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과 똑 같은 모양으로 광주광역시 월곡동 다모아어린이공원에  홍범도 장군 흉상이 모셔 있다

 

지난 7월 광주고려인마을(대표 신조야, 사진 왼쪽에서 세번째) 사람들이  제78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홍범도장군 흉상 앞에 섰다. (사진 /고려인마을 제공)
지난 7월 광주고려인마을(대표 신조야, 사진 왼쪽에서 세번째) 사람들이  제78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홍범도장군 흉상 앞에 섰다. (사진 /고려인마을 제공)

최근 사이에 광주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 앞에 꽃들이 쌓이고 있다. 시민들의 관심을 말해주고 있다.

올해 광복절 제78주년을 맞은 광주고려인마을(대표 신조야)이 특별한 행사를 마련했다. 우리 민족의 독립 전쟁사에 빛나는 승리를 거둔 봉오동 전투를 8월 15일 오전 11시 마을 일원에서 재현했던 것이다.

참가자들은 태극 문양을 상징하는 붉은색과 푸른색 우비를 갖춰 입었으며 한 손에는 태극기가 그려진 우산을, 다른 한 손에는 총기 대신 물총을 집어 들고 행사에 참여했다.

독립군 행렬의 선두에서 홍범도 장군의 역할을 맡은 뮤지컬 배우 권성구씨가 비장함 속에 ‘대한독립 만세’를 선창하자 참가자들의 우렁찬 함성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일본군의 저항을 뿌리치고 홍범도 장군 기념공원에 다다른 독립군 무리는 붉은색과 푸른색 박을 향해 물총과 물풍선 폭탄을 던졌고, 박 속에서 ’광복의 완성’, ‘대한독립만세’가 적힌 현수막이 펼쳐지자 승리를 자축했다.

작년 2022년 8월 15일 오후 5시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 다모아어린이공원에서 항일독립운동가인 홍범도 장군 흉상 제막식이 열렸다. 광주광역시와 홍범도 장군의 후손인 홍우표 남양 홍씨 전국 종친회장, 신조야 (사)고려인마을 대표를 비롯해 시민과 고려인 후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제막식 부제는 ‘바람이 되어 카자흐스탄에서 월곡으로’였다. ‘광복군 아리랑’ 퍼포먼스와 함께 ‘부죤놉카 군모’를 쓴 홍 장군의 모습을 형상화한 흉상(조각가 김희상 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흉상은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있는 장군의 흉상을 모형으로 재현했다.

2022년 8월 15일 오후 5시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 다모아어린이공원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 제막식이 열렸다. (사진 / 광주광역시 제공)
2022년 8월 15일 오후 5시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 다모아어린이공원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 제막식이 열렸다. (사진 / 광주광역시 제공)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광주에 세워진 이유는 무엇일까. 광주 월곡동에 고려인마을이 형성된 것은 2001년 3월경 신조야씨에 의해 시작되었다. 작년 취재 당시에는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8만 여 명의 고려인 중에 7천여 명이 이곳 광주 일원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월곡동 고려인마을에 ‘월곡고려인문화관’(관장 김병학)이 있다. 이 문화관에서 2021년 8월 30일 ‘홍범도 장군 특별전’을 연 게 또 하나의 계기가 됐다.

정부의 홍 장군 유해 봉환을 기념해 열린 특별전에는 김병학 관장이 카자흐스탄 체류 시절 수집한 홍 장군과 관련된 사진 원본과 자료 15점, 사진 사본 10여점이 전시됐다. 사진 중에는 홍 장군이 1929년 러시아 연해주 한까호수 인근에서 가족과 촬영한 기념사진도 포함됐다.

월곡고려인문화관은 지난 2019년 행정안전부 외국인 집중 주거지역 기초인프라 조성사업 공모에 선정돼 국‧시비 지원으로 리모델링을 해 지난 2021년 5월20일 개관했다. 국가기록물 제13호로 지정된 고려인 문화예술 기록물을 비롯해 고려인의 역사와 문화를 매개로 한 다양한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2021년 8월 30일, 월곡동 고려인마을에 자리한 ‘월곡고려인문화관’(관장 김병학)에서 ‘홍범도 장군 특별전’이 열렸다. (사진/ 고려인마을 제공)
2021년 8월 30일, 월곡동 고려인마을에 자리한 ‘월곡고려인문화관’(관장 김병학)에서 ‘홍범도 장군 특별전’이 열렸다. (사진/ 고려인마을 제공)

이런 광주에서 고려인 정착을 위해 초기부터 헌신해온 이천영 목사는 작년 흉상 제막식 당시 기자에게 “홍범도 장군은 고려인들에게 자랑스런 선조”라고 설명했다. 이런 설명을 통해 우리는 홍범도 장군과 광주 그리고 고려인의 인연이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1년이 지나 최근에 일고 있는 육군사관학교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에 대해 이천영 목사에게 심정을 묻자, “지금은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광주에 거주하는 많은 고려인들이 다 숨죽이고 있다며 의견을 내기가 어렵다며 사양했다.

이런 상황이 오래가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홍범도 장군에 대한 논란을 자신들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 국내 거주 고려인들에게 필요하다면 정부는 고려인들의 신변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할 것 같다.

한때 불법체류자, 낯선 외국인으로 차별과 냉대를 받았던 고려인들은 2008년 재외동포법이 개정되면서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즉 재외동포의 범위를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년) 이전에 국외로 이주한 동포도 포함한다(그 직계비속까지)’고 정했다. 그리고 ‘정부는 재외동포가 대한민국 안에서 부당한 규제와 대우를 받지 아니하도록 필요한 지원을 하여야 한다’고 개정된 뒤에야 비로소 법적으로 고려인들도 동포로서 대접을 받게 됐다.

작년에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외로 탈출한 고려인들의 거취가 주목되었던 적이 있다. 전쟁 직후 430여 명이 광주 고려인 마을에 들어왔다. 추가로 더 들어오고 싶어도 문제는 지불해야 할 항공료가 걸림돌이 됐다.

고려인을 위한 항공료는 국내 단체들의 후원금으로 보조되었는데, 전쟁 발발 이후 현재까지 항공료지원을 받아 한국으로 입국한 고려인은 800명이 넘는다고 이천영 목사가 말했다. 그들은 광주뿐만 아니라 전국에 흩어져 있다고 한다.

일제 침략기에 조국을 찾아 헤맸던 그들의 조상들처럼 우크라이나 고려인들도 자신들의 조국이 진정 어디냐고 되물으며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그들은 맞이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민간단체의 자발적인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2017년 10월, 기자가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홍범도 장군 묘역을 참배했다. (사진작가 김정환 제공)
2017년 10월, 기자가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홍범도 장군 묘역을 참배했다. (사진작가 김정환 제공)

기자가 2017년 10월,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와 고려극장을 방문했을 때 만났던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은 홍범도 장군이 자신들의 우상이며 자부심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홍범도 장군의 한국으로의 유해봉환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홍범도 장군은 고려인들에게 항일 독립운동을 공유한 대한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의 상징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 만나는 고려인마다 두 손 꼭 잡고 말하기를, ‘지구상에 대한민국이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다’고 했다. 고려인들은 오늘날 대한민국이 누리고 있는 영광에 자신들도 홍범도 장군처럼 조국의 독립에 기여한 무명(無名) 독립군의 핏줄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했다. 홍범도 장군은 물론이지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채 홍범도 장군을 따른 수많은 무명의 독립군들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가입 문제로 때아닌 이념논쟁에 휩싸여 있을 때 카자흐스탄 현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고려인 동포는 한국 소식을 의식한 듯 “그렇다면 공산당원이었던 돌아가신 나의 부친과 옛 소련에서 태어나고 인생의 절반 정도를 소련 (소비에트) 체제 속에서 살았던 나도 (한국에서) 제거 대상인가?”라고 반문했다.

우리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 하나하나가 곧바로 세계로 전달되고, 또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 사태를 통해 알게 되었다. 세계는 열려 있는데, 우리만 구시대적 이념논쟁에 갇혀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일찍이 홍범도 장군의 손녀 홍예까테리나(1925~?)는 “할아버지 유해를 오직 대한민국으로만 봉환해 주십시오. 대한민국 외에는 다른 어느 나라로 봉환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이 말은 1994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중앙묘역 부장과 홍범도 재단에 보낸 청원서에 들어 있다. 만약 홍범도 장군이 공산주의자로 기억되길 원했다면 북한으로 보내 달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홍범도 장군은 독립군대장의 이름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기자의 귓전에는 2021년 8월 15일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실은 특별수송기가 한국 영공에 진입하는 순간, 우리의 공군 전투기 6대가 엄호 비행하며 한 말이 쟁쟁하게 울린다.

“홍범도 장군님의 귀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지금부터 대한민국 공군이 안전하게 호위하겠습니다.

필승!”  

 

*홍범도 장군은 누구

평양 출생인 홍 장군은 1895년 을미의병, 1907년 정미의병에 참여한 뒤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자 1911년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해 무장독립투쟁을 펼쳤다. 대한북로군 소속으로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 같은 해 10월 청산리 전투에 참여해 대승을 거뒀다. 그는 1937년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 이주 정책으로 카자흐스탄에 정착하였으나 현지에서 이름 없이 고려극장 경비 일을 보았으며, 1943년 불우하게 숨졌다. 우리 정부는 카자흐스탄에서 서거하신 78년 만인 2021년 광복절에 해외 독립운동가 유해 봉환 방침에 따라 홍범도 장군 유해를 봉환했다. 정부는 건국훈장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추서하고 2021년 8월 18일 대전 국립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한국에 있는 고려인 마을

전국에 몇 군데 있다. 안산, 인천, 아산, 김해 등지에 있는데 광주에는 월곡동에 있다. 월곡동 마을에는 7천 여명 정도 거주하고 있다. 2001년에 한국에 온 신조야씨가 이천영 목사의 도움을 받아 광주에 살면서부터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오늘 같은 마을이 조성되었다. 협동조합도 있고, 다문화학교, 진료소 등 생활 편의시설이 있고, 또 ‘월곡고려인문화관’이 있다. 세계에 살고 있는 고려인은 50만 명 정도로 알려져 있고, 그 중 한국에만 8~9만명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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