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아손해사정사 관계자와의 녹취록 입수 “아세아에서 막아라”
경찰 "실화가 안 되게 보고서 올리겠다"
손해사정보고서 핑계 대는 경찰·검찰·한화손보…결탁 의혹
“피해자, 가해자 뒤바꾼 방화은폐 보험사기”

화재 당시 현장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현한 모습. / 제공=K손해사정인
화재 당시 현장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현한 모습. 사진ⓒK손해사정인

[시사포커스 / 임솔 기자] 평범한 화재사고로 종결됐던 사건에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방화사건이라는 의혹주장이 제기됐다. 녹취록에는 사건 관계자인 S산업 父子의 대화, 아세아손해사정사 C전무의 육성이 녹음돼있는데 방화은폐 의혹을 살만한 내용이 담겨 있다.

■경찰 “실화도 안 되게끔 해주겠다”

본지가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S산업 L사장은 사고 조사 당시 경찰과 통화를 하고난 후 그의 아들 L공장장에게 “(경찰이) 실화도 안 되게끔 해주겠다더라”라고 말했다. 실제로 해당 창고에 화원이라고는 일반적인 형광등밖에 없었고 오히려 S산업 공장에 화목난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화재는 원인미상으로 결론이 났다.

아래는 경찰조사가 진행 중인 당시 S산업 父子의 대화

父(L사장) : ‘실화가 안 되게 보고서 올릴 거니까. 어찌될지는 저도 자신은 없지만 우리는 그렇게 올리겠다’ 그렇게 얘기하더라고. 안 내게 해줬다. 그러던데?

子(L공장장) : 누가?

父 : 뭐, C형사가 벌금도 안 내게 해주고... 나한테 그랬어. 혐의 없음으로. ‘혐의 없는 걸로 다 보고했고 벌금도 안 내는 걸로 해서 다 올렸습니다, 검찰청에’

이와 관련해 H섬유사 측 K손해사정인은 “경찰도, 검찰도, 보험사도 사건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려하지 않고 무혐의로 사건을 처리했다”며 “의심스러운 정황을 정리해 경찰·검찰·한화손보를 수십 차례 방문, 설명했으나 단 한 번도 제대로 받아들여진 적이 없다. 심지어 민원을 접수하기 위해 한화손보를 방문하자 한화손보 관계자가 ‘민원을 취소하라, 업무방해죄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은 S산업이 한화손보와 결탁해 아세아손해사정사에 은폐·조작을 지시, 보험금을 타내고 피해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한 방화은폐 보험사기”라고 주장했다.

■한화손보 “아세아가 총대를 메고 나가라”

또 그동안 미공개된 새로운 녹취록에는 한화손보가 아세아손해사정사에 책임을 떠넘기는 내용도 담겼다. 아세아손해사정사의 C전무는 H섬유사 측의 K손해사정인과의 대화에서 “(한화손보가) 아세아 너희가 총대를 메고 나가라더라”라고 말했다.

아래는 2016년경 K손해사정인과 C전무의 대화

K손해사정인 : 아니, 네가 말했더구먼. 한화가 자기들이 장난친 건, 자기들이 한 건데 무슨 소리 하고 있어.

C전무 : XXX들이 한 게 뭐냐 하면, ‘다 너희가 막아라’ 이거야.

K : 아니, 나는 말이 안 되는 게 한화가 지금 전부 다 PDF로 했는데 그것도 조작... 아세아 시켜가지고 조작했는데 지금은 모른 척 한단 말이야? 그걸 아세아에 다 맡긴단 말이야, 핑계를?

C : 그렇지, 그러니깐.

K : ‘우리는 모른다. 아세아 너희들이 책임져라’

C : 아니 그러니깐, 그 어떤 범위 자체가 ‘아세아에서 막아라’ 이거야.

K : ‘아세아에서 막아라’.

C : 그렇지, ‘아세아에서 막아라’ 이거야. 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자기들도 일련의 어떤 역할은 하지만 그래도 ‘아세아에서 모든 것을 좀 총대를 메고 나가라’ 이거라고.

 

위 사건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1월 17일 인천 서구 오류동에 위치한 S산업 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인근 공장으로 불이 번져 총 11억원 상당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평범한 화재사고로 종결될 것 같았던 사건은 해당 창고를 임차해 사용하고 있던 H섬유사 측이 S산업 L사장과 그의 아들 L공장장을 고의방화혐의로 고소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당시 H섬유사 측 K손해사정인은 “화재현장과 CCTV, 목격자들의 허위진술서를 토대로 사고조사를 실시한 결과 방화로 확인됐다”고 주장했으나 경찰은 방화 증거가 없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녹취록 외에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사람이 3m 높이에 설치된 창문에 올라갈 수 있나?

S산업 L공장장은 해당 사고가 있기 이틀 전 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해 창문으로 넘어가 분말소화기로 불을 끄고 돌아왔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창문은 지상에서 3m 높이에 위치해있었고 받침대 없이는 올라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또한 1차 화재는 몇 군데 그을린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멀리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는 것이 어려웠음에도 경찰·검찰·보험사는 해당 진술을 인정했다.

또한 목격자와 참고인들이 작성한 32건의 진술서가 이를 바탕으로 모두 동일하게 작성돼있으므로 조작 또는 강압에 의한 진술서일 가능성이 높다(목격자인 공장 근로자 5명은 모두 외국인이고 사고 이후 차례차례 본국으로 돌아갔다). 이틀 간격으로 동일한 위치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 또한 1차 방화가 2차 방화를 위한 연습 또는 방화미수일 거라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상황이다.

L공장장이 1m 높이의 받침대를 놓고 창문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험사 직원이 촬영한 사진. 3m 높이의 창문에 올라갈 수 있으므로 32건의 진술서는 사실이라는 판단 하에 경찰과 검찰은 父子에게 ‘혐의없음’을, 한화손보는 화재사고에 대해 ‘원인미상’의 결론을 내렸다. / 제공=K손해사정인
L공장장이 1m 높이의 받침대를 놓고 창문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험사 직원이 촬영한 사진. 3m 높이의 창문에 올라갈 수 있으므로 32건의 진술서는 사실이라는 판단 하에 경찰과 검찰은 父子에게 ‘혐의없음’을, 한화손보는 화재사고에 대해 ‘원인미상’의 결론을 내렸다.  사진ⓒK손해사정인

그러나 K손해사정인이 제출한 아래 사진을 보면 소방서에서 화재를 진화한 직후 촬영한 현장에는 창문 아래에 딛고 올라갈만한 어떤 물건도 없는 상태임이 확인됐다.

소방서가 화재 진화를 완료하고 찍은 사진. 창문 아래에 밟고 올라갈만한 물건은 찾아볼 수 없다. / 제공=K손해사정인
소방서가 화재 진화를 완료하고 찍은 사진. 창문 아래에 밟고 올라갈만한 물건은 찾아볼 수 없다.  사진ⓒK손해사정인

■손해사정보고서가 세 개?

손해사정업무 처리 기준에 따르면 손해사정보고서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거나 자체 조사·확인한 경우와 다를 경우 정정 또는 보완을 요청할 수 있다.

한화손보의 협력업체인 아세아손해사정사는 해당 사건을 조사하고 49장의 손해사정보고서(원본)를 검찰에 제출했다. 그러나 한화손보는 보험금을 지급한지 1년이 지나고 문제의 내용(3m 창문에 올라갈 수 있다)이 적힌 페이지를 포함해 총 8페이지를 삭제한 총 41장의 손해사정보고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또 사건을 맡아 ‘혐의없음’이라는 불기소이유서를 작성했던 P검사는 결정적인 사진자료를 모두 삭제한 29장의 보고서를 가지고 있었다.

손해액을 결정하고 보험금을 산정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손해사정인이 작성한 손해사정보고서는 보험금 지급의 결정적인 자료로 쓰이는데 법 기관에 제출한 보고서의 버전이 다른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 한화손보 측은 손해사정보고서를 일부 누락한 채 법원에 제출했었다는 답변뿐이다.

■이제라도 진상규명할 수 있을까?

그러던 중 본지는 최근 위 사건과 관련해 한화손보 관계자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그는 “이 모든 내용은 K손해사정인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사고 조사는 경찰이 하는 것이고 손해사정보고서는 조작된 적이 없으며 보험금은 정식절차에 따라 지급됐다”고 말했다. 이어 “무혐의로 끝난 사안이기 때문에 한화손보 측은 앞으로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화손해보험 / 시사포커스DB
한화손해보험 / 시사포커스DB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서장·형사·검사는 현재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어 연락이 닿지 않고 있고 한화손보는 경찰에 연락해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또 아세아손해사정사의 C전무는 그 일과 관련해 할 말이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 연락해보라며 말을 끊었다.

해당 사건의 공소시효는 2020년 1월이다. 사고가 있기 전 35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던 H섬유사는 파산했고 보험금을 받은 S산업은 공장을 신축해 가동 중에 있다.

의혹을 살만한 녹취록이 공개돼 손해사정보고서가 조작됐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음에도 피해자에게 배상소송까지 제기한 한화손보가 이번 사안에 대해 앞으로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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