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신년사에 與, ‘반등 카드’ 기대…野, 낮은 정부 지지율 의식해 공세수위 강화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일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며 내놓은 2019년 신년사가 정치권 내 화두로 급부상하고 있다.
경제 문제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줄곧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그간 몇 차례나 정권 지지율을 급상승시키는 묘수가 되어왔던 ‘대북 카드’가 이번 신년사를 통한 김 위원장의 러브콜을 계기로 다시금 효과를 발휘할 것인지 야권은 긴장을 풀지 않은 채 바라보고 있다.
◆ 아전인수 해석 나선 靑·與, 기대 속에 ‘표정 관리’도
김 위원장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신년사를 통해 향후 국정 운영방향을 밝혔는데, “새해에 북남관계발전과 평화번영, 조국통일을 위해 더 큰 전진을 이룩해야 한다”며 “조선반도에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완전한 비핵화에로 나아가려는 것은 본인의 확고한 의지”라고 ‘완전한 비핵화’를 언급하는 긍정적 모습을 보였으며 발표 방식 역시 인민복 차림으로 야외 연단에서 한 게 아니라 양복을 입은 채 집무실 소파에 앉아 진행하는 파격을 연출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언제든 또 다시 미국 대통령과 마주앉을 준비가 되어있다”면서도 “미국이 인민의 인내심을 오판, 일방적 제재와 압박을 한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해 일각에선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평도 나오고 있다.
일단 미 국무부는 1일(현지시간)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 대해 “논평할 기회를 사양한다”며 말을 아꼈으나 같은 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직접 자신의 트위터로 “김 위원장은 핵무기를 제조·실험·전파하지 않겠다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과 만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며 “나 또한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고 환영 의사를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치권에선 여전히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는데, 더불어민주당은 1일 홍익표 수석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언제든 미국과 만나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협상과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힌 것은 북한의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한 확고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앞으로 있을 북미고위급회담, 북미정상회담의 전망을 밝게 했다”고 호평한 데 이어 2일 같은 당 홍영표 원내대표도 최고위 회의에서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열릴 날이 멀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고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이 뿐 아니라 청와대까지 1일 오후 김의겸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는 남북관계의 발전과 북미관계의 진전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본다”고 입장을 내놓은 데 이어 정부에서도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 논평에서 “김 위원장 신년사를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 남북관계 확대 발전을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을 환영한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만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지난 1일 KBS ‘신년기획 한반도의 미래를 묻다’에 출연해 “현재 상황에서 개성공단도 그렇고, 금강산 관광도 대북제재와 무관하게 보기 어렵다. 지금 대북제재와 연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앞으로 재개를 전제로 제재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걸 북측과 모색할 것”이라고 일부 신중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 대정부압박 나선 野, 회의적 반응 비치며 평가절하
반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1일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논평을 통해 “마치 대단한 비핵화 의지가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현재 핵을 어떻게 하겠다는 의지는 밝히지 않았다. 오히려 핵보유국 지위에서 미국의 제재해제와 같은 선제적 상응조치를 요구하고 ‘제재가 지속되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협박성 엄포까지 내놨다”고 지적했으며 나경원 원내대표도 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강화하려 한다. 한미 연합훈련 중단, 개성공단 재가동, 금강산 관광 재개를 매개로 한미관계를 이간하려는 시도도 보였다”고 혹평을 쏟아냈다.
특히 한국당은 2일 오세훈 국가비전미래특위 위원장 주도 하에 ‘김정은 신년사로 본 2018년 한반도 정세 분석과 전망’이란 간담회까지 열고 “핵무기는 대외에 알리고 굳히기로 들어가는 신년사란 느낌을 받았다. 많은 전문가들은 신년사를 보면서 특히 핵 폐기에 대해 2018년과 달라지지 않는 분위기를 감지했을 것”이라며 “문 대통령이 진심으로 비핵화를 바란다면 속이 숯검정이 되어 있어야 맞다”고 호평 일색인 청와대에 직격탄을 날렸다.
한 발 더 나아가 이 자리에 초청 받은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도 김 위원장의 신년사 내용을 꼬집어 “미국에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거나 제재 완화를 노리려는 의도가 명백하다. 제재 해제와 한국전쟁 평화 협정이 비핵화의 전제라는 뜻”이라며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는 당분간 어려워 보인다”고 한국당의 부정적 평가에 한층 힘을 보탰다.
여기에 아예 정진석 한국당 의원은 “김정은 신년사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장기전에 대비한 자력갱생 준비선언이다. 김정은이 (우리 정부를) 호구로 보는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김무성 의원까지 “문 대통령은 사기극에 속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동안 안일했던 대북정책에 관해 국민에 사죄해야 한다”며 “북핵이라는 공통위협을 안고 있는 일본과 관계를 복원해서 한미일 공동대응태세를 갖춰야 한다. 북핵 억지를 위한 유일한 수단은 미국의 핵우산”이라고 역설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김 의원은 “북핵 폐기를 당의 최우선 과제로 선정하고 안보붕괴와 국방해체를 막아야 한다. 당 북핵 폐기 특위를 부활시켜 안보전문가를 더 많이 영입해 북한의 핵보유국화를 돕고 있는 이 기막힌 현실을 막아야 한다”며 “안보를 걱정하는 모든 국민과 연대해 문 대통령이 망친 국방 붕괴와 한미동맹 위기를 바로 잡기 위한 구국운동을 벌일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이 사안에 있어선 당 내홍의 근원이던 ‘출신 계파’마저 초월하는 모양새여서 눈길을 끌었는데, 한때 친박 핵심으로도 꼽혔던 윤상현 의원은 2일 ‘김정은의 새해 협박과 요구’란 제목의 입장문을 통해 “김정은 신년사의 세 가지 요지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선 제재 해제인지 전 세계로의 핵무기 확산인지 선택하라고 협박하고, 문 대통령에게는 한미동맹 해체까지 요구한 것이며 올해 당장 급한 일은 자기 금고 채우는 것임을 고백한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처럼 거대 양당이 서로 극명한 시각차를 드러낸 상황에서 제3교섭단체인 바른미래당의 경우 당 정체성 논란이 완전히 불식되지 않은 점을 보여주듯 김 위원장 신년사를 놓고도 내부적으로 통일된 목소리가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손학규 대표는 2일 “비핵화는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대제란 것은 환영한다. 조건 없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제안한 것도 환영할 일”이라며 “문 대통령은 여유를 갖고 기회를 봐야 한다”고 주문한 데 반해 같은 당 하태경 최고위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이례적으로 손 대표와 상반된 견해를 표했다.
무엇보다 하 의원은 김 위원장 신년사 내용 중 ‘조건 없는 금강산 관광’ 제안을 들어 “금강산 관광은 우리 관광객이 북한 경비병 총탄에 피격돼 중단됐다. 조건을 두지 않겠다는 건 가해자가 할 말이 아니다”라며 “비핵화 협상이 타결되기 전까지 관광재개가 불가능한데 북한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내세우는 이유는 명확하다. 한미동맹을 이간질시키고 유엔제재를 교란시켜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국당과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 ‘동병상련’ 文-金, 돌파구 마련할 수 있을까
이렇듯 각자 입장에 따라 엇갈리는 해석을 내놓고 있는 정치권과는 별개로 관련 업계는 벌써부터 반색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금강산관광사업을 했었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2일 “예년과 다른 해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제 사업으로 실행해내고 남북경협 밑거름이 돼야 할 것”이라고 신년사에서 강조했으며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도 공식 논평을 통해 “개성공단 재개에 대한 김 위원장의 의지를 환영한다. 북한 신년사를 통해 새 희망을 갖게 됐다”며 “기업인들의 방북을 즉시 승인할 것을 정부에 강력히 촉구한다”고 정부에 요청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2일 백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구체적인 정부 입장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통해 정해질 것”이라면서도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방북 자체가 제재에 저촉된다고 보진 않고 있다”고 긍정적 반응을 내놨는데, 지난 1일 KBS에 출연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일단 제재 범위에서 가능한 사업을 찾겠다고 표명한 만큼 현재로선 경의선·동해선 철도, 도로 연결 사업과 비슷한 방식을 통해 추진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더구나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지난해보다 81% 늘은 38차례나 경제란 단어를 언급한 이후 2일 노동신문에서도 각계 인사들이 김 위원장의 신년사 지침에 따라 경제 발전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결의를 밝히고 있어 이번엔 단순한 공언(空言)에 그치진 않을 것으로 풀이되고 있는데, 당장 문 대통령 역시 올해 신년사에선 경제 문제 쪽에 보다 방점을 찍고 있는 만큼 대내적으로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두 사람이 위기 돌파에 나설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사실상 성사 관건은 김 위원장의 신년사 ‘러브콜’보다 이를 바라보고 있는 국내 여론의 동향인데, MBN과 매일경제가 지난달 29일부터 31일까지 전국 성인 1000명에게 조사해 1일 발표한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95%신뢰수준±3.1%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과 관련해 찬성한다는 의견이 반대(26.2%)의 2배가 넘는 54.2%로 나타났다는 점에 비추어 일부 희망적 관측도 없진 않으나 근본적으로 국내 경제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대북관계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해 신중히 북한에 접근해야 한다는 야권의 주문에 어느 때보다 귀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