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내 흉상 이전 문제 놓고 여전히 갈등 이어가는 여야, 어쩌나?
정부·여당도 야권 ‘홍범도 흉상 철거 백지화’ 요구에 묵묵부답 중
계속되는 육사 내 흉상 이전 갈등에 여권에서도 우려 목소리 솔솔
정부·여당에 더 거세지는 민주당, 흉상 존치 촉구 결의안 발의까지
당무 복귀하며 ‘민생 협치하겠다’ 했던 이재명도 변함없이 공세 중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우측)과 더불어민주당 의원인 우원식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좌측)이 25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홍범도장군 순국 80주기 추모 및 청산리전투 전승 103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서로 대화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우측)과 더불어민주당 의원인 우원식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좌측)이 25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홍범도장군 순국 80주기 추모 및 청산리전투 전승 103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서로 대화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시사포커스 / 이혜영 기자] 청산리·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홍범도 장군의 순국 80주기 추모식이 25일 열린 가운데 여권과 야권이 육군사관학교가 추진하고 있는 홍 장군의 흉상 이전 문제를 두고 또다시 신경전을 벌여 여야의 협치는 점점 더 멀어지는 듯한 기류가 흘렀다.

◆ 홍범도 장군 순국 80주기 추모식 열려, 여야 ‘흉상 이전’ 갈등은 제자리걸음

홍범도 장군 순국 80주기 추모식은 이날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3묘역에서 개최됐는데,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추모사를 통해 “장군이 78년만에 고국땅에 돌아왔음에도 편히 잠들지 못하고 계신다”며 “우리의 입장은 대한민국 1호 군인인 홍 장군의 흉상이 있어야 할 곳은 육군사관학교라는 것을 분명히 말한다”고 밝혔다.

무엇보다도 우 의원은 “육사는 독립전쟁의 역사를 부정하며 흉상 철거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임시정부가 대한민국 뿌리이고 독립군이 국군의 뿌리라는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날을 세우면서 “이 자리를 계기로 국가보훈부가 육사의 독립영웅 흉상 및 독립영웅실 폐지를 백지화해주길 바란다”고 거듭 촉구하고 나섰다.

아울러 그는 “홍 장군은 나라로부터 아무 혜택을 못입었음에도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으로서 일본과 맞서 싸웠고 그 과정에서 부인과 두 자녀를 모두 독립전쟁의 제물로 바쳤었다”며 “이후 이역만리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 돼 인생의 말년을 극장 수위로, 방앗간 노동자로 쓸쓸히 마감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 의원은 “2년 전 태극기를 두르고 고국으로 귀환하던 홍 장군의 모습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뜨겁다”고 여론전도 펼치면서 정부·여당에 대립각을 세웠고, 심지어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일부 참석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보낸 근조화환도 뒤로 돌려놓는 모습도 포착되어 사실상 여야의 흉상 갈등은 여전히 제자리걸음 중인 상황으로 협치 정국에 한 발짝도 진전되지 못하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

◆ 박민식 보훈부 장관, 野 ‘흉상 이전 백지화’ 요구에 끝내 답 못하고 떠나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다만 이 자리에 참석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이날 추모식에서 홍 장군과 같은 독립영웅과 유공자들을 최고의 예우로 대우하겠다는 뜻을 밝혔는데, 박 장관은 “홍 장군 같은 독립유공자를 최고로 예우하는 것은 보훈부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홍 장군을 서훈하고 예우하기 위해 노력했고, 앞으로도 그 예우는 티끌만큼의 소홀함도 없을 것”이라고 입장을 표명했다.

이어 박 장관은 홍 장군에 대해 “우리 독립군은 홍 장군의 봉오동 전투의 승리를 바탕삼아 청산리에서 일제에 맞서 싸워 크게 이기는 기적을 만들었고, 독립 의지를 만천하에 알리는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겼다”며 “홍 장군의 역사적 위상에도 의심의 여지나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거듭 약속했다.

그러면서도 박 장군은 야권의 홍 장군 흉상 이전 백지화 요구에는 끝내 답을 하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났는데, 결국은 홍범도 흉상 육사 이전 방침은 보훈부에서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해 준 셈이 됐다.

실제로 지난 23일 육군본부를 대상으로 한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홍 장군의 흉상 육사 이전 문제를 두고 여야 간의 치열한 신경전이 일기도 했었는데, 그 과정에서 국감에 출석한 박정환 육군참모총장은 “홍 장군 흉상에 대한 인물 적정성과 위치 등에 대한 논란이 계속 있었고, 지난해 11월부터 흉상 및 기념물 이전을 추가 과제로 선정해 발전시켜 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박 육군참모총장은 “(육사 내 홍 장군의 흉상 이전은 이미) 보훈부와는 합의가 됐고 문서화까지 됐다”고 밝히면서 “독립·광복군의 업적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홍 장군 흉상 이전은 육사의 정체성을 흔드는 일을 바로잡는 일환이라고 이해해 주길 바란다”고 잘라 말했다.

◆ 계속된 여야 흉상 이전 갈등, 여권 내에서도 우려 목소리 나와 눈길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좌)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우). 시사포커스DB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좌)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우). 시사포커스DB

반면 홍 장군의 흉상 이전 문제를 두고 여야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여권 내에서 나오기도 해 눈길을 끌었는데, 최근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겠다면서 ‘중진 의원 험지 출마론’을 띄우고 나섰던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제가 박민식 보훈부 장관에게 홍범도 장군 유족들 서럽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몇차례 조언한 적이 있는데, 이날 박 장관이 홍범도 장군 80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것은 잘한 결정”이라고 칭찬하면서 “홍범도 흉상을 둘러싼 소모적인 이념논쟁이 계속되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하 의원은 “국방부는 홍범도 흉상 이전 계획을 철회하라”면서 “민생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면 우리 당 지도부도 국방부에 흉상 이전 계획의 즉각 철회를 요구해야 한다”고 촉구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홍 장군 흉상 이전 문제를 놓고 여야 간의 갈등의 골은 매우 깊은 분위기였는데, 특히 대표적인 비윤계(비윤석열)로 꼽히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서울노원을 당협위원장이 ‘공산주의자 홍범도 북한으로 보내라, 홍범도 알고 보니 빨갱이, 다시 보니 쭉정이’라고 쓰인 홍보물을 들고 1인 시위를 펼치는 모습의 사진을 공유했다.

더군다나 이 전 대표는 국민의힘을 겨냥해 “노원병 바로 밑에 노원을에서 이러고 있는데, 내 손발 묶어놓고 어쩌란 말이냐”고 불만을 표출하면서 “이렇게 하면 누군가 좋아할 거라는 인식을 심어준 너희들이 반성하지 않고 무슨 선거를 치르냐”고 한탄하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더 나아가 이 전 대표는 지난 16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기조를 전면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함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에 대해 당이 즉각적으로 중단 입장을 밝혀야 한다”며 “계속해서 홍범도 장군에게 모욕을 주려면 최소한 교과서에서 그를 독립 영웅, 독립군 총사령관으로 소개하는 것부터 지적하라. 당이 적어도 뉴라이트 사관보다는 교과서에 가까워야 상식에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라고 쏘아붙이기도 한 바 있다.

◆ 절대 물러설 생각 없는 민주당, 흉상 존치 촉구 결의안 발의까지

여천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우원식 의원을 비롯해 이은주 의원, 강성희 의원 등이 24일 국회 소통관에서 육사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존치의 백지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여천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우원식 의원을 비롯해 이은주 의원, 강성희 의원 등이 24일 국회 소통관에서 육사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존치의 백지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뿐만 아니라 야권에서도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백지화를 촉구하는 모습은 갈수록 더 거세지는 모습을 엿보였는데,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우원식 민주당 의원이 ‘육군사관학교 내 독립유공자 흉상 등 존치 촉구 결의안’을 대표 발의한 것으로 전해졌고, 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 의원 181명이 결의안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더군다나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도 최근 여당과의 ‘협치’ 조건으로 홍 장군 흉상의 존치를 포함해 요구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홍 원내대표는 지난 23일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윤 대통령과 정부·여당을 향해 “국정 기조 전환과 협치를 시작할 수 있는 사안은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백지화, 그리고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채 상병 특검법의 여야 합의 처리인 것”이라고 못 박았다.

홍 원내대표는 “중요한 것은 실천인 것”이라면서 “두 사안 모두 진보와 보수를 떠나 대다수 국민이 요구하고 있는 일인데, 대통령과 여당이 민심을 받들겠다는 말이 진심이라면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흉상 철거 백지화는 대통령이 결심하면 당장 실천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민주당 측도 정부·여당에 협치할 생각보다는 압박 용도도 자신들의 입장만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심산이 강해 보였는데, 실제로 민주당은 이미 윤 대통령이 거부권(재의 요구권)을 행사했던 간호법과 양곡관리법을 재추진하기로 결정했고, 더 나아가 그간 여당에서 강하게 반대했던 ‘노란 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방송 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도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하겠다고 예고했다.

◆ ‘민생·협치’ 외치며 당무 복귀했던 이재명, 대통령·정부·여당 향해 여전히 맹공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 웃고 있다. 사진 / 이 훈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 웃고 있다. 사진 / 이 훈 기자

더욱이 최근 ‘민생을 위한 정치’를 외치면서 ‘협치’의 뜻을 밝히며 당무에 복귀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결정한 육군사관학교가 끝내 독립전쟁 영웅실을 철거하기로 했다”며 윤 대통령을 겨냥해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념보다 민생이 더 중요하다”고 쏘아붙였다.

이는 이미 한참 전에 내려진 결정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잘 아는 이 대표가 육사 내 흉상 이전 문제를 다시 끄집어내며 공격 태세에 나선 것인데, 이 대표는 “육사의 모태인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이회영 선생을 기리는 공간도 다른 용도로 바꾼다고 하는데, 이게 국민 뜻이고 민생인가 묻고 싶다”면서 “서울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후 국민의힘은 거리마다 국민의 뜻대로 민생 속으로라는 화려한 현수막을 내걸었고, 윤 대통령은 ‘국민이 늘 옳다’고 이렇게 말했느데, 실제 행동이 과연 그러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말 따로 행동 따로다. 정부 여당의 태도는 주권자인 국민을 기만하고 우롱하는 처사인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대통령과 정부가 부디 이념 전쟁을 멈추고 고물가와 생활고에 고통받는 우리 국민들의 목소리에 좀 더 귀 기울여주시기를 당부드린다. 외국에 나가 해외 문물을 익히고 교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어려운 삶을 제대로 챙겨 보기를 정말 권유 드린다”고 공격했다.

그래서인지 전날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양당 원내대표는 여야가 본회의와 상임위원회에서 피케팅 금지 및 막말·고성·비난을 하지 않겠다는 ‘신사협정’을 맺었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정치권 일각에서는 여야의 발언에 대해 신뢰를 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한 상황이라고 짚으면서 여야의 협치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회의적인 시선이 지배적이라고 관측해 앞으로 남은 국회 회기동안 여야의 협치가 이뤄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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