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열 치달았던 영등포 상아·현대 수주전, 경찰 수사 진행 중

▲ 상아현대아파트 재건축 시공사 선정에서 현대산업개발이 승리를 거머쥐었지만, 총회 전후로 불거진 금품 제공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여진이 지속되고 있다. ⓒ뉴시스

영등포 상아·현대아파트 재건축 시공사로 선정된 현대산업개발이 삼호가든3차 재건축 시공사로 선정된 현대건설과 함께 나란히 조합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의혹에 휩싸이면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2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상아·현대아파트 재건축 조합은 27일 영등포구민회관에서 열린 조합원 총회에서 현대산업개발이 245표를 얻어 포스코건설(193표·34.4%)과 현대건설(123표·21.9%)을 제치고 시공사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이날 총회에서는 조합원 591명 중 561명이 참여했으며, 현대산업개발의 득표율은 43.6%로 집계됐다.

하지만 선정 결과에도 불구하고 현재 현대산업개발은 재건축 조합원들에게 금품을 돌렸다는 혐의로 영등포경찰서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18일 영등포경찰서는 조합원 총회를 앞두고 현대산업개발이 조합원들에게 수백만원 대의 현금과 상품권 등을 제공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조합원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3위를 기록한 현대건설도 금품을 제공했다는 의혹에 휩싸이면서 사태가 일파만파 확대되고 있다. 현대건설은 가뜩이나 최근 ‘The-H’라는 새 브랜드를 앞세워 수주에 성공한 삼호가든3차 아파트에서도 향응을 제공 혐의로 지난 17일 서초구의 수사 의뢰라는 유탄을 맞은 상태다.

◆삼호가든3차·상아현대, 잇따라 빅뱅
상아·현대아파트는 기존 544가구에서 2만9428㎡부지에 지하2층, 지상14~29층의 아파트 7개동을 포함한 총 785가구로 신축될 예정이다. 이 중 34%인 268가구는 최근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소형 주택으로 지어진다. 89가구는 장기전세주택으로 공급될 전망이다.

이 곳은 사업 속도가 빠른데다 지하철 2·9호선 당산역과 지하철5호선 영등포구청역에서 걸어갈 수 있는 역세권 단지라 수익성이 우수하다는 평가다. 인근에 당서초·영동초·영종초 등 초등학교 3곳과 당산서중이 있다. 

최근 현대건설로 시공사를 선정한 삼호가든3차 재건축 사업이 향후 줄줄이 예고된 강남권 재건축 시장의 교두보로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면, 상아·현대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인근 목동 재건축 시장 진입을 위한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건설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현대건설, 롯데건설, 대림산업이 치열한 경쟁을 펼친 삼호가든3차에 이어 상아·현대아파트에서도 현대산업개발과 포스코건설, 현대건설의 각축전이 치열하게 펼쳐져 왔다. 건설업계는 올해 도시정비사업지에서 풀릴 수도권 수주물량이 적기 때문에 삼호가든3차와 상아·현대아파트 재건축 사업을 관심있게 지켜보던 상태였다.

이 과정에서 결국 특화사업비 100억원 등을 내건 현대산업개발이 수주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금품 제공 의혹이라는 부작용이 불거진 것이다.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사업이 수년째 힘든 상황이라 이번 사업의 경우 785가구를 건립하는 비교적 작은 사업인데도 건설사의 수주 경쟁이 무척 치열했다”고 말했다.

영등포경찰서 관계자는 “현대산업개발이 500여명의 조합원을 대상으로 수백만원대의 현금과 상품권, 명품가방 및 제주도 여행권을 제공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진위여부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현대산업개발 사전투표 몰표에 의구심 커져
특히 의심을 보내고 있는 조합원들은 부재자투표(사전투표)에서 현대산업개발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았던 점을 지적하고 있다.

총회 당시 현대산업개발이 얻은 표는 71표에 불과했다. 반면 이날 포스코건설은 135표를 획득했다. 하지만 부재자 투표에서 현대산업개발에 몰표가 나오면서 최종적으로 현대산업개발이 여유 있게 1위를 거머쥐었다. 현대산업개발은 부재자투표에서 174표를 얻어 58표를 얻는 데 그친 포스코건설을 압도했다.

이에 대해 조합원 김모 씨는 “부재자투표를 앞두고 현대산업개발쪽에서 여성 직원 200여 명이 노인들을 대상으로 ‘투표장에 가면 100만원, 가서 우리를 찍어주면 100만~200만원, 또 사례비 100만원을 주겠다’면서 두 달 동안 매일같이 찾아왔다”며 “그 결과 부재자투표에서 대부분의 표가 현대산업개발이었다”고 말했다.

당초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던 곳은 현대산업개발이었지만 사전투표를 앞두고 현대건설이 삼호가든3차에 이어 상아.현대아파트에도 뛰어들면서 과열 양상이 전개됐다. 여기서 양사가 금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한 조합원 역시 현대산업개발의 금품 제공 의혹에 대해 “아직 정확한 액수는 파악되지 않지만 한 집 걸러 수백만원 대의 현금과 물건을 받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며 “금품을 받았다는 것을 경찰에 진술한 이들이 직원들에게 협박문자를 받고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이 조합원은 현대산업개발 뿐 아니라 현대건설의 금품 제공 의혹도 제기하며 “액수와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현대건설에서도 수백만원대의 현금을 받거나 식료품을 받은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현대산업개발 측은 이 같은 논란에 대해 경쟁사의 흠집내기라며 금품 제공 사실은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을 취하면서 말을 아끼고 있다. 

▲ 조합원들은 현대산업개발의 금품 제공 혐의가 사실로 들어날 경우 사업 지연, 분담금 폭탄 등의 부메랑이 돌아올 것을 우려하고 있다. 반면 현대산업개발 측은 경쟁사의 흠집내기로 규정하고 금품을 제공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현대산업개발

◆후폭풍 예고…경찰 조사 결과에 촉각
만약 현대건설은 물론이고 현대산업개발이 금품을 제공한 사실이 확인되면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우선적으로 이 같은 내용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11조에 따라 해당 건설사들은 이 사업의 입찰자격이 박탈되고 2년간 서울시 정비사업 입찰참여가 제한된다.

비록 서울시의 자격 박탈은 강제조항이 아닌 권고조항에 불과해 실제 어떤 조치가 내려질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치열한 수주전이 세간의 관심도를 크게 높였다는 점에서 실제적 조치가 내려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서울시는 조만간 법 개정을 통해 혐의가 드러났을 때 입찰금지 등 직접적인 제재를 가능케 하는 방안을 마련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합원들 내부에서도 총회를 전후로 해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미 총회 전부터 현대산업개발에 반대한 한 조합원은 “돈 받고 찍은 조합원 수준이나 조합원 표를 얻기 위해 돈을 준 현대산업개발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하는가 하면, 조합원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경찰 수사가 진행중인 건설사가 시공사로 선정되면 어떡하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시공사의 금품 살포가 분담금 폭탄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걱정도 제기된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일단 수주를 했으니 추후 분담금 책정시 과도하게 지출된 부분을 만회하려고 할 것이라는 우려다.

다만 조합원들이 금품을 제공받은 사실이 확인되더라도 조합원들의 처벌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르면 공무원으로 의제되는 조합의 임원 및 일반 조합원이 돈을 받을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되지만, 각종 판례에 따르면 금품을 나중에 반환하기 위해 받아두는 경우는 처벌이 어렵다.

이처럼 건설사들에 대한 처벌도 임의적이고 조합원들의 처벌도 쉽지 않은 구조 탓에 이번 조사 결과에 따라 재건축 시장에서 조합원들이 시공사를 선정하는 시스템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한 공인중개사는 “시공사가 가져온 사업제안서에 정확한 수치도 없어 전문가들도 비교하기가 쉽지 않은데 조합원들이 모두 숙지하고 투표를 할 수 있겠느냐”면서 “결국은 직접 투표하는 조합원들을 상대로 인맥 쌓기와 금품 제공이 오갈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사업 지연 사태가 발생할 우려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금품을 제공한 건설사가 시공자로 선정될 경우 시공자 선정 효력정지 가처분 및 시공자 선정 결의 무효 확인 소송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사업이 장기간 지연될 수 있다”며 “결국 이에 대한 모든 시간적 경제적 부담은 조합원의 몫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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