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연일 보조금 ‘부정·비리’ 지적
與, 일부 민간단체의 선거운동 개입 의혹 제기도
野, 윤 대통령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분석도
감사원, ‘태양광’ 700여건 부정사례 조사 중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대통령실에서 2023년도 제24회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대통령실에서 2023년도 제24회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 이외의 자가 행하는 사무 또는 사업에 대해 국가가 이를 조성하거나 재정상 원조를 하기 위해 재원을 교부하는 제도인 ‘국고보조금’의 부정·비리 문제를 연일 지적하면서 검증 강화를 주문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보조금 감사 결과, ‘부정사용’ 수백억대…정부, 투명성 강화 나서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앞서 지난 12일 대통령실에서 가진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 재정 누수 차단에 대해 논의하던 중 “최근 민간단체 보조금 및 교육교부금 조사 결과에 대해 국민적 공분이 크다. 단 한 푼의 혈세도 낭비되는 일 없도록 후속조치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주문해 한 총리가 “정부에서 직접 집행하는 예산뿐만 아니라 각종 기금 및 공공기관 예산 등이 부정하게 사용되는 일이 없도록 지속적인 실태 점검과 과감한 상응조치, 시스템 개편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윤 대통령은 바로 다음 날인 13일 국무회의에선 아예 생중계로 “국민의 혈세는 정치 포퓰리즘의 토양이 됐다. 민간단체 보조금이 지난 정부에서 2조원 가까이 늘어나는 동안 제대로 관리, 감독 시스템이 없어 도덕적 해이와 혈세 누수가 만연했다”며 “지난 정부에서만 400조원의 국가 채무가 쌓였다. 이는 납세자에 대한 사기 행위이고 미래세대에 대한 착취 행위”라고 민간단체 보조금 문제를 내세워 문재인 정부를 직격했다.

앞서 대통령실은 지난 4일 최근 3년 동안 국고보조금 6조8000억원이 지급된 비영리 민간단체 1만2000여곳을 대상으로 일제 감사를 실시한 결과, 1조1000억원 규모의 사업에서 1865건의 부정·비리를 적발했고 현재까지 확인된 부정사용 금액만 31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는데, 세수 부족 사태까지 직면했지만 국가채무가 높은 상황에서 추경에는 난색을 표하는 현 정부로선 이른바 ‘새는 돈’부터 잡아보려는 의미로 풀이되고 있다.

실제로 부정사용 사례는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이 앞서 지난 11일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고용노동 분야 민간 보조금 사업 자체 감사 결과 보고서’에서도 고용부가 지난 3년간 보조금을 받은 비영리 민간단체 1532곳 중 26.9%인 412곳이 보조금법을 위반(851건)했다고 밝혔고, 특히 이 기간 동안 부정수습하거나 유용하다가 적발된 금액은 40억4000만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한 단체는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신청해 사업기관으로 선정된 뒤 실제 사업은 영리기관이 수행하는 방식으로 보조금 2800만원을 부정 수급했으며 또 다른 단체는 근로자 10명에게 인건비를 지급한 뒤 기관계좌로 되돌려 받는 방식으로 보조금 1억6709만원을 부정 수급했고, 사무실 내부 시설공사 비용을 사무실 집기 임차비용에 반영해 8474만원을 받은 단체도 있었는데, 고용부는 “멋대로 정부 보조금을 허투루 사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며 감사에서 적발된 단체들로부터 30억3700만원을 환수할 계획이고 처벌 등을 포함한 제도 개선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민간 보조사업 정산보고서 외부 검증 대상을 ‘3억원 이상’에서 ‘1억원 이상’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령안’을 의결했는데, 이처럼 기준을 낮출 경우 지난해 기준으로 ‘3억원 이상’인 검증대상 사업 9079개에서 ‘1억원 이상’인 검증대상 사업 4만411개로 외부 검증대상이 이전보다 약 4배 이상 늘어나게 된다.

또 정부는 이번 시행령 개정과 별개로 보조금법 개정도 추진해 회계감사보고서 제출 대상을 현행 ‘10억원 이상’ 보조사업자에서 ‘3억원 이상’으로 낮출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는데, 기획재정부 오은실 국조보조금부정수습관리단장은 “국고보조금에 대한 회계 부정 문제도 강력히 대처하는 등 지속적으로 제도적 미비점을 발굴·개선해 국고보조금 부정수습을 근절하고 재정 투명성을 제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재정 누수 방지’ 뿐 아니라 ‘정치적 압박’까지 두 마리 토끼?

하태경 국민의힘 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 위원장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5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좌)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13일 서울 시청역 승강장에서 보조금 유용 서울시 공개 질의 기자회견을 열고 감사 결과 공개 등을 촉구하고 있다.(우). ⓒ뉴시스
하태경 국민의힘 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 위원장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5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좌)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13일 서울 시청역 승강장에서 보조금 유용 서울시 공개 질의 기자회견을 열고 감사 결과 공개 등을 촉구하고 있다.(우). ⓒ뉴시스

이 같은 개선 움직임은 해당 단체들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대중에게는 ‘세수 낭비’를 차단하는 긍정적 행보로 비쳐질 수 있는데, 다만 재정적 차원의 접근 뿐 아니라 윤 대통령도 13일 국무회의에서 민간단체 국고보조금 증가에 대해 “정치 포퓰리즘의 토양”이라고 언급했을 만큼 정치적 측면 역시 염두에 둔 조치로 비쳐지고 있다.

당장 여당에서도 하태경 국민의힘 시민단체선진화특별위원장이 13일 국회에서 열린 시민단체 선진화 특위 회의에서 자신이 제보 받은 자료를 공개하면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쪽에서 2021년, 2022년 조직적으로 선거운동에 개입했다”고 선거운동 개입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전장연 공동대표인 윤모씨가 회장을 맡고 있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에선 서울지회가 지난 2021년 더불어민주당 경선과 2022년 대선, 지방선거 때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조직적으로 선거인단을 동원해 선거운동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윤모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장은 대선 직후엔 24개 서울장애인가족지원센터의 지회장들이 참여하고 있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대선에서 장애인 가족이 지지하는 이재명 후보가 아쉬운 패배를 했다. 우리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이제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에게 힘들지만 긴 싸움을 해야 할 것 같다”고 글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하 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법적 검토해보니 보조금법 위반으로, 보조금 액수는 집계가 안 됐지만 수백억원 이상이다. 선거법은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보조금법 위반은 유효하다”고 주장했으며 앞서 전장연에 대해서도 서울시에서 받은 보조금을 출근길 지하철 시위에 썼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등 공세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그러자 전장연 측은 같은 날 서울시청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와 서울시에 단 1원의 보조금도 지원받고 있지 않다. 특위에서 밝힌 서울시가 전장연에 주었다는 1400여억원에 대해 구체적인 보조금 사용목적과 금액을 밝히라”며 “전장연은 비영리민간단체로도 등록하지 않은 임의단체다. 서울시는 특위에서 거짓으로 조작, 편집돼 발표된 감사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의혹을 제기한 하 위원장을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경찰에 고발할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하지만 서울 혜화경찰서는 일단 국민의힘 시민단체선진화특위가 앞서 지난 8일 지방보조금법 위반 혐의로 전장연에 대한 수사를 의뢰한 ‘시민단체 보조금 부당수령 의혹 사건’을 서울경찰청에서 배당받아 본격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는데, 비단 여당이 특정 단체를 상대로 의혹을 제기한 것 외에도 윤 정부의 경우 지난 10일 열린 6·10민주항쟁 기념식 주관단체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윤 대통령 퇴진 구호를 내건 행사를 후원했다는 이유로 기념식 주최 철회 뿐 아니라 2007년 국가제정일 이후 사상 처음 불참하기도 했다.

다만 여당 의원 중 유일하게 이 행사에 참석한 하 위원장은 지난 12일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후원한 것은 추모제고, 추모제를 주최하는 단체가 정권 퇴진 구호를 내건 것이지 정권 퇴진 구호를 내건 행사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후원한 게 아니다”라며 “사실 6·10 행사는 정부가 주최하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그냥 실무적 대행을 한다. 정부가 불참한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온도차를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한 데에는 보조금을 지원 받은 민간단체가 정작 정권 퇴진 집회에 나서는 등의 전례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지난 2021년 3~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직전 ‘촛불중고생시민연대’란 단체가 ‘청년 프로젝트·시민 학습 프로그램 지원 사업’ 명목으로 5500만원의 서울시 보조금을 받아 중·고교 학생들에게 친북 성향의 강연을 수시로 연 데 이어 청소년들을 윤 정권 퇴진 요구 집회에도 참여토록 하고 지난해 12월 19일 2차 촛불집회에선 교복 입은 학생들이 ‘중고생의 힘으로 윤석열 퇴진’이란 이 단체의 팻말을 든 채 집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한편 제1야당인 민주당에선 보조금을 고리로 민간단체를 압박한다며 윤 정부 비판에 나섰는데, 한민수 대변인은 13일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 중 민간단체 보조금 문제로 전임 정부를 거듭 저격한 점을 꼬집어 “집권 1년이 지났어도 윤 대통령은 오로지 전 정부 탓만 한다. 시민단체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친 비난에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일부 단체의 방종을 침소봉대해 시민사회 전체를 비리의 온상으로 몰아가려는 행태를 멈추라.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용산구민을 위한 예산까지 끌어다 써놓고 누구를 비난하나”라고 맞불을 놨다.

◆ 민간단체 넘어 공공기관까지도 보조금 검증 ‘칼날’…범위 확대되나

산지 태양광 발전소 전경. 사진/김영삼 기자
산지 태양광 발전소 전경. 사진/김영삼 기자

그러나 이 같은 역공에도 불구하고 그간 지급된 보조금에 대한 부정·비리를 검증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꺾이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되는데, 오히려 그 범위는 한 총리가 전날 “정부에서 직접 집행하는 예산뿐만 아니라 각종 기금 및 공공기관 예산 등이 부정하게 사용되는 일이 없도록”이라고 공언했을 정도로 시민단체를 넘어 더더욱 확대되는 모양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신재생 에너지 관련 공공기관 등을 대상으로 ‘신재생 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를 진행 중인 감사원은 13일 신재생 에너지 사업 관련 업무를 하고 있는 공공기관 8곳의 임직원 250여명이 본인이나 가족 명의로 태양광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이해충돌 방지를 위해 이들은 태양광 사업에 참여해선 안 된다는 내부 규정 뿐 아니라 외부 사업 겸직 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을 적용받는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소속기관에조차 알리지 않은 채 사업에 뛰어들고 심지어 일부 임직원은 개인사업자로서 지원 받을 수 있는 최대한도인 100kW의 40배 규모 사업을 하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일반인 중에서도 ‘태양광 보조금’을 받고자 증빙 서류를 위조한 사례가 다수 적발되기도 했는데, 문 정부가 2018년부터 시행한 ‘한국형 FIT(개인이 소규모로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하면 여기에서 나오는 전력을 한국수력원자력 등 발전 사업자가 고정 가격으로 사주는 발전 차액 지원 제도)’에 따른 보조금을 받기 위해 이미 말소돼 효력이 없어진 내용이 담김 증빙 서류까지 제출하는 등 700여건의 부정 사례를 감사원이 확인해 조사 중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대규모 태양광 발전 사업 4건도 점검 결과, 지방자치단체장과 중앙부처의 전직 간부급 공무원 등 13명을 사기, 보조금법 위반 등 혐의로 수사기관에 수사 요청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이밖에도 에너지 이용 효율을 늘리기 위해 정부가 추진한 ‘스마트 계량기’ 사업을 사실상 독점한 민간 사업자가 관련 서류를 조작해 보조금 500억원을 부정 수급하는 등 여러 문제가 적발됐는데, 앞서 지난해 10월부터 신재생 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를 진행해온 감사원은 아직 최종 감사 보고서를 내놓을 시점은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윤 대통령이 보조금 문제를 직접 거론한 이날 이런 내용들을 전격 공개했다는 점에서 이를 놓고도 벌써부터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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