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윤재옥 “대법원, 국회 쟁점법안을 임의로 입법화…정치적 판결”
野, 대법원 판결을 존중해야...‘노란봉투법’ 처리 압박수위 높여
정우택 “법치 최후의 보루여야 할 대법원...정치를 하고 있는 것”

김명수 대법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김명수 대법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임명으로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2017년 9월 취임한 이후 ‘법원의 정치화’ 논란이 끊이지 않은 가운데 지난 15일 ‘현대차·쌍용차 파업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대법원이 원심을 뒤집고 사실상 노동조합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놔 여당을 중심으로 법원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노란봉투법’ 입법 전에 사실상 못 박아버린 대법원

지난 15일 대법원3부(주심 대법관 노정희)는 현대차가 사내하청 노조인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차 비정규직 지회 조합원 4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상고심에서 “노동조합과 개별 조합원 등의 손해배상 책임의 범위를 동일하게 보는 것은 헌법상 근로자에게 보장된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낸 데 이어 쌍용차가 금속노조를 상대로 낸 손배 소송 상고심에서도 쌍용차 승소인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는 사실상 폭력·파괴 행위를 동반하지 않은 쟁의행위나 단체교섭에 대해 회사가 손해를 입어도 노조나 근로자에게 배상 청구할 수 없게 규정한 노란봉투법을 인정한 셈인데, 실제로 노란봉투법 3조에는 ‘손해의 배상의무자별로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범위를 정해야 한다’고 되어 있어 대법원이 이를 반영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민주노총 법률원에서도 “노란봉투법과 같은 취지의 판결로 개정안의 법적인 근거를 마련했다”고 입장을 내놨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권이 추진 중인 노란봉투법은 지난 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이후 우여곡절 끝에 본회의에 직회부돼 6월 임시국회에서 표결을 앞둔 상황인데 아직 해당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기도 전에 먼저 법원에서 확정시킨 격이어서 일찍이 이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내비쳤던 윤석열 대통령도 적잖은 부담을 갖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판결 이전에도 이미 김 원장 체제 하 대법원에선 앞서 지난달 11일 현대차 간부사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반환소송 상고심에서도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때 근로자 동의를 받지 않아도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면 유효하다고 한 기존 판례를 45년 만에 뒤집고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으며 지난 2020년 1월 버스 운전수로 근무하다 퇴직한 노동자가 운수업체를 상대로 낸 임금소송 상고심에서 총근로시간의 일부인 야간·연장근로 시간을 계산할 때 가중치를 부여해 실제 일한 시간의 1.5배로 따졌던 대법원 판례를 8년 만에 뒤집는 등 ‘친노동’ 판결을 이어온 바 있다.

이 같은 판결이 이어지는 데에는 대법관 12명 중 이번 판결 주심인 노정희 대법관 뿐 아니라 박정화·오경미·김선수·민유숙·이흥구 대법관까지 절반이 민변이나 우리법연구회 출신 등 진보 성향 인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 아니냐는 관측도 없지 않은데, 심지어 대법관 12명 모두가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서 가부 동수가 될 때 최종 결론을 정하는 캐스팅보트 역할의 김 대법원장 역시 진보 성향이므로 법원 주류의 분위기가 이렇게 흐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이번 손배소 사건은 당초 김 대법원장이 지난해 1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거기서 다루던 사안이었음에도 다시 소부로 돌려보낸 뒤 빠르게 선고가 나왔다는 점에서 오는 9월24일까지인 본인 임기가 끝나기 전에 ‘알박기 판결’을 내리려던 게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지고 있는데, ‘노란봉투법’에 힘을 실어온 민주당에선 해당 판결이 나온 날 한껏 힘을 받은 듯 강선우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이번 대법원 판결은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사용자들의 무분별한 손해배상청구 남용을 방지하며 ‘합법 노조 활동 보장법’의 정당성을 입증했다”고 호평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김영진, 진성준, 이수진(비례) 등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16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당정을 겨냥 “더 이상 명분도 없고 이치에도 맞지 않은 억지 주장을 계속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인 삼권분립 원칙을 훼손하는 중대한 역사적 범죄를 범하는 것”이라며 대법원 판결을 존중해 ‘노란봉투법’ 처리에 협조하라고 압박수위를 높였다.

◆ 與 “野 발의한 法을 대법원이 공표한 셈…선 넘었다”

16일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이훈 기자
16일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이훈 기자

반면 정부여당에선 이번 대법원 판결에 적극 반박하거나 거세게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고용노동부가 당장 판결이 나온 지난 15일 “현대차 손배 대법원 판결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노조법 3조2항 개정안의 연대 책임을 부인하는 내용과는 명백히 다르다”며 “해당 판결은 불법 행위자들의 책임 비율을 제한할 경우 ‘단체인 노조’와 ‘개별 조합원들’을 구분해 노조보다 조합원들의 책임 비율을 낮게 정할 수 있다는 법리를 제시한 것”이라고 ‘노란봉투법’ 처리를 위한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다만 국민의힘에선 ‘노란봉투법 알박기 판결’이라고 정부와 온도차 있는 해석을 내놓으면서도 ‘정치적 판결을 했다’는 취지로 대법원 성토에 나섰는데, 윤재옥 원내대표는 1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대법원이 기업의 불법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에게 손해배상 받으려면 개별적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는데 공동불법행위에 대해선 참가자들이 연대책임을 진다는 민법의 대원칙과 맞지 않는 것”이라며 “수십 수백명의 노조원이 복면을 쓰고 시설을 점거할 경우 개개인의 신원조차 파악할 수 없어 대법원의 판결은 사실상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윤 원내대표는 “대법원은 노란봉투법을 판례로 뒷받침하면서 국회의 쟁점법안을 임의로 입법화하는 결과를 빚었다. 이는 법률적 판결이라기보다 정치적 판결이며 입법과 사법의 분리라는 헌법 원리에 대한 도전”이라며 “대법원은 관련 판결을 일정기간 유예하고 여야 간 입장 차이를 보이는 국회의 논의 결과를 지켜보는 게 상식적이지만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노조는 불법 파업을 경계하지 않고 투쟁일변도의 강경노선을 더 세게 밀고 나갈 것이며 국내 기업에 대한 해외투자가 줄어드는 악영향이 도미노처럼 일어날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이런 악영향 때문에 실제로 추진하지 못했는데 민주당은 야당이 되더니 노란봉투법을 강행하고자 한다”며 “결국 노조표를 얻고 정부여당에 정치적 부담을 지우겠다는 계산인데 당연히 법 저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우리 당의 모든 조치를 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 뿐 아니라 같은 당 이철규 사무총장도 이 자리에서 “민법 제760조는 공동불법행위자에 대한 책임을 법으로 명시하고 있고 이는 대법원이 판례로 뒤바꿀 수 없는 영역이다. 임기가 석달도 남지 않은 김명수 사법부가 국회의 입법권까지 침해하는 판례 알박기와 사법 대못질을 했다”고 대법원을 비판했으며 박대출 정책위의장도 “노란봉투 판결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야당이 발의하고 대법원이 공표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어제는 대법원 정치의 날로 사법부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해당 판결에 유감을 표했다.

비록 ‘노란봉투법’이 상임위원회에서 직회부된 만큼 국회법상 개정안이 최장 30일 동안 여야 합의기간을 거치게 되어 있기에 민주당이 이달 내에 본회의 처리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므로 이번 대법원 판결로 힘을 받았다고는 해도 당장 강행 처리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쟁점법안에도 선제적으로 나서는 듯한 대법원의 행보가 향후에도 계속될 경우 ‘정치 법원’ 논란은 한층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 ‘정치적 판결’ 의혹 받는 김명수 대법원, 이번이 처음 아냐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제20대 대통령선거를 하루 앞둔 8일 오후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대국민 담화 발표를 하며 지난 5일 실시된 확진자 및 격리자 선거인 사전투표 논란 관련 사과를 하고 있다 / ⓒ뉴시스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제20대 대통령선거를 하루 앞둔 8일 오후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대국민 담화 발표를 하며 지난 5일 실시된 확진자 및 격리자 선거인 사전투표 논란 관련 사과를 하고 있다 / ⓒ뉴시스

특히 김 대법원장이 취임한 이래 지난 6년 간 정치·외교·사회적 파장이 큰 민감한 사안에 대해 대법원이 판결을 내린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닌데, 단지 국내 사안이 아니라 국제외교 차원으로 비화될 수 있는 지난 2018년 10월엔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에서도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징용 책임이 있는 일본 기업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으며 2020년 7월엔 재판 거래 의혹이 제기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경기도지사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공표) 사건에 대해서도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정희 대법관)가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하기도 했다.

이 대법원 판결 덕분에 이 대표는 당시 민선 7기 경기지사직 유지 뿐 아니라 20대 대선 출마도 가능해졌는데, 공교롭게도 노 대법관은 ‘노란봉투 판결’이라고 여당이 비판하고 있는 이번 ‘현대차 파업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주심이기도 한데다 지난 2020년 11월엔 선거관리위원장으로 취임해 제20대 대선 사전투표 당시 이른바 ‘소쿠리 선거’ 등 논란으로 직권남용 및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고발당한 끝에 지난해 5월 선관위원장직에서 물러난 전력도 있다.

또 지난 2020년 9월엔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태악 대법관)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낸 법외노조 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한 원심 판결에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해 사실상 전교조 합법화의 길을 다시 열어줬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지난해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출신으로 집회 당시 경찰관을 폭행해 벌금 전과가 있는 변호사를 재판 연구관으로 뽑는 등 논란을 자초한 바 있다.

심지어 문 정권 때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에 대해선 기소된 지 3년6개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1심에 그쳐 있어 이 사건으로 기소된 황운하, 한병도 민주당 의원은 국회의원 임기를 모두 마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며 송철호 전 울산시장의 경우 급기야 임기를 마친 뒤 지난해 재출마하기도 했고 월성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역시 2년째 1심 재판에 머물러 있다.

이밖에 민주당 의원으로 당선됐던 윤미향 무소속 의원은 1심 판결을 선고 받기까지 2년 5개월, 조국 전 법무부장관도 1심 선고를 받기 전까지 3년 1개월이 걸렸으며 조 전 장관의 아들에게 허위 인턴 증명서를 발급해 준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유죄 선고 받은 최강욱 민주당 의원 사건은 대법원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로 대법원은 민주당 출신·소속이 아니라 국민의힘 후보로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에 대해선 강서구를 지역구로 둔 강선우, 진성준, 한정애 의원이 신속한 판결 선고를 촉구(4월10일)한지 단 1개월여 만인 지난 5월18일 김 전 구청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당선무효형을 선고했는데, 이 판결을 내린 우리법연구회 출신의 박정화 대법관은 급기야 지난 14일 “박 대법관이 얼마 남지 않은 임기 내에 민주당과 발맞춰 김 전 구청장 재판을 서둘러 진행했다는 의문이 제기된다”고 주장한 시민단체에 의해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 고발되기도 했다.

이들 대법관 외에도 김 대법원장 본인 역시 지난 2020년 5월 22일 사표를 낸 임성근 부장판사와 면담 당시 정치권의 움직임을 들어 사표를 반려한 것으로 밝혀져 사법부 독립을 지키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데, 해당 의혹이 제기됐을 당시 김 대법원장은 부인했지만 “내가 사표를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는 발언이 담긴 녹음파일을 임 부장판사가 공개하면서 거짓말까지 드러나 대법원에 대한 신뢰를 한층 떨어뜨리기도 했다.

그래선지 정우택 국회부의장은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념편향 재판관들이 사법부를 장악해있으니 법치 최후의 보루여야 할 대법원이 법치가 아닌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대법원을 하루 빨리 정상화하지 않으면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 벌어질 것”이라고 김명수 대법원의 교체가 시급하다는 주장을 펼쳤는데, 하지만 차기 대법원장 임명은 현재로선 민주당이 단독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국회를 통과해야만 가능하므로 내년 4월 총선 결과도 여기에 영향을 줄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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