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관리법·간호사법·방송법·노란봉투법 등 野 ‘강행’ vs 대통령 ‘거부권’ 양상

2023.02. 27일 오후 이재명 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관련해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권민구 기자
2023.02. 27일 오후 이재명 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관련해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권민구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여야 간 의견이 다른 쟁점법안들이 의석수를 앞세운 야권의 강행 처리로 국회 문턱을 넘게 되는 국면으로 흘러가자 윤석열 대통령도 사실상 거부권 행사에 나설 가능성에 힘을 싣는 등 결국 ‘힘의 대결’로 치닫는 모양새다.

◆ ‘본회의 직회부’ 내세운 민주당, 간호사법 등 줄줄이 일방통행 예고

더불어민주당이 오는 30일 본회의에서 간호사법 제정안 통과시키려 힘을 싣고 있는데, 간호법 제정안은 기존에 의료법 내 ‘의사 진료의 보조’ 수준으로 명시된 간호사 관련 내용을 따로 분리하여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업무·처우 등에 대한 국가 책무를 명시하는 내용으로 앞서 지난달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야당 주도로 본회의에 직회부 된 바 있고 지난 23일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으면 면허를 취소하는 의사면허취소법과 함께 본회의에 부의·상정됐다.

이 같은 사안들은 이해관계자 간 의견 대립이 첨예한 쟁점법안인 만큼 서두르기보다 각계각층의 의견수렴이나 신중한 협의·조정이 중요하지만 민주당이 원내 수적 우위를 앞세우며 빠르게 강행할 의지를 내비치자 당연히 이해관계단체들 간 갈등도 폭발하면서 국회 바깥에서마저 사회 곳곳에서 파열음이 높아지고 있다.

당장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27일 민주당사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이어간 반면 대한간호협회와 1300여개 사회시민단체들로 구성된 간호법제정추진범국민운동본부는 국회 정문과 국민의힘 당사 앞, 지역구사소 14곳 등 전국 16곳에서 간호법 국회통과를 촉구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은영 대한간호협회 이사가 이날 “국민의힘은 공통대선공약인 간호법을 오는 30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외쳤다면 박명하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장은 같은 날 “국회가 30일 본회의에서 이 법들을 통과시킨다면 보건복지의료인들은 국민 건강과 보건복지의료를 지켜내기 위한 투사가 돼 대규모 총궐기에 나설 것이고 이로 인해 발생할 모든 혼란은 민주당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상반된 자세를 취했고, 심지어 의협 비대위는 두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내달 9일 13개 단체로 구성된 보건의료복지연대와 총궐기대회를 여는 것은 물론 대통령이 법안 재가 시 파업 찬반투표까지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움직임을 의식한 듯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앞서 지난 23일 의총에서 “우리나라는 의료법으로 의료관계인이 하나로 통합된 체계인데, 간호법만 따로 떼어 만들면 나머지 직역도 따로 법을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생길 것이다. 결국 의료대란과 파업을 일으켜 국민을 불편하게 하고 정권에 타격 주려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간호법범국본은 27일 “설마 간호법 통과를 막지 못하면 낙선운동 벌이겠다는 의사협회의 겁박에 굴복한 것 아닌지 묻고 싶다”고 논평을 내는 등 파장은 일파만파 커져가고 있다.

이처럼 사회 갈등이 치솟는 민감한 사안임에도 민주당에선 간호사법 뿐 아니라 지난 21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민주당 단독으로 직회부 의결된 방송법 개정안도 30일 동안 여야 간 접점을 찾지 못하면 강행 처리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으며 현재 법사위에 계류 중인 노란봉투법 등에 대해서도 추가 직회부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與 “민주당, 총선 위해 국민 분열”…대통령실 “與가 국정 파트너”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주호영 원내대표를 비롯 관계자 의원들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 최고위원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 / 김경민 기자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주호영 원내대표를 비롯 관계자 의원들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 최고위원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 / 김경민 기자

한 발 더 나아가 민주당은 기초연금을 현재보다 10만원 높인 월 40만원 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구직·실업자에 대해 대학생 학자금 대출 이자를 면제해주는 법안도 국민의힘의 반대가 무색하게 국회 교육위원회 통과가 유력한 상황이고 문재인 케어 유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건강보험 기금에 정부 재정 투입을 의무화하고 지원액을 올리는 법안까지 제출했는데, 이 같은 행태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2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을 겨냥 “나라야 멍이 들든 말든 윤 정부가 실패해야 민주당에 유리하다는 얄팍한 정치공작적 계산”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주 원내대표는 노인 대상 기초연금 인상은 연 10조원, 문재인 케어 유지 법안은 연 5조원, 청년대상 학자금 무이자 대출은 연 8백억원 등이 든다는 점을 꼬집어 “이 법안들 중 대다수는 자신들이 여당일 때도 정부 반대로 추진하지 못했던 것인데 야당이 되자마자 오직 총선 매표를 위해 정부에 압박을 가하고 숫자의 힘으로 밀어붙이고, 안 되면 그게 여당이 민생을 챙기지 않아 안 되는 것처럼 국민을 분열시키는 이런 짓들을 한다”며 “지난주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강행 꼼수 처리한 민주당이 내년 총선 앞두고 포퓰리즘으로 매표 행위에 나서고 있다”고 민주당에 직격탄을 날렸다.

또 주 원내대표는 같은 날 명동성당에서 정순택 대주교를 예방한 자리에서 “진영 간의 대립이 격화되고,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굴복시키고, 승복 받으려는 것 때문에 정치가 거친 것 같다. 의회주의가 발달된 서유럽이나 선진국 보면 서로 존중하고 잘하는 거 같은데 우리나라는 언제 그런 세월이 올지”라며 “우리 사회가 과연 이런 게 가능하겠나. 서로 존중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라고 역설하기도 했는데, 이 같은 목소리에 정 대주교도 협치를 당부하는 등 호응했다.

하지만 여소야대 구도 속에서 실질적으로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법안 강행 처리를 막기는 어려운 만큼 결국 국회로부터 법안을 이송 받을 윤 정부가 대응할 수밖에 없는데, 당장 민주당이 지난 23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양곡관리법을 놓고 윤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정부는 국회에서 법률안이 이송된 뒤 15일 이내에 공포나 재의요구를 해야 하는데, 일단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27일 “지난 23일 통과된 양곡관리법 대응 방안에 대해 긴밀한 당정 협의를 통해 의견을 모아줄 것을 (윤 대통령이) 당부했다”며 “여당은 우리 국정의 파트너이기 때문에 여당과도 긴밀히 협의해서 당의 의견을 듣도록 하라는 이런 지시를 내린 것”이라고 밝혀 그간 야당의 강행 처리에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한 여당에도 힘을 실어주려는 의미로 풀이되고 있다.

비록 이진복 정무수석이 같은 날 헌정회관에서 정대철 헌정회장을 만난 뒤 기자들과 만나 “여야가 합의 없이 국민의 민감한 이슈들을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에 대해선 대통령이 재의요구를 하겠다고 분명히 얘기했고 저는 양곡관리법이 거기에 해당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쪽에 무게를 실었으나 그러면서도 윤 대통령이 당정 간 협의를 강화하라고 내각에 지시한 데 대해선 “당의 정책 조정 기능을 대폭 강화해서, 정책이라는 게 국민 삶과 직결되는 거니까 각 정책파트에서 정책조정위원장들이 좀 더 적극 당과 정부와 소통해 국민 불편함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이끌어달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 양곡관리법 겨냥해 농민단체 “민주당, 누더기 법 만들어놔” 일침

이진복 정무수석이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주호영 원내대표와 김석기 사무총장을 만나고 나와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실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 권민구 기자
이진복 정무수석이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주호영 원내대표와 김석기 사무총장을 만나고 나와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실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 권민구 기자

이에 그치지 않고 이 수석은 “당 입장에선 늘 여론과 바로 맞부딪치는 곳에 있기 때문에 국민의 소리를 바로 정부에 전달해 정책에 잘 반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강한 뜻이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는데, 대통령실 핵심관계자도 전날 오후 브리핑에서 거부권 여부와 관련해 “농민들이나 농민단체 소속된 분들이 여러 입장을 표명하고 계셔서 그 입장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들어보고 전체적으로 종합적 판단해볼 계획”이라고 밝혀 이해관계자 의견을 근거 삼아 야당에 맞대응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해관계단체 중 하나인 전국농민총연맹 광주전남연맹은 27일 성명을 내고 지난 23일 민주당이 국회에서 처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꼬집어 “민주당은 전년 대비 쌀 생산량이 3% 이상 초과하거나 수확기 쌀 가격이 전년 대비 5% 이상 하락하면 의무적으로 쌀을 시장 격리해야 한다고 법을 발의했으나 정부가 대통령 거부권을 거론하자 생산량은 3~5%, 가격은 5~8%로 수정 통과시켰다”며 “의무 시장격리로 쌀값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우스운데 의무격리 요건도 대폭 후퇴해 있으나 마나 하게 만들었다”고 혹평을 쏟아내기도 했다.

급기야 이들은 “민주당이 쌀값 안정을 위해 무슨 대단한 법을 만든 것처럼 선전하고 있으니 웃음만 나온다. 자신들이 정권 잡고 있을 때, 변동직불제를 폐지하고 자동시장격리제를 무용지물로 만든 과거를 반성하지 않으면서 누더기 법을 만들어놨다”며 “민주당이 개정 양곡관리법으로 쌀값이 안정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민주당의 무능과 오판에 등골이 오싹하다. 양곡관리법안을 폐기하고 양곡 정책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렇듯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이 제대로 수렴, 반영되지 못한 채 강행된 면이 없지 않다 보니 윤 대통령이 이런 여론을 배경으로 취임 이후 첫 거부권 행사에 나설 것으로 전망되는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재적의원 과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재의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여당 의원이 대거 이탈하지 않는 이상 민주당이 끝까지 법안을 강행 처리하기는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쟁점법안에 대한 강행 처리를 거듭하는 야당에 맞서 잇따라 거부권을 행사하기에는 윤 대통령 역시 현재 여당과 함께 지지율이 하락하는 상황인 만큼 정치적 부담도 높아질 수밖에 없어 쉽게 결정하기엔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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