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비자금 의혹 수사 착수

▲ 검찰이 최근 민영진 사장이 2011년 KT&G 계열사로 편입된 소망화장품을 통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조사에 착수했다.ⓒKT&G

취임 5년째를 맞는 ‘장수 CEO’ 민영진 KT&G 사장이 회삿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이 포착돼 검찰이 조사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자회사 ‘소망화장품’이 비자금 창구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검찰은 최근 민 사장이 2011년 KT&G 계열사로 편입된 소망화장품을 통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조사에 착수했다. KT&G와 소망화장품간의 자금흐름 내역과 민 사장을 포함한 경영진들의 계좌가 조사 대상에 올라있다.

이날 KT&G 관계자는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민 사장의 횡령 혐의에 대해 “현재 경위를 파악 중인 사안”이라면서 “검찰 조사가 시작된다면 성실히 협조하고 소명할 것”이라고 짧게 말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민 사장이 소망화장품을 비자금 창구로 이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자세한 사항 파악되지 않고 있다”며 즉답을 피했다.

◆ 뜬금없는 자금수혈, 왜?

지난달 KT&G는 우선주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소망화장품에 자금을 수혈한 바 있다. 이에 실적악화를 반복하며 완전자본잠식상태에 빠져있는데다 뚜렷한 수익성 모델까지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계열사에 이 같은 자금 투입은 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제기됐었다. 그런데 최근 검찰이 민 사장의 횡령혐의를 조사 중인 것이 알려지면서 당시의 자금 수혈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는 시각이 많다.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모회사인 KT&G는 지난달 24일 소망화장품의 우선주 9만4075주(16.67%)를 260억원에 사들였다. 이에 KT&G가 가진 소망화장품 지분율은 기존 50%에서 16.67% 늘어 66.67%가 됐다.

소망화장품은 2011년 KT&G에 인수된 지 3년만인 지난해 부채총액(681억원)이 자산총액(555억원)을 넘어서며 완전자본잠식상태에 빠졌다. 특히 이미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숍이 포화상태였음에도 2013년도에 ‘오늘(Onl)’을 런칭했다가 실패한 영향이 컸다. 당시 매출은 788억원으로 전년도 1260억원을 기록했던 것에 비해 37.5%나 떨어졌고, 영업손익 역시 적자 전환했다.

이전의 실적을 살펴보면, 2011년 인수 당시 11억원이었던 당기순이익은 2012년 95%나 떨어진 5210만원을 기록했고 2013년 -218억원이었다가 지난해 -128억원을 기록했다. 이에 KT&G가 소망화장품 인수 이후 실적개선을 위한 전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제기돼 왔다.

▲ 지난해 수난을 겪은 소망화장품, 예본농원, 렌조룩 등 세 회사의 공통점은 공교롭게도 민영진 사장 취임 후 계열사에 편입됐다는 것이다.ⓒKT&G

◆ 손대는 신사업마다 적자

소망화장품 뿐만 아니라 민 사장이 임기 내 시도했던 다른 신사업들도 뚜렷한 실적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KT&G는 2011년 12월 설립한 농업회사법인인 예본농원을 지난해 8월 정리했다. 예본농원은 KT&G가 종자개발과 경작 등 종묘사업을 하기 위한 취지에서 설립한 회사다. 그러나 설립 이후 이렇다 할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성급하게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손실만 보고 나온 셈이다.

같은 해 인수한 인도네시아 담배회사 트리삭티의 운영사 렌조룩의 경우 영업권으로 533억이나 지불했지만, 순이익이 매년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그 결과 현재 렌조룩의 영업권은 인수당시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인 171억 원이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수난을 겪은 소망화장품, 예본농원, 렌조룩 등 세 회사의 공통점은 민 사장 취임 후 계열사에 편입됐다는 것이다. 민 사장은 2010년 2월 KT&G 사장으로 취임한 뒤 국내외에서 인수합병을 추진하거나 신규 법인을 세우며 급속도로 몸집을 불려왔다. 이런 식으로 추가된 계열사만 민 사장의 임기 5년 간 총 11곳에 달한다. 하지만 11개 계열사 가운데 7곳이 사라지거나 적자상태로 머물러 있고 3곳은 매출과 순이익이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일각에서는 KT&G가 최근 몇 년 사이 몇몇 계열사들로 부터 부진한 실적을 보고받았음에도 배당금 규모 확대에는 한 치의 흔들림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과 관련해 ‘배당금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제기하기도 했다. KT&G는 지난해 주당배당금을 전년도 3200원 수준에서 3400원으로 올렸고, 따라서 배당금총액은 2013년 4029억원에서 2014년 4281억원으로 증가했다.

◆ 가라앉지 않는 ‘정부 커넥션’

한편, 민 사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사장으로 취임해 3년 임기를 끝냈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을 앞두고 연임에 성공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는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이 와중에 지난 2월 親정부 인사로 분류되는 김인호 무역협회장이 KT&G 사외이사 후보직에서 자진사퇴하면서 KT&G가 정부의 낙하산 인사를 수용했다는 의혹 해소를 위해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김인호 무역협회장은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과 박근혜 정부 제2기 중장기전략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KT&G의 사외이사로 2012년 2월에 신규 선임됐다.

이보다 앞서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CGCG) 김 무협협회장을 사외이사로 재선임하는 안건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CGCG는 “민영화된 공기업의 경우 정부지분이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정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다”면서 “KT&G의 경우도 관료 출신의 친정부 인사가 사외이사로 선임될 경우 KT&G가 아직까지 정부의 낙하산 인사를 수용해준다는 의미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에 다시 한 번 김인호 후보자가 사외이사로 재선임 된다면 KT&G는 또 다시 외압에 시달린다는 의혹을 달고 다닐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 사장의 ‘횡령 혐의’에 대한 검찰조사가 시작되면서 그간의 업적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연임후 담배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등 KT&G를 무리 없이 잘 이끌어왔다는 평가도 있지만, 신사업 부분에서의 실패가 반감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편의점에서 자사 담배 제품을 더 많이 진열하도록 하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자사 제품만 취급하면 이익을 제공한 정황이 공정위에 적발되면서 기업의 도덕성도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김 무역협회장의 자진사퇴로 마무리된 현 정부 낙하산 인사 논란 역시 민 사장에 대한 평가에 악재로 작용한다.[시사포커스 / 진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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