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소키치...경상도를 임나 지명으로 처음 바꾸다(1913)

스에마쓰 야스카즈...전라도를 임나 지명으로 바꾸다(1949)

임나 지명을 사용한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와 유네스코 잠정등록 파동(2019)

<일본서기>를 고무 찬양한 <전라도천년사>(2022)는 폐기될까?

 

광주시와 전라남북도가 공동 발간예정인 <전라도천년사>에서 우리가 크게 지적하는 것은 지명이다. 지명에 관해서는 그것이 자칫 한일 관계에 있어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서술하는 데 악용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매우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독도를 ‘다케시마’로 부르면서 다케시마는 한국땅이라고 아무리 외쳐도 일본 땅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원을 일본서기에 나오는 ‘기문’이라고 하면 안 되며, 장수를 <일본서기>에 나오는 ‘반파’라 해도 안 되고, 해남을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나오는 ‘침미다례’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식민지를 체험한 국민들에게 <삼국사기>에도 없는 <일본서기>의 임나(任那)지명을 억지로 끌어들이는 것은 분노를 넘어 매국행위로 비칠 수 있다. 일본지명을 써 놓고 우리 국민들에게 일본 지리공부를 하라는 것은 한국학자들의 교만이며 망상이다.

쓰다 소키치...경상도를 임나 지명으로 처음 바꾸다(1913)

조선을 침략한 일제가 맨 먼저 한 일은 역사를 바꾸는 일이었다. 단군을 부정해 위만을 강조하고, 한사군을 평양에 그려 최씨낙랑국을 가리고, 가야(加耶)를 덮어 임나를 그렸다. 우선 지명을 바꾸기 시작했다. 남해를 침미다례, 고성을 고차, 구포를 남가라로 고쳤다.

여기에 앞장선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1873~1961)가 처음에 “신공황후 신라 침공설은 허위이다. 초대 신무(진무)천황부터 9대천황까지는 역사에 없는 조작이다”고 강하게 주장했다고 해서 그가 황국사관을 버린 것이 아니다. 그는 “황실의 존엄과 일본 국체를 위해 <일본서기>를 비판했다”고 고백했다. 이 일로 출판법위반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그에게 유죄판결은 학자로서의 양심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천황에 대한 충성심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들은 소위 신이 세운 일본(神國日本)을 중심으로 고대사를 복원이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다는 황국사관(皇國史觀), 곧 ‘야마토왜 중심 사관’으로써 야마토왜가 한반도 남부 즉 경상도와 전라도를 과거 200년 동안 지배했다는 주장을 더욱 공고히 했다.
1913년 쓰다 소키치가 경상도 일대를 일본서기의 임나 지명으로 처음 고쳤다. 쓰다는 남해를 침미다례, 고성을 고차, 구포를 남가라로 고쳤다.(출전 : 조선역사지리 上 1913, 이찬구 재편집)
1913년 쓰다 소키치가 경상도 일대를 일본서기의 임나 지명으로 처음 고쳤다. 쓰다는 남해를 침미다례, 고성을 고차, 구포를 남가라로 고쳤다.(출전 : 조선역사지리 上 1913, 이찬구 재편집)

홍윤기 교수에 의하면, <일본서기>의 역사 기사가 개찬, 조작되었다는 것은 일본학계의 통설이라고 했다. 19세기 말의 저명한 고대사학자로 <고대일본지명사전>을 남긴 요시다 도고(吉田東伍:1864~1918)는 “<고사기>며 <일본서기>는 터무니 없다. 신무천황 건국 문제뿐 아니라 거기 쓴 것은 전부 거짓말이다”고 주장했다.

황국사관은 학자들의 학술행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천왕을 숭배하는 집단의 충성서약일 뿐이다. 한국학자들은 이점을 신랄하게 비판하지 않고 쓰다의 말만 인용하여 논문을 쓴다. 일본인의 논문을 인용했기 때문에 국제적인 인증을 받았다고 자위하는 것일까.

쓰다는 1913년에 경상도 일대를 <일본서기>의 임나 지명으로 바꾸었다. 전라도까지 손을 뻗치지는 않았다. 전라도를 임나 지명으로 고치는데는 또 다른 자가 나타난다. 

쓰다가 고친 임나 지명은 다음과 같다. 쓰다는 <삼국사기> 지명을 못 믿겠다는 것이고, 왜가 경상도 일대를 식민지 지배했다는 확증을 삼기 위해 <일본서기>에 있는 임나 지명만을 곳곳에 박아놓았다. 제국주의 망상에서 나온 지명이고, 천왕에게 봉헌하기 위해 고친 지명들이다. 쓰다가 임나 지명으로 변경한 주요지명은 다음과 같다.

구포▶남가라, 김해▶가라, 함안▶안라, 고성▶고차, 창녕▶비자발, 하동▶다사진, 남해▶침미다례 등이다.

◆ 조선총독부는 1937년 보통학교 <국사> 교과서에 임나 지도를 그렸다

조선총독부는 1937년 신공왕후가 신풍(神風)으로 삼한정벌을 했다고 꾸미기 위해 당시 보통학교 <국사> 교과서에 다음과 같이 경상도 쪽에 변한(弁韓)의 가야(伽倻) 대신에 ‘임나(任那)’로 표기한 조선 지도를 가르쳤다. 다시 말해 신공왕후가 재위 49년(249년)에 야마토왜의 왜군을 보내 신라를 공격하고, ‘비사벌, 남가라, 탁국, 안라, 다라, 탁순, 가라’를 점령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 악명 높은 ‘임나일본부설’의 하나인 임나(가야) 7국의 근거가 된다. 

신공왕후가 신풍(神風)으로 삼한정벌을 했다고 꾸미기 위해 조선총독부가 제작한 1937년 보통학교 교과서의 임나 지도인 조선고대지도. (출전 : 보통학교 교과서, 1937)
신공왕후가 신풍(神風)으로 삼한정벌을 했다고 꾸미기 위해 조선총독부가 제작한 1937년 보통학교 교과서의 임나 지도인 조선고대지도. (출전 : 보통학교 교과서, 1937)

일본 군국주의 자들은 ‘신라 천일창(天日槍)의 후손’인 신공(神功)을 통해 오히려 반(反)신라 정서를 고양시키기 위해 신공의 ‘신라 침공설’을 퍼뜨렸다. 천일창 설화는 <일본서기>와 <고사기>(天日之矛)에 자세히 전해 온 반면에 우리 측 사료에는 전혀 없다. 천일창은 일본에 무기 제작과 벼농사, 곰신단(熊神壇)을 전해주었다.

◆ 스에마쓰 야스카즈...전라도를 임나 지명으로 바꾸다(1949)

쓰다 이후로 임나의 강역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경상도에서 전라도까지 임나 영역이 확대된 것이다. 소위 말해서 ‘전라도 임나’ 또는 ‘호남 임나’가 새로 생긴 것이다.

해방 전에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가담한 야쿠자였던 아유카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1864~1946)이 임나의 지명 비정 범위를 경남·경북 및 충남·전남까지 확장하여 멋대로 한반도 곳곳에 비정했다. 소위 남선(南鮮) 지배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다. 

조선사편수회 출신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가  그의 저서 임나흥망사에 전라도를 온통 ‘임나일본부설’의 지명으로 고쳐 표기했다. (출전 : 임나흥망사, 1949, 이찬구 재편집)
조선사편수회 출신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가  그의 저서 임나흥망사에 전라도를 온통 ‘임나일본부설’의 지명으로 고쳐 표기했다. (출전 : 임나흥망사, 1949, 이찬구 재편집)

그리고 해방 후에는 조선사편수회와 경성제국대학 교수 출신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 1904~1992년)가 앞장섰다. 그의 저서 <임나흥망사>(1949, 1956 재간)는 일제 식민사학에서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의 결정판과 같은 책이라고 전진국 교수는 평가한다. 그의 저술은 어떤 목적을 정해놓고 사료를 자의적으로 취사 선택하였다는 점이다. 천황에 대한 비판이나 상하의 복종 질서관계에 대한 비판 의식이 전혀 없이 <일본서기>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인다. 맹목적 군국주의, 무비판적 천황 중심주의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다는 면에서 악의적 역사왜곡의 대표 서적이라 할 수 있다. 한국학자들이 애용하고 있는 <임나흥망사>를 논문에 인용하려면 그의 천왕숭배주의에 대한 비판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논문은 천왕중심인 <임나흥망사>의 선전물일 뿐 객관성 있는 학술논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스에마쓰는 백제와 신라의 역사를 다루면서도 <삼국사기> 나 <삼국유사>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일본서기>의 보완재로서 <삼국사기>를 임의로 활용하여 야마토왜(倭)의 우월주의를 강조했다.

스에마쓰가 전라도를 임나 지명으로 변경한 주요지명은 다음과 같다.

강진▶침미다례, 광주-영암▶다리, 구례▶사타, 남원▶기문, 영광-고창▶모루, 전주▶비자, 김▶벽골 등이다. (하동▶대사)

소위 <일본서기>에 나오는 것처럼 일본 천황이 200년간 지배하던 곳을 백제 왕에게 떼어 주었다는 ‘상다리, 하다리, 사타, 모루’라는 임나 4현(縣)설은 100년간 이어온 스에마쓰의 핵심이론이다. 일본천왕의 하사행위는 신성하기 때문에 누구도 변경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한국학자로 임나4현을 옹호하거나 유사하게 인용한 자는 김정학, 정중환, 천관우, 전영래, 이근우, 곽장근, 백승충, 박천수 등이다. 이들 중에는 스에마쓰가 처음 비정한 전라도 지명을 교묘하게 바꾸어 이곳저곳에 말뚝을 박았다. 스에마쓰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제2의 스에마쓰가 되기를 자처한 것인지도 모른다.

1922년 이마니시 류가 전라도 남원을  ‘기문’으로 고쳤다

그런데 남원을 ‘기문’이라고 한 자는 스에마쓰가 아니다. 그보다 조선사편수회 대선배인 이마니시 류(今西龍:1875~1932)가 전라도 남원을 처음으로 ‘기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922년 뜬금없이 “<일본서기>에 나오는 기문(己汶)은 섬진강 유역에 있는 남원(南原)에 해당해야 할 일이다”라고 <사학회보>에 발표했다. 1922년 이전에 어느 누구도 남원을 기문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해방 이후 한국 역사학자들은 조선총독부 소속이었던 군국주의 어용학자이며 천황숭배주의자인 이마니시 류의 학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학설을 적극 옹호하며 충성경쟁을 벌였다. 이마니시 류의 뒤를 이어 남원(또는 남원 일대)이 곧 기문이라고 옹호 찬동한 자는 정중환, 전영래, 연민수, 김태식, 이영식, 이근우, 곽장근, 백승충, 박천수 등이다.

이들이 한국 가야사 연구의 주류학자들이며, 이들 가운데 일부는 <전라도천년사>의 고대사부분 집필자나 편찬위원으로 참여하여 전라도의 고대 역사를 왜곡했다. 서론은 부정한다고 했다가 결론에 가면 <일본서기>를 고무 찬양한다.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의심한 자는 있어도, <일본서기>의 맹점을 인정한다면서도 어느누구도 조목 조목 비판한 적이 없다. 한국학자들은 <일본서기>에 관한 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임나 지명을 사용한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와 유네스코 잠정등록 파동(2019)

2019년 12월 3일, 국립중앙박물관이 28년만에 가야 관련 특별 전시를 하며 <일본서기>의 지명을 인용해 전시하여 큰 물의를 일으켰다. 일제 식민사관인 ‘임나일본부설’을 대한민국의 국기기관이 자청해서 대변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전시실에는 <일본서기>를 인용해 가야 역사 연표를 작성하였으며, 각종 <일본서기>지명을 한반도에 비정한 지도를 게시했다. 대한민국 박물관이 아니라 일본국립박물관 같은 착각을 갖게 했다. 박물관 학예사들이 어디서 임나 교육을 받고 온 것일까. 한국학자들과 학예사들이 이렇게도 일사불란하게 담대해진 배경이 어디서 온 것일까? 참으로 궁금하다.

먼저 박물관지도에는 기문(남원), 대사(하동)와 임나 7국인 가라(고령), 다라(합천), 가락(금관가야)등이 포함돼 있다. 또 다른 지도에는 6세기 ‘임나일본부설’의 핵심인 임나 4현의 지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2019년 국립중앙박물관이 가야 관련 특별 전시를 하며  일본서기의 지명을 인용해 그린 지도가 문제를 야기했다.(사진 / 이찬구 재편집)
2019년 국립중앙박물관이 가야 관련 특별 전시를 하며  일본서기의 지명을 인용해 그린 지도가 문제를 야기했다.(사진 / 이찬구 재편집)

임나 지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임나 지도뿐만 아니라, 유네스코 7개 가야고분군 명칭 가운데 남원과 합천의 이름이 ‘기문’과 ‘다라’라는 이름으로 정해졌고, 이 임나 이름으로 2019년 유네스코 본부에 잠정목록으로 제출되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또 다른 국가기관인 문화재청에서 벌어진 것이다. 해당 공무원들은 그것이 일본 지명임을 알고 제출했을까? 아니면 국내 가야사 전공 학자들이 해당 공무원을 속인 것일까? 

유네스코 잠정목록에는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은 가야와 백제를 잇는 육로의 일부인 아영 분지에 있다. 이 고분은 아마도 일본 역사서인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이름이 나오는 기문국(Gimunguk)이라는 가야(Gaya) 정치의 중앙 묘지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적고 있다. 당당하게 <일본서기>라고 기록했다. 또 합천고분도 다라국(Darakguk)으로 적었다. 경천동지할 일이 아닌가.

지금 이 7개 가야고분군의 유네스코 등재가 오늘 9월 중순이면 확정 발표된다. 최근에 문화재청과 시민단체가 <국가의견서>의 작성을 앞두고 원만한 합의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혹시라도 잘못될까 봐 시민들과 시민단체들의 속 마음은 타들어 간다. 

2019년 유네스코 잠정목록에 올라간 ‘대한민국’ 항목...7개 가야고분군 지역분포 ( https://whc.unesco.org/en/tentativelists/6371/  참조)
2019년 유네스코 잠정목록에 올라간 ‘대한민국’ 항목...7개 가야고분군 지역분포 ( https://whc.unesco.org/en/tentativelists/6371/  참조)

◆ <일본서기>를 고무 찬양한 <전라도천년사>(2022)

유네스코 등재문제가 잠잠한가 했더니 더 큰 일이 터졌다. <전라도천년사> 선사·고대 3권은 전라도를 <일본서기>의 임나일본부 지명으로 바꾸는 결정판이 되고 말았다. 유네스코의 불씨가 또 살아났다.

<전라도천년사>의 남원 기문(己汶)을 보자. “기문하가 섬진강이고 기문지역을 흘러가는 강을 기문하라고 한다면, 기문은 남원지역으로 비정되는 것이 확실하다”고 했다. (3권 57쪽) 이렇게 기문하가 섬진강이고 기문이 곧 남원이 확실하다는 신념적인 표현은  <일본서기>에 대한 고무 찬양이지 문헌 근거에 기초한 학문이 아니다.

이어 <전라도천년사>는 침미다례와 고해진을 강진(3권 21쪽)으로 보거나 또는 침미다례를 해남, 강진, 나주 등으로 보기도 한다. (3권 255쪽)

또 침미다례와 관련된 4읍이 나온다. 비리(比利)⋅벽중(辟中)⋅포미지(布彌支)⋅반고(半古)의 위치에 대해 각각 정읍, 김제, 고부, 부안 일대를 4읍으로 보고 있다.(3권 401쪽) 벽중은 김제가 맞다고 강조한다. (3권 403쪽)

선사·고대 3권 곳곳에는 임나 4현인 상다리(上)·하다리(下哆喇)·사타(娑陀)·모루(牟婁)가 나온다. 상다리는 여수반도, 하다리는 여수 돌산, 사타는 순천시, 모루는 광양시로 새롭게 비정하고 있다.(3권, 225쪽) “순천 일대를 임나사현의 사타와 연결시키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다”. (3권, 227쪽) “임나4현의 하나인 모루의 중심지는 광양읍으로 비정하고 있다” (3권, 233쪽) 등등 모두 <일본서기>에 대한 고무 찬양만이 있을 뿐이다.

처음에 스에마쓰가 광주-영암을 ‘다리’라 하고, 구례를 ‘사타’라 하고, 영광-고창을 ‘모루’라 한 것을 <전라도천년사> 집필자들이 여수, 순천, 광양으로 수정하였다. 집필자들은 대단한 것의 발견인 양 자화자찬하겠지만, 임나 지명을 한반도라는 공간 틀 안에서 A를 B로 바꾼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

또 집필자들은 “동한(東韓)의 땅을 백제가 섬진강으로 나가는 진출로로 보고, 이림을 임실로, 고난을 진안으로, 감라는 용담(또는 곡성)으로...전라도 내륙의 요지로 추정하였다”(3권 28쪽)라고 기술하고 있다.

또 <전라도천년사> 선사고대 3권 266쪽을 보면 <일본서기> 신공 49년 기사의 임나 7국을 경상도로 비정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경상도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광주, 전라남북도가 공동 발간 예정인 전라도천년사의 선사·고대 3권은 전라도를 일본서기의 임나일본부 지명으로 바꾸는 결정판이다. (지도 이찬구 편집)
광주, 전라남북도가 공동 발간 예정인 전라도천년사의 선사·고대 3권은 전라도를 일본서기의 임나일본부 지명으로 바꾸는 결정판이다. (지도 이찬구 편집)

이처럼 인명이 중요한 만큼 지명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재론이 필요 없다. 지명에 관한 한 <일본서기>는 우리의 <삼국사기>를 따라올 수 없다. <삼국사기>는 철저하게 옛 지명(古名)과 지금 지명(今名)을 병기해 주고 있다. 그래서 혼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남원의 백제시기의 옛 지명은 ‘고룡(古龍)’이다. 이 틈새에 기문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남원 관련 지명에 기문은 있지도 않다. 지명에 관한 한 <일본서기>는 3류 소설 책이다.

일본 식민학자들과 국내학자들이 지명 비정에 사용한 방법은 문헌 근거가 아니라, ‘음상사(音相似)’다. 남원이 기문이 되는 근거도 음상사 비교법이 유일하다. 즉 ‘음이 비슷하면 서로 같은 곳이다’라는 억지 중의 억지 설명이다. 거듭 말하지만 남원의 고룡이 일본인을 위해 ‘기문’으로 불려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차제에 우리는 같은 발음과 같은 한자의 지명이 한반도에서 왜 나타나지 않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일본 오사카의 백제를 보자. 백제궁, 백제신사, 백제교, 백제강, 백제소학교가 지금도 있다. 임나가 있었다면 임나 7국, 임나 10국, 임나 4현이 한반도에 존재했다면 같은 한자의 동일한 지명이 몇 개라도 나와야 하는 것이다. 임나라는 지명이 하나라도 남아 있어야 한다 (참고로 역사학계에서 말하는 강수열전, 광개토태왕비문, 진경대사탑비의 임나를 들어서 임나를 한반도 가야라고 하는 논리는 이를 논파하는 논문들이 있으니 참고 바란다)

예를 들어 임나 4현 중 하나인 ‘모루’(牟婁) 역시 일본열도에서 동일한 한자 지명(和歌山県 西牟婁郡)이 찾아진다. 이처럼 일본열도에서 먼저 찾아야 순서가 맞다. 그 찾아진 모루 주변에서 다른 3현을 찾아보는 노력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이런 방법과 순서가 국고지원을 받는 한국학자들이 수행해야 할 학문 자세라고 본다.

만약 국고지원을 받아 전라도 광양(光陽)에서 ‘모루’라는 일본지명을 찾는 것은 자칫 식민사관을 재탕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지금까지 그것이 비판받지 않은 것은 국고를 지원해 준 공무원들이 그것의 시비를 가리지 못했기 때문이지, 학자들의 주장이 옳아서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 지명을 바꾸는 것은 창씨개명보다 더 잔인하다

따라서 전라도의 남원은 임나의 ‘기문’이 아니다. 장수는 ‘반파’가 아니다. 부안(전주)은 ‘비리’가 아니다. 해남, 강진은 ‘침미다례’가 아니다. 강진은 ‘고해진’이 아니다. 순천(구례)은 ‘사타’가 아니다. 김제는 ‘벽중’이 아니다. 광양은 ‘모루’가 아니다. 여수는 ‘상다리’가 아니다. 돌산도는 ‘하다리’가 아니다. 부안(태인)은 ‘반고’ 가 아니다. 고부는 ‘포미지’가 아니다. 정읍은 ‘비리’가 아니다. 곡성은 ‘감라’가 아니다. 임실은 ‘이림’이 아니다. 그리고 하동은 ‘대사’가 아니다.

한국사람의 혀가 잘 돌아가지 않는 낯선 한자로 지명을 바꾸는 것은 창씨개명보다 더 잔인하다. 한반도 남부에 임나 지명을 위치시키는 것은 억지 논리이며 문헌적 근거가 전혀 없다. <일본서기> 어디에도 ‘기문’을 ‘남원’, ‘침미다례’를 ‘해남’, ‘강진’이라고 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군국주의 어용 앞잡이 학자인 쓰다 소키치, 이마니시 류, 스에마쓰 야스카즈와 일부 한국 가야사전문 학자들이 기문을 남원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진정으로 식민사관과 <일본서기>를 극복했다면, 논문에 인용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렇지 않다면 담배는 끊었다면서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일본 극우들이 2010년 부터 주도하여 만든 <역사교과서>에 우리의 ‘가야’를 삭제하고 그 자리에 ‘임나’(任那)를 그려 넣은 ‘임나 지도’를 지금 일본 중학생들이 배우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이는 마치 ‘최씨낙랑국’을 지우고 ‘한사군 낙랑군’을 평양에 그려 넣어 한국사를 지우려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우리 역사발전에 백해무익한 임나 지명을 거론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일본 극우의 역사왜곡과 그들이 노리는 군국주의 부활에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자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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