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도 허리 굽혀 사과한 尹 “쇼하지 않는다. 5·18 정신은 헌법 전문 올라가야”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0일 오후 광주 북구 5.18 민주묘역 방문을 반대하는 시민들에 막혀 묘역 근처에서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 / 이강산 기자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0일 오후 광주 북구 5.18 민주묘역 방문을 반대하는 시민들에 막혀 묘역 근처에서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 / 이강산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이른바 전두환 옹호 발언으로 도마에 올랐다가 이후 SNS를 통한 ‘개 사과’ 파문으로 사과에 대한 진정성까지 의심 받았던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대선후보로 선출될지 여부를 떠나 당내 경선 이후 호남을 찾겠다던 약속을 지키고자 10일 광주 5·18 국립민주묘지를 직접 방문해 고개를 숙였다.

◆ 尹 “상처 받은 분들께 머리 숙여 사과…5·18 똑똑히 기억해”

앞서 지난달 19일 국민의힘 부산 해운대갑 당협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군사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호남분들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고 주장했다가 소속정당은 물론 캠프 인사들까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게 만들었던 윤 후보는 문제의 발언으로 논란이 불거진 지 22일 만인 10일 직접 광주로 내려와 그간 들끓었던 호남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하지만 윤 후보가 광주로 내려오기 하루 전인 9일 밤부터 국립5·18민주묘지 입구에서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 청년·대학생들이 윤 후보의 광주 방문을 반대하는 철야농성을 한 데 이어 오월어머니집 회원들을 비롯한 5·18 피해자 단체들도 10일 5·18민주묘지 앞에 나와 ‘진정성 없는 가짜사과는 필요 없다’ 등의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는데, 현장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윤 후보 묘지 참배를 막기 위해 분향단으로 가는 길목까지 막아선 채 강경한 자세를 고수했다.

심지어 일부 단체는 윤 후보가 광주를 방문하면 ‘개 사과’에 대한 맞불 차원에서 ‘썩은 사과’를 전달하겠다는 입장도 내놨었는데, 그럼에도 윤 후보 측은 썩은 사과든 계란이든 던지면 맞겠다는 각오를 밝히며 과거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보수정당 대표 사상 최초로 5·18민주묘지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했던 것에 준하는 진정성을 보여주겠다고 호남행 강행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에 지난달 2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 방문을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던 이용섭 광주시장은 10일 오전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5·18민주화운동을 헌법 전문에 포함시키는 노력을 하겠다, 5·18진상규명에 앞장서겠다, 역사왜곡에 대한 당 차원의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겠다, 이런 내용의 성명서가 발표된다면 광주시민들은 박수를 보낼 것”이라고 입장을 내놨는데, 그래선지 윤 후보는 이날 오후 5·18민주묘지를 참배한 뒤 “5·18 정신이라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정신이고, 우리 헌법 가치를 지킨 정신이므로 당연히 개헌 때 헌법 전문에 반드시 올라가야 한다고 전부터 늘 주장해왔다”고 강조했다.

특히 윤 후보는 자신의 ‘전두환 옹호’ 발언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이날 입장문을 직접 꺼내 “제 발언으로 상처 받은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낭독하며 90도로 허리를 굽힌 뒤 “저는 40여 년 전 5월의 광주 시민들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 피와 눈물로 희생한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광주의 아픈 역사가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됐고 광주의 피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꽃피웠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러기에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모두 5월 광주의 아들이고 딸이다. 여러분께서 염원하는 국민통합을 반드시 이뤄내 여러분께서 쟁취한 민주주의를 계승 발전시키겠다”며 “제가 대통령이 되면 슬프고 쓰라린 역사를 넘어 꿈과 희망이 넘치는 역동적인 광주와 호남을 만들겠다”고 공언했고 민주묘지 방명록엔 ‘민주와 인권의 오월정신, 반듯이 세우겠습니다’라고 적었다.

또 윤 후보는 기자들과 만나 “5·18정신이 자유민주주의 정신이므로 어느 정도 역사에 대한 평가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 본질을 허위사실과 날조로 왜곡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이므로 허용돼선 안 된다”고도 힘주어 말했는데, 윤 후보 지지를 선언한 호남 중진인 박주선 전 의원도 앞서 같은 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5·18정신의 헌법 전문 게재에 대해 “말실수하기 전에도 윤 후보는 그런 얘기를 했다”고 밝혔으며 국민의힘 내 ‘5·18 망언 재발방지를 약속하라는 요구에 대해서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이 돼 있기 때문에 실정법을 위반하면 당연히 단죄를 해야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분노했던 호남 민심, 尹 ‘사과’ 수용할지 미지수…향후 尹 행보에 달려

하지만 그의 이 같은 사과를 호남 유권자들이 과연 받아들일지는 여전히 미지수인데, 일단 이날 5·18민주묘지 참배에 앞서 가진 첫 호남 일정인 전남 화순군 도곡면에 있는 고 홍남순 변호사의 생가 방문 자리에선 고 홍 변호사의 유족 및 종친인사들과 차담회를 가지면서 “광주 전남인들이 이미지를 조금 다르게, 긍정적으로 보고 있으니 힘을 갖고 열심히 해달라”는 덕담도 들었고 윤 후보 스스로도 고 홍 변호사와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진 조비오 신부님과의 인연을 언급하며 “홍 변호사와 조비오 신부가 5·18 당시 같이 내란죄로 구속돼 얼마나 고생했는지(들었다)”고 말하는 등 훈훈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반면 사단법인 대인 홍남순 변호사 기념사업회는 같은 날 윤 후보의 고 홍 변호사 생가 방문을 성토했는데, 기념사업회는 성명을 통해 “윤 후보는 고인의 시대정신과 숭고한 유훈을 정략적 정치 행보로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며 유족들과는 상반된 반응을 쏟아냈고, 윤 후보가 광주 서구에 있는 5·18자유공원에 이어 이날 마지막 일정으로 찾은 5·18민주묘지에선 그의 헌화·분향을 가로막는 성난 현지 민심 때문에 아예 추모탑으로는 가지도 못한 채 추모탑 입구 참배광장에서 묵념으로 대신하는 ‘반쪽 참배’하는 데 그쳤다.

일단 광주5·18민주묘지에서 현장의 분노를 직접 겪은 윤 후보는 “저 분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분향은 못했지만 이 정도로 사과드리고 참배할 수 있는 것은 다행”이라고 자평하는 한편 나름 자신의 진심을 호소하려는 듯 이번 광주 방문에 대해 “저는 쇼를 하지 않는다. 이 순간 사과드리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제 발언으로 상처받으신 국민 여러분과 특히 광주시민 여러분께 이 마음을 계속 갖고 가겠다”고 밝혔으며 ‘전두환 옹호’ 발언에 대해서도 변명보다는 “발언으로 다른 분들께 상처 줬다면 거기에 대해 질책 받고 책임져야지 후회란 것은 의미가 없다”고 입장을 내놨다.

이처럼 자세를 한껏 낮췄지만 무엇보다 ‘말보다 행동’이란 점에서 결국 광주시민들의 주문한 바를 그가 앞으로 얼마나 행동으로 옮기느냐가 사과의 진정성을 가늠할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앞서 광주지역 시민단체들이 윤 후보가 방문하기 전날인 지난 9일 “윤 후보가 진정한 사과와 용서를 구하고자 한다면 5·18의 헌법 전문 포함, 당내 5·18 왜곡 세력 청산, 전두환 등 헌정질서 파괴자의 국가장과 국립묘지 안장 배제, 5·18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약속하라”고 요구했던 만큼 이를 어느 정도 이행할지가 향후 그의 외연 확장을 좌우할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윤 후보의 5·18민주묘지 추모탑 참배를 적극 저지한 광주전남대학생진보연합은 윤 후보의 후보직 사퇴만이 진정한 사과라고 발언하기도 하는 등 아주 완강한 자세를 취해 윤 후보로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이지만 오는 11일 목포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 방문에 이어 이날 ‘조만간 찾아뵐 예정’이라 밝힌 전북지역 방문 등 지속적인 호남 러브콜을 통해 이전보다는 호남 혹은 그에 대한 수도권 내 호남 민심에 어느 정도 긍정적 작용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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