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 등기이사 복귀 여파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등기이사 선임으로 정면돌파를 선언하고 나섰다. ⓒ뉴시스
고백 파문에 휩싸였던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등기이사 선임으로 정면돌파를 선언하고 나선 가운데 등기임원에 오르지 않거나 등기임원 보수 공개 후 교묘하게 등기임원직에서 물러난 총수 일가에 따가운 눈총이 쏟아지고 있다.
 
2일 SK그룹에 따르면 최태원 회장은 이달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2년여 만에 SK㈜ 등기이사로 복귀할 예정이다. SK㈜ 정기 주주총회는 오는 18일로 예정돼 있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해 광복절 특별가석방으로 풀려난 후 활발한 행보를 보이다가 갑작스럽게 터진 ‘고백 파문’으로 소극적 행보를 보여 왔다. 하지만 그룹이 신성장동력 찾기에 애를 먹고 있는 상황에서 최태원 회장은 이번 등기이사 복귀를 통해 책임경영을 펼친다는 방침이다.
 
SK그룹의 맏형 격인 SKC 최신원 회장도 그룹의 모태 격인 SK네트웍스 등기이사를 맡기로 하면서 SK그룹은 다시 총수 일가가 나란히 등기 임원을 맡게 됐다. 하지만 최태원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로 인해 미등기임원으로 남아 있는 다른 대기업 총수 일가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따가워지고 있다.
 
◆등기임원 오너일가, 책임경영의 표본
총수 일가가 등기임원으로 있는 것이 책임경영의 표본으로 불리는 이유는 그만큼 등기임원이 권한에 비해 지고 있는 책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등기임원제는 회사 경영의 법률적 책임성 강화라는 목적에서 도입됐다. 등기임원은 정확하게 이사 가운데 ‘등기된 이사’를 가리킨다. 주식회사의 위법 행위로 손실이 발생했을 때에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지 업무의 책임성을 법에 명시해 분쟁 소지를 줄이고 기업 경영을 더욱 책임감있게 이뤄지도록 하는 제도다.
 
등기임원이 되면 이사회 구성원이 되기 때문에 회사의 중요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그만큼 업무의 양과 성격이 많이 달라지고 법적 책임도 진다. 딱히 직급에 따른 예우 외에 등기임원으로서의 예우가 추가되는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책임을 지기 때문에 회사 내에서의 위상은 그만큼 올라간다.
 
등기임원에 대한 관심이 최근 들어 높아지고 있는 이유는 보수 공개 때문이다. 2013년 개정된 자본시장법에 따라 기업들은 지난 2014년부터 등기임원의 보수 내역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5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등기임원의 보수 내역을 공개하라는 내용으로 법이 개정되면서 특히 재벌 총수들이 등기임원을 맡고 있는 대기업들에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기존에는 회사별로 등기임원의 보수 총액만 공시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개별 등기임원이 성과 대비 합당한 평가 및 보수를 받는지를 주주에게 정확하게 알리기 위해 법이 개정됐다. 기업들은 등기임원의 급여와 상여금, 퇴직금, 기타 소득 등의 보수 명세를 공개해야 한다.
 
◆총수일가 보수에도 뜨거운 관심
 
▲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직전인 2013년 3월 등기임원을 내놔 보수 공개를 꺼리고 미리 등기임원직을 내려놓은 것 아니냐는 빈축을 사기도 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등기임원을 맡고 있는 총수 일가의 보수가 공개되기 시작한 여파로 세간에서는 총수 일가의 등기임원 여부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실태 공개 결과 회사에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총수 일가 중 적지 않은 비율은 등기임원을 맡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총수가 있는 주요 40개 그룹 계열사 중 등기이사에 총수 일가가 포함된 경우는 21.7%에 그쳤다. 5곳 중 4곳은 총수 일가가 등기이사가 아니라는 얘기로 보수 공개나 책임 경영 등을 회피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총수로 한정시켰을 경우 총수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 비율은 7.7%에 불과했다.
 
특히 삼성그룹의 경우 활발한 대외활동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이 모두 미등기임원이다.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 역시 미등기임원으로 있다. 삼성가에서 등기임원으로 있는 총수 일가는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 뿐이다. 이부진 사장은 지난해 호텔신라 정기 주주총회에서 다리에 기브스를 한 채로 참여해 눈길을 받기도 했다.
 
범삼성가인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도 미등기임원으로 있다. 정용진 부회장은 2002년 이명희 회장이 물러나면서 신세계 등기임원에 올랐지만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직전인 2013년 3월 등기임원을 내놔 보수 공개를 꺼리고 미리 등기임원직을 내려놓은 것 아니냐는 빈축을 사기도 했다.
 
23개 계열사를 거느린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도 이사로 등재된 곳이 없어 구설에 오르는가 하면 공정위에 따르면 한화, LS, 대림, 현대중공업, 이랜드, 태광, 한솔 등도 총수가 계열사 이사로 전혀 등재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이 집행유예 기간이라 등기임원에 오를 수 없는 상황이다.
 
반면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은 등기임원직을 고수하면서 그룹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 역시 롯데쇼핑과 호텔롯데 등 총 7개 계열사에서 등기이사직을 맡고 있으며 최근 구본준 LG 부회장 역시 LG화학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리기로 했다.
 
GS그룹 허창수 회장도 등기이사직을 유지할 예정이고 효성그룹은 조석래 회장, 조현준 사장, 조현상 부사장 등 부자가 모두 등기임원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현대그룹과 부영, 세아, 한진중공업 등도 총수 일가의 이사 등재 비율이 높은 편으로 알려졌다.
 
◆보수공개 적절성 여부 찬반논쟁도
다만 등기임원 재직 여부로 총수 일가의 책임성 여부를 판단하고 보수가 공개돼야 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특히 경제단체들은 재벌 총수의 연봉을 공개해야 한다는 점에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총수 일가의 연봉과 책임경영과는 별 차이가 없으며 등기임원이 아니라고 해서 경영에 책임을 지지 않는 총수 일가가 어디에 있겠느냐는 항변이다.
 
특히 민감하고도 자극적인 총수 일가의 보수 내역이 일일이 공개될 경우 가뜩이나 강한 반재벌 정서가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여전히 재계 안팎에서는 등기이사로 등재되는 총수의 경우 법적 다툼에 있어 목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책임있는 그룹 경영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실제 국회에서는 총수들의 ‘미등기 임원’ 꼼수를 차단하고자 상장사들이 등기 여부와 상관 없이 보수 총액 5위 내의 임원들의 연봉을 공개하는 법 조항이 상임위를 통과했다. 필리버스터 정국 속에 처리가 지연되고 있지만 사실상 통과가 확정적이다. 다만, 개정안은 보수 공개 제도 개편 이후 2년간을 유예 기간으로 지정, 오는 2018년부터 시행된다.
 
일각에서는 이에 미등기 임원으로 보수 공개를 회피하려 했던 총수 일가가 전략을 바꿔 등기이사로 복귀하는 대신 연봉을 5위권 밖으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의심도 나오고 있다.
 
이에 시민단체는 대체적으로 총수 일가의 연봉 공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이면서도 아예 5억원 이상의 미등기임원의 보수까지도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실제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등기임원 여부와 상관없이 연봉을 공개하며 미국의 경우 고액연봉 상위 5명, 일본의 경우는 1억엔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독일은 모든 이사 개인별 보수를 공시해야 한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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