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개혁연대 “꼼수 아니냐” vs SK “상징적인 의미일 뿐”

 

▲ 최근 복역중인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이 등기임원을 사퇴한 후에도 미등기임원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경제개혁연대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SK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후 SK그룹 계열사의 모든 이사직을 내려놓는 ‘결단’을 내린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여전히 주력 계열사의 미등기임원직은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이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7일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이하 개혁연대)가 최태원 회장의 미등기임원 등재 사실과 관련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SK그룹 측에 질의를 했다고 밝혀 시선이 집중됐다. 반면 SK그룹 측은 전혀 문제가 없다며 의혹을 일축했다.

개혁연대는 2014년 12월말 기준 각 사의 사업보고서에 최태원 회장이 주력 계열사인 SK㈜, SK하이닉스, SK이노베이션의 미등기임원직을,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이 SK네트웍스와 SK E&S의 미등기임원직을 맡고 있는 것으로 기재돼 있는 것에 주목했다.

이날 개혁연대가 질의한 내용은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이 보수를 수령하였는지, 미등기임원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또한 법무부장관의 승인을 받았는지 여부다. 법무부 장관의 승인 여부는 법무부장관의 승인을 얻을 경우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취업이 가능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개혁연대 측은 지난해 2월 최태원 회장이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직후 SK그룹 내에서 모든 이사직을 사임하는 결단을 내렸다고 했지만, 실제로 최태원 회장 등이 등기이사직만 내려놓고 미등기임원으로 전환하는 꼼수를 부렸다고 비판했다.

◆미등기임원 뭐기에…꼼수 논란 재점화
등기임원과 미등기임원의 차이는 일반적으로 경영상의 책임 소재에서 갈린다. 상법상 등기임원이란 회사의 법인등기를 할 때 대표이사, 상무이사, 전무이사 등으로 등록되는 임원을 말하며, 경영상 법적 책임을 진다. 다만 통상적으로 그만큼 자동차, 건강관리 등 연봉액수 정도의 법인카드 등의 액수를 공개적으로 보장받는 혜택도 주어진다.

반면 미등기임원은 회사의 대표가 아니기 때문에 이사회 등 회사의 결정에 있어서 외부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 또한 미등기임원은 보수가 공개되지 않는 장점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 대기업 총수일가의 미등기임원 선호 현상은 그간 수 차례 지적돼온 바 있다. 어차피 회사에 미치는 영향력에는 차이가 없는 만큼 연봉 공개와 경영상의 법적 책임 등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을 제외하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등이 모두 미등기임원이다.

5억원 이상 등기임원의 연봉을 공개하는 ‘자본시장법’이 통과되자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담철곤·이화경 오리온 회장·부회장 부부, 최신원 SKC 회장, 박문덕 하이트진로그룹 회장 등은 재빠르게 등기임원직을 사퇴하기도 했다.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주요 그룹사 239곳 중 15.5%인 37개 그룹이 총수 일가의 보수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3월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회장은 SK㈜와 SK이노베이션, SK C&C, SK하이닉스 등 4개 회사의 등기 이사직을 내려놓는다고 밝혔다.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도 SK네트웍스와 SK E&S 등 2개 회사의 이사직에서 사임하기로 했다. 이는 각각 회삿돈 횡령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4년과 징역 3년 6월의 실형이 확정돼 경영에서 물러나기로 한 것에 따른 조치다.

당시 SK측은 “최 회장이 회사발전 우선의 원칙과 함께 도의적인 측면에서 책임을 지고 모든 관계사 등기이사직에서 사임하고자 한다는 뜻을 밝혀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완전히 임원에서 사퇴한 것은 최태원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SK C&C 뿐이고, 나머지 3개사는 미등기임원으로 전환해 이번 논란을 자초했다. 최재원 부회장 역시 2개 회사의 등기 이사직을 내려놓고 대신 미등기임원으로 전환했다.

따라서 가뜩이나 총수 일가의 미등기임원직 선호 현상이 팽배한 가운데 실형을 선고받고 등기임원을 사퇴해 미등기임원으로 전환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셈이다. 물론 총수 일가의 지나친 등기임원 겸직도 과다 보수, 실질적인 경영 참여 불가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받고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법적 테두리 안에서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미등기임원으로 뒤로 숨는 것보다는 낫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지난해 유죄 판결을 받은 뒤 집행유예로 풀려났음에도 등기임원은 물론이고 미등기임원 자리도 맡고 있지 않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비교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김승연 회장은 취업 제한 대상인지를 가리지 않고 모든 계열사의 미등기임원 자리에서 물러났다. 

▲ SK그룹 측은 경제개혁연대의 의혹 제기를 일축했다. SK그룹 관계자는 미등기임원 유지는 상징적 차원에서 남겨둔 것일 뿐 보수도 전혀 받지 않고 경영활동에 참여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취업제한 취지를 위반한 것도 아니라고 해명했다. 사진 / 홍금표 기자

◆개혁연대 “미등기임원 유지 부적절” 의혹 제기
우선적으로 개혁연대 측은 도의상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현재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은 수감 중인 상태이고 남은 수형기간도 상당하기 때문에 아무리 미등기임원(비상근 이사)이지만 회사의 임원직을 맡고 있는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이다. 개혁연대 측은 “회사를 위한 충실한 업무수행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임원직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스럽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혁연대 측은 위법 소지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경가법) 14조에는 횡령·배임 등의 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자는 일정 기간 국가 및 지자체의 출연기관과 함께 유죄판결된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체에 취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개혁연대 측은 “시행령을 통해 법률상의 ‘유죄판결된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체’는 유죄가 선고된 자의 공범이나 그의 일가가 출자한 기업체, 공범이 임직원으로 있거나 있었던 기업체, 범죄로 인하여 재산상의 이득을 취한 기업체 및 이상의 기업체가 출자한 기업체로 분류된다”면서 이 사항의 위반은 그 자체로 또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SK㈜와 SK C&C 등이 취업제한 규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따라서 개혁연대 측은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사장이 모든 계열사 이사직을 사임하겠다는 얘기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등기 여부와 무관하게 회사의 임원직을 맡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SK “상징적 차원…무보수라 취업 아니다”
반면 SK그룹 관계자는 13일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미등기임원 유지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SK㈜ 같은 경우는 그룹을 대표하는 지주회사이고 최태원 회장이 지분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징적인 차원에서 미등기임원으로라도 남게 된 것이고, SK이노베이션이나 SK하이닉스 같은 경우는 글로벌 비지니스 차원에서 비지니스 파트너와의 사업 진행을 위해 남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사업에서 대주주의 의사 결정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 만큼, 회사를 위해 남았다는 얘기다.

또한 보수 수령 여부에 대한 질의에 대해서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태원 회장이 이미 그 전해에 받았던 보수마저 모두 반납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경영활동을 일체 할 수 없기 때문에 확실하게 보수를 전혀 받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마지막으로 경제개혁연대가 제기한 ‘특경가법’ 상의 취지 위반 의혹도 일축했다. 그는 “취업이라 함은 근로·용역을 제공하고 보수를 받는 행위로 규정되는데, 전혀 보수도 받지 않았고 근로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취업에 포함될 여지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처벌권자인 법무부장관의 유권해석을 거치지는 않았지만, 법무팀이나 외부 로펌의 자문을 충분히 거쳐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경가법’ 상의 취업 제한 조항의 취지는 경제적 이득을 취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최태원 회장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미등기임원임에도 실질적으로 경영활동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도 적극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어차피 그런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미등기임원으로 남아있든 모든 임원직을 사퇴하든 영향력 행사의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김승연 회장은 전혀 임원직을 맡고 있지 않지만, 복귀 후 이라크 수주를 따내고 삼성그룹과의 빅딜을 막후에서 지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관계자는 “어차피 마찬가지라면 차라리 미등기임원으로 남아 조금이라도 더 떳떳하게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라는 생각을 밝혔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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