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원제 유명무실화 되고 현역 의원엔 기준 높여 ‘교체’ 기류 무게
‘비명계’ 반발 가능성…“대의원제 문제...왜 지금 평지풍파 일으키나”
與 “민주당이 택한 혁신은 이재명 아바타를 앞세운 김은경표 방탄”

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10일 오후 국회에서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 이훈 기자
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10일 오후 국회에서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 이훈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회가 예고한대로 10일 3차 혁신안을 발표하고 활동을 조기 종료했는데, 다만 제안한 내용이 권리당원의 영향력 확대와 현역의원에 대한 공천 페널티 강화에 방점을 두고 있어 당내 파열음 발생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 권리당원이 사실상 지도부 선출 좌우…‘개딸’ 영향 확대?

김은경 혁신위원장은 10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2024년 당 조직, 공천 규칙 혁신안을 발표했는데, 기존엔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할 때 대의원 30%, 권리당원 40%, 일반당원 5%, 일반국민 25% 비율이었으나 이날 공개한 혁신안에 따르면 대의원은 아예 배제되고 권리당원 비중을 70%로 대폭 높였으며 국민여론조사를 30% 반영하는 방안이어서 사실상 대의원제를 무력화시켰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혁신위는 전국대의원을 지역위원회 권리당원 총회에서 직접 선출하는 대의원 직선제 도입과 지역위원회는 연례 권리당원 총회를 열어 권리당원과 함께 당 활동을 평가하고 계획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서복경 위원은 “당의 기간 조직인 지역위원회, 시도당, 중앙위원회, 당무위원회, 전국위원회는 당원에 뿌리를 둔 대의시스템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강조해 사실상 현역의원이나 지역위원장 등이 가지고 있던 영향력을 대폭 축소하고 권리당원이 당 조직을 좌우하도록 바꾸려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처럼 권리당원의 영향력을 대폭 확대한 이유에 대해 혁신위는 “민주당은 250만 권리당원이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가장 큰 정당이다. 굉장히 짧은 시간에 당원이 급증한 상태이기 때문에 지배구조 개혁이 필요하고 그에 맞는 당 조직과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밝혔는데, 다만 대의원제 폐지나 축소는 지난해 대선과 지방선거 과정에서 대거 입당해 현재 권리당원 중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 지지층이 내내 요구해온 부분이었던 만큼 향후 강성 당원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질 수 있게 됨에 따라 ‘포스트 이재명’ 지도부 역시 ‘친명계’ 중심으로 구성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비명계’인 이원욱 의원은 이번 혁신안이 발표되기 직전인 같은 날 오전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 나와 “대의원제 폐지 문제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논의하는 건데 지금 (혁신위가) 전당대회준비위원회도 아니고, 개딸들과 개딸을 등에 업고 있는 친명계 의원 몇몇을 제외한다면 총선 앞두고 대의원제 비율 조정을 두고 민주당이 혁신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얼마나 되겠나”라며 “이재명 대표 공백 상태가 벌어진다면 그와 관계되는 사람의 ‘친정 체제’를 목표로 내부적으로 고민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우려를 내비친 바 있다.

아울러 그는 “꼼수 탈당, 김남국 의원의 ‘이모’ 발언과 코인 거래 등에 대한 의원들의 온정주의 발언과 개딸의 행태 등이 민주당 신뢰를 떨어뜨려왔던 행위이고 이에 대한 전반적 평가를 하고, 극복할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게 혁신위의 과제였는데 혁신위는 그런 것들은 전혀 관심이 없고 일부 정치 훌리건들과 그를 등에 업은 의원들의 대의원제와 공천제도를 손보자는 얘기에 귀 기울여 의제 삼고 있다”며 혁신위가 발표 내용을 이 대표와 미리 교감했을지 묻는 진행자의 질문엔 “직접적 교감은 없었을 것으로 보지만 아마 제3의 누군가를 통하든지 아니면 암묵적 동의에 의해 처리되든지 했을 것”이라고 의심 어린 시선을 내비쳤다.

한 발 더 나아가 이 의원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가장 놀랐던 단어는 ‘이재명의 민주당’이다. 대선이라는 중요한 시기라 논란이 되지 않았지만 이재명의 민주당이라면 사당화 하겠다는 것 아닌가. 대의원제 문제 등이 논란이 되는 것은 사당화를 완성시키겠다고 하는 것”이라며 “민주당이 이 정도로 당내 민주주의가 망가진 적은 없었다. 당내 갈등은 굉장히 격화될 것”이라고 관측하기도 했다.

이 뿐 아니라 ‘이낙연계’로 꼽히는 윤영찬 민주당 의원도 이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와의 인터뷰에서 “대의원제 문제를 지금 꺼낼 이유가 전혀 없는데 왜 지금 꺼내서 평지풍파를 일으키느냐는 부분들이 가장 큰 불만”이라며 “이 대표 유지를 전제로 하면 사실 아무것도 혁신할 수 없다. 이 대표 체제가 잘 가고 있으면 뭐하러 혁신위가 만들어졌겠나”라고 혁신위에 직격탄을 날렸고, “혁신위가 등장하게 된 배경은 돈 봉투 사건, 팬덤정치, 방탄정당, 민주주의 후퇴 때문 아니었나. 이런 문제에 대한 본질적 대책을 내놓은 게 없다”고 꼬집기도 했다.

◆ 총선 공천 시 현역의원 하위평가자에 감점 비율 높여

서복경 혁신위원이 10일 오후 국회에서 3차 혁신안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 이훈 기자
서복경 혁신위원이 10일 오후 국회에서 3차 혁신안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 이훈 기자

차기 지도부 선출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을 놓고도 이렇게 비명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데, 심지어 현역의원 누구든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내년 총선 공천과 관련해서도 서복경 혁신위원은 이날 “평가 하위자에게도 과거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 있어야 한다”며 하위 20%에게 경선 득표의 20%를 감산하고 있는 기존 기준보다 한층 강화해 하위 10%까지는 40% 감산, 10~20%는 30% 감산, 20~30%는 20% 감산하는 비례적 감산 방식 적용을 권고했고 탈당이나 경선 불복자에 대한 감산은 현행 25%의 두 배인 50%까지 상향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서 위원은 “공직자윤리법, 이해충돌방지법, 부정청탁금지법 등이 정한 공직윤리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국회의원은 과감히 공천에서 배제해야 한다”며 현역의원 평가 시 기존에 없던 ‘공직윤리’ 항목의 신설도 제안했는데, 다만 현역의원에게만 한정해 잣대를 들이댄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듯 “공직윤리 기준은 현역의원이 아닌 22대 국회의원 후보자들에게도 적용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국회의원 상시평가 제도 준수, 총선 당내 경선 시 단수공천 허용 범위 최소화, 경선 선거구 대폭 확대, 총선 당내 경선에서 문자 발송과 합동연설회 및 토론회 개최 횟수·방법을 규정으로 명시, 경선시 권리당원 투표는 온라인투표시스템을 활용하는 등 방안도 함께 제시했는데, 이와 관련해 서 위원은 “당내 경선에서 현직 의원과 원외위원장이 가진 기득권은 이미 자신을 알릴 기회를 더 많이 가진 상태에서 당원명부까지 독점한다는 점”이라며 “동일한 기회 보장을 규정으로 만들어 도전자들의 불이익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러한 일련의 내용을 보면 결국 현역 의원이 가진 기득권을 최소화해 공천 경쟁에서 신진 후보가 가진 불리함을 줄여나감으로써 현역의원 물갈이를 쉽게 하려는 의도로 비쳐지고 있는데, 전날 민주당 원외인사 모임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도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당 현역 의원 상당수는 개혁적이지도 못하고, 유능하지도 못해 국민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국민은 대대적인 물갈이를 요구하고 있고, 현역 의원 50%에 이르는 대대적인 물갈이만이 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현역의원 교체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이들이 아예 단수공천 금지까지 요구한 데 반해 혁신위의 제안은 단수공천 허용범위 최소화로 수위를 완화했지만 현역 의원에 대한 압박수위가 이전보다 높아졌다는 점은 분명한데, 비록 다선의원들에게 ‘공천 학살 의도’로 비쳐질 수 있는 3선 이상 의원에 대한 공천 페널티 제안은 이날 발표된 최종 혁신안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대신 내년 총선 후보 중 미래 대표성을 띤 인사를 전체 국회의원 후보의 최소 20%가 될 수 있게 공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혁신위는 당이 미래특별의제를 지정하고 미래심사위원단을 둬 ‘미래대표’ 공천 과정을 전 국민에게 공개할 뿐 아니라 당 대표 직속 미래위원회도 만들자고 제안했는데, 초저출생·초고령화와 인공지능, 기후대응, 인구구조 변화와 사회적 재난 등 미래 어젠다에 능한 인재를 적극 영입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미래대표제’를 제시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 “수차례 의원직 역임한 전·현직, 불출마 결단해 달라”

더불어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혁신안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이 훈 기자
더불어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혁신안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이 훈 기자

심지어 김은경 혁신위원장은 “수차례 의원직을 역임하고 의회직과 당직을 두루 맡으면서 정치발전에 헌신한 분들 중 이제는 후진을 위해 용퇴를 결단하실 분들은 당의 미래를 위해 과감히 나서달라. 국민들은 정치의 새 물결을 원하고 있다”며 “현역 의원은 아니지만 여러 차례 의원을 역임한 분들 중 후진을 위해 길을 열어줄만한 분들인데도 다시 출마 준비하는 분들도 계신 것으로 아는데 이분들 역시 당의 미래를 위해 불출마 결단을 내려주고 당을 위해 헌신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전·현직 중진 의원들에게 자진해 불출마할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칫 당 내홍이 일어날까 의식한 듯 서 위원은 ‘3선 이상 중진에 대한 용퇴 요구냐’는 취지의 기자들 질문에 “3선 의원 출마 제한 내지 3선 의원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다선 의원보다 초·재선 의원이 더 청렴하다거나 능력 있다는 기준을 갖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시대 변화를 못 쫒아가거나 시대를 선도할 입법, 정책 역량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분이 지역단위에서 출마 준비를 많이 하는 것으로 아는데 상대적으로 젊은 분들, 의제 중심으로 고민하고 접근한 분들이 곤혹스러워 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어 그런 문제를 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최근 호남에서 다시 출마 준비에 나선 천정배·박지원 전 의원도 용퇴 요구 대상에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서 위원은 “위원들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는 취지로 답했으며 김남희 위원도 “의원들이 기득권을 내려놓은 정치, 새로운 발전을 바라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대해 국민 눈높이를 많이 고민했다. 강제력을 가진 기준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충분히 정치 발전에 헌신했고 역할을 한 분들 중 후진을 위해 용퇴를 결단할 분은 과감히 해달라는 마음을 담아 당부한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역시 원내 기반이 약한 친명계의 뜻에 부합하는 움직임 아니냐는 시선도 없지 않은데, 비명계 중 다선 의원이 상당하기도 한데다 현역 물갈이를 주장하는 더민주전국혁신회의 역시 김우영 민주당 강원도당위원장과 강위원 민주당 기본사회위원회 부위원장 등 대부분 친명계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고 지난달 19일 기자회견엔 아예 ‘친명계’ 민형배 의원이 함께 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여당인 국민의힘에선 전주혜 원내대변인이 이날 논평을 통해 “민주당이 택한 혁신은 이재명 아바타를 앞세운 김은경표 방탄이었다. 이 대표 강성 지지층인 개딸 등의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팬덤 층을 앞세워 비명계를 축출하기 위함일 뿐”이라며 “김 위원장이 말한 ‘당의 미래를 위한 용퇴’는 겹겹이 방탄 갑옷을 입고 있는 이 대표부터 그 대상이 돼야 마땅하다. 이 대표야말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뒤에 숨어 민주당을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민주당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급기야 정의당마저 이날 이재랑 대변인이 국회 소통관 브리핑을 통해 “혁신안으로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근본적 쇄신에 대한 방안 없이 당내 정치에 매몰된 이해타산의 조정책으로만 마무리되는 모습”이라며 “이번 민주당 혁신위 활동은 가죽을 벗겨내기는커녕 자신의 때조차 밀지 못한 맹탕으로 끝나고 말아 실망스럽기 이를 데 없다”고 혹평을 쏟아냈는데, 당장 여야를 막론하고 냉소적 반응이 나오는 상황에서 민주당 내 비명계 의원들조차 이번 혁신안을 과연 수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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