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수능’ 강조한 윤 대통령…당정 “올 수능, ‘킬러 문항’ 배제”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학교교육 경쟁력 제고 및 사교육 경감 관련 당정협의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학교교육 경쟁력 제고 및 사교육 경감 관련 당정협의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내세워온 3대 개혁 중 하나인 ‘교육 개혁’의 방향이 최근 공정성 문제를 지적하는 그의 ‘수능’ 발언을 계기로 가시화되는 가운데 일각에선 수능을 5개월 앞두고 혼란을 자초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尹, ‘수능 발언’ 왜?…與 “공교육에 있는 것으로 내란 것”

앞서 지난 15일 윤 대통령은 이주호 교육부 장관에게 “수능시험은 수업만 열심히 따라가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출제하라”고 주문했는데, 이 같은 발언이 나온 다음 날 교육부 대입 담당국장이 경질되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대해선 12년 만에 대대적인 감사 계획까지 발표돼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특히 이런 기류에 ‘쉬운 수능’을 지시한 게 아니냐는 확대해석까지 나오게 됐는데, 이 같은 시선에 대해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19일 “공정한 수능은 결코 물수능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이 학원으로 가지 않도록 공정한 수능이 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쉬운 수능’이 아니라‘ 공정한 수능’에 무게를 둔 발언임을 강조했고 국민의힘에서도 박대출 정책위의장이 이날 ‘학교교육 경쟁력 제고 및 사교육 경감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것을 내지 말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도 최근 참모들에게 이른바 ‘킬러 문항’이라는 초고난도 문항을 꼬집어 “약자인 아이들을 갖고 장난치는 것과 같다. 공교육이 아니라 장외에서 배워야 풀 수 있는 문제로 학생을 평가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불공정한 행태”라며 고도성장기에는 사교육 부담이 교육 문제에 그쳤으나 저성장기엔 저출산 고령화 대비 측면에서 치명적 사회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같은 대통령의 주문에 국회 교육위원회 여당 간사인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은 19일 당정협의회 직후 결과 브리핑에서 “당정은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문제를 출제하면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모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봤다. 앞으로 공정한 수능 평가가 되도록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은 출제를 배제하고 적정 난이도가 확보되도록 출제 기법을 고도화하겠다”며 “수능 입시 대형학원 등의 거짓·과장 광고로 인해 학부모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일부 학원의 편법·불법 행위에 대해서도 엄중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킬러 문항’을 배제할 경우 수능 변별력에 있어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엔 이 부총리가 “대학 교수도 풀지 못할 정도로 꼬인 문제들이 많았는데 그런 문제로 손쉽게 변별력을 확보하는 게 아닌 좋은 문항들을 개발하면 충분히 변별할 수 있다”고 답했으나 구체적이고 명확한 방안을 제시한 것은 아니어서 회의적 시선은 여전히 잦아들지 않고 있는데, 교육부가 오는 21일 학교 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을, 또 27일에는 사교육 경감 대책을 순차적으로 발표할 계획인 만큼 일단 이를 지켜보고 판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野 “尹 말 한 마디에 수능 앞둔 교육 현장 혼란…책임 져야”

5일 권칠승 수석대변인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3) [사진 / 오훈 기자]
5일 권칠승 수석대변인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3) [사진 / 오훈 기자]

한편 야권에선 올해 수능을 5개월 앞둔 시점에 대통령이 교육 현장에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면서 ‘시점’을 문제 삼아 강도 높게 비판했는데, 더불어민주당에선 19일 권칠승 수석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이번 사태는 윤 대통령의 무책임한 입이 부른 ‘교육 참사 시즌 2’다. 긴 호흡을 갖고 다뤄야 할 교육 사간을 아무 사회적 논의나 준비 과정도 없이 즉흥적으로 지시해서 국민을 혼란에 빠뜨렸다”며 “그런데 정부여당은 대통령 대신 매 맞을 사람을 찾고 있으니 뻔뻔하다. 윤 대통령은 하루 빨리 국민을 혼란에 빠뜨린 데 대해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권 수석대변인은 이주호 교육부장관이 윤 대통령으로부터 경고 받은 점을 꼬집어 “대통령의 잘못을 아랫사람에게 떠넘기는 게 윤 정부의 수습방식이냐. 작년 7월 윤 대통령 지시에 따라 추진한 ‘초등학교 만 5세 입학’이 여론의 강한 비판을 받고 철회됐을 때도 사퇴를 통해 책임진 것은 박순애 교육부장관이었다”며 “무책임한 지시는 대통령이 했는데 논란이 초래되면 장관에게 책임 지우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금 무슨 책임을 지고 있나”라고 일침을 가했다.

실제로 이날 당정협의회에서 이 장관은 대통령이 즉흥적으로 지시한 게 아니라는 취지로 “지난 정부가 방치한 사교육 문제, 특히 학생·학부모·교사가 모두 힘든 와중에 학원만 배를 불리는 작금의 상황에 대해 윤 대통령이 여러 차례 지적하셨음에도 신속하게 대책을 내놓지 못한 데 대해 교육부 수장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으며 당정협의회를 마친 뒤에도 “대통령은 일찍이 지적하셨는데 교육부가 관성적으로 대응하며 근본적 해법을 못 내놓은 것”이라고 대통령 책임은 아니란 점을 거듭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이 장관은 야권에서 지적하는 교육 현장에서의 혼란을 의식한 듯 “향후 이 문제를 해소해 나갈 때 학부모 불안을 최소화하겠다. 성급히 하기보다 충분히 전문가 의견을 듣고 합리적 방안을 마련하면서 점진적·단계적으로, 그렇지만 확실하게 하겠다”고 공언했는데, 올 수능부터 적용되기로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몇 개월 남지 않아 이 역시 가능할지 미지수라는 시선이 쏠리고 있다.

심지어 이정미 정의당 대표까지 19일 상무집행위원회의에서 “수능은 이제 고작 5개월 앞이다. 윤 대통령의 혼란스러운 ‘물수능 발언’으로 입시를 코앞에 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근심만 깊어지고 있다”며 “수능 불안이 늘어날수록 사교육은 그 불안감을 먹고 덩달아 자라날 것이다. 윤 대통령이 말한 소위 ‘교육계 이권 카르텔’이 되려 강화되고 사교육 폭등 결과만 낳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모르는 것은 제발 전문가들에게 물어가며 판단하라”고 윤 대통령에 주문했으며 도종환 민주당 의원도 같은 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선생님들의 전문성에 맡겨야 하는데 비전문가들이 툭툭 던지고 (하면) 공무원들 일하지 말라는 얘기”라고 한 목소리로 꼬집었는데,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여당에선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같은 날 “대통령은 검찰 초년생인 시보 때부터 수십년 동안 검사생활을 하면서 입시비리 사건을 수도 없이 다뤄봤고, 특히 조국 일가의 대입 부정 사건을 수사 지휘하는 등 대입 제도의 누구보다 해박한 전문가”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에 같은 날 민주당에선 박성준 대변인 서면브리핑을 통해 “그 말대로면 경제 수사한 검사에게 기업 맡기고, 원전 수사한 검사에게 에너지 정책 맡기면 되겠다. 이쯤 되면 해명하겠다는 게 아니라 국민을 우롱하는 작태”라며 “대통령의 말실수에도 윤비어천가 부르는 국민의힘과 교육부장관은 국민 해명영역 낙제점이다. 대통령 말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칭송하기 바쁜 정부여당을 국민이 신뢰할 수 있겠나”라고 맞받아쳤다.

급기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도 비슷한 취지로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이재용 부회장 수사하면 경제 전문가, 박근혜·이명박 대통령 수사하면 통치 전문가, 댓글 수사하면 인터넷 전문가, 버닝썬 수사하면 유흥 전문가?”라며 당정협의회에서 나온 여당 의원들의 발언을 꼬집었는데, 이 뿐 아니라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까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 본인이 잘못해 놓고 남 탓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대입 예고제에 따라 정부를 믿고 교육과정을 따라온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혼란이 얼마나 클지 가늠이나 하고 있나”라고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 尹 발언, 前정부 인사들 겨눴나…평가원장도 사임 표명

이규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2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행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이 원장은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과 올해 모의평가 결과 등 실증 자료를 바탕으로 적정 난이도를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이규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2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행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이 원장은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과 올해 모의평가 결과 등 실증 자료를 바탕으로 적정 난이도를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이런 가운데 윤 대통령의 수능 관련 발언은 사실상 전 정부 인사들을 겨냥한 것 아니었느냐는 관측도 없지 않은데, 이날 이 교육부장관이 사과하면서도 “지난 정부가 방치한 사교육 문제”라고 언급했을 뿐 아니라 공교롭게도 윤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바로 다음 날 경질된 교육부의 대입 담당 국장(이윤홍 인재정책기획관)이나 감사를 받을 처지가 된 한국교육평가원의 이규민 원장 모두 지난 정부에서 요직을 지내거나 임명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앞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대입 담당 국장 경질 배경과 관련해 ‘연합뉴스’에 “윤 대통령이 몇 달 간 지시하고, 장관도 이에 따라 지시한 지침을 국장이 버티고 이행하지 않았다”고 설명한 바 있어 결국 교육부장관 책임도 아닌, 해당 ‘국장’이 문제였다는 의미로 풀이되는데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19일엔 이 원장까지 “수능 준비로 힘들어하고 계신 수험생과 학부모님께 심려 끼쳐 죄송하다. 지난 6월 모의평가와 관련해 기관장으로서 책임을 지고 사임하기로 했다”며 윤 대통령의 ‘공교육 교과과정 밖 수능 출제 배제’ 지시가 나온 지 나흘 만에 사임 의사를 밝혔다.

지난해 3월 취임한 이 원장의 임기는 오는 2025년 2월까지였는데, 모의평가 결과 때문에 평가원장이 사퇴하는 것은 전례 없는 일로 이 원장은 “2024학년도 수능의 안정적 준비와 시행을 위한 것”이라고 사임 이유를 설명했으나 수능 출제를 주관하는 평가원의 수장까지 수능 5개월을 앞두고 물러나게 되면 수험생들의 혼란은 한층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정이 이 같은 기조를 견지하는 데에는 집권 2년차에도 아직 전 정권의 흔적이 정부 곳곳에 남아 국정 운영을 저해하고 있다는 판단을 우선한 것으로 보이는데, 당장 이날 정부여당이 ‘학교교육 경제력 제고 및 사교육 경감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발표한 내용 중 문 정부가 당초 오는 2025년부터 일반고로 전환하기로 했었던 자립형사립고, 외국어고, 국제고는 존치하기로 결정한 점도 이런 해석에 한층 힘을 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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