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내 핵 배치 안 하지만 핵잠수함 등 전개…野 “큰 진전 없어” 평가절하

4월 26일 윤석열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 한미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대통령실
4월 26일 윤석열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 한미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대통령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내놓은 ‘워싱턴 선언’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여러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정치권에서도 이에 대한 여야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 확장 억제 약속 확언 받은 韓과 NPT 재확인 얻어낸 美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 뒤 밝힌 ‘워싱턴 선언’에는 핵 위협에 대한 한미 간 소통 및 정보공유, 한미 간 핵 협의 그룹 창설, 미 해군 핵추진 탄도미사일 잠수함의 한반도 전개를 포함한 전략자산의 정례적 가시성 증진, 유사시 미군의 핵 작전에 우리 군의 재래식 무기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공동실행·기획을 협력하는 내용이 포함됐는데, 특히 핵 협의 그룹(NCG) 창설은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핵전력 운용에 있어 초기단계부터 한국 측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것으로 사실상 핵 공유 효과를 낸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자국의 핵전력 운용을 특정 일개국가와 논의한다는 자체가 처음인데다 실제 핵 협의 그룹을 연간 4차례 정례적으로 가동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북핵에 대한 미국의 확장 억제 약속을 보다 분명하게 가시화한 것으로 관측되는데, 이 뿐 아니라 미국의 3대 핵전력 중 하나인 전략핵잠수함을 한반도에 공식 전개하기로 명문화한 점도 사실상 핵무기를 배치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미 백악관 고위당국자도 “SSBN(전략핵잠수함)은 1980년대 초 한국에 전개된 이후 한반도를 찾지 않았다”고 강조했는데, 수중 잠수로 상대방이 탐지하기 힘들어 효과적인 핵 보복이 가능한 수단으로 꼽히는 핵잠수함의 전개를 약속한 것은 한국에 대한 북한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핵잠수함으로 보복할 수 있다’는 경고를 통해 차단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미연합사 작전참모 출신인 데이비드 맥스웰 아태전략센터 부대표도 미국의소리에 나와 “한국을 방어하기 위해 모든 군사력을 동원하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보여주는 신호로 SSBN이 부산에 배치되면 김정은이 오판할 경우 북한 정권을 끝낼 수 있는 상당한 군사적 능력을 제공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평가했으며 미국 싱크탱크 허드슨 연구소의 패트릭 크로닌 아시아태평양 안보석좌는 “한국이 미국의 (실제) 핵무기를 공유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미국의 핵 능력을 공유하는 수준이 되게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바이든 대통령 스스로도 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미국과 동맹국들에 대한 핵 위협은 용납할 수 없다. 미국과 동맹국에 대한 북한의 핵 공격은 북한 정권의 종말”이라며 강력하게 보복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는데, ‘한국 국민들이 북핵 위협에 안심할 수 있나’란 기자들의 질문엔 “필요할 경우 확장 억제를 더 강화해나가고 더 긴밀한 협조와 협의를 진행하겠다”고 추가로 수위를 더 높일 가능성도 열어뒀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워싱턴 선언’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북핵 공격에 대한 한층 확실한 안전보장을 받아냈다면 미국은 북핵 위기 심화를 계기로 우리나라 내부에서 점차 힘을 얻어가고 있는 ‘자체 핵무장’ 여론을 진화하는 데 관심을 둔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선지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리는 한반도에 핵무기를 배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거나 “(핵잠수함 등)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주둔’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고 워싱턴 선언 전문에는 “핵확산금지조약(NPT)상 의무에 대한 한국의 오랜 공약 및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 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 협정 준수를 재확인했다”고 명시했다.

◆ 與 “확장 억제를 획기적 강화시킨 중대한 성과” 호평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에서 27일 김기현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 김경민 기자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에서 27일 김기현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 김경민 기자

이 같은 내용과 관련해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에선 27일 한 목소리로 높이 평가했는데,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우리나라와 미국이 핵 정보를 사전에 공유하고 핵 전력의 기획부터 실행 단계까지 참여하는 한미 핵 협의 그룹 창설은 의미가 매우 크다”고 역설했으며 김병민 최고위원은 “날로 고도화되는 북핵 미사일 위협에 강력 대응하도록 한미 간 핵 협의 그룹을 창설키로 하는 등 양국 간 확장억제를 획기적으로 강화시킨 중대한 성과”라고 극찬했다.

한 발 더 나아가 태영호 최고위원은 “70년 전 주한미군 주둔을 요청했던 우리의 국격이 윤 대통령이 이뤄낸 워싱턴 선언을 통해 이제는 미국과 함께 안보 문제에서 서로 안보 공약을 주고받는 평등하고 동등한 관계로 승격됐다”고 평가했으며 장예찬 청년최고위원은 “윤 대통령은 미 대통령의 핵 보복 명시 발언을 이끌어낸 반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사기당해 비핵화 수표를 받아든 문재인 전 대통령은 보증을 잘못 섰다가 집을 날린 것”이라고 이번 회담 성과와 전직 대통령을 대비시키기도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국민의힘에선 이날 유상범 수석대변인의 공식 논평을 통해서도 “그동안 미국이 핵 자산에 대한 정보 등에 대해 공유한 적이 없었던 만큼 이번 워싱턴 선언은 윤 정부가 한미 간 돈독한 신뢰 형성을 위해 노력해온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북핵 위협에 불안해하는 국민 불안을 불식시키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고, 4·27 판문점 선언 5주년 관련 논평으로도 거듭 “5년 전 그날은 평화를 공짜로 얻을 수 있다는 망상에 빠진 가짜 평화쇼에 불과했다”면서 워싱턴 선언을 들어 “북핵 위협에 구체적이고 강력한 억제정책을 펼치고, 앞으로도 양국이 함께 공조해나가겠다는 의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단 지도부 뿐 아니라 3성 장군 출신인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도 같은 날 페이스북을 통해 “워싱턴 선언은 미국이 자국의 안전을 위해 동맹을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확실한 메시지다. 북한의 핵 사용을 억제할 뿐 아니라 북한의 비핵화까지도 견인할 수 있는 강력한 방패이자 칼이 될 것”이라며 “30여 개 국가로 이뤄진 나토 핵 공유 체제와는 달리 워싱턴 선언은 한미 양자 간 핵 공유 체제로 대한민국의 전략적 가치가 구 냉전시대 서유럽 전체와 맞먹는 수준으로 높아졌음을 미국이 인정한 것이고 워싱턴 선언 이후의 한미는 핵을 위시한 모든 고가치 확장억제수단을 공유하는 최강의 동맹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여당 일각에서 이번 회담을 혹평하는 목소리도 일부 없지는 않았는데, 유승민 전 의원은 “워싱턴 선언은 기존의 핵우산, 확장억제에 화려한 수사만 덧붙인 말의 성찬에 불과하다. 핵 협의 그룹의 ‘협의’는 나토의 핵 기획 그룹의 ‘기획’보다 못하고 기존에 이미 해오던 확장억제전략협의체와 본질이 다를 게 없다”며 “미군 전략자산이 정례적으로 온다지만 며칠 있다 가버리면 그만이다. 워싱턴 선언은 ‘한국은 미국의 확장 억제 공약을 완전히 신뢰’한다고 되어 있는데, 우리 국민 대다수가 신뢰 못한다는데도 윤 대통령은 어떤 근거로 완전히 신뢰하는지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뿐 아니라 유 전 의원은 지난해 12월 갤럽 여론조사 결과를 내세워 “우리 국민의 76.6%가 독자 핵무장을 원하는데 윤 대통령은 NPT 의무를 약속하고 한미원자력협정 준수를 재확인함으로써 독자 핵개발의 가능성을 스스로 완벽하게 차단해버렸다. 일본과 똑같은 재처리와 농축, 호주와 똑같은 핵잠수함 (보유)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며 “불과 석 달 전 대통령 스스로 독자 핵개발 가능성은 왜 말했는지 의아하기 짝이 없다. 워싱턴 선언이 우리에게 (우크라이나가 핵 포기 대신 영토 안보를 보장 받기로 한) 부다페스트 각서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나”라고 워싱턴 선언으로 자체 핵 무장 가능성을 포기한 데 대해 날선 비판을 가했다.

◆ 野 “핵, ‘美 단독 권한’ 재확인…모든 면에서 진전 없어”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등 현안에 관련 기자간담회서 취재진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 / 김기범 기자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등 현안에 관련 기자간담회서 취재진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 / 김기범 기자

한편 야권 역시 유 전 의원처럼 같은 날 워싱턴 선언에 대해 평가 절하하는 입장을 내놨는데,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안보 전문가들은 2021년 한미정상회담에서 진전된 게 없고 기존 미국의 핵우산 정책과 크게 달라진 게 무엇인지 되묻고 있다”고 꼬집었으며 김민석 정책위의장은 “한국의 독자 핵개발론을 차단하고 공식적으로 한반도 핵 사용 권한을 미국에 단독 권한임을 재확인한 이번 한미 정상합의는 역대 모든 한국 정부가 추진해왔던 확장 억제 전략에 비해 획기성, 종합성, 실효성 모든 면에서 큰 진전이 없다”고 질타했다.

이는 워싱턴 선언과 관련해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가 브리핑에서 “핵무기 사용에 대한 결정은 전적으로 미국 대통령의 권한”이라고 강조한 점에 주목한 발언으로 보이는데, 그러면서 김 정책위의장은 “가성비 낮은 저자세 외교였고 결국 한미 간 동맹 이익은 존중하면서도 대한민국 국익을 지키는 건 민주당 몫이 됐다”며 핵추진 잠수함 한국 도입 요구 등을 추진하겠다고 천명했고 민주당이 독자적인 방미단을 보낼 것을 지도부에 건의하겠다고도 공언했다.

여기에 같은 당 강민정 원내부대표는 “지정학적 특수성을 고려해 평화를 지켜내야 할 대통령이 핵 공격과 반격을 적시함으로써 한반도 핵전쟁 위기가 고조해 남북 공멸 위험을 높이는 데 앞장서고 있다. 대미 굴종 외교로 국익을 훼손하고 국격 자존감을 실추시키고, 안위마저 위태롭게 하는 윤 대통령이야말로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고 촉구했으며 이재명 대표는 같은 날 오후 의원총회에서 “진영 대결의 허수아비를 자처하면서 중국·러시아 같은 역내 국가를 향한 위험천만한 행동이 국익과 안보에 어떤 충격을 일으킬지 짐작조차 어렵다. 외교 안보 정책의 전면 재검토를 촉구한다”고 입장을 내놨다.

이 뿐 아니라 정의당에서도 같은 날 이정미 대표가 상무집행위 회의에서 “한국의 독자 핵무장이 분명히 부정된 것은 다행이지만 이번 회담이 불안정한 한반도 상황 변화의 전기를 마련했느냐는 점에선 낙제점”이라고 평가했으며 이은주 원내대표 역시 앞서 이날 오전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비핵화 원칙 견지를 넘어 ‘비핵화 평화 체제’로의 전환 프로세스를 제기했어야 했는데 이 부분이 지켜지지 못했다. 군사 일변도로 접근한 양국 공동성명은 러시아나 중국을 자극해 외교 공간을 좁혀놨다”고 한 목소리로 혹평했다.

이렇듯 여야가 한미정상회담의 핵심 성과로 양국이 꼽고 있는 ‘워싱턴 선언’을 놓고 극명하게 엇갈린 평가를 내놓은 상황인 만큼 향후 정기적으로 열릴 ‘핵 협의 그룹’을 통해 한미 간 얼마나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해낼 것인지 여부로 일단 여론의 평가를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윤 대통령의 공언대로 우리나라에 대한 북핵 위협을 억제할 확실한 보증수표가 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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