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쇄신 위해 혁신기구 설치하겠다더니, 꽁무니 빼는 민주당?
‘쇄신 의총’ 열었던 박광온 “앞으로는 정책 성격의 의총으로”
혁신기구 역할과 권한 놓고 친명계과 비명계 ‘동상이몽’ 형국
혁신위 구성에 계파 갈등의 내홍 조짐 보이자 정책으로 급선회?
유인태 “내부 분란만 커져, 李가 전권 주는 기구 만들 리 없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좌)와 박광온 원내대표(우). 시사포커스DB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좌)와 박광온 원내대표(우). 시사포커스DB

[시사포커스 / 이혜영 기자] ‘친명’(친이재명계) 중심 체제를 꾸려왔던 더불어민주당이 비명계(비이재명)로 분류되는 인사였던 박광온 원내대표가 선출되어 쇄신을 외치며 의원총회를 열어 혁신기구(혁신위) 설치 결의까지 했지만 아직까지 새롭게 탄생할 혁신위 수장도 거론되지 못하는 제자리만 맴도는 분위기가 엿보였는데, 다만 민주당이 친명과 비명의 계파로 갈려 있어 서로 주도권을 잡거나 놓치지 않기 위해 충돌하고 있는 탓이라는 시선들이 감지되면서 급기야 혁신위 문제를 놓고 계파갈등 양상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경고음까지 나와 관심이 집중됐다.

◆ ‘쇄신 의총’ 띄우며 혁신기구 출범 예고했던 민주당, ‘정책 의총’으로 선회?

민주당은 사법리스크에 둘러싸여 있는 이재명 대표 문제를 비롯해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논란과 김남국 의원의 코인(가상화폐) 투기 의혹까지 연거푸 악재를 맞으면서 지지율이 출렁이며 위기에 놓이자, 지난 14일 쇄신 의총을 열고 당의 신뢰 회복을 위한 타개 방안으로 새로운 혁신기구를 통해 쇄신안을 마련하겠다고 결의한 바 있다.

당시 민주당의 계획대로라면 6월 중에 혁신기구를 출범시키고, 새롭게 만들어진 혁신위가 주도하여 과감한 당 쇄신대책을 마련하고 가동하면서 당내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의지였지만, 의도치 않게 계파 갈등이라는 암초에 부딪히면서 난항을 겪는 모양새였다.

실제로 25일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도 혁신기구와 관련해 답보 상태임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소영 원내대변인은 의총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혁신 기구 문제에 대해 오늘 구체적으로 내용이 공유되거나 토론이 된 것은 아니다”고 밝히면서 “다만 (지난 14일에 열린) 쇄신 의총에서 (혁신위 구성 내용이) 나왔는데 수주가 흘렀으니 청사진이 제시됐으면 좋겠단 의견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또한 당 쇄신 방안과 관련해 ‘대의원제 폐지’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이 원내대변인은 “결론이 난 건 아니고 단순·간명한 문제가 아니라 철학적·역사적 연구와 토론이 필요한 주제라는 데 많은 분들이 공감했다”며 “앞으로 대의원제 폐지를 포함한 다양한 당의 혁신 방안에 대한 토론을 이야기하자는 점에 많은 분이 수긍했다”고 밝혔다.

이어 당내 윤리기구 설치에 대해서도 그는 “조정식 사무총장이 윤리기구 감찰 기능 강화와 관련해 준비하고 있는 사항을 간단히 설명했다”며 “상시 감찰을 통해 당내 선출직 공직자·당직자에 대한 수시 감찰을 진행하겠다고 설명했다”고 말해 사실상 민주당이 쇄신을 위한 작업에 한 발자국도 나아 가지 못했음을 확인시켜 줬다.

◆ 박광온도 방향 전환 “앞으로는 정책의총 성격의 의총으로 정례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시스

더군다나 반드시 쇄신하도록 하겠다고 공언했었던 박광온 원내대표도 이날 쇄신보다는 정책으로 방향을 트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는데, 그는 의총에서 “지난번 의원총회에서 정책에 대해 토론하는 의총을 정례화하자는 의견이 있어서 지도부가 상당히 논의 중이다”며 “정책 의총(의원총회) 성격의 의총을 정례화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말해 혁신기구 구성에 발뺌하는 분위기였다.

이어 박 원내대표는 “앞으로 정책 의총 성격의 의원총회로, 비전의총이 될지, 정책 토론 의총이 될지 이름은 어떻게 붙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의총을 정례화했으면 좋겠다”면서 “이 과정을 통해서 민주당의 가치와 비전을 더욱 강화하고 확장하여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여 사실상 쇄신 작업에는 한발 물러나고 대신에 정책을 앞세워 당의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계획으로 전환한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쇄신보다는 정책으로 방향을 바꾼 듯한 모습에 대해 친명과 비명으로 갈려 있는 계파 갈등 구도가 대의원제 폐지 및 혁신기구 설치 등의 문제를 놓고 격화되어 가는 양상을 보임에 따라 갈등 요소 차단을 위한 조치일 수 있다고 보는 해석도 나온다고 관측했다.

실제로 당내에서는 혁신기구 설치를 놓고 충돌음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비명계에서는 친명이 중심인 당 지도부를 향해 혁신위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전권을 위임해야 한다고 압박했으며 반대로 친명계에서는 지도부와 혁신위의 역할은 별개라고 봐야 한다며 강하게 반발하며 맞대응을 펼치고 나선 모습을 보여줬다.

◆ 혁신위 두고 한판 붙은 친명 vs 비명, 혁신위 권한 두고 설전 일어

친명계로 분류되는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좌)과 비명계로 분류되는 윤건영 의원(우). 사진 / 시사포커스DB
친명계로 분류되는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좌)과 비명계로 분류되는 윤건영 의원(우). 사진 / 시사포커스DB

특히 ‘친문(친문재인) 핵심’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비명의 윤건영 의원은 지난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년 추도식에 참석 한 후 “노 전 대통령 앞에 서니, 길을 찾지 못한 어수선한 우리 당 상황이 더욱 또렷하게 보인다”며 혁신위 구성 문제와 관련해 당 지도부와 같은 수준의 권한을 혁신위에 줘야 하며 혁신의 범위도 제한해서는 안되고 혁신위원장의 자질도 사실상 비명계의 혁신 인사가 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었다.

더욱이 윤 의원은 친명 중심의 지도부를 겨냥해 “대충 모양새만 만들어서, 시늉을 할 거라면 애초에 만들 이유도 없다”며 “지도부를 비롯해 의원 모두가 현재의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가능한 일이다. 혁신위를 ‘꼭두각시’로 만드는 순간, 다음 총선은 해보나 마나 패배”라고 목소리를 높여 사실상 친명계 의원들을 자극시켰다.

이로 인해 단단히 뿔이 난 듯 친명으로 분류되는 양이원영 의원은 그 다음날(2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하여 “전권 위임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를 잘 못하겠다”고 발끈하면서 “혁신위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당의 지도부는 지도부의 역할이 있는 거고 혁신위는 혁신의 역할이 있는 거다. 혁신위는 당의 혁신과 개혁에만 중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견제구를 놓으며 설전을 벌였었다.

이렇듯 친명계와 비명계가 혁신위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형성했으면서도 혁신위의 역할와 권한에 대해서는 접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혁신위가 구성된다고 할지라도 친명과 비명 구도에서 세력 간의 알력 다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임을 짐작케 했다.

◆ 혁신위 구성에 회의적 반응, 이재명 꿰뚫어 본 유인태 “전권 내줄 리 없어”

더불어민주당 원로 인사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좌)과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우). 시사포커스DB
더불어민주당 원로 인사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좌)과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우). 시사포커스DB

당의 원로인 유인태 전 사무총장도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하여 “지금은 혁신위 만들어봐야 오히려 내부 분란만 더 커질 것 같다”고 우려를 표하면서 “지금 이재명 대표가 그렇게 전권을 주는 기구를 만들 리도 없고, (만들어져도 혁신위는) 자기 통제 아래 두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유 전 사무총장은 “거기에 마땅한 사람을 지금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며 “(그리고) 전권을 줄 리도 없는데 (혁신위원장 자리를) 누가 하려고 그러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사실상 구성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여줬다.

더욱이 그는 “지금 혁신위 만들겠다는 게 ‘이재명의 민주당을 완성시키겠다’고 이렇게 들릴 수도 있다”고도 지적해 혁신위에 대한 친명과 비명의 생각과 접근 태도가 완전하게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여 사실상 계파 간의 당 장악을 위한 주도권 다툼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해 준 셈이다.

더 나아가 유 전 사무총장은 친명계의 대의원제 폐지 주장에 대해서도 친명계는 혁신위를 통해 대의원제를 폐지하려고 들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어차피 가을 들어가면 정기국회고, 그때는 국정감사고 예산이고 의원들 각자 기량을 가지고 하는 거니까 대표가 별로 할 역할은 없다. 그리고 정기국회가 끝날 무렵 쯤 돼서 ‘이대로 가서는 총선은 정말 어렵다’고 그러면 그때 가서 비대위를 할거냐는 판단들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대표니까 그때까지는 기회를 주고 나중에 그때 가서 (비대위든 혁신위든) 판단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즉, 혁신위를 구성해 봤자 오히려 계파 갈등만 더욱 커지고 양쪽 모두에게 정치적 손해가 잇따를 수 있다는 점을 예고한 것으로, 사실상 세력 간의 다툼의 소지가 큰 사안이 뻔한 것을 무리하게 추진해 더 큰 위기를 만들지 말라고 충고한 것이다.

◆ 친명계 일제히 ‘장경태 정치혁신위 대안론’, 비명과 친명의 혁신위는 동상이몽?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좌)와 민주당 정치혁신위원장을 맡고 있는 장경태 최고위원(우). 시사포커스DB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좌)와 민주당 정치혁신위원장을 맡고 있는 장경태 최고위원(우). 시사포커스DB

한편 이 대표는 전날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당원과의 대화에서 “(혁신위 설치) 준비를 탄탄히 잘했는데, 갈등의 소재가 될 수 있어 보류했다”고 밝히면서 장경태 최고위원이 이끄는 당내 정치혁신위원회를 언급하며 혁신기구를 새로 꾸리지 않아도 되고 “(정치혁신위가 대신하여) 금요일부터 공식 보고하고 실행 가능한 혁신안을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해 사실상 당 쇄신을 위한 혁신위 구성은 좌초된 것임을 암시했다.

더욱이 서은숙 최고위원도 이날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 출연하여 혁신기구와 관련해 전권 요구를 하는 목소리에 대해 “당헌·당규에 따르지 않고 당원과 대의원과 또 국민이 선출한 당 지도부의 권리를 함부로 위임하게 되면 뒤에 법적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반론을 펼치면서 “혁신위는 당의 혁신안을 만드는 기구”라고 잘라 말해 사실상 지도부의 권한을 넘겨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한 최근 복당한 민형배 의원도 이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하여 “상황이 복잡할 때 혁신을 들고 나오면 엉뚱한 오해를 받을 수 있다”면서 “이 대표의 혁신 방향은 ‘쇄신과 승리’가 아닐까 싶다. 기득권 중심이 아닌 당원 중심으로 갈 것이라고 본다”고 말해 사실상 친명계에서 바라보는 당의 혁신은 ‘대의원제 폐지’에 정조준하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시켜줬다.

더욱이 민 의원은 혁신기구에 대해 “이미 장경태 혁신위에서 내용적인 것은 다뤘을 것”이라서 “이것을 어떻게 현실에 적용할지, 잡음 없이 국민과 당원들의 요구에 부합 해 나갈 것인가를 생각해 내면 된다”고 부연해,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쇄신을 위한 혁신기구 설치를 놓고 친명과 비명 세력 간의 ‘동상이몽’ 하는 형국으로 진정한 쇄신과는 거리가 먼 모양새라고 진단하며 씁쓸해하는 목소리도 솔솔 흘러 나온다고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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