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개혁·미래·민생·물가’ 강조한 윤 대통령 “민생 부담 덜게 국회 협조 부탁”
“간담회 때 한 말씀 다 기억했다가 최대한 국정에 반영하도록 노력할 것”
“글로벌 경제불안과 안보위협에 초당적 협력 요구...위기극복에 힘 모아달라”

윤석열 대통령이 내년도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31일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한 뒤 의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 박상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내년도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31일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한 뒤 의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 박상민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취임 후 두 번째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어려운 경제 상황을 강조하면서 야권에 내년도 예산안 처리에 협조해줄 것을 촉구했는데, 이에 대한 정치권의 표정은 여야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모양새다.

◆ 尹 시정연설 키워드는 경제·민생·물가…건전재정 기조는 유지

윤 대통령은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한 시정연설에서 경제를 23번, 개혁을 14번, 미래를 11번, 민생을 9번, 물가를 8번, 약자와 취약계층도 각각 4번씩 언급했는데, 특히 그는 “정부가 마련한 예산안이 차질 없이 집행돼 민생 부담을 덜어드릴 수 있도록 국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를 부탁드린다. 예산안과 함께 국회에 계류 중인 국가재정법, 보조금관리법, 산업은행법, 우주항공청법 등 민생 경제 법안에 대해서도 의원님들의 각별한 관심과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또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을 일일이 지적했던 지난해 시정연설과 달리 안보 관련 비중은 전체 내용에서 줄어들었고 대체로 민생 경제를 거듭 강조했는데, 윤 대통령은 연설에 앞서 가진 5부 요인 및 여야 지도부 사전환담 자리에서도 “어려운 민생을 저희가 해결하고 또 여러 가지 신속하게 조치해 드려야 될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국회의 많은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고 김진표 국회의장도 “정치권이 여야를 떠나 첫째, 둘째, 셋째도 민생 문제 해결이란 특단의 각오를 해야 할 시간”이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다만 재정 운용 기조에 대해선 이날도 윤 대통령은 “2024년 총지출은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2.8% 증가하도록 편성해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겠다”며 확장 재정이 아니라 재정건전성에 계속 방점을 둘 뜻임을 분명히 했는데, 특히 “미래세대에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넘겨주지 않기 위한 것”이라며 “최근 국제통화기금은 한국의 건전재정 기조를 옳은 방향이라고 호평했다. 국제신용평가사들도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 유지에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재정 건전화 노력을 꼽았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의 이번 시정연설은 내용이나 태도 모두 지난해와는 결이 달랐는데, ‘의원’은 8번, ‘국회’는 7번, ‘부탁’을 5번 언급해 ‘부탁’과 ‘협조’가 단 1번씩만 언급됐던 지난해 시정연설보다 자세를 한껏 낮췄으며 문장 대부분 ‘당부드린다’, ‘도와주시기 바란다’고 호소 형태를 띠었을 뿐 아니라 야당을 자극할 수 있는 ‘전 정부’ 관련 언급은 전무했고 오히려 반도체 산업을 거론할 때는 “국회의 관심과 협조에 감사드린다”고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심지어 윤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통상 여야 순으로 호명하는 정치권의 관례를 깨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보다 먼저 호명했으며 그 뒤로도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님,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님. 그리고 여야 의원 여러분”이라고 재차 이례적 모습을 보여줬고 연설 전 본회의장 입장 시에도 연단으로 이동하면서 통로 쪽 의석에 앉은 민주당 의원들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기도 했다.

◆ 尹 ‘저자세’에도 협치 요원…민주당 김용민 “대통령직 그만두라”

(좌측부터) 민주당 박찬대, 황운하, 김용민, 박용진 의원. 사진 / 시사포커스DB
(좌측부터) 민주당 박찬대, 황운하, 김용민, 박용진 의원. 사진 / 시사포커스DB

하지만 윤 대통령의 적극적인 부탁에도 불구하고 야권에선 이날 시정연설에 대해 혹평을 쏟아내면서 냉소적 반응을 보였는데,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31일 시정연설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약자복지에 필요하다면서 지출 구조조정의 이름으로 정작 필요한 예산을 깎는다면 이거야말로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하석상대식 예산안”이라며 “정작 법무부, 감사원 등 내년 예산안 총지출은 1천억원 이상 증가했다. 정권의 사냥개는 키우고 나라의 미래는 뿌리 뽑는 예산안”이라고 윤 대통령에 일침을 가했다.

이 뿐 아니라 경찰 출신인 황운하 민주당 의원은 “말은 번지르르했지만 국정기조를 쇄신하겠다는 내용은 없었다. 양두구육의 시정연설”이라며 “특히 경찰을 치안 중심으로 개편하겠다는 발언을 들으며 뜨악했다. 지구상에 치안 중심 아닌 경찰이 어디 있겠나. 윤 대통령의 속내는 수사경찰을 줄이고 약화시켜서 수사권조정 이전처럼 검찰이 모든 것을 독점하고 싶다는 의미일 것이다. 여전히 검사 마인드를 못 벗어나고 있는 대통령의 빈약한 국정운영 철학을 확인하니 검찰공화국 치하에서 고통을 겪어야 하는 국민들이 너무 애처롭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친명계’ 박찬대 최고위원은 이날 국회 본회의장에서 윤 대통령이 ‘취임 이후 1년 반 동안 93개국과 142회 정상회담을 했고 중동 3국과의 양자 정상회담 시에 양국 기업들 사이에 792억 달러, 약 107조원의 수출과 수주가 이뤄졌다. 저는 외교의 중심을 경제에 두고 우리 국민과 기업이 뛰는 곳이면 세계 어디든 달려가고자 한다’고 시정연설한 부분을 겨냥해 “윤통 취임 1년 반, 93개국과 142회 정상회담을 했다는데 정상입니까, 비정상입니까”라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고 ‘처럼회’ 소속의 강성 친명계인 김용민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시정연설도 교회 가서 하지 뭐하러 국회에 오나”라고 윤 대통령을 비꼬았다.

한 발 더 나아가 김 의원은 추가로 올린 페이스북 글에선 “시정연설 후 대통령이 악수를 청하길래 ‘이제 그만두셔야죠’라고 화답했다. 국민을 두려워하고 그만두길 권한다”며 아예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길 촉구했는데, 앞서 그는 열흘 전인 지난 21일에도 “국민은 대통령 그만두라고 절규하고 있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바 있다.

비단 김 의원 외에도 친명계 이형석 의원은 윤 대통령이 본회의장에 입장하면서 다가와 악수를 청하자 쳐다보지 않은 채 손만 잡는 모습을 보였으며 이 대표의 비서실장인 천준호 의원은 윤 대통령이 여러 차례 쳐다봐도 시선교환은 물론 사실상 악수도 거부했고 문정복 의원은 윤 대통령이 다가오니 등을 돌렸다.

정작 일어서서 윤 대통령과 악수한 이는 민주당 지도부인 이 대표와 홍 원내대표 등 손에 꼽았고 홍정민·이동주 의원도 윤 대통령이 다가오자 악수만 나눴을 뿐 끝내 일어서지는 않았는데, 급기야 진보당 강성희 의원은 윤 대통령이 연단에 오르자 ‘D-160 반드시 무너뜨린다. 줄일 것은 예산이 아니라 윤의 임기’라고 쓰여 있는 피켓을 들었으며 윤 대통령이 본회의장을 퇴장할 때도 피켓을 드는 등 야권의 반응은 줄곧 냉랭했다.

앞서 여야 갈등이 극심했던 지난 2019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 시정연설 때엔 야당이던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전원 일어선 것은 물론 문 대통령이 본회의장을 나갈 때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도 악수 거부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던 반면 이번 시정연설에선 윤 대통령이 “지금 우리가 처한 글로벌 경제불안과 안보위협은 우리에게 초당적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당면한 복합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힘을 모아주시길 부탁드린다”고 자세를 낮췄음에도 현 야당 의원들은 과거 야당과는 상반된 태도를 보여줬다.

◆ 野 “국회 자율성 존중하라”…거부권 행사 여부가 협치 좌우할 듯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 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마친 뒤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김진표 국회의장 주최 국회 상임위원장, 정당 원내대표와의 오찬에서 인사말 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 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마친 뒤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김진표 국회의장 주최 국회 상임위원장, 정당 원내대표와의 오찬에서 인사말 하고 있다. ⓒ뉴시스

다만 협치 가능성을 완전히 닫겠다는 의미는 아닌지 민주당 의원들은 시정연설 이후 윤 대통령과 가진 국회 상임위원장단, 교섭단체 원내대표 간담회에서 각 현안마다 정부의 국정 기조를 전환해줄 것을 주문했는데, 홍익표 원내대표는 “민생 현장이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런 부분이 중요한 시기다. 재정건전성 관련 고민도 이해하지만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한 게 아닌가”라고 역설한 데 이어 “야당 입장에선 대통령께서 국회를 존중하는 문제, 야당과 협치하는 문제에 대해 아쉬움이 큰 부분도 있다. 법안심사나 예산심사 과정에서 국회 자율성을 존중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는 민주당 주도 법안을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로 저지하는 데 대한 지적으로 풀이되는데, 당장 내달 9일 본회의에서 야권이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 처리에 나서기로 하자 여당인 국민의힘에선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맞섰던 만큼 윤 대통령이 이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 역시 향후 국회와의 협치 여부를 좌우할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 뿐 아니라 정의당 이정미 대표도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윤 대통령과 여야 대표들 간 사전 차담회 내용을 공개하면서 “그간 대통령 거부권 너무 많이 쓰셨는데 국회를 존중해주시라고 당부 드렸다. 더 이상의 거부권은 안 된다”고 밝힌 데 이어 “(대통령이) 마음만 고쳐먹으면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안심을 드릴 수 있다. 바로 대통령이 여야 대표들과 협치와 소통의 장을 여는 것인데 일상적인 논의 테이블을 구성해 달라”고 제안했다.

또 이 대표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만나 사과해달라고도 주문했으며 민주당 소속인 김교흥 행안위원장도 이날 상임위원장단 간담회에서 윤 대통령에게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 손 한 번 잡아주시면 그분들 가슴이 봄 눈 녹듯 녹을 것”이라고 호소했고, 이밖에 박정 환경노동위원장은 “대통령께서 직접 양대노총을 만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양대노총도 정부의 대화 의지를 믿고 대화를 재개할 가능성이 크다.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에 대해 전향적 태도 변화를 말씀드리고 싶다”고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정부의 국정 운영 또는 국회의 의견에 대해 많은 말씀을 잘 경청하고 가도록 하겠다”고 공언했으며 국회 상임위원장들과의 오찬 중에도 “저희가 미래세대를 위해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도록 모두 힘을 합쳐야 될 때라고 생각한다. 간담회 때 한 말씀 다 기억했다가 최대한 국정에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일단 수용 가능성을 열어두는 듯한 자세를 취했는데, 다만 민주당에선 이날 윤영덕 원내대변인이 영수회담과 관련해서도 “저희들이 구걸하듯 그걸 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자세를 취해 과연 협치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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