단군신화는 나라의 건국을 천지인의 합일 사상으로 함축하여 표현했다고 말할 수가 있다. 본래 우리 민족은 하늘, 땅, 사람의 조화를 중시했다는 뜻이다. 천지인 조화사상은 시대를 초월한 민족의 원형사상이다.

잠시 개천절을 유래를 알아본다면, 문헌상으로는 고려 때의 글로 추정되는 “삼성기”에 개천(開天)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 뒤에 조선시대에 와서는 신인이 박달나무 아래로 강림(降臨)했다고 적었다. 삼일운동 직후인 1920년에 대한민국임지정부에서 3.1절과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개천절을 ‘건국기원절’이라고 불렀다가 개천절로 통용되었고, 해방 후에 그대로 개천절이 오늘의 국경일로 결정되었다.

개천절과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종교가 대종교이다. 일제시대에는 한민족의 구심점을 찾기 위해 민족지도자들이 단군을 중심으로 뭉쳤다. 단재 신채호는 역사 속의 단군을 찾았으며, 홍암 나철은 신앙 속의 단군을 찾았다. 대종교는 1914년에 백두산 청파호 근방으로 이전했고, 항일 민족전선에 대종교가 적극 참여하게 된다. 1920년 청산리대첩은 대종교인을 비롯한 만주의 항일투사들이 거둔 위대한 승리였음은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임시정부 구성에도 역시 대종교인들이 주축이 되어 민족의 정통성을 지켜냈다. 그럼에도 대종교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관심은 멀어져 가고 있다.

개천절을 기념하는 것은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평양의 단군릉은 1994년에 개건되었다. 이 단군릉으로 인해 민족이 하나로 모이기도 했다. 2002년, 2003년, 2014년에는 남북과 해외동포가 평양 단군릉에 모여 개천절 민족공동행사를 가졌다. 개천절로 민족의 동질성을 찾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데 큰 의의가 있었다.

개천절을 맞이할 때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개천절에 대통령의 경축사가 그립다는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우리는 새 대통령의 경축사를 기다려왔다. 그러나 올해도 우리의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칫 정부행사에서 가장 중요해야 할 개천절이 홀대받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된다.

그런데 오늘 정부가 주관한 제4354주년(단기 4355년, 2022년)개천절 기념식전에서 돌발 발언이 나왔다. 행사 중에 국사편찬위원장이 요임금을 성군(聖君)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개국기원 소개를 맡은 김인걸 국사편찬위원장은 소개 중에 “하늘의 신인 환인의 아들 환웅이 인간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뜻을 품고 있는 것을 알고 환웅을 내려 보내시어 단군왕검을 낳으시니 이 단군왕검이 나라를 세워 조선이라 이름하였다. 중국의 성군인 요임금과 거의 같은 시기인 BC2333년”이라고 말했다.

단군을 위한 최고의 경축식전에서 요(堯)를 성군으로 미화하는 망언도 나와

그런데 인용된 “삼국유사” 고조선기에는 요임금을 요왕(堯王)이라고도 않고, 그냥 요(堯, 高)라고 하였는데, 김위원장은 원문에도 없는 요(堯)를 성군(聖君)이라고 미화하는 극존칭을 덧붙였다. 이는 단군을 경축하는 자리에 요임금을 성군이라고 부른 것은 국민정서나 예의에도 심각히 어긋날 뿐만 아니라, 원문을 과대해석하였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경축식전이라는 의미에서 보면 김위원장의 돌발 발언은 경축식전에 어울리지 않는, 국적을 의심케 하는 사대적 망언에 가까웠다. 요와 기자 때문에 단군이 멸시와 천대를 받은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 일이 아닌가?

최근 중국 국가박물관에 전시된 한국사 연표에 고구려 발해가 빠져서 국제적으로 문제가 된 바 있다. 그런데 한가지 눈여겨 볼 것은 고조선 연표이다. 중극측은 고조선의 연표에 건국연대를 표기하지 않고 무시해버렸다. 매사 중국측은 우리에게 이렇게 불량하게 대함에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사편찬위원장이 최고의 경축식전에서 요임금을 성군이라고 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단군도 요임금처럼 성군이라고 강조하려고 했는지는 몰라도, 중국을 몰라도 너무 모른 발언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절대 혼동하지 않았다. 원문에 요(堯)는 요(堯)였지 다른 무엇도 아니었다. 오늘 우리가 주객을 혼동해 성군 운운할 뿐이다.

이쯤해서 우리는 정말 역사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학생들이 배우는 한국사 교과서에서 이미 ‘홍익인간’이란 말은 삭제되었다. 이런 참담한 교육현실을 외면한 채 국무총리나 국사편찬위원장이 국민 앞에서 홍익인간의 위대함을 강조한다. 한마디로 공염불이다. 홍익인간이 없는 개천절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홍익인간이라는 말보다 민주시민이라는 말이 더 고상하게 들리는가? 홍익인간을 교과서에서 부활해야 한다. 더욱이 교과서에서 고조선을 서술하는 문장이 열 줄 밖에 안된다. 너무도 초라한 교과서의 자화상이다. 이러고도 어떻게 세계중심으로 가는 대한민국이 되겠는가? 바른 한국사 교과서 편찬을 위해 많은 분들의 관심과 성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개천절에 다시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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