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간 롯데그룹 이끌어 온…마지막 ‘창업 1세대’
껌으로 시작해 재계 5위까지…실패를 모르는 기업인

롯데그룹 창업자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젊은 시절. ⓒ롯데그룹
롯데그룹 창업자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젊은 시절. ⓒ롯데그룹

[시사포커스 / 임현지 기자] 롯데그룹 창업자이자 재벌그룹 1세대 유일한 생존자였던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별세했다. 향년 99세. 현재 국내 재계 5위에 자리한 롯데는 유통과 섬유화학, 식품, 관광, 건설·제조, 금융 등을 아우르는 대한민국 대표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 시작에는 과감한 투자와 진취적인 도전으로 시장을 개척하는 한국 재계의 대인, 신 명예회장이 있었다.

신 명예회장은 1921년 경남 울산군에서 5남 5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배움을 열망하던 그는 1942년 부관 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과 우유배달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조선인이라는 불리한 여건을 성실과 신용으로 극복, 한 일본인 투자자의 출자로 1944년 커팅 오일을 제조하는 공장을 세우게 되면서 기업 경영인으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이후 히카리 특수화학연구소를 차려 껌 사업에 뛰어들어 1948년 ㈜롯데를 세웠다. 롯데는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속 여주인공인 ‘샤롯데’에서 유래됐다. 대나무 대롱을 함께 포장한 풍선껌과 껌 포장 안에 추첨권을 놓고 당첨자에게 1천만 엔을 주는 등 기발한 아이디어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당시 큰 돈을 벌게 된다.

1961년 일본 가정에서 손님 접대용 센베이(일본 전통과자)가 초콜릿으로 대체될 기미가 보이자 신 명예회장은 유럽 최고 기술자와 시설을 들여와 초콜릿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이때 탄생한 제품이 바로 ‘가나 초콜릿’이다. 롯데는 초콜릿 시장 제패하고 캔디와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등에 진출해 종합 메이커로 부상하게 된다.

한·일 수교 이후인 1967년, 신 명예회장은 롯데제과를 설립해 모국 투자를 시작했다. 여기에는 조국 어린이들에게 풍요로운 꿈을 심어주기 위한 고인의 의지가 담겨 있다. 1970년대에는 롯데삼강(현 롯데푸드)과 롯데쇼핑, 롯데리아 등을 설립해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유통·관광 산업 현대화 토대를 구축했다.

특히 1973년 1천여 객실을 갖춘 롯데호텔의 등장은 신 명예회장 대표 업적으로 회자된다. 당시 우리나라는 외국 손님을 대접할 관광 상품이 전무한 상태였다. 롯데호텔은 다른 외국계 체인과 달리 단 로열티를 단 한 푼도 지불하지 않는 국내 호텔 체인이다. 1988년 서울 종로 소공동 신관과 잠실 롯데호텔을 개관하고 ‘88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는데 일조하게 된다.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에 기필코 관광입국을 이뤄야 한다”는 신 명예회장의 의지가 실현 된 것이다. 

1991년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개점 기념식에 참석한 신격호 명예회장 내외. 뒤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롯데그룹
1991년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개점 기념식에 참석한 신격호 명예회장 내외. 뒤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롯데그룹

이후 모국 경제발전과 유통업 근대화를 위해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과 롯데건설, 롯데백화점(당시 롯데쇼핑센터)이 설립·운영됐다. 1989년에는 대형 호텔과 백화점, 놀이시설을 하나로 묶은 세계 최대 규모 실내 테마파크인 롯데월드를 건설하게 된다. 1995년 관광산업 분야에서는 최초로 금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신 명예회장은 제2 롯데월드를 계획하며 “외국 관광객들에게 언제까지나 고궁만 보여줄 순 없다. 세계 최고의 무언가가 있어야 외국 사람들이 즐기러 올 수 있다. 관광객이 갈수록 줄어든다고 말만 할 게 아니라 우리 자신부터 그들이 우리나라를 다시 찾도록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0년 현재 국내 초고층 빌딩인 롯데월드타워도 이 같은 뜻으로 세워졌다. 신 명예회장은 잠실 지구를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복합 관광명소로 키워내겠다는 꿈을 오래전부터 품고 있었다. 번번이 사업계획서를 거절당하다 2011년 서울시로부터 어렵사리 건축 허가를 받게 됐다. 부지 매입 후 30년 만인 2017년, 창립 50주년이기도 한 이 해에 대한민국 대표 랜드마크 롯데월드타워가 화려하게 문을 열게 된다.

롯데그룹은 신 명예회장을 ‘실패를 모르는 기업인’이라고 회고했다. 잘할 수 있는 일에서 최선을 다해 경쟁력을 발휘하자는 경영 철학에서 비롯된 별명이다. 신 명예회장은 “잘 모르는 사업을 확장 위주로 경영하면 결국 국민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며 “기업 전체를 고객에게 맞추고 화재 등 안전사고 예방에 최우선을 둬야한다”고 강조해왔다.

신 명예회장의 말년에는 수난의 시간도 있었다. 2015년 장남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 경영권 다툼이 불거지며 70년간 이어온 경영인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이후 경영 비리 혐의로 징역 4년, 벌금 35억을 선고받았으나 고령인 점을 감안해 법정 구속은 면했다. 이후 건강 악화로 지난해 말부터 서울아산병원에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 오다, 이날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9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부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빈소에서 절을 하고 있다. ⓒ롯데그룹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9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부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빈소에서 절을 하고 있다. ⓒ롯데그룹

고인의 유족으로는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 여사와 장녀 신영자 이사장,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 차남 신동빈 회장,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 씨와 딸 신유미 씨 등이 있다. 신춘호 농심 회장과 신경숙 씨, 신선호 일본 식품회사 산사스 사장, 신정숙 씨, 신준호 푸르밀 회장, 신정희 동화면세점 부회장이 동생이다.

한편, 신 명예회장은 재벌그룹 마지막 남은 ‘창업 1 세대’ 총수였다. 별세에 따라 삼성 이병철, 현대 정주영, LG 구인회, SK 최종현 회장 등 한국 경제 부흥을 이끈 1세대 기업인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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