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간 ‘흉상 이전 찬반’ 공방 격화…이재명, 홍범도 장군 묘역 참배 나서
정의당 “윤 대통령이 국민들께 직접 책임 있게 입장을 밝혀줘야” 압박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9일 대전시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아 홍범도 장군 묘비를 어루만지고 있다. (좌) / 국방부 청사 앞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우상)과 육사 내 설치된 홍 장군 흉상(우하).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9일 대전시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아 홍범도 장군 묘비를 어루만지고 있다. (좌) / 국방부 청사 앞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우상)과 육사 내 설치된 홍 장군 흉상(우하). ⓒ뉴시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내부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을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하기로 하면서 이 사안이 정치권 이슈를 넘어 이념논쟁으로까지 확대될 조짐이다.

◆ 육사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왜 지금 논란 되나

이번에 논란이 일어난 육군사관학교 내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지난 2018년 3월 1일 세워졌으며 그 중 국방부 결정에 따라 독립기념관으로 흉상이 이전될 것으로 알려진 홍범도 장군에 대해선 문 정부 시절인 2021년 제76주년 광복절에 카자흐스탄에서 대한민국으로의 유해봉환식까지 성대하게 치러지고 대전현충원에 유해를 안장했었는데,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육사 뿐 아니라 국방부 청사 앞 홍 장군 흉상까지 국방부가 이전을 추진함에 따라 이를 둘러싸고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대한독립군을 이끌며 일본군을 크게 격파한 봉오동 전투로 잘 알려진 홍 장군은 청산리대첩에도 참가하였으며 스탈린의 한인강제이주정책에 따라 러시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인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한 뒤 광복 이전인 1943년에 카자흐스탄에서 여생을 마쳤는데, 이번에 흉상 이전 추진을 계기로 정치권에서까지 그를 둘러싼 이념 논쟁이 불거진 데에는 러시아에서 활동할 당시 일어난 자유시 참변과 소련과의 관계 등 부분을 놓고 입장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흉상 이전 논란을 촉발시킨 국방부에선 지난 28일 입장문을 통해 “홍 장군이 소련공산당 군정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군 통합을 지지했고, 소련공산당의 자유시 참변 재판에 재판위원으로 활동한 사실, 자유시 참변 발생 후 소련 적군 제5군단 소속 조선여단 제1대대장으로 임명되는 등 역사적 사실이 있다”고 주장한 데 이어 29일 전하규 대변인의 정례브리핑을 통해 “여러 문서에 따르면 소련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기 위해 작성한 이력서에 (자유시 참변) 관련 내용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흉상 이전 추진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 대변인은 용산 국방부 청사 앞 홍 장군 흉상 이전에 대해서도 “군 내에도 역사나 전쟁사를 연구하는 교수와 학자, 연구기관이 있다. 군 내부적으로 판단해 결론 내려질 수 있으면 굳이 외부 학계와의 협의는 필요 없을 것 같다”며 강력한 추진 의사를 내비쳤는데, 29일 육사총동창회도 입장문을 통해 “2018년 육사 영내에 조형물 설치 시 홍 장군 흉상 배치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많았는데도 충분한 공감대 없이 강행됐다. 역사적 평가가 상반되는 인물에 대한 조형물 배치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국방부 결정에 힘을 실었다.

특히 이들은 “6·25전쟁 등 국가 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선열들에 대한 선양과 보훈 활동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며 이번 흉상 이전으로 논란이 일어나는 데 대해서도 “국토방위에 여념이 없는 장병들의 정신적 태세에 혼란을 주고 국가안보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나쁜 행태다. 육사는 오로지 호국간성 양성이라는 육사 정체성과 사관생도 교육훈련의 목적에 부합되게 결정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다만 홍 장군 흉상 설치와 유해봉환식 거행 등을 추진했던 전임 정부의 문 전 대통령은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흉상 철거 움직임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대한민국 뿌리가 임시정부에 있듯 우리 국군의 뿌리도 대한독립군과 광복군에 있음을 부정하는 것인가”라며 “국권을 잃고 풍찬노숙 했던 항일무장독립운동 영웅들의 흉상이 오늘 대한민국에서도 이리저리 떠돌아야겠나. 여론을 듣고 재고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 부디 숙고해주길 바란다”고 흉상 이전 반대 입장을 내놨다.

◆ 與 “文, 6·25전쟁 지우기해…일제와 싸우면 다 국군 뿌리냐”

(좌측부터) 국민의힘 신원식, 한기호, 유상범 의원. 사진 / 시사포커스DB
(좌측부터) 국민의힘 신원식, 한기호, 유상범 의원. 사진 / 시사포커스DB

그러자 국민의힘에선 문 전 대통령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3성 장군 출신의 국회 국방위 여당 간사인 신원식 의원은 같은 날 페이스북을 통해 “국군의 뿌리를 흔든 것은 바로 당신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정권 출범 초기인 2017년 8월 28일 국방부 초도 업무보고를 받아 이 자리에서 홍범도 등 독립군을 국군의 뿌리로 할 수 있도록 교과과정 개편을 지시했다고 한다”며 “대통령이 사관학교 과목을 개편하라는 지시는 유례가 없는 일인데 그 숨은 뜻을 아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17년 말 가동된 육사 교과과정 개편TF는 2018년 말 그 결과를 내놔 필수과목인 6·25전쟁사, 북한 이해, 군사전략을 선택과목으로 바꿨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신 의원은 “70%의 생도가 세 과목을 배우지 않고 졸업하게 만들었다. 육사의 제1정체성인 6·25전쟁 지우기”라며 “2018년 3월 1일엔 대대적 선전과 함께 소련군 복장을 한 홍범도 흉상을 생도들이 매일 볼 수 있는 장소에 설치했고 2019년 6월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문 전 대통령은 국군의 뿌리가 남침의 주역인 ‘김원봉’이라고 국군 정신 해체의 결정타를 날렸다. 이 모든 것은 지난해 국정감사와 국방부 자체 감사, 언론보도 등을 통해 사실로 드러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일제와 싸운 경력이 있으면 소련군 출신도, 남침한 북한군 고급 간부도 다 국군의 뿌리가 되나. 최종적으로 북한이 보천보 전투의 영웅이라고 주장하는 김일성도 국군의 뿌리로 만드려고 한 건 아닌가”라며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는 6·25전쟁을 포함 3천여회에 걸친 북한의 침략과 도발로부터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지킨 호국영령이고 김원봉과 홍범도는 그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뿐 아니라 국회 국방위원장인 한기호 의원도 29일 인천 중구 인천국제공항 인재개발원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의원 연찬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홍 장군 스스로 자기 경력을 쓸 때 1919년부터 1922년까지 공산당이라고 했다. 육사에 세울 때도 육사 교수들이 (흉상 설치는) 안 된다고 얘기했고 이번에 문제가 된 게 아니라 육사 내에서 꾸준히 잘못됐다고 얘기했지만 문 정부 있을 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반영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박정희 대통령 때 홍 장군이 서훈을 받았지 않느냐는 지적엔 “홍 장군이 서훈 받게 된 게 박정희 대통령 때가 아니라 윤보선으로 돼 있다”고 응수했다.

또 같은 당 태영호 의원도 “육사는 앞으로 북한군과 싸워야 할 정체성 뚜렷하고 주적 개념이 뚜렷한 사람을 키우는 곳”이라며 “그분이 (사진 속에 나온) 입은 군복 자체가 소련군 군복이다. 홍 장군의 공과 과를 말할 때 공이 되게 크고 행적은 논란이 되는 행적이 있는데 일부러 육사에 둬야 하느냐”라고 반문했고, 홍 장군 대신 백선엽 장군의 흉상을 세우자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이념적으로 갈라져서 호불호 가리는 것도 아니고 논란이 있는 분은 피했으면 어떨까. 국군이 확고히 희생정신을 배워야 하는 분을 모셔야 한다”고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다만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인 유상범 의원은 29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홍 장군 흉상은 이전 문제를 철거 문제로 기본 전제 사실을 잘못 얘기함으로써 야기된 문제”라며 “각 기관이 자체적으로 판단해 흉상과 같은 기념물을 적절한 장소에 이관하는 문제에 불과한 것인데 이걸 갑자기 철거라는 이슈로 만들어가지고 역사 논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서울 어디에 있는 독립운동가 흉상을 독립운동가를 기념한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한다면 그게 역사적 논쟁이 될 일이 뭐가 있나”라고 수위에 온도차를 보였다.

◆ 野 “국민을 이념적으로 분열시키겠다는 의도…국민 분개해”

(좌측부터) 민주당 우원식, 정청래 의원, 정의당 심상정 의원. 사진 / 시사포커스DB
(좌측부터) 민주당 우원식, 정청래 의원, 정의당 심상정 의원. 사진 / 시사포커스DB

한편 문 전 대통령 등에 맹공을 퍼붓는 여당의 공세에 맞서 더불어민주당은 홍 장군 흉상 이전 움직임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맞불을 놨는데, 홍범도 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우원식 민주당 의원은 29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출연해 “무장독립운동하셨던 분들을 육사에 (흉상) 설립한 이유는 국군의 뿌리가 독립군, 광복군이라는 것을 선언한 것으로 국군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자 한 것인데 (흉상 이전은) 이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홍 장군의 공산주의 이력에 대해선 “소련 공산당에 참여한 것은 사실이나 당 활동을 위한 게 아니라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1922년 해방을 위해 각국 지도자들이 교류한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민족대회가 있었는데 이때 입국할 때 쓴 조사서를 보면 직업은 의병이고 목적과 희망은 ‘고려 독립’이라고 써있었다. 공산당 가입은 1927년에 이뤄졌는데 당시 소비에트 영토 안에 있었던 점, 홍 장군이 집단농장 지도자로서도 같이 독립운동 했던 동지들을 보호하기 위한 측면이 있고 또 그때 60세가 되는 해인데 고령으로 연금 상태에 들어가기 위한 생활상 부득이한 이유였다”며 “충분히 검증해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건데 다시 이를 꺼내는 이유는 국민들을 이념적으로 분열시키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당정을 비판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우 의원은 “흉상을 세우는 것은 독립군, 광복군이 우리 국군의 뿌리고 임시정부가 우리 정부의 법통이란 헌법적 정신에 기초한 것인데 윤 정부의 이런 몰가치, 반헌법적 태도에 대해 국민이 정말 분개하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다만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나와 있는 만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대인 한국광복군은 이에 해당되나 홍 장군이 이끌었던 대한독립군은 그보다 이전에 활동했고 임정 산하 군대는 아니다.

일단 홍 장군 흉상 논란이 점차 확대되면서 민주당 지도부까지 이 사안에 대해 적극 나서고 있는데, 정청래 최고위원은 29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나와 “나라를 팔아먹는 사람만 매국노가 아니고 민족의 혼, 역사, 독립영웅 홀대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다. 이념 논쟁 벌이면 국민을 5:5로 갈라치기 할 수 있다”고 윤 정부를 직격했으며 이재명 대표는 아예 1박2일 간의 민주당 워크숍이 끝난 직후 당초 예정에 없던 국립대전현충원의 홍 장군 묘역 참배 일정을 추가했다.

비록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은 지금까지 홍 장군 문제와 관련해 본인 생각을 얘기한 적 없다”며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지만 윤 대통령이 전날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이라고 발언한 만큼 야당 역시 사실상 맞대응에 나서면서 홍 장군 흉상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념 논쟁에 본격 불이 붙는 모양새다.

특히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2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오늘 새벽 5시에 중앙일보에서 단독 보도한 게 있는데 여권 핵심관계자가 대통령이 ‘홍 장군은 항일무장투쟁을 이끈 독립운동가로 공로를 인정해야 하지만 그 흉상은 육사보다 독립기념관에 기리는 게 적합하다’고 말했다더라. 육사나 국방부에 둬선 안 된다는 게 대통령의 뜻과 지시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급기야 정의당 심상정 의원까지 29일 당 의총에서 “홍 장군의 흉상 철거가 누구 뜻인지, 그 연유가 무엇인지 윤 대통령이 국민들께 직접 책임 있게 입장을 밝혀주기 바란다”며 직접 윤 대통령을 압박하고 나섰다.

이처럼 여야가 홍 장군 흉상 논란을 둘러싸고 이념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사실상 윤 정부를 겨냥 “국정동력이란 게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상황 속에서 건국훈장을 받은 독립운동가에게 모욕을 줘서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민생 문제는 절대 아니고 그저 일부의 뉴라이트적인 사관에 따른 행동”이라며 “과거 무장독립운동에 나섰던 사람들 간에 크고 작은 알력이 있었을망정 이념에 따라 평가가 달라져선 안 된다. 이 논란은 하루 속히 접는 게 좋다”고 빨리 수습에 나설 것을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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