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선거제 개편’ 호소에도 침묵 잇는 與…바뀌면 野에 유리?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당대표와 민주평화당 정동영 신임 대표가 상견례를 갖는 가운데 정 대표가 선거제 개편 관련 제안을 했으나 추 대표는 즉답을 피했다.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당대표와 민주평화당 정동영 신임 대표가 상견례를 갖는 가운데 정 대표가 선거제 개편 관련 제안을 했으나 추 대표는 즉답을 피했다. 사진 / 오훈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그간 소수정당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제기되어 온 선거제도 개편이 성사 국면에 이를 수 있을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모처럼 야권이 모두 선거제 개혁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만큼 이제는 여당의 동참만 있으면 바로 가능한 실정인데, 지방선거에서 압승했던 더불어민주당이 아직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어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선거제 개편, 군소정당에서 적극 나서는 이유는?

최근 들어 어느 곳보다 가장 선거제 개편에 열을 올리며 매일 같이 지도부부터 앞장서서 관련 입장을 꾸준히 내놓고 있는 곳은 민주평화당이다.

새로이 평화당을 이끄는 정동영 신임 대표는 당선 전부터 줄곧 당 지지율 회복을 중요 목표로 내세우며 당의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고 해 왔는데, 원내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하는 현 상황으로선 지지율마저 주요정당들 중 가장 낮은 판국에 다음 총선 이후 생존을 거의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지율 회복과 더불어 당의 생존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면 결국 선거제도 개혁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데, 기존의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당선자에게 가지 않은 표는 모두 사표가 되는 승자독식 형태이다 보니 의석수가 적은 군소정당에는 필연적으로 불리한 구조였기에 비례성을 보다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꾸자고 주장하고 있다.

단적인 사례로 지난 20대 총선만 봐도 새누리당은 비례대표 득표율이 33.5%에 그쳤음에도 총 의석수는 122석(40.7%)을 차지하게 됐고, 민주당도 25.5%의 득표율로 123석(41%)을 가져간 데 반해 국민의당은 26.7%를 얻었어도 38석(12.7%)에 불과해 오히려 선거제가 표심을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그러다 보니 국민의당의 후신인 바른미래당은 물론 정의당까지도 의석수 확대라는 현실적 측면을 염두에 두고, 선거제를 개혁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정동영 평화당 대표의 호소에 공감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7일 당시 정 신임 대표는 취임 인사차 김동철 바른미래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예방한 자리에서 “바른미래당과 평화당이 국민에게 할 수 있는 최대 서비스는 연말까지 선거제도를 혁파하는 것”이라며 “이것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삶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 대표는 “어려운 약자들이 정치세력을 만들어서 국회에 들어와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함으로써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이승만 시대부터 이어온 승자독식 제도를 버리고 다당제 합의제 민주주의로 가야 한다”고 거듭 호소했다.

이에 김 위원장도 “제왕적 대통령제, 적대적 양당제, 당내 계파 패권주의는 우리 정치의 3대 악인데 이 중 적대적 양당제는 선거제 개편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강력한 다당제론자인 정 대표가 있어 든든하다”고 흔쾌히 화답했다.

이 뿐 아니라 정 대표는 같은 날 정의당의 이정미 대표와도 만나 “선거제도 개혁은 정의당의 오랜 기원이자 평화당의 강령 1조”라며 “평화와 정의의 연대가 이번 정기국회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최우선의 가장 절실한 과제로 설정하고 민주당을 견인하자”고 제안했다.

물론 이 대표도 “평화당이 정의당보다 더 정의롭게, 정의당이 평화당보다 더 평화롭게 되면 국민도 선거구제를 왜 바꾸어야 하는지 공감하게 될 것”이라며 “정 대표님과 20대 국회 안에 반드시 정치개혁을 성공시켰으면 한다”고 공조 의사를 분명히 드러냈는데, 이 같은 소수정당들의 움직임은 우선 자당의 규모와 존재감을 살리는 데 우선순위를 둔 행보란 점에서 거대양당과의 통합 같은 정계개편이 일어날 가능성은 일단 수면 아래로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상임고문이 선거제 개편과 관련해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사진 / 이광철 기자
손학규 바른미래당 상임고문이 선거제 개편과 관련해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사진 / 이광철 기자

다만 선거제 개편과 정계개편이 완전 상치되는 거라 할 수는 없는데, 손학규 바른미래당 상임고문의 경우 지난 8일 당 대표 출마선언을 통해 “여소야대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돼 다당제에 맞는 합의제 민주주의를 제도화해야 한다”며 “독일식의 연립정부가 그것이고, 이를 위해선 득표수만큼 의석수를 나누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필요하다”고 선거제 개편 필요성을 제기하는 한편 “야권은 바른미래당을 중심으로 통합될 것”이라고 정계개편 의지도 일면 내비쳤기 때문이다.

◆ 선거제 개편 성사 여부는 결국 민주·한국당 동참 여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제 개편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든 가장 중요한 관건은 실질적으로 정국을 주도하는 거대 양당의 협조 의지인데, 여당인 민주당은 바른미래당·평화당·정의당의 간절한 호소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미 지난달 12일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대표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께선 선거제도 개혁만 이뤄진다면 대통령 권한 절반 이상까지 내줄 수 있다며 사활을 걸었다. 노무현 정신을 잇겠다는 여당이 침묵한다면 이보다 역설적인 상황도 없을 것”이라며 “선거제 관련 국회 개혁안 만들기를 여당이 시작하고 내년 초까지 합의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연동형 비례제를 수용하겠다는 정도의 담보가 필요하다”고 민주당에 촉구한 바 있다.

심지어 바른미래당에서도 지난달 18일 김동철 비대위원장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청산하고 적대적인 양당제에서 다당 구도로 바꾸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적폐청산이요, 시대정신을 완성하는 길”이라며 “민주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들이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을 주장하고 있으며 금년 내 완수할 것을 재촉하고 있다. 개헌과 선거제 개혁을 이루는 데 가장 큰 장애가 바로 여당인 민주당”이라고 일갈했다.

한 발 더 나아가 평화당의 정 대표는 10일 KBS라디오 ‘최강욱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아예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했던 내용까지 거론하면서 민주당을 압박했는데, “문 대통령은 ‘국회가 합의하면 선거제도 개편이 이루어집니다’는 얘기와 자유한국당에도 불리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다”며 “그런데 엊그제 추미애 민주당 대표와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똑같이 강조했지만 추 대표가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그 점이 좀 답답하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여당은 이같은 온갖 압박에도 끝내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반면 오히려 예전엔 반대 의사를 표해온 한국당에선 지난 6·13지방선거에서 여당이 기존 승자독식의 선거제도에 힘입어 압승을 거둬서인지 그새 생각이 많이 바뀐 모양새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만 해도 지난 8일 비대위-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지난해 5월19일 문재인 대통령이 5당 원내대표들을 청와대에 초청해 선거구제 개편만 이뤄진다면 권력도 내려놓을 수 있는 방안도 적극 강구하겠다고 했다”며 “새로운 권력구조와 정부형태에 맞는 선거구제를 마련하고 있다”고 밝혀 개헌을 조건부로 선거제 개편 동참 의지를 피력했다.

특히 김 원내대표는 “한국당은 지난해 12월 이후 선거제도 개혁과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을 추진하기 위해 개헌정책협의회를 구성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며 “국민대표성과 비례성을 확대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덧붙여 그 의지를 한층 분명히 했다.

◆ 정치권 지각변동 일으킬 ‘연동형 비례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용하게 되면 군소정당이던 정의당 의석수가 더 이상 한자릿수에 머무르지 않고 크게 늘어나게 된다. 사진 / 오훈 기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용하게 되면 군소정당이던 정의당 의석수가 더 이상 한자릿수에 머무르지 않고 크게 늘어나게 된다. 사진 / 오훈 기자

여기에 같은 당 정진석 의원은 이 자리에서 “당권으로 의원들 줄 세워 공천권을 휘두르겠다는 구체제를 내려놓고 선거구제를 개편해 복합선거구제까지 과감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해 한층 구체화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복합선거구제란 보통 ‘도농복합선거구제’로 칭하는 것으로 농촌에선 한 선거구당 의원 1명을 뽑는 소선거구제를, 도시에선 선거구당 의원 2~3명을 뽑는 중선거구제를 택하는 ‘혼합형’ 제도를 의미한다.

아무래도 한국당은 다수정당이기에 선거구당 2~4명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하는 소수정당과는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내놓은 절충안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보다 현재 정치권에선 일단 중앙선관위에서 제안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가장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앞서 손학규 바른미래당 상임고문이 언급하기도 했던 이 제도는 지역구 의원은 정당별 득표율에 따라 각 정당의 의석수를 먼저 확정하고 지역구 의석과 전국구 의석을 결정하자는 형식인데, 즉 지역구 의원은 현행 방식대로 선출하고 정당 득표율에 맞춰 당별 의석수를 정해놓는 방식으로 이 연동형 비례제를 권역별로 다시 세분화(선관위의 경우 6개 권역으로 제안)하는 것이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지난 20대 총선 결과를 기준으로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한 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용하기만 해도 총 의석수가 321석으로 늘어나는 것 뿐 아니라 6석의 소수정당인 정의당의 경우 단숨에 의석수가 23석으로 급증하는데, 이는 도농복합선거구 중선거구제든 전면적 중선거구제를 택하든 마찬가지다.

또 연동형 비례제에서 전면적 중선거구제를 동시 적용하면 민주당이 1당, 한국당이 2당이던 지난 20대 총선의 결과마저 뒤바뀌는데, 한국당은 100석을 넘는 반면 민주당은 두자릿수 의석을 확보하는 데 그칠 만큼 크게 줄어들고 다른 야권의 의석수는 모두 늘게 된다.

어디까지나 지난 총선 결과를 기준으로 했을 경우에 한정된다 해도 당연히 민주당으로선 선거제 개편을 요구하는 야당의 목소리가 그다지 달갑지 않게 들릴 법한데, 아직 여야 간 지지율 격차가 크다곤 하지만 최근 들어 민주당 지지율이 대통령 지지율과 함께 동반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는 만큼 총선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여당 역시 결국 선거제 개편에 동참하지 않겠느냐는 견해들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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