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총리 “‘남는 쌀 강제매수법’, 농업발전 도움 안 돼”…민주당 “식량안보 포기 선언한 것”

한덕수 국무총리가 2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양곡관리법 관련 담화문 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2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양곡관리법 관련 담화문 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지난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던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정부여당이 29일 당정 협의회를 가진 뒤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한 목소리를 내 그 이유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한 총리 “농업 자생력 해친다고 우려…농업인 단체도 반대해”

한덕수 국무총리는 29일 오후 총리공관에서 양곡관리법 관련 당정협의회를 마친 뒤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했는데, 그는 민주당 주도로 국회에서 처리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이런 법은 농민을 위해서도 농업발전을 위해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국민이 쌀을 얼마나 소비하느냐와 상관없이 농민이 초과 생산한 쌀은 정부가 다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매수 법’”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한 총리는 “정말 농업을 살리는 길이라면 10조원, 20조원도 충분히 쓸 수 있으나 이런 식은 안 된다. 이번 법안은 농업계에서도 많은 전문가들이 쌀 산업과 농업의 자생력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고 한농연, 쌀전업농연합회 등 농업인 단체들마저 법안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상황이 이런데도 국회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일방적으로 처리되었다는 점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사실상 민주당에 일침을 가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번 법안의 폐해를 국민들께 알리고 국회에 재의 요구를 하는 게 타당하다는 의견을 모았다. 문제가 많은 법률안에 대한 행정부의 재의요구는 올바른 국정을 위해 헌법이 보장한 절차”라며 대통령에 거부권을 건의할 뜻을 분명히 했는데, 다만 그는 야권이 내세운 법안이어서 거부하겠다는 정치적 차원의 대응이 아니라는 듯 국회에서 처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일일이 꼬집어 설명했다.

먼저 한 총리는 개정안이 시장의 수급조절 기능을 마비시킨다고 지적했는데, “지금은 어떻게든 쌀 소비를 늘리거나 품질 좋은 쌀을 생산하고자 노력하는 농민들이 많지만 앞으로는 그래야 할 이유마저 사라지게 된다. 쌀이 남아도는데도 영구히 무조건 사들이는 것은 시장의 수급조절 기능을 더욱 무력화한다”며 “개정안이 시행되면 현재 23만톤 수준의 초과공급량이 2030년엔 63만톤을 넘어서고, 쌀값은 지금보다 더 떨어져 17만원 초반대에 머무를 것으로 농촌경제연구원은 전망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업인들이 입게 된다. 농민 보호하겠다는 명분과 달리 더더욱 우리 농업을 파탄으로 몰 것”이라고 역설했다.

또 그는 “미래 농업에 투자해야 할 재원이 사라지게 된다. 개정안에 따른 재정부담은 연간 1조원 이상인데 이 돈이면 300개의 첨단 스마트팜을 조성하고 청년 벤처농업인 3천명을 양성할 수 있다”며 “농업경쟁력 강화와 청년농업인 육성에 써야 할 재원을 남아도는 쌀 매입에 쏟아 부으면 농촌의 혁신은 더 멀어진다.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창고에 수년간 보관하다가 5분의 1, 1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으로 주정용이나 사료용으로 처분하는 것은 혈세 낭비”라고 꼬집었다.

이 뿐 아니라 한 총리는 “진정한 식량안보 강화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미 자급률이 높은 쌀을 더 생산하는 것은 합당한 결정이 아니고 오히려 해외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밀, 콩 같은 작물의 국내 생산을 확대하는 게 국가 전체와 농민을 위한 결정”이라며 “개정안은 남아도는 쌀만 더 생산하게 하고 부족한 작물의 자급률을 높이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민들의 먹거리 수요 변화에 맞춰 농축산물, 수산, 가공품 등 다른 분야의 수급을 균형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농산물 수급에 대한 과도한 국가개입은 이미 해외에서도 실패한 정책으로 60년대 유럽에서도 가격보장제를 실시했다가 생산량 증가와 가격하락에 따른 농가소득 감소 부작용으로 결국 중단했고 태국도 2011년 가격개입정책을 펼쳤다가 수급조절 실패와 과도한 재정 부담으로 이어져 3년 만에 폐지했다. 시장 원리를 거스르는 포퓰리즘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며 “지난 정부에서도 그런 이유로 이미 반대했던 법안인데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는 식으로 다시 추진하는 것은 혈세를 내는 국민들에게 도리가 아니다”라고 민주당에 직격탄을 날렸다.

한 발 더 나아가 한 총리는 문재인 정부 때와 비교해 “지난 정부는 정책실기로 쌀값 대폭락을 초래한 바 있지만 우리 정부는 지난해에도 역대 수확기 최대물량인 45만톤의 시장격리 대책을 통해 쌀값을 빠르게 안정시켰다. 쌀값 안정과 수급균형 회복을 위한 우리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고 시장을 왜곡하는 정책이 아니라, 진정으로 농업을 살리는 다양한 지원정책을 통해 식량생산의 수급균형을 맞춰나가겠다”며 “쌀 소비 수요를 확대하고, 고품질 쌀 생산체계를 강화하는 등 쌀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집중하겠다. 밀, 콩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는 농민들에 직불금을 지원하고 수입 밀을 대체할 수 있는 가루쌀 산업도 활성화시키겠다”고 밝혔다.

◆ 법 하나에 왜 대국민담화까지?…양분된 거부권 찬반 여론 탓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양곡관리법 관련 당정협의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공동취재사진) ⓒ뉴시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양곡관리법 관련 당정협의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공동취재사진) ⓒ뉴시스

아울러 그는 “국민이 먹고 사는 문제, 농업, 농촌, 농민의 삶과 직결된 일로 정치적 이익을 추구해선 안 된다. 실패가 예정된 길로 정부는 차마 갈 수 없다”며 “양곡관리법 개정안 재의 요구를 대통령께 건의하고자 한다. 이런 결정은 국익과 농민을 위하고 올바른 길로 가기 위한 결단이라는 점을 국회와 농업계, 국민여러분께서 이해해주시길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덧붙였는데, 이처럼 한 총리가 법안 하나에 직접 대국민 담화까지 발표하고 나선 데에는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정치적 측면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란 점을 여론에 호소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실제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바라보는 여론의 시각은 조사기관마다 찬반이 엇갈릴 정도로 양분된 모양새인데, 스트레이트 뉴스 의뢰로 조원씨앤아이가 지난 25~27일 전국 유권자 2000명에게 실시한 ‘윤 대통령 양곡관리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찬반’ 여론조사(95%신뢰수준±2.2%P)에선 찬성 43.5%, 반대 52.8%로 ‘반대’가 ‘찬성’보다 오차범위 밖에서 높은 것으로 나온 반면 토마토그룹 여론조사 애플리케이션 ‘서치통’이 국민 5047명에게 지난 24~28일 실시한 조사에선 ‘식량주권을 생각해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대통령이 받아들여야 한다’가 43.7%, ‘거부해야 한다’는 답변이 과반인 56.3%로 상반된 결과가 나왔다.

특히 조원씨앤아이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윤 대통령의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를 놓고 진보층(찬성 17.5%, 반대 80%)과 민주당 지지층(찬성 11.5%, 반대 86.3%)에서 반대 여론이 높았다면 보수층(찬성 72.6%, 반대 23.9%)과 국민의힘 지지층(찬성 86.4%, 반대 10.4%)에선 찬성 여론이 높게 나오는 등 정치성향에 따라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린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다만 지지정당이 없는 무당층에서도 거부권 반대가 60%로 나왔기에 한 총리가 이날 국민들에겐 대통령에 거부권을 건의하게 된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한편 정치적 대응이 아니란 점을 여론에 호소하고자 굳이 “정치적 이익을 추구해선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비단 정부 뿐 아니라 이날 당정협의회에 함께 한 여당도 한 목소리로 여론전에 나서고 있는데,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당정협의회에서 직접적 당사자가 될 농민단체들이 반대하는 점을 들어 “이 법안은 대한민국 농업을 장기적으로 망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그래서 40여개가 넘는 많은 농민단체까지 이 법안에 반대하는 것”이라며 “21대 국회 내내 민주당은 의석을 앞세워 입법 폭주를 여러 차례 했는데 폭주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갔지만 아직도 그런 점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민주당의 강행 처리에 집중했다.

그러면서 주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집권여당일 때도 처리하지 않던 법안을 이제 와서 무리하게 강행 처리하는 이유는 일부 농민들의 관심을 사려는 의도와 윤 정부가 농민들을 위해지 않는 것으로 보이게 만들려는 의도”라고 주장했으며 같은 날 강민국 수석대변인도 당 차원의 공식 논평을 통해 “민주당이 의회 폭거로 강행 처리한 포퓰리즘 악법으로 쌀 농가 일부에 선심성 공수표 던져주고 표 얻어 보겠다는 얄팍한 계산이 깔린 ‘이재명 하명법’이다. 오늘의 표만 보는 민주당과 달리 국민의힘과 윤 정부는 우리 농업의 미래가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민주당 “정부, 농민 생존권 외면해…거부권? 다시 표결 추진”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의원 12명이 29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 해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 김경민 기자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의원 12명이 29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 해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 김경민 기자

무엇보다 법안에 대한 첫 대통령 거부권이 될 수 있는 만큼 ‘실력행사’로 억누른다는 인상을 주지 않고자 이날 정부여당은 “헌법상 마지막 남아 있는 대통령의 재의요구권”이라고 강조했는데, 이에 맞서 민주당에서도 같은 날 오후 오영환 원내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대통령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뒤로 숨기 바쁘더니 국무총리가 나서서 총대 메고 재의 요구를 건의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 건의에 대해선 거부권을 행사한다고 당당히 말하더니 재의 요구로 말을 바꾼다고 책임이 사라지나”라며 “농민의 생존권 요구를 외면하고 나아가 국가의 식량안보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응수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오 원내대변인은 “양곡관리법은 대한민국 쌀값 정상화법이다.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 추진을 반대하는 여론이 절반 이상”이라며 “무슨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것이냐. 국민 목소리를 끝내 거부한다면 대통령의 본분을 저버린 무책임한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라고 윤 대통령을 압박했는데, 민주당 소속인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과 위원들도 같은 날 국회 소통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한 총리가 쌀 과잉생산 문제가 생긴다고 주장한 근거를 꼬집어 “여당 의원조차 의구심을 표명한 농촌경제연구원의 잘못된 분석”이라고 정부의 대국민담화 내용을 반박하고 나섰다.

특히 김승남 의원은 쌀 과잉구조가 심화된다는 정부여당 주장에 대해 “정부가 쌀에 대해 아무 대책도 마련하지 않는 무능한 상황을 전제로 한 주장이다. 우리 당이 주장한 개정안대로 하면 매년 4만ha(헥타르) 이상의 쌀 재배면적이 타 작물 재배로 전환될 것인데 무슨 근거로 60만톤의 쌀이 과잉 생산된다는 것인가”라고 물었으며 안호영 의원은 한 총리가 내세운 태국 사례를 꼬집어 “태국은 우리 당의 안과 달리 쌀 생산 조정을 전혀 추진하지 않았고 또 쌀도 초과생산량이 발생하거나 쌀값이 폭락할 경우 매입하는 게 아니라 1년 생산량의 40%를 매입하도록 해 실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위성곤 의원은 “매년 국가 예산의 5%를 농업 예산으로 사용하는 미국은 주요 농산물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2019년에만 45조원을 투자했고 유럽연합도 2018년 17조원, 일본은 지난해 3조원을 투자했는데 우리나라는 식량안보지수가 OECD 38개 회원국 중 32위로 꼴찌임에도 불구하고 재정당국은 농업 예산 비중을 2010년 5%에서 2023년 2.7%로 축소했다”고 비판했는데, 그러면서 위 의원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국회에서 다시 표결하겠다며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하면 가결할 수 있기 때문에 다시 추진할 것”이라고 맞불을 놔 과연 어느 쪽이 이 ‘치킨게임’에서 웃게 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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