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개봉 25일째인 지난 16일 집계 850만 관객 육박

오는 20일 개봉하는 김한민 감독의 ‘노량: 죽음의 바다’ 박두

1598년 12월 16일 밤, 경상도 남해현 노량 앞바다에서

1979년 12월 12일 밤, 한 겨울에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영화라는 관점에서 ‘겨울’, ‘의(義)’, ‘성찰’이라는 주제로 비교

 

김성수 감독의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 25일째인 지난 16일 집계결과 850만 관객에 육박했다. 코로나 이후 침체된 극장가에 모처럼 훈풍이 돌고 있다. 목표는 1000만 돌파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현재의 속도라면 무난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때마침 또 한편의 대작이 기다리고 있다. 오는 20일(수요일) 개봉하는 김한민 감독의 ‘노량’이다. 원 제목은 ‘노량: 죽음의 바다’(이하 노량)이다.

이 두 작품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사실 두 사건은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지만, 영화라는 관점에서 기자는 이를 ‘겨울’과 ‘의(義)’, ‘성찰’이라는 주제로 비교할 수 있다고 본다. 겨울은 시기를 말하는 것이고, 의는 가치를 말한 것이고, 성찰은 교훈을 의미한다.

잘 아는 것처럼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밤, 한 겨울에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내부 군사반란을 다루고 있다.

지난 11월 22일 개봉한 ‘서울의 봄’(왼쪽), 오는 12월 20일 개봉 예정인  ‘노량: 죽음의 바다’의 포스터. (사진 / KOBIS)
지난 11월 22일 개봉한 ‘서울의 봄’(왼쪽), 오는 12월 20일 개봉 예정인  ‘노량: 죽음의 바다’의 포스터. (사진 / KOBIS)

‘노량’은 1598년 12월 16일(음력 11월 19일) 밤, 경상도 남해현 노량 앞바다에서 일어난 왜군과의 대전쟁을 다루고 있다. ‘노량’은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주제 영화인 ‘명량’, ‘한산:용의 출현’에 이은 3부작의 마지막 대작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이미 ‘명량’은 1천7백만 관객이라는 최고의 기록을 세워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서울의 봄’에서 봄은 희망을 말하는 것이지만, 1979년의 ‘서울의 봄’은 그 자체로는 봄이 아니라 겨울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영화의 제목이 ‘서울의 봄’인 것은 당시 10.26 사건의 반작용으로 ‘민주주의 봄’이 곧 올 것이라는 간절한 국민의 기대를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그 기대는 신군부에 의해 두 달만에 깨지고 말았다.

그래서 영화 ‘서울의 봄’은 이루어지지 못한 국민의 희망과 통한의 아픔을 담아내고 있다. 1979년 12월 12일 밤에 9시간 동안 일어난 서울의 겨울을 통해 민주주의와 정의가 패배하고 군사독재와 불의가 승리하는 순간순간을 재현함으로써 관객을 역사의 실제 상황으로 몰입시켜주고 있다.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 중에 그 실제 상황을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반란군과 진압군 일부만이 그 역사의 현장에 있었을 뿐이다. 모두가 그 이튿날 뉴스를 보고 극히 일부의 내용만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는 본다면 44년 전에 일어난 12.12라는 역사의 실제 상황(약간의 가상공간도 포함)을 늦게나마 온 국민이 영화 ‘서울의 봄’을 통해 비로소 한 자리에서 바라보며 정의에 공감을 하게 된 것은 다행이다. 여기에 ‘서울의 봄’이 영화로서 지니는 의의가 있다.

비록 1979년 겨울은 잔인한 겨울, 혹한의 민주주의 겨울이었으나 그때 모든 사람이 꿈꾸었던 서울의 진정한 ‘봄’은 5.18을 거쳐 수많은 희생 속에 1987년 6월 항쟁에 이른 다음에야 맞이하게 된다. 시간상으로 8년이 늦어진 것뿐만 아니라,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민간인, 학생, 군인이 희생되었던가?

영화 ‘노량’은 임진왜란 발발로부터 7년이 지난 1598년 12월, 이순신이 왜군의 수장이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뒤 왜군들이 조선에서 황급히 퇴각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되면서 시작한다. “절대 이렇게 전쟁을 끝내서는 안된다”며 왜군을 살아가게 두지 말고 완벽하게 섬멸하는 것이 이 전쟁을 올바르게 끝나는 것이라 판단한 이순신이었다. 이런 이순신의 판단은 오랜 전쟁으로 지친 병사들과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부질없게 느껴졌을 수도 있으나, 이를 극복한 이순신의 지도력이 빛났다.

‘노량’의 바다에서는 두 가지 생각이 충돌하고 있었다. 완전한 승리를 위해 이순신은 “이렇게 적들을 그대로 살려 보내서는 올바로 이 전쟁을 끝낼 수 없다”고 생각했고, 반면에 왜군은 “이순신을 잡아야 이 전쟁이 끝난다”고 생각했다.

왜군의 심리를 꿰뚫어 본 이순신은 조명(조선-명) 연합함대를 꾸려 왜군의 퇴각로를 막아 나섰다. 하지만 왜군의 뇌물 공세에 넘어간 명나라 도독 진린(陳璘)은 왜군에게 퇴로를 열어주려 하고, 설상가상으로 왜군 수장인 시마즈의 악명높은 살마군까지 왜군의 퇴각을 돕기 위해 노량으로 향한다. 조선-명-왜라는 냉정하고 복잡한 국제관계에서 이순신이 생각하는 절대 가치는 의(義)였다.

진린 도독이 황제의 군대임을 핑계로 제멋대로 하며 왜군과의 싸움을 주저하자 이순신은 이를 참을 수 없었다.

  △진린: 우리 황제께서 내게 긴 칼을 주셨소.(내 말을 듣지 않으면 내가 장군을 죽일 수 있오)

  △순신: 한번 죽는 것은 아깝지 아니하오. 나는 대장이 되어 결코 적을 내버리고, 우리 백성 을 죽일 수는 없소. (내각판 전서,권9-30)

1598년 12월 16일의 겨울은 이순신의 죽음을 피해가지 않았다. 운명이다. 이순신은 평소의 소신처럼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명이라고 생각했다.

1598년 12월 15일(11월 18일) 밤 자정, 마지막 싸움을 앞두고 하늘에 깊고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배 위로 올라가 손을 씻고 무릎을 꿇고, “이 원수를 갚을 수만 있다면, 한 몸 죽는다 한들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늘에 빌었다. 이것은 일종의 誓天(서천)의식이다.

그런데 기도가 끝나자 문득 큰 별이 바다에 떨어졌다. 보는 이들이 이상하게 여겼다. 이처럼 이상하게 여긴 사람 중의 하나가 진린 도독이다. 진린은 이순신에게 급히 편지를 보내기를, “동방의 대장별이 희미해 가니 멀지 않아 공(公)에게 화가 미치리라. 공이 어찌 모르리요. 어찌하여 제갈공명(무후)의 기도로 예방하는 법을 쓰지 않습니까?”라고 적었다. 천하의 제갈공명도 6일째에 촛불이 넘어져 뜻을 이루지 못했고, 그때 공명이 죽자 공명의 목각상을 이용하여 적을 물리쳤던 고사가 전해 왔으나, 이순신은 이런 제갈공명의 비법을 거절하였다.

오로지 이순신은 영화 ‘한산’에서 의(義)의 깃발을 높이 들었던 것처럼 마지막까지 의로써 불의의 침략자를 섬멸했고, “나라의 치욕을 씻으라”는 어머니의 바램처럼 조선의 대의(大義)를 지켰다. 그리하여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백성들은 조선의 봄을 맞이했다. 평화의 봄이다. 7년 전쟁 끝에 조선은 평화를 맞이한다. 7년 불의를 종결한 것이다. 영화 ‘노량: 죽음이 바다’는 부활하는 ‘노량’의 봄이 된다. 여기에 이 영화의 진면목이 들어있다.

반면에 그로부터 381년 후인 1979년의 12월 12일 조선의 겨울은 의(義)를 지키는 진압군이 의(義)를 탈취하려는 내부의 반란군에 맞섰으나 패하고 만다. 서울의 겨울은 끝내 봄이 되지 못하고 그대로 혹독한 겨울로 이어진다. 1987년의 봄이 오기까지 서울은 8년 동안 정의를 빼앗겼고, 불의가 지배했다. 노량의 겨울이 불의를 종결하는 진정한 봄이었다면, 서울의 겨울은 불의가 지배한 봄 같지 않은 불사춘(不似春)의 봄이었다.

1598년의 겨울이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만약 호남이 없으면 나라를 지킬 수 없다)라 한 말대로 국토수복의 대의(大義)를 지킨 날이라면, 1979년의 겨울은 권력찬탈자가 대욕(大辱)을 당한 날이다. 훗날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 받는다”고 판결을 내린 한국 법원은 주모자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는 우리가 역사에 영원히 새겨야 할 교훈이다.

이순신이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 “내가 죽었단 말을 내지 마라. 군대를 놀라게 하면 안 된다.”, “싸움이 급하다. 부디 내 죽음을 말하지 말라”고 했다. 향년 54세.

이순신은 문서에 서명할 때 ‘一心’(일심)을 수결(手決)로 사용하였다. 그의 일심은 오로지 대의를 향한 일심대의(一心大義)였을 것이다.

영화 ‘노량’을 보며 노량해전의 대승 못지 않게 충무공 이순신의 경외(敬畏)스런 삶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아울러 “지난 일을 징계하면서 뒷날의 환난을 삼가게 한다”는 ‘징비록’과 같이 우리는 ‘노량’을 통해 ‘국토의 온전한 보존’이 얼마나 중요한 대의(大義)인지를 성찰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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