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셀트리온, 벤처 최초 대기업 지정에도 웃지 못하는 이유

▲ 셀트리온과 카카오가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서 삼성, 현대차 등 유수의 대기업들과 동일한 규제를 적용받게 됐다. ⓒ뉴시스
벤처기업 최초로 셀트리온과 카카오가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고 삼성, 현대차 등 유수의 대기업들과 동일한 규제를 적용받게 되면서 대기업 규제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4일 공정위에 따르면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의 65개 기업집단이 이번에 상호출자제한·채무보증제한 기업집단(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된 가운데 벤처기업으로는 최초로 셀트리온과 카카오가 포함됐다. 카카오는 자산총액 5조 1000억원, 셀트리온은 자산총액 5조8550억원이다.
 
이번 양사의 대기업 집단 지정을 놓고 벤처기업의 위상이 드높아진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카카오는 10년 전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인터넷 기업으로서 최초로 대기업 진입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 셀트리온 역시 제약 바이오 기업으로서 최초로 대기업이 되면서 코스닥 대장주로서의 위상이 한층 드높아질 전망이다.
 
하지만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될 경우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점에서 각자의 분야에서 기적을 써내리고 있는 벤처기업의 경영활동에 제약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재 대기업 집단 지정의 자산 기준은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이다. 5조원만 넘으면 카카오와 셀트리온도 자산 200조원대의 삼성전자와 같은 규제를 받아야 한다.
 
이에 이번 대기업 집단 지정을 계기로 대기업 집단에 대한 규제가 재정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반면 현재 지배구조 및 도덕성 등에서 떳떳하지 못한 대기업들이 처음부터 그랬겠냐는 빈축도 제기되면서 향후 논의 과정에서 충돌이 예상된다.
 
◆30여개 규제 신규 적용, 부담으로 작용
당장 이날 카카오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2500원(2.46%) 하락한 9만9300원으로 주저앉았다.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된 후 각종 규제 탓에 인터넷전문은행 등 향후 사업이 원활하게 운영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에서로 풀이된다. 셀트리온 주가는 3.15% 상승했지만 이는 강력한 램시마 호재가 대기업 집단 지정 악재를 덮어버린 것이라는 점에서 역시 우려는 여전하다는 평가다.
 
당장 대기업이 되면 공정거래법과 상법, 금융지주회사법 등 30여가지의 법률이 적용된다. 구체적으로 공정위에 의해 신규 상호출자제한 규제를 받게 되고 금융당국으로부터 금산분리 규제를 받는다. 채무보증도 금지되고 소속 금융·보험사의 계열사 주식 의결권도 제한된다.
 
이 같은 다양한 규제는 한 우물을 파고 있는 셀트리온보다 활발한 M&A로 사업 다각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카카오에 더욱 치명타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외부 벤처캐피탈로부터 투자도 받기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카카오의 자회사 케이벤처그룹이 신규 스타트업을 지원하기도 힘들어진다.
 
카카오는 카카오택시 서비스를 안착시킨 데에 이어 음악콘첸츠 기업 로엔, 모바일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 김기사를 최근 인수했고 대리운전과 헤어샵 등의 신규 온·오프라인 연계사업(O2O)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카카오가 대기업으로 묶이면서 향후 변동 방향성을 예측하기 힘든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의 진출도 조심스러워질 전망이다.
 
▲ 셀트리온 역시 지주사의 계열사 채무보증 금지, 일감 몰아주기 규제 적용 가능성 등에 향후 난관이 예상된다. ⓒ셀트리온
◆카카오, 인터넷전문은행 어쩌나…셀트리온도 자금 조달 난관
더 큰 문제는 당장 올해 하반기로 다가온 인터넷전문은행이다. 카카오는 카카오뱅크 컨소시엄을 구성,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금산분리 규정에 따라 카카오는 카카오뱅크의 1대 주주가 되기까지 험난한 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은행법상 비금융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한도는 최대 4%(의결권 없는 지분 포함시 10%)다. 카카오는 이에 현재 카카오뱅크 지분을 한도까지만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향후 은행법 개정을 통해 비금융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한도가 50%까지 높아지면 카카오는 1대 주주로 등극할 수 있게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되면서 이 같은 계획은 차질이 예상된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 상정된 은행법 개정안 두 가지 중 한 가지인 새누리당 신동우 의원의 법안은 대기업 집단의 지분 보유 확대를 제외하고 있다.
 
나머지 하나인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대기업 집단도 지분 확대를 허용하고 있지만 신동우 의원의 법안조차 야당의 반대가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김용태 의원의 법안이 통과되기란 쉽지 않다. 이 경우 컨소시엄을 주도하면서 기술과 자금을 대 놓고도 별다른 과실을 챙길 수 없는 상황이 나올 수 있다. 은행법 개정안의 통과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악재가 하나 더 얹어진 셈이다.
 
셀트리온 역시 난관이 예상되기는 마찬가지다. 셀트리온은 1999년 설립된 셀트리온헬스케어가 약품 판매 및 수출을 전담하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 규제가 적용되면 이 같은 방식은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로 규제 대상이 된다.
 
또한 그간 지주사 셀트리온홀딩스가 계열사들에 대해 채무보증을 하면서 자금을 조달하던 것도 어렵게 된다. 대기업 집단은 지주사가 계열사에 채무보증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셀트리온은 셀트리온홀딩스의 지급보증 하에 금융기관에서 4000억원 이상을 차입해 투자를 하고 있다. 약품 수출 및 연구개발에 필요한 자금조달에 차질이 생길 경우 역시 제약 바이오 기업에게는 치명타다.
 
◆“자산 기준 조정 필요” vs “대기업 규제 완화는 신중해야”
이에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물론 공정위 내부에서조차 단순히 5조원 이상으로 규정돼 있는 기준을 조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정거래법상 대기업 집단 규제 조항은 지난 1986년 삽입돼 올해로 30년을 맞았다. 대기업 집단의 무리한 사업 확장을 견제하고 투명한 지배구조를 확립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처음 대기업 지정 기준은 자산 총액 4000억원이었다가 1993년부터 상위 30대 그룹으로 바뀌었다. 이후 2002년 자산 2조원 이상으로 바뀐 뒤 2008년부터 9년 째 자산 5조원 기준이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창업한 지 10년 남짓인 카카오 등에서 보이듯이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가 커진 만큼 대기업 집단 지정 기준을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온다. 갓 대기업 집단에 진입하는 기업들에게 획일적인 규제가 너무 가혹하다는 이유다.
 
지난해 팬오션 인수로 이번에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된 닭고기 가공업체 하림의 김홍국 회장은 최근 한 강연에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이 되고 대기업이 되면서 수 십가지 규제가 더해진다”면서 “기업을 키우기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려는 피터팬 증후군이 확산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규모를 확장하려는 유인 동기가 떨어지게 된다는 분석이다.
 
공정위에서도 대기업 집단 지정 기준 조정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지금 경제 규모를 생각해볼 경우 이론적으로는 기준이 올라가야 하는 것이 맞다”면서 “상향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없지만 내년부터 대기업 집단 지정 요건을 7조원 이상으로 상향하는 방안 등이 고려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재벌 봐주기 의혹이 부담인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아예 기준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30대 대기업 중 삼성과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의 자산 비중은 나머지 26개 그룹의 자산 비중을 뛰어넘었다. 순이익 면에서 4대 그룹의 순이익은 44조8000억원으로 30대 그룹의 순이익의 95%를 차지했다. 몇 개의 상위 그룹만 규제해도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는 효과는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이 경우 규모가 큰 대기업과 규모가 작은 대기업으로 나눠 일부 거래 금지 행위 등의 적용을 달리 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반면 대기업 집단 규제 완화 움직임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반대의 목소리도 나온다. 대기업 규제를 하나 둘씩 풀기 시작하면 장기적으로 대기업 위주의 경제 구조가 심화될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 대기업의 은산분리 규제에 대한 은행법 개정안 등이 통과될 경우 삼성과 현대차가 금융업에 뛰어들 수 있는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의 숙제가 남게 된다. 야당은 은행법 개정안 논의에 대해 재벌의 사금고화 우려를 제기하며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상황이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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