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내부망에 정부ㆍ여당 향한 비판글 등장...줄줄이 이어지기 시작...
박노산 "월성원전 사건, 라임·옵티머스 사건, 김학의 출국금지 사건, 조국 전 장관 가족 사건, 울산시장 하명수사 사건 모두 공소 취소하면 저희 검찰 용서해 주시겠냐"

검찰청 깃발이 태극기와 함께 펄럭이고 있다. 시사포커스DB
검찰청 깃발이 태극기와 함께 펄럭이고 있다. 시사포커스DB

[시사포커스 / 이혜영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이 '중대범죄수사청' 설치에 반기를 들며 자진 사퇴한 가운데 한 현직검사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을 향해 "살려달라"면서 "앞으로 어떠한 중대범죄, 부패범죄가 눈앞에 나타나더라도 조용히 묻어버리겠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박노산 대구지검 서부지청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법무부 장관님, 살려주십시오"라면서 "이제부터 저희 검찰은 분수를 알고, 일반 국민들에 대해서는 추상같이 수사하되, 아무리 의심이 들더라도 청와대나 국회의사당 그 밖의 고관대작님들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사건은 감히 그 용안 서린 기록을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글을 올렸다.

박 검사의 '장관님 살려주십시오'는 지난해 11월 박범계 장관이 국정감사 현장에서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에게 '의원님, 살려주십시오'라고 말해보라 했던 것을 패러디한 것으로 보인다.

박 검사는 "소인은 일개 형사부 검사로 직접적으로 사건에 관여하지는 않았으나, 존귀하신 분들의 수차례 경고를 거슬러 제 잘난 맛에 여기 댓글, 저기 댓글, 어떨 때는 야심 차게 장문글도 쓰며 멋모르고 날뛰었다"며 "그러다가 결국, 참다못해 빼드신 법무부장관님과 장관님 동지분들의 칼날에 목이 날아가게 생긴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참회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하오나, 소인이 제 행동을 고치고 검찰 동료들에게 권선하려면 장관님께서 바라시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야 할진대, 소인은 여지껏 검찰개혁, 검찰개혁 말만 들었지 구체적으로 바람직한 검사가 마땅히 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장관님의 뜻을 들은 바가 없사와, 이렇게 장관님의 명을 경청하고 받들어 비천한 목숨이라도 연명하고자 키보드를 들었다"며 세 부분으로 나눠 글을 올렸다.

첫번째.
박 검사는 "장관님께서 '검수완박' 입법안에 대해 겸임 국회의원으로서 지지를 표명하신바, 검찰의 수사권은 중대범죄 여부를 막론하고 완전히 박탈당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명쾌히 알려주셨다"며 "하오면, 저희 검찰이 이렇게 하면 어떻겠냐"며 이어갔다.

그러면서 "현재 중대범죄로 취급하여 수사 중인 월성원전 사건, 라임·옵티머스 사건, 김학의 출국금지 사건 등에 대하여 수사를 전면 중단함은 물론, 현재 재판 중인 조국 전 장관과 그 가족 등의 사건, 울산시장 하명수사 사건 등에 대해서도 모두 공소를 취소하면, 저희 검찰을 용서해주시겠냐"고 따져 물었다.

그는 "당연히, 앞으로도 어떠한 중대범죄, 부패범죄가 눈앞에 나타나더라도 조용히 묻어버리고 수사를 금하며 그러한 사실이 절대로 밖에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하겠다"며 "이렇게 하면 되겠냐"고 호소했다.

두번째.
박 검사는 "입법안을 보니 저희 검찰이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군림하였다고 써 있던데, 그건 참말 큰 오해이시다"며 "한 줌 밖에 안 되는 저희 검찰이 어찌 감히 그런 역모를 꾀하겠냐"며 한탄했다.

그러면서 "저희는 그저 심히 무지한 탓에 범죄가 의심되면 사람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수사를 함이 본분인 줄 알았을 뿐, 높으신 분들을 수사하면 그것이 반역이 된다는 것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으니, 소신들의 우매함을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달라"고 전했다.

그는 "이제부터 저희 검찰은 분수를 알고, 일반 국민들에 대해서는 추상같이 수사하되, 아무리 의심이 들더라도 청와대나 국회의사당 그 밖의 고관대작님들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사건은 감히 그 용안 서린 기록을 쳐다보지도 않겠다"며 "이렇게 하면 혹 저희를 다시 품어주시겠냐"고 말했다.

박 검사는 "소인은 그저 위정자들이 범죄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검찰이 군림은커녕 털끝만큼도 못 건드린다고만 알고 있다가, 이번에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군림하였다'는 지적을 받고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아하! 설령 위정자들이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검찰이 수사하면 그것도 주제넘은 '군림'이구나!"라는 깨달음에 무릎을 탁 쳤다"고 전했다.

그는 "보소서, 이제부터 저희 검찰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낡아빠진 속담이나 '범죄 없는 깨끗한 권력'에 대한 허황된 꿈은 버리고 '유권무죄 무권유죄'를 저희 검찰의 표어로 삼아 군림하지 않는 겸손한 자세로 작금의 한국적 민주주의를 꽃 피우겠다"며 "이렇게 하면 저희를 명실상부한 검찰개혁의 주체로 인정해 주시겠냐"고 물었다.

세번째.
박 검사는 "장관님과 동지분들이 가르쳐주신 내용 중 제 일천한 경험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 가르침을 구한다"면서 "'검찰이 수사를 하고 그 결과를 스스로 평가하여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모순'이라고 하셨는데, 그 '모순'이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그 뜻이 맞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제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기소 여부 결정'이 목적이라면 당연히 사실관계와 법리를 조사해보아야 할 것이고 그게 바로 '수사'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 콕 짚어 달라"고 요청했다.

이해 안되니 차라리 외우겠다. 
그는 "이해가 안 되면 외워야 한다"면서 "제가 또 외우는 건 잘해서 단번에 외웠답니다. 한 번 그 원리를 응용해 볼테니 칭찬해 달라"고 말했다.

박 검사는 "판사가 재판절차를 진행했으면 그 결과를 스스로 평가하여 판결을 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말씀을 하신 게지요? 마침 경찰도 불기소결정권이 생겼는데, 경찰 또한 수사를 진행했으면 그 결과를 스스로 평가하여 송치 또는 불기소하는 것은 모순이겠지요? 회사 CEO가 시장조사를 열심히 진행했으면 그 결과를 스스로 평가하여 경영 결정을 하는 것도 모순이라는 말씀이고요? 말하자면, 논리적인 경영 결정을 하고 싶으면 시장조사는 필히 외주를 줘야 하는 것이 옳지요?"라며 물음표를 던졌다.

그러면서 "그렇다면 큰일"이라며 "장관님. 대한민국 관민(官民) 모두 직업활동, 경제활동 뿐 아니라 결혼, 학업 등 생활 면면에 이르기까지 하는 일마다 모순투성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럴 때일수록 국록을 먹는 사람들이 솔선수범해야 하는 법. 장관님과 동지분들께서 모든 행정, 사법기관의 처분권한과 이를 위한 조사권한을 사분오열시키는 법을 만들어주시기만 하면, 저희 검찰도 이를 차질 없이 집행하여 모순없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며 "이렇게 하면 저희를 위와 같은 모순을 답습하는 소위 선진국 검찰들의 수사, 기소 병행 행태에 경종을 울리는 글로벌 리더로 인정해주시겠냐"고 전했다.

박 검사는 "그런데 장관님, 지당하신 장관님과 동지분들의 말씀이니 분명히 옳겠지마는, 아직 소인이 헷갈리는 게 남았다"며 "그러면 왜 저번에 만드신 공수처는 수사를 하고 나서 스스로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냐"고 따졌다.

그러면서 "글을 올리다 보니 소인의 무지함에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부끄럽다"며 "미리미리 공부하여 중대범죄 수사도 스스로 금하고, 분수를 알아 높으신 분들의 옥체를 보존하며, 모순되는 행동을 삼갔어야 했건만, 왜 장관님과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렸을까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행히도 장관님께서 검찰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들어주시겠다고 먼저 길을 터주시어 위와 같이 여쭙나니, 바라옵건대 장관님의 고매한 뜻을 감추지 마시고 허심탄회하게 하명해주시면 저희 검찰, 다시는 거역하지 아니하고 완수하겠나이다"라며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라며 글을 마쳤다.

박 검사의 이 글은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로 검찰 수사권 폐지에 대한 부작용을 예견하며 쓴 글로 정부여당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글이었다.

이 밖에도 검찰 내부망에 박범계 장관을 비롯해 정부 여권을 향한 비판글이 이어지고 있으며 집단적 검난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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