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까지 한국당의 수정안 토론 종결시켜…與 “패스트트랙 법안은 합의돼야 상정”

국회 본회의장 모습. ⓒ포토포커스DB
국회 본회의장 모습. ⓒ포토포커스DB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정기국회 마지막 날 열린 본회의에서 내년도 예산안이 결국 자유한국당은 배제된 채 ‘4+1’ 협의체가 내놓은 512.3조원 규모의 수정 예산안으로 의결 처리됐다.

물론 한국당에서 새 원내사령탑으로 선출된 심재철 원내대표가 지난 9일 민주당,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와의 회동 후 예산안을 처리하고 필리버스터를 철회하겠다고 합의했음에도 정작 자당 의원총회에서 필리버스터 철회를 추인 받지 못하면서 범여권의 예산안 일방처리는 예상된 수순이었다는 지적도 없지 않지만 예산안 이후 최대 쟁점인 패스트트랙 법안과 관련해선 ‘게임의 룰’인 선거법도 포함되어 있는 만큼 또다시 한국당을 무시한 채 처리하기엔 여당도 부담감이 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일단 11일 임시국회가 시작된 가운데 이날 오후 열리기로 했던 본회의는 취소되면서 여야는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지만 한국당은 이미 국회 중앙홀에서 무기한 농성에 돌입해 일촉즉발의 긴장감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 사태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한국당, 예상 외 전개에 속수무책…예산안 가결되자 “문희상·홍남기 탄핵”

사실상 한국당이 배제된 채 예산안이 처리된 지난 10일 본회의는 국회의장이 주연이었을 뿐 아니라 제1야당조차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을 만큼 ‘4+1’ 협의체의 위력도 확인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어떻게든 정기국회 종료 전 예산안을 처리하려던 범여권은 문희상 국회의장에 힘입어 본회의를 열고 ‘4+1 협의체’가 만든 내년도 예산안 수정안을 상정했으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예산부수법안 수정안을 연이어 제출하려던 한국당의 전략도 간파한 문 의장은 예상을 깨고 내년도 예산안을 본회의 첫 번째 안건으로 올렸다.

심지어 한국당이 제출한 예산안 수정안 토론을 위해 조경태 의원이 단상에 올랐으나 예산안을 우선 상정한 문 의장에 대한 한국당 의원들의 항의가 계속되자 “토론을 포기하는 것이냐”며 이마저 일방적으로 종결을 선포했고, ‘4+1 협의체’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기금운용계획안, 임대형 민자사업 한도액 안 등 3건의 수정안을 표결에 부쳐 가결되자 곧바로 정회를 선포한 뒤 국회를 떠나버렸다.

특히 한국당이 올렸던 수정안은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수정안에 부동의한다”고 일축하면서 표결에도 부쳐지지도 못했고, 어떻게 손을 쓰기 어려울 정도로 예산안이 단 28분 만에 속전속결 처리돼 심재철 원내대표는 분을 삭이지 못했는지 이날 본회의 직후 의총에서 “야합으로 날치기 통과된 예산은 위헌이며 원천 무효”라면서 “정치 중립 의무를 위반해 특정 정파를 부역한 홍 장관과 정부관계자 행태는 명백한 범죄행위고, 문희상 의장은 국민의 이름으로 탄핵돼야 한다”고 일갈했다.

비단 심 원내대표 뿐 아니라 황교안 대표도 본회의 이후 국회에서 한국당 의원들의 밤샘 농성에 참석해 ‘예산 날치기’라고 범여권을 강력 성토한 데 이어 11일 오전엔 로텐더홀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이제 민주주의의 마지막 종언을 고하는 선거법, 공수처법을 처리하려고 할 것이다. 목숨 걸고 막겠다”고 공언했다.

이 같은 결의를 분명히 하려는 듯 황 대표는 이날 의총에선 “저들의 폭압에 맞서 싸우자. 앞으로 로텐더홀에서 무기한 농성에 들어가겠다”고 천명한 데 이어 “예산안 날치기에 가담한 사람들은 법적 책임을 비롯해 응당한 책임을 지게 할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한국당은 대여 압박수위를 높이는 일환으로 이날 ‘문재인 정권 국정농단 3대 게이트 진상조사본부’를 구성해 임명장을 수여하는 한편, 전날 예산안 강행 처리도 꼬집어 “국정농단 3대 게이트 등 청와대발 악재를 은폐하고 친문국정농단게이트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을 감싸기 위한 초유의 헌정유린 폭거를 자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한국당 보좌진협의회까지 이날 성명서를 통해 “이해할 수 없는 국회운영 이유 중에 문 의장이 자신의 지역구를 내년 총선에서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청와대와 민주당 편을 들고 있다는 의혹까지 강하게 제기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라며 “국민을 뒤로 한 채 당리당략에 매달려 계산기만 두드리는 막장정치”라고 지역구 세습 의혹까지 거론하면서 문 의장을 거세게 압박했다.

◆ 한국당, 투쟁 외엔 법안 저지 대책 찾기 어려워 고민

 

[시사포커스 / 오훈 기자] 자유한국당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황교안 대표, 심재철 원내대표, 곽상도 특위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文정권 국정농단 3대 게이트 진상조사특위 현판식을 가지고 있다.
[시사포커스 / 오훈 기자] 자유한국당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황교안 대표, 심재철 원내대표, 곽상도 특위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文정권 국정농단 3대 게이트 진상조사특위 현판식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당의 이 같은 반발을 충분히 예상한 여당이 패스트트랙 법안도 아직 처리하지 못한 판국에 예산안을 일방 처리해 굳이 정국 경색을 감수한 데에는 ‘일방통행’이란 여론의 비난을 어느 정도 감수할망정 어떤 법안이든 자신들 뜻대로 통과시킬 수 있다는 경고성 압박을 한국당에 주기 위한 목적이 더 컸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더구나 공수처법 등 쟁점법안과 달리 내년 예산안은 처리사한이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설령 강행 처리해도 민생을 명분으로 내세울 수 있는데다 마찬가지로 시한이 정해졌더라도 ‘게임의 룰’로 제 정당 간 합의가 필요한 선거법보다 일방처리에 따른 부담감이 덜하다는 면에서 ‘4+1’ 협의체의 위력을 보여주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의 11일 오전 최고위 회의 발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어제 저녁 8시가 물리적으로 정기국회 기간 안에 예산안을 처리할 수 있는 마지막 데드라인이었다. 한국당도 이런 사정을 알고 있ㅇ?ㅆ고 노골적인 지연전술로 일관하면서 (우리가) 결단할 수밖에 없었다”며 “잘못된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는 점을 양해해 달라.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집행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 원내대표는 이제 최대 쟁점법안인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와 관련해선 “본회가 열리는 대로 “한국당이 지연전술을 펼치더라도 끝까지 대화의 문은 닫지 않겠다. 실낱같은 합의 처리 가능성만 있더라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며 외견상 협상 가능성은 여전히 열어뒀는데, 최고위 직후엔 “합의를 시도하겠지만 일정 시점이 되면 결단을 내리고 다른 선택들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거듭 말씀드린다”고 덧붙여 이번에도 ‘4+1’ 협의체를 통해 밀어붙일 수 있다는 뜻을 에둘러 내비치기도 했다.

이 같은 민주당의 엄포에 한국당에서도 황 대표가 국회 밖 투쟁이 아니라 아예 ‘국회 안 투쟁’을 선언하고 ‘패스트트랙 상정에 대해 협상의 여지가 없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협상도 포함돼 있지만 협상 시늉만 하는 협상은 의미가 없다. 모든 투쟁을 통해 막아내겠다”고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강력 투쟁한다고 해도 불과 4개월 뒤 총선을 앞두고 있어 이미 지난번 패스트트랙 충돌 사태로 검찰 수사선상에도 오른 상황에 다시금 국회선진화법을 위반하는 물리적 충돌을 벌이기도 현역의원들로선 부담스러워 이번처럼 원내 295명 중 과반인 158명이 ‘4+1’ 공조를 통해 밀어붙이면 저지할 방법이 없다는 게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필리버스터를 한다고 해도 민주당은 임시국회를 하루 단위로 쪼개는 살라미 전술을 쓴다면 대응하기 쉽지 않아 무작정 협상에 불응하기도 어려운 실정인데, 고심 끝에 황 대표도 이날 당 상임고문단과 오찬 회동을 갖고 패스트트랙 등 주요 현안 관련해 조언을 구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별 다른 구체적인 전략은 논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선지 황 대표도 “상대방이 정정당당하게 싸우면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길이 많이 있다고 보는데 우리가 싸워 이기기가 쉽지 않은 불법, 탈법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그에 따른 비상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대응하기 쉽지 않다는 속내를 토로했는데, 심재철 원내대표도 이런 현실을 간과할 수 없었는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총 후 기자들과 만나 “대화의 문을 닫아놓고 있지 않다. 언제나 유지되고 있다”면서 “언론 보도엔 13일 혹은 17일 패스트트랙을 상정하겠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부분적으로 (여당에서 연락이) 오고 있는데 점검해보고 있다”고 밝혔다.

◆ 확률은 낮지만 선거법 놓고 ‘4+1’ 공조 균열 가능성도 변수

 

[시사포커스 / 오훈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 오훈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현재로선 남은 변수는 ‘4+1’ 협의체 내에서 아직까지도 선거법과 검찰개혁 법안 등을 놓고 단일안이 도출되지 않았다는 점인데, 검찰개혁법보다 앞서 통과시키기로 했던 선거법이 자칫 공조를 흔들 수도 있는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4+1 협의체 내 선거법 실무단은 이날 국회 인근에서 모여 접점을 찾고 있는데, 일단 지역구 250석·비례대표50석, 연동률 50% 적용 안엔 공감대를 이루고 있으나 연동형 캡(상한선)과 선거구 획정 인구 기준을 놓고 민주당과 군소정당 간 이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 이유로 당초 이날 예정됐던 본회의도 취소된 채 민주당은 다른 정당들과의 단일안 도출에 우선 주력하고 있는데, 예산안 처리에 이어 곧바로 밀어붙일까 우려하던 한국당도 상황이 ‘숨고르기’ 국면으로 일단 접어들면서 관망하는 모양새다.

다만 한국당이 바라는 정도로 공조체제 자체가 무너질 정도의 균열이 일어나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해찬 대표도 이날 최고위 회의에서 “선거법과 개혁법안 모두 각 당이 서로 한발씩 양보해서 타협해야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며 “민주당은 원안 성립 시 가졌던 원칙과 정신을 지키고 법안의 목적을 잃는 수정안에는 합의하지 않을 것이다. 수정안이 개악이라면 차라리 원안을 지킬 것”이라고 밝혀 최악의 경우라도 원안을 통과시키는 선에서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