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 개장 한달 지났지만…주민·국회 반대 여전

▲ 지난 2013년 취임한 한국마사회 현명관 회장이 최근 용산화상경마장 기습개장을 두고 지역민들과 시민단체는 물론 정치권에서까지 큰 질타를 받고 있다. ⓒ뉴시스

한국마사회가 지난 5월 말 기습적으로 개장해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간 서울 용산화상경마장(장외발매소)를 둘러싼 주민들과의 갈등에서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8일 용산화상경마도박장 추방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에 따르면 전날 대책위는 “한국 마사회가 불법 행위를 하고 있다”며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이하 사감위)에 신고했다.

사감위는 경마 등 사행산업 전반의 통합 관리 감독을 맡고 있는 국무총리실 산하 기구로 지난 2006년 바다이야기 등 성인도박게임이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2007년 출범했다. 대책위는 국무총리실, 농림축산식품부, 청와대에도 신고서를 제출했다.

이날 대책위는 서울 종로구 정부 창성동 별관에서 마사회의 불법 행위를 규탄하고 사감위에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대책위는 “마사회가 광고에 경고 문구를 표기하지 않고 경마장에 청소년들을 출입시키는 등 도박을 부추기고 있다”고 성토했다.

대책위는 광고 행태에 대해 “경마장에서 일확천금을 획득한 배역의 배우가 등장하는 광고로 도박을 노골적으로 부추기고 시내버스 등에 무분별하게 광고하면서도 어떤 경고 문구도 표기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아울러 용산화상경마장에 청소년들이 무분별하게 출입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대책위는 “19세 미만 청소년의 출입 및 고용이 금지된 화상경마장에 청소년 출입 제한이 없다”면서 “강남 화상경마장에는 아이돌 팬 미팅 행사가 열렸고 건물 일부는 교회 예배당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대책위는 “마사회가 지방경찰청장의 허가도 없이 당일 입장고객의 10%에게 경품을 내거는 등 불법 영업을 했고 주류 반입도 제지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대책위는 “경마장 근처에 사채업자들이 출몰하고 있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사감위가 업무를 소홀히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고, “용산화상경마장에 찬성한 주민이 마사회로부터 10만원을 받았다고 폭로한 사실도 조사해달라”고 촉구했다.

특히 대책위는 현명관 회장의 ‘말 바꾸기’ 의혹도 제기했다. 대책위는 “현명관 마사회장이 용산 화상경마장에 높은 입장료를 약속하고 이를 어길시 폐쇄하겠다고 약속하고서는 2000원짜리 입장권을 판매했다”며 현명관 회장에 대한 비난의 강도를 높이기도 했다.

◆지역사회·정부·국회, 한 목소리로 반대
용산화상경마장을 둘러싼 마사회와 지역 사회의 갈등은 지난 2013년부터 2년 넘게 계속돼 오고 있다. 당초 용산 지역의 화상경마장은 2011년부터 용산역 인근에 있었는데, 지마사회가 2013년 돌연 원효로 전자상가 부근으로 이전할 계획을 밝히면서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13년은 현명관 회장이 취임한 해다.

마사회는 지역민들의 반대에도 2013년 9월 개장을 시도했다. 하지만 학교와 235m 떨어져 있어 교육환경이 저해된다는 지역 주민과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대에 부딪혀 2년 넘게 마권을 발행하지 못한 상태가 지속돼 왔다. 해당 부지는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등 6개의 학교가 밀집해 있다.

지역민들과 시민사회단체의 반대가 지속되자 현명관 마사회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개장 전 관계기관과 협의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 11월에는 국무총리가 나서 용산화상경마장 이전 개장에 대해 지역민들과 협의하라고 지시했다. 국민권익위원회 역시 이전 철회를 권고하고 나섰다.

이 같은 상황에서 마사회는 지난 5월 28일 갑작스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의원들 및 농림축산식품부, 서울시, 용산구청 등에 마권 발매를 개시하겠다고 통보하고 3일 후인 같은 달 31일 기습적으로 개장해 비난을 자초했다. 당시는 황교안 국무총리의 취임 이전으로 전 국무총리가 협의를 지시했음에도 공석을 틈타 마사회가 기습 개장을 한 셈이다.

당일 마사회는 개장에 반대하는 주민 등의 이름이 적힌 법원의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결정 고시문을 붙여놓는 등 엄포를 놓고 영업을 개시했다. 마사회는 “꾸준한 노력으로 지역 주민의 지지를 얻어낸 용산장외발매소의 발매를 시작한다”면서 영업을 개시해 빈축을 샀다. 지역민과 시민단체들은 즉각 반발, 개장 당일부터 농성을 벌였고 마사회 직원들과 물리적 충돌을 빚기도 했다. 

▲ 용산화상경마도박장 추방대책위원회는 현명관 회장이 당초 약속을 어기고 2000 원짜리 입장권을 파는 등 거짓말을 일삼고 있다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용산화상경마도박장 추방대책위원회

◆현명관 회장 “합리적이었다” 해명에 비판 쇄도
하지만 현명관 회장은 이에 대해 ‘기습 개장’이 합리적인 선택이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상태다. 지난달 16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현명관 회장은 ‘기습개장’에 대한 지적에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강조해 논란을 더욱 키웠다. 현명관 회장은 “과거 3년 동안 대치한 경험, 반대하는 분들이 내세우는 주장 등을 볼 때는 협의해서 결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기습개장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아울러 현명관 회장은 “3개월동안 시범운영하면서 문제가 있다면 폐쇄하겠으니 반대 단체들도 참여해 함께 평가해보자고 제안했지만 이들이 참여하지 않았다”며 비난의 화살을 반대 단체 측에 돌리는가 하면 “시범운영 이후 객관적으로 평가해보니 동영상 촬영 등을 통한 관찰조사 결과는 문제가 없다는 평가가 나왔다”는 아전인수격 해석을 내놔 빈축을 사기도 했다.

현명관 회장은 “정부 승인과 지방자치단체 인허가 등을 통해 합법적인 절차를 거쳤고, (공기업 특성상) 국민의 간접세금이라고 할 수 있는 1200억원이 투자됐다”면서 “반대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열자는 쪽도 있다”며 기습 개장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현명관 회장은 장외발매소가 지역에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가시적인 결과로 보여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장 한 달이 지난 현재까지 현명관 회장은 약속의 대부분을 지키지 않고 오히려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난에 직면한 상태다.

대책위는 현명관 회장이 미성년자 출입금지 구역인 용산화상경마장 건물에 미성년자가 출입했다는 증언이 나왔음에도 이를 부인하는 대답을 내놨다고 비판했다. 현명관 회장은 국회 상임위 현안보고에서 “8층 도박중독 예방센터에 도박 중독 상담을 받으러 가는 학생이 있었다”고 답했지만 반대측 주민들은 “그 학생은 18층에 있는 교회 예배당에 가는 학생이었다”고 주장했다.

교회 예배당 임대 사실 여부에 대해서도 주민들은 “이미 18층에 있는 교회 예배당에 출입한 청소년, 다수 교인들을 만났다”고 지적했지만 현명관 회장은 교회 예배당으로 임대한 사실 자체를 부인해 반발을 샀다.

국회의원들에게 제출한 자료에서는 1988년부터 있었던 용산화상경마장이 오히려 이번 이전으로 학교에서 더욱 멀어졌다고 돼 있지만, 실상 이전 직전에 위치했던 장소는 2011년부터 있던 용산역 철도부지 건너편으로 알려졌다. 이전 직전에 위치했던 장소로부터 학교까지의 직선거리는 970m로, 도보로는 30분 가량 소요되고 열차 차량 차고지를 사이에 두고 있어 아예 생활권이 분리돼 있었다. 임의대로 자료를 취사선택해 제출했음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발목 잡는 약속파기 논란 어쩌나
더 큰 문제는 현명관 회장을 향한 ‘약속 파기’ 논란이다. 그간 이전 반대를 주장하던 측에게 현명관 회장은 “입장료를 비싸게 받아 프리미엄급의 고급·지정좌석제로만 운영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용산화상경마장을 폐쇄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약속은 수 차례 나왔으며, 지난해 홍보영상에서는 아예 “다른 곳은 입장료가 2000원이지만 용산은 2만1000원을 받아 걱정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며 “운영기준을 프리미엄급으로 설정해 고급레저시설로 전환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책위는 2000원권 입장권을 여럿 확인했다.

고급레저시설로 전환하겠다는 약속 역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마사회는 용산화상경마장 출입 고객의 10%에게 평균 4만원 상댕에 이르는 경품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이는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법 위반으로, 사감위법 18조는 사행산업 영업장 내부나 주변에서 과도한 사행심 유발 광고행위·금융거래행위는 사감위가 직접 지도·감독하도록 명시돼 있다.

이 같은 사실을 신고받은 사감위는 “현재는 2000원 짜리 입장권이나 4만원 대의 경품 이벤트는 없다”고 답했지만, 이미 수집된 증거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고 지적좌석이 아닌 입석도 거짓말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을 기세다.

대책위는 마사회 간부가 아이들에게 도박을 권유하고 조롱을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는 상태다. 대책위는 아이들, 학부모들, 수녀들이 있는 용산화상경마장 반대 현장에 간부들이 나와 화상 경마를 권유하고 큰 소리를 쳤다는 녹취 파일을 소유하고 있는 상태인 것으로 알렸다.

이는 현명관 회장이 지역과 상생하고 학습권이나 생활환경에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는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미 많은 학생들이 지나다니는 해당 건물 주변에는 대출 광고 등이 범람하기 시작했으며, 마사회는 술을 들고 입장하거나 만취 상태에 있는 입장객들을 별 다른 제지 없이 입장시켰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현명관 회장은 고소·고발을 모두 취하했다는 언급 역시 주민대표 권모 씨에 대한 1심 재판이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거짓말로 확인됐고, 반대하는 주민이 소수에 불과하다는 주장 역시 17만 명이 넘는 용산 주민들이 반대 서명을 했떤 점을 감안해보면 거짓말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다. 

▲ 지역민들에 이어 국회에서도 현명관 회장을 질타하는 분위기다. 여기에는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는 물론 새누리당 일부 의원까지 동참하고 있다. 사진 / 사진포커스

◆정치권까지 반대 뜻 한 목소리
기습 개장 이후에도 논란이 확산되면서 시민단체는 물론 지자체와 정치권까지 비난 대열에 가세하고 있는 상태다.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는 대책위와 함께 지난달 30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마사회가 약속한 용산 화상경마도박장 운영 기준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현명관 회장이 스스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분명히 자진 폐쇄하겠다고 밝힌 만큼 용산 화상경마도박장을 지금 당장 폐쇄하라"고 촉구했다.

지난달 16일 국회 상임위 현안보고에서도 박민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개장 문제와 관련해 상임위원회에서 논의를 해보자고 했는데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건 문제가 있다”며 “메르스가 진정될 때까지는 잠정적으로 (운영을) 중단하고 주민들과 적극 대화를 고민하는게 합리적”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안효대 새누리당 의원은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화상경마장이 인근 학교와 200m 거리도 안된다고 하는데 아이를 가진 부모님 입장에선 불안할 수밖에 없다”며 “학부모들도 만족하는 대안을 마련하거나 주민동의를 얻을 때까지 장외발매소 개장을 재고해달라”고 주문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 역시 대책위와 함께 반대의 목소리에 힘을 싣고 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마사회의 부도덕성, 반사회성, 반교육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여러 사건들만으로도 마사회는 당장 전국의 청소년들과, 용산 주민들, 강남 주민들 그리고 국민들 앞에 사죄하고 관련 화상경마도박장을 폐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해 6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당선인 역시 “우리 자녀들의 교육 환경, 우리 사회의 미래보다 화상 경마도박장 개장이 중요하냐”고 비판하기도 했고, 우원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국민권익위 권고에도 기습 개장한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처사”라며 쓴 소리를 날렸다.

한편 현명관 회장은 행정고시 4회 출신으로 10년간 공직에 몸을 담은 뒤 호텔신라 부사장, 삼성그룹 비서실장, 삼성물산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현명관 회장은 지난 2004년 전경련 부회장 시절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후 2007년과 2012년 박근혜 대선후보 경선캠프에 참여해 자문 역할을 하는 등 친박 인사로 분류된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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