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고발 이어 공수처 항의방문한 국민의힘…자리 비운 김진욱 처장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이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이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적폐청산을 외치면서 검찰의 수사행태를 비판해온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출범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정작 언론인들의 통신내역을 조회한 데 이어 야당 정치인들의 통화내역까지 조회했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전방위적인 사찰을 해온 게 아니냐는 파문이 일고 있다.

◆ 언론 이어 野까지 대상 안 가린 공수처의 무차별 통신조회

통신자료 조회란 수사기관이 특정 휴대전화번호 가입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 개인정보를 통신사로부터 넘겨받는 것을 의미하는데, 지난 8일 ‘조국 흑서’ 저자인 김경율 회계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수처로부터 통신자료를 조회당했다’고 밝히면서 공론화되기 시작해 비단 김 회계사 뿐 아니라 지난 7월부터 10월까진 조선일보의 공수처 취재기자 등 6명에 대해 12회에 걸쳐 통신자료 조회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중앙일보도 법조팀 취재기자 등 3명이 공수처로부터 11차례에 걸쳐 통신자료를 조회당하는 등 언론을 상대로도 무차별 통신조회를 한 것으로 밝혀져 사실상 사찰 아니냐는 반발이 언론계에서 거세게 일어났다.

이들 뿐 아니라 문화일보, 노컷뉴스. 헤럴드경제, 연합뉴스, 뉴시스, MBN 등 모두 15개사 40여명에 걸쳐 피의대상이 아님에도 기자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통신자료 조회를 해온 것으로 밝혀졌는데, 심지어 법조팀 소속이었다가 다른 팀으로 옮긴 기자의 통신자료도 조회해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공수처는 지난 13일 출입기자단에 보낸 입장문을 통해 “가입자 정보만으로는 통화 상대방이 기자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단지 가입자 정보를 파악한 적법절차를 언론 사찰로 규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공수처는 “공수처 수사팀은 그 인사가 누군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이걸 민간 사찰로 매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항변했으나 앞서 이성윤 서울고검장을 김진욱 공수처장 관용차에 태우고 들어와 ‘황제조사’를 했다는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에도 그 장면을 포착한 CCTV를 입수한 TV조선 기자를 상대로 입수 경위를 뒷조사했던 적도 있었던 만큼 공수처의 이런 해명만으로는 좀처럼 불신감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특히 특정 언론사 법조팀 보고라인 거의 전원을 같은 날 조회한 데 대해선 별 다른 설명을 내놓지 못해 공수처 측 해명은 빈축을 사기만 했는데, 한 발 더 나아가 국민의힘 의원들을 상대로도 통신조회를 했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가입자 정보만으로는 상대방을 알 수 없다’던 공수처의 주장은 더 궁색한 변명이 돼 버렸다.

◆ 검찰 고발 이어 공수처 항의방문까지…격앙된 국민의힘

공수처로부터 통신내역을 조회당한 7명의 국민의힘 의원에 속하는 (좌측부터) 윤한홍, 이양수, 조수진, 박수영 의원. 사진 / 시사포커스DB
공수처로부터 통신내역을 조회당한 7명의 국민의힘 의원에 속하는 (좌측부터) 윤한홍, 이양수, 조수진, 박수영 의원. 사진 / 시사포커스DB

국민의힘이 지난 22일 자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공수처는 박성민, 박수영, 서일준, 윤한홍, 이양수, 조수진, 추경호 등 7명의 야당 의원들에 대한 통신기록을 조회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에 유상범 국민의힘 법률지원단장은 이날 오후 같은 당 정희용 의원, 권오현 법률자문위원과 함께 대검찰청을 방문해 김진욱 공수처장과 수사3부의 최석규 공수처 부장검사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고발했다.

무엇보다 공수처가 국민의힘 당내 대선 경선 중이던 지난 10월 통신내역을 조회했으며 윤석열 대선후보의 주변인물들을 대상으로 조회했다는 점에서 국민의힘은 대선을 앞두고 의도적으로 야당을 겨냥한 정보수집에 나선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을 공수처에 보내고 있는데,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23일 중앙선대위 회의에서 “언론 보도에 의하면 공수처가 기자 가족들 통신까지 조회하고 심지어 국민의힘 의원들의 통신자료까지 조사하는 무소불위를 자행했다. 공수처가 공포처처럼 변질됐다”며 “공수처 만든 취지는 인권 보호를 위함인데 이제는 공수처가 무차별 통신조회하는 것을 방지하는 제도를 새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역설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조경태 공동선대위원장도 격분한 듯 “야당 의원 사찰하고 언론인 사찰하는 게 국가의 투명성과 공직사회의 신뢰성을 높이는 것이냐. 우려했던대로 공수처는 문재인 정권의 충실한 개 역할 밖에 안 된다는 게 이번 불법사찰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났다”며 “문 정부에는 사찰 유전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던 청와대 역시 지금 입을 다물고 있다. 청와대는 이번 사태에 대해 즉각 사죄하고 초헌법적 정치탄압 도구로 전락한 공수처를 즉각 해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뿐 아니라 일부 언론 인터뷰에서 공수처 폐지는 현실적으로 어렵단 반응을 보였던 윤 후보조차 야당 의원들에 대한 통신조회 사태까지 접하자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언론사찰이 논란 되더니 이제는 정치사찰까지 했다니 충격이다. 공수처가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공포사회를 만들고 있다”며 “이런 식이라면 일반 국민도 사찰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 정도면 공수처의 존폐를 검토해야 할 상황 아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루 만에 공수처 폐지 가능성을 열어두는 입장을 내놨다.

또 이에 앞서 시민단체인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는 공수처의 통신자료 조회가 헌법상 기본권 침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고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 21일 공수처 사찰 의혹 수사에 들어갔는데, 김진욱 처장의 사퇴까지 촉구한 국민의힘에선 법사위 소속인 윤한홍, 조수진, 유상범, 장제원 의원이 23일 오후 공수처가 있는 정부과천청사를 직접 항의 방문하는 등 공수처에 대한 압박수위를 최대치로 높였다.

이 자리에서 공수처로부터 통신내역이 조회당한 7명의 국민의힘 의원 중 한 명이기도 한 윤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공수처가 출범할 때부터 과거 독재정권의 게슈타포를 닮아 출범해선 안 된다는 것을 국민께 여러번 설명 드리고 주장해왔는데 현실화되고 있다. 공무원들이 선거와 대선에 개입하는 장면”이라며 “불법적인 행위이므로 주단할 것을 촉구하고 공수처장에게 설명을 듣기 위해 왔다”고 이번 방문 이유를 밝혔는데, 국민의힘 의원들의 면담 요구에도 처음에 김 처장은 병원 진료를 들어 3시간이나 기다리게 만들었다.

◆ 3시간 지나 野 만나준 공수처장 “의혹 해소할 자료 공개 고민하겠다”

과천 정부종합청사에 있는 공수처를 항의방문한 국회 법사위 소속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좌)과 김진욱 공수처장. 사진 / 시사포커스DB
과천 정부종합청사에 있는 공수처를 항의방문한 국회 법사위 소속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좌)과 김진욱 공수처장. 사진 / 시사포커스DB

특히 김 처장이 이비인후과에 갔다고 해 국민의힘 의원들이 현장에서 수시간 동안 기다렸음에도 그 다음엔 물리치료를 받으러 정형외과에 갔다고 했다가 그 뒤엔 퇴근한다고 한 것으로 알려져 일부러 회피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만 한층 짙어지게 만들었는데, 공수처 내 일각에선 통신자료 조회는 검경도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수사기법인 만큼 적극적으로 공식 해명에 나서길 바라는 목소리도 없지 않지만 김 처장은 표면상 침묵으로 일관하는 모양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급기야 보수정당 의원들에게 벌어진 일임에도 진보정당인 정의당까지 공수처 비판대열에 동참했는데, 장혜영 정의당 선대위 수석대변인은 23일 오후 서면브리핑을 통해 “기자 가족까지 조회 대상에 포함됐고 시민단체와 학회 이사 등을 포함해 총 100여건이 넘는 민간인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과의 관련성 및 범죄 혐의에 대한 기초조사도 하지 않고 공수처 수사대상이 아닌 민간인의 통신자료를 확보한 게 정당한지 의문”이라며 “인권존중 수사를 외쳤던 공수처장의 일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에 대한 분명한 해명을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장 대변인은 “공수처는 검찰의 권한남용을 통한 정치검찰, 검찰 권력의 폐단을 일소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권력기관이 아니라 시민들을 상대로 그 칼을 뽑는다면 그 즉시 역사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같은 날 한국신문협회, 한국여성기자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 등 언론단체들까지 공동성명을 내고 “공수처가 통신조회한 기자들은 공수처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대부분이다. 이런 통신사찰은 과거 수사기관이 비판적 기사를 작성한 언론인에 대해 보복할 때 쓰던 불법 표적 사찰”이라며 반헌법적인 언론인 사찰을 즉각 중단하라고 한 목소리로 공수처를 압박했다.

결국 거센 압박 속에 김 처장은 공수처로 복귀해 국민의힘 법사위 소속 의원들과 30분 가량 면담을 가졌는데, 이날 면담 직후 장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피의자와 통화한 상대방을 알아보기 위한 조회였다는 말만 반복해 해명자료를 내라고 요구했고 고민하겠다고 하더라. 김 처장은 정치적 중립성 부분을 더 고민하고 노력하겠다고 답했다”며 “사찰 의혹을 해소할 수 있는 자료를 준다길래 일단 기다려보겠지만 상식적으로 공수처장이나 차장이 하는 말을 믿을 수 없다”고 김 처장에 대한 불신감을 내비쳤다.

이날 면담 당시 김 처장은 공수처 인력 충원 법안을 통과시켜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미 김 처장을 믿을 수 없는 국민의힘에선 청와대에 사과할 것은 물론 공수처장에 대한 수사까지 촉구하고 있어 임기 말 불거진 공수처의 통신조회 파문에 문 정권은 과연 어떤 대답을 내놓을 것인지 벌써부터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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