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국민성장론’ 제시, 정부여당과 당내 정리 노린 ‘신의 한 수’?

김병준 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김병준 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 17일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내달 당무감사를 앞두고 있던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이 갑자기 ‘국민성장론’이란 성장모델을 제시하며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에 맞불을 놓고 있어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 주말에 긴급 기자 간담회 연 김병준…뭐가 다급했나

김 위원장은 지난 16일 소득주도성장에 맞설 경제성장담론으로 ‘국민성장론’을 제시했는데, 한동안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비판이 높아질 시점에도 갖지 않았던 주말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단 하루 전인 15일 차기 당권에 도전할 것인지 관심을 모아왔던 홍준표 전 대표가 미국에서 귀국했다는 점이 갑작스러운 긴급 기자간담회를 개최하는 데 어느 정도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확인시켜주듯 김 위원장은 이날 홍 전 대표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귀국한 분도 있고 그래서 그 부분, 당내 혁신은 내일부터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홍 전 대표를 의식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앞서 지방선거 패배 후 쫓기듯 미국으로 출국했었음에도 홍 전 대표의 귀국을 김 위원장의 비대위마저 재차 의식할 수밖에 없기는 한 것이 지난 대선 패배 후 미국에서 지내던 그가 지난해 6월 4일 귀국한 자리에서 공항으로 마중 나온 수백의 지지자들에게 성대한 환대를 받은 뒤 결국 당 대표로 화려하게 복귀하기 때문인데, 이번에도 규모는 당시보다 크게 줄기는 했으나 큰 절을 하는 지지자가 나오고 취재진도 몰려 존재감은 여전하다는 걸 과시했다.

다만 그는 이런 시각을 일축하려는 듯 전날 홍 전 대표가 현 비대위를 향해 ‘고생하고 있다’며 비교적 호평을 내놓은 데 대해선 “아주 좋은 덕담을 해준 것으로 이해한다”면서도 정작 자신은 홍 대표에 대해 “지금은 평당원 중에 한 분이고 별로 관심을 안 두고 있다”고 평가절하 했다.

이렇듯 김 위원장이 모순적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우선 비대위의 존재를 간과하는 듯 벌써부터 당내 거물급 인사들이 차기 당권 도전에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자칫 계파 갈등이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비박계 김무성 의원이 현안 관련 토론회를 열고 국회 대정부 질문에 앞장서 나서는 등 당권 행보로 비쳐질 수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친박계의 기대를 받고 있는 황교안 전 총리 역시 최근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면서 공식 활동에 나섰고 이번에 귀국한 홍 전 대표마저 귀국장에서 “당권을 잡으려고 새롭게 정치하는 게 아니다”라면서도 ‘불출마로 받아들여도 되느냐’는 확인 질문엔 “마음대로 해석하라”고 여운을 남긴 바 있다.

배현진 한국당 비대위 대변인의 모습. 사진 / 오훈 기자
배현진 한국당 비대위 대변인의 모습. 사진 / 오훈 기자

심지어 일각에선 지도부에서도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 홍 전 대표가 당권 경쟁에 나서면 윤리위에 회부해 제명을 추진하겠다고 경고하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나오는 와중에도 배현진 비대위 대변인이 “홍 전 대표도 그렇고 사모님이 지난 선거 때 같이 선거운동을 해주셨다”며 귀국하는 홍 전 대표를 마중 나간 부분을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밖에 내달부터 본격화할 당무감사 역시 차기 당권에 도전하는 주자들을 중심으로 다시금 당 내홍이 불거지면 각 계파를 의식해 제대로 이뤄질 수 없지 않겠느냐는 판단도 적잖이 작용한 것으로 관측되는데, 그래선지 김 위원장은 17일 당무감사위원장에 행정 전문가 출신인 황윤원 중앙대 교수를 임명하는 등 당무감사 준비에도 이전과 달리 한층 속도를 내고 있다.

결국 이 모든 흐름을 종합해봤을 때 홍 전 대표의 귀국 여파를 신속히 잦아들게 하면서 여론이 당내 문제에서 완전히 눈을 돌리게 하는 한편 비대위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며 정부여당에 공세도 펼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주제인 ‘경제성장담론’을 김 위원장이 급거 들고 나온 것이란 분석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 ‘소득주도성장 맞불’ 국민성장론, 對與공세 성공 가능할까

그렇다면 김 위원장이 제시한 국민성장론이 자당 이슈를 덮을 만큼 정부여당에 타격을 줄 강력한 ‘한 방’이 될 수 있느냐가 주요 관건인데, 먼저 어려운 경기 상황으로 인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면에서 야당이 ‘경제’를 화두로 삼은 건 최적의 무기를 택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은 그간 자신이 강조해온 ‘탈국가주의’와 연계해 16일 국민성장론을 “탈국가주의적 정책 패키지”라고 소개했는데, “국민이 마음껏 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국가는 필요한 지원만 하자는 것”이라며 정부 중심과 포퓰리즘을 위주로 한 소득주도성장과 달리 민간 주도의 자율경제, 일자리와 기회의 공정을 의미하는 공정배분을 위시한 경제성장담론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투자를 활성화시키고 그 투자가 생산으로, 생산이 소득으로 이어지고 소득이 소비로 이어지며 재투자 되는 선순환 사이클이 경제의 올바른 흐름”이라고 한 데 이어 규제 비용 총량제 도입, 행정규제 기본법 개정 등 규제개혁도 급선무라 주장했으며 “대기업 노조들의 악행을 끊어 내야 된다”고 노동개혁 필요성 역시 역설했다.

그러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선 같은 날 이재정 대변인 논평을 통해 “이름에 국민을 앞세웠지만 정작 국민은 없었다. 다시 대기업중심 투자만능론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현혹하려는 한국당의 정책 무능”이라며 “공당의 지도부가 국가의 헌법상 책임인 사회안전망과 국민의 권리인 사회보장권을 시혜로 여기고 도덕적 해이를 들먹이며 국민을 힐난한 것”이라고 응수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이 대변인은 “오로지 대기업의 성장만 주목하는 규제완화는 이명박, 박근혜식 경제정책으로 회귀하자는 것에 불과하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강조했던 대기업 중심의 낙수경제론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파기된 이론”이라며 “수출호조에도 서민들의 삶은 여전히 녹록치 않은 2018년의 경제지표는 민생파탄의 책임을 두 정권에 묻고 있다”고 역공을 폈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은 낙수경제론이란 여당의 지적에 물러서지 않고 17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젊은 청년들이 마음대로 뛰게 하고, 소상공인들에게 규제를 풀어서 기회를 주는 얘기들 다 빼고 대기업 위주라고 하고, 밑에서부터 국민들이 모두 뛰게 해서 경제를 살리자는데 낙수효과 얘기가 나온다”며 “대기업 위주라며 우리 당의 경제정책을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몰아붙이는 것에 강력한 이의를 제기한다”고 맞받아쳤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저는 청와대나 민주당 당대표 또 정책팀이 토론을 하자고 하면 언제든지 응할 자신이 있다”며 “국민 앞에서 공개적으로 소득주도 성장이 옳은지, 우리가 말하는 국민 역량을 바탕으로 국민들이 뛰게 하는 모델이 옳은 성장 모델인지 토론하자”고 정부여당에 공개 토론을 제안했다.

◆ 김병준의 ‘토론 제안’엔 선 긋는 與, 남북평화회담으로 덮기?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17일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17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하지만 당장 이 같은 제안을 받은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같은 날 국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성장론의 실체가 무엇인지 자세히 얘기를 못 들어봤는데 토론을 할 필요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진실성이 있으면 좋겠다. 출산주도성장을 말하는 사람들과 토론의 가치가 없다”며 “토론도 어느 정도 격이 맞아야지”라고 단호히 거절했다.

이처럼 이 대표가 김 위원장의 국민성장론에 대해 돌연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가 거론했던 출산주도성장론을 꺼내 동문서답식 대응을 한 데에는 공개 토론을 노골적으로 거부할 경우 국민 관심 사안에 대해 회피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데다 설령 수용한다고 해도 의제를 먼저 제시한 야당으로 정국 주도권이 넘어갈 우려가 있고, 현재 좋지 않은 경제상황에 비추어 자칫 정부여당 측 주장이 ‘변명’이나 ‘해명’으로 비쳐질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여야 간 정당 지지율도 여전히 2배가량 격차가 있는 상황이다 보니 굳이 맞붙어 봐야 야당의 존재감만 부각시켜 줄 뿐 여당엔 어느 면에서 보든 별 이득이 없고 곧 있을 3차 남북정상회담으로 경제 문제 등 각종 현안을 덮을 수도 있어 일일이 야권의 공세에 대응하기보다 6·13지방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남북회담을 통해 분위기를 압도하려는 의도로 비쳐지고 있다.

반면 한국당은 남북정상회담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또 다시 존재감을 잃은 채 정부여당이 주도하는 대로 휘둘릴 수 있어 사실상 경제담론에 사활을 거는 모양새인데, 경제 문제가 새로운 의제가 아니라 이전부터 줄곧 비판해왔던 부분인데다 ‘정책’을 통해 국민에게 직접 체감되게 하지 않는 이상 단지 국민경제론이란 이론만으로 지지를 얻기엔 결국 한계가 있어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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