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 “죽기를 각오할 것”…패스트트랙 대응 고심 끝에 단식으로 ‘배수진’

[시사포커스 / 박상민 기자] 20일 오후 3시 자유한국당 황교안 당대표가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 후 무기한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시사포커스 / 박상민 기자] 20일 오후 3시 자유한국당 황교안 당대표가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 후 무기한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지소미아 종료와 패스트트랙 강행 처리가 목전으로 다가온 가운데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일 청와대 분수광장 앞에서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며 무기한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황 대표는 정치권에 입성한 이래 지난 9개월여 동안 장외집회부터 삭발투쟁은 물론 인재영입과 보수통합 추진 카드까지 직접 꺼내들었지만 그때마다 여러 논란에 휩싸이면서 기대한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만큼 사실상 배수진이나 다름없는 이번 단식 선언은 리더십 회복을 위해 최후의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무엇보다 제1야당 대표가 직접 단식농성에 나선 것은 지난 2003년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와 2009년 민주당 정세균 대표 이후 10년 만이다 보니 어떤 식으로 마무리되든 이번 사건이 향후 정국에 미칠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전에 내놓은 여러 카드와 달리 이번엔 당초 목표한 바를 이루고 당 지지율 상승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孫 단식으로 오른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黃 단식으로 저지될까

황 대표는 20일 “지소미아 파기와 공수처법·선거법의 패스트트랙 처리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이자 대한민국의 존립이 달린 일”이라며 “절체절명의 국가 위기를 막기 위해 무기한 단식투쟁을 시작하겠다”고 천명했다.

공교롭게도 황 대표가 무기한 단식투쟁을 선언한 이날은 지소미아 종료를 이틀 앞둔 날이기도 하지만 선거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올리기로 한 오는 27일로부터는 일주일 앞둔 시점이자 문희상 국회의장이 사법개혁안을 본회의 부의하기로 한 내달 3일까지도 2주가 채 안 되는 시점인데, 여당에서도 11월25일부터 12월15일까지 국외활동 금지령을 내리고 비상 대기할 것을 당부한 만큼 제1야당인 한국당에서도 황 대표가 단식으로 맞불을 놓으며 향후 1~2주 내 단기 결전을 보려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황 대표가 단식투쟁 목표로 내건 3가지 중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의 경우 지난해 12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전 대표가 이를 관철하기 위해 단식했다는 점에서 1년도 채 안 돼 이번엔 한국당에서 철회를 목표로 단식한다는 점인데, 당시와 차이점이 있다면 손 대표 등이 단식으로 압박했었던 민주당에선 사법개혁안 처리를 위해 이들의 협조가 필요한 부분도 없지 않아 이들의 요구를 빠르게 받아들여 9일 만에 손 대표의 단식은 끝날 수 있었지만 이번 황 대표의 단식은 정부여당에서 딱히 요구를 받아들일 만한 메리트가 거의 없다는 문제가 있다.

현재 민주당에선 한국당 황영철·엄용수 전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국회의원 재적수가 295명으로 감소해 당초 149명(재적 297명 기준)이던 의석 과반수 역시 148명(재적 295명 기준)으로 떨어진데다 무소속 손금주 의원이 지난 18일 입당하면서 민주당 의석은 129석으로 1석 늘어 정의당(6석), 민주평화당(5석), 대안신당(10석)과 공조하면 과반인 150석을 확보할 수 있는 만큼 본회의에서 한국당을 제외하고서라도 패스트트랙 법안 강행 처리가 가능한 상황이고, 지소미아와 관련해서도 문 대통령이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지소미아 종료 문제는 일본이 원인을 제공했다. 종료되는 한이 있더라도 일본과 안보상 협력은 할 것”이라고 밝힌 점에 비추어 종료 쪽에 이미 무게를 둔 것으로 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 갑작스러운 단식, 여론전 노린 승부수? 부득이 수세 몰린 선택?

그러다 보니 당청에서 받아들일 가능성이 희박한 카드를 던졌다는 점에서 황 대표가 어떤 의중을 갖고 단행한 것인지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 앞서 조국 전 법무부장관 문제로 여야가 격돌하던 지난 9월 삭발을 단행하고, 10월엔 개천절 장외집회에 수백만 인파를 결집시킨 끝에 여론의 관심을 끌어 모으고 결국 조 전 장관을 사퇴시킬 수 있었다는 면에서 이번에도 문 대통령이나 여당이 자신의 요구를 수용할 거라 기대했다기보다 단식을 통해 여론전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심산이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시사포커스 / 박상민 기자] 20일 오후 3시 청와대 분수대앞에서 자유한국당 황교안 당대표가 무기한 단식투쟁에 돌입하겠다며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시사포커스 / 박상민 기자] 20일 오후 3시 청와대 분수대앞에서 자유한국당 황교안 당대표가 무기한 단식투쟁에 돌입하겠다며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그래선지 황 대표는 이날 단식 직전 청와대가 아니라 국민을 향해 선언문을 낭독했는데, 이번 단식의 목표가 왜 중요한지 설명하려는 듯 “누군가 지소미아가 내 생활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공수처법과 선거법은 여의도 국회 담장 안 힘 있는 자들의 아귀다툼일 뿐 내 생활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이야기한다”면서도 “지소미아 폐기로 이제 미국까지 가세한 안보전쟁, 경제전쟁의 불구덩이로 대한민국을 밀어 넣어 그 충격은 우리 안방까지 들어올 것”이라고 주장한 데 이어 공수처법에 대해선 “문재인 반대자들은 모조리 사법정의란 이름으로 처단하겠다는 법”이라고 역설했으며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선 “문재인 시대보다 못한 시대를 만들어가려는 사람들의 이합집산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저들이 바라는 것은 바로 국민들의 무관심이다. 내 일이 아니라 한국당의 일일 뿐이고 우리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를 저들은 원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그동안 단식투쟁 목표가 국민여론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내용이면 결과가 좋았지만 찬반이 팽팽하거나 이념 지향적 요구일 경우엔 성공한 경우가 별로 없었다는 전례를 의식해 우선 단식을 정당화하기 위한 국민 설득에 방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한 발 더 나아가 황 대표는 자신이 전격 추진 의사를 표했으나 바른미래당 내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 측에서 저의를 의심하면서 지지부진한 상태에 빠진 ‘보수통합’ 문제도 이 자리를 빌려 재차 언급했는데, “문 정권의 망국정치를 분쇄하려면 반드시 대통합이 이뤄져야 하며 이외에도 어떤 대안도 없다. 자유민주주세력의 승리를 위해 각자의 소아를 버릴 것을 간절히 호소한다”며 “저는 이제 무기한 단식을 통해 소아의 마지막 자취까지 버릴 것”이라고 천명해 패스트트랙이나 지소미아 문제 뿐 아니라 당 혁신과 보수통합 등의 사안도 이번 단식을 계기 삼아 한꺼번에 풀어보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다만 원외 출신이다 보니 패스트트랙 등 원내 현안을 풀어나가는 데 제약이 있는 황 대표로선 원내대표마저 임기 만료 시점(내달 10일)도 다가오고 있다는 부담감 속에 투쟁 강도를 한층 높일 수밖에 없었다는 점도 있었을 것으로 비쳐지는데, 그런 면에서 부득이 삭발보다 더 나아간 ‘단식’이란 초강수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는 해석도 없진 않다.

◆ 黃 단식, 당 안팎서 혹평 쏟아져…결과 못 내면 리더십 치명타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특히 범여권에선 지난 18일 총선 승리에 직을 걸겠다고 공언한 황 대표가 조급한 마음에 단식 카드를 꺼낸 게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인데, 민주당에선 20일 이재정 대변인 논평을 통해 “황 대표의 단식은 떼쓰기, 국회 보이콧, 웰빙 단식 등만 경험한 정치 초보의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며 “민심은 이벤트 현장이 아니라 국회 논의의 장에 있다”고 일침을 가했고, 정의당에서도 유상진 대변인 논평을 통해 “주말마다 걸핏하면 길거리로 뛰쳐나가는 제1야당 대표 모습이 애잔하다. 국정실패는 한국당이 경쟁력 있는 정책과 제도로 메꾸면 될 일”이라며 “단식의 명분이 허술하고 조악하다”고 냉소적 반응을 내놨다.

이 뿐 아니라 평화당에서도 박주현 수석대변인 논평을 통해 “지금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한국당의 선거제 개혁방안을 들고 협상에 나서야 할 때”라며 “단식을 하는 것은 뜬금없는 행동이고, 의회정치·정당정치를 스스로 부정하면서 대권가도만 생각하는 소아병적 행태”라고 직격탄을 날렸는데, 심지어 바른미래당조차 최도자 수석대변인 논평을 통해 “문 정부의 국정 난맥이나 지소미아 연장이 황 대표 한 명의 단식으로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도 아니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회복하는 데 노력해 달라”고 황 대표에 촉구했다.

여기에 대안신당의 박지원 의원까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위기를 단식으로 극복하려 해도 국민이 감동하지 않으니 제발 단식하지 말라. 그 다음 순서인 사퇴가 기다린다”며 “국민이 바라는 정치는 장외투쟁이 아니라 국회를 정상화해 문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며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날선 비판을 가했다.

급기야 한국당 내에서도 쓴 소리가 나왔는데, 이날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불쑥 통합 카드 내 던지고, 받아 줄 리 없는 여야 영수 회담을 뜬금없이 제안하고, 준비 없이 청년과의 대화에 나섰다가 청년들로부터 질타 당했다. 좀 더 숙고하고, 몰고 올 파장을 검토한 후에 국민 앞에 나서라”고 일찍이 황 대표를 직격했던 홍준표 전 대표는 같은 날 ‘10월 국민항쟁 평가세미나’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황 대표의 단식에 대해 “문 대통령이 야당 전체를 깔보는데 단식한다고 해결될 문제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홍 전 대표는 같은 날 오후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이 중차대한 시기에 한 달 이상 당무 공백이 걱정”이라고 꼬집었는데, 이 같은 지적대로 황 대표가 만일 별 다른 결과를 얻어내지 못한다면 자칫 단식투쟁은 스스로를 옭아맬 자충수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단식은 시작하기는 어렵지 않더라도 목표한 바가 이뤄지지 않으면 정치적 부담 때문에 쉽게 중단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정치인에게 ‘양날의 칼’이기도 한데, 현재로선 단지 단식만으로 지소미아 종료나 공수처법·선거법 개정안 처리를 막을 수는 없는데다 목표를 이루지 못했더라도 물러날 수 있는 출구전략 역시 딱히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과연 황 대표가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나갈 것인지 많은 이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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