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이익 = 국부유출’ 공식 깨지나…엘리엇의 ‘큰 그림’ 더욱 복잡해져

▲ 메릴린치, LA다저스 등에 대한 투자로 잇따라 구설수에 올랐던 한국투자공사가 엘리엇에 5000만달러를 투자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진은 한국투자공사가 입주해 있는 스테이트타워남산 전경. ⓒ한국투자공사

한국투자공사(KIC)가 안홍철 사장의 호화 출장 논란, LA 다저스 투자 논란 등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받고 있는 와중에, 과거 엘리엇에 투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9일 투자은행(IB) 업계 및 다우존스,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에 따르면 한국투자공사는 2010년 10월부터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에 총 5000만달러(약 549억원)를 투자해 40% 가량의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에 반발, 삼성물산과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2005년 7월 설립된 한국투자공사는 정부의 외환 보유액을 운용·관리하는 국부펀드로서 국내외 주식이나 채권, 부동산에 주로 투자하다 2010년 대안투자로 범위를 확대했다.

전체 자산 운용규모는 850억달러(약 100조원)로 이번에 엘리엇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 5000만달러는 한국투자공사의 헤지펀드 총 투자 자금은 26억달러다. 한국투자공사는 이 26억달러를 헤지펀드 20여곳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왜 하필 엘리엇…미묘한 파장
국부펀드 등 공적인 목적으로 조성된 펀드가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것은 국내외에서 드문 일은 아니고 엘리엇 투자로 인한 수익률도 높은 편이지만, 하필 공교롭게도 사실이 알려진 시점이 삼성전자와 엘리엇이 합병 비율을 놓고 표대결을 앞둔 상황이라는 점은 미묘한 파장을 부르고 있다.

일단 한국투자공사 측은 철저히 수익률에 기반한 투자인 만큼 불필요한 오해는 삼가달라는 입장이다. 한국투자공사 추흥식 부사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10년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과정에서 엘리엇 쪽에도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며 “국부펀드로서 철저히 수익성을 기준으로 투자하게 된 것”이라고 투자 배경을 설명했다.

당시 엘리엇은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매년 14~15% 가량의 수익률을 내는 등 우수한 운용성과를 자랑했다. 엘리엇은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대표격으로 전세계 국부펀드와 연기금의 자금을 운용하고도 있다.

엘리엇이 반대 움직임을 본격화하고도 그간 입을 다물고 있던 한국투자공사는 투자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불거지자 “엘리엇이 단순히 투자 차익을 노리고 삼성을 압박해 삼성물산 보유 지분(7.2%)를 털고 나가는 ‘먹튀’를 하는 등 국익을 훼손하는 행동을 한다고 판단되면 투자금을 회수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현재 엘리엇이 재계는 물론 정치권과 시민단체, 더 나아가 국민감정까지 뒤흔들고 있음을 감안하면 이 같은 해명은 애매모호한 원론적인 답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투자공사가 밝힌 투자금 회수 이유에 ‘먹튀’를 제외하면 ‘국익을 훼손’이라는 애매모호한 표현 뿐이다. 

▲ 한국투자공사가 공교롭게도 엘리엇과 얽힌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익에 우선시되는 쪽으로 결정하겠다는 국민연금의 국익 프레임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 / 홍금표 기자

◆‘엘리엇 이익 = 국부유출’ 공식 깨져…국민연금 고심 깊어질 듯
더구나 현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의 합병 비율을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는 엘리엇에 국가 자금이 투자돼 있다는 사실은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당초 엘리엇의 행태를 비판하는 입장에서 내놓는 근거는 합병 무산으로 인해 국가 경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 역시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공언한 상태다.

하지만 엘리엇에 판세가 유리하게 돌아갈수록 수 백억원을 투자한 한국투자공사의 수익률이 올라갈 확률도 높아진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2010년에 투자를 한 만큼 그 배경에 대해 의심을 하는 시선은 없지만, 사태 추이에 따라 비판 세력이 내세우는 논리인 ‘국가 경제가 흔들릴수록’ 한국투자공사는 이득을 얻게 되는 셈이다.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하겠다고 공언한 국민연금의 고민도 깊어질 전망이다. 한국투자공사의 투자 사실이 알려지면서 엘리엇의 이익이 국익과 상충된다는 프레임 자체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엘리엇의 요구가 대기업 경쟁력 제고와 투명성 강화라는 측면에서 오히려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자문 결과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소방수론’이 빛을 잃을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아예 국민연금이 한국투자공사처럼 순수하게 수익률만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미 국민연금은 2006년부터 대체 투자를 늘려 2013년 말 기준 37개 사모펀드에 4570억원을 맡겼고 지난 2월에는 헤지펀드도 투자 가능 대상에 포함한 상태다.

한편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당연히 한국투자공사가 그간 엘리엇이 행동에 나서기 전에 움직임을 파악했는지의 여부로 시선이 쏠리기도 했지만, 한국투자공사 측은 투자 조건상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고 해명했다.

한국투자공사는 “엘리엇은 블라인드 투자 방식으로 펀드를 운용하고 있으며 우리도 동의했다”면서 “수익률을 비롯한 운용성과는 보고받지만, 어디에 투자를 했는지는 공개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한국투자공사는 “상당수의 헤지펀드는 투자처 공개를 원하면 아예 투자금을 받지 않는다”면서 “엘리엇의 어떤 펀드에서 이번 사태에 관여하고 있는지조차도 파악이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오는 17일 삼성물산 임시주주총회에서 양측의 대결은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맺게 된다. 추후 무효 소송 등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나중의 문제다.

◆KIC, 감사 와중에 안팎으로 어수선 

▲ 하필 이 사실이 알려진 시기는 감사원이 한국투자공사(사장 안홍철·사진)에 대한 감사에 착수한 시점과 일치한다. 가뜩이나 LA다저스 투자 논란, 호화 출장 논란 등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엘리엇 투자 논란은 더욱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투자공사

이처럼 복잡미묘한 엘리엇의 ‘큰 그림’에 원치 않게 포함된 한국투자공사는 공교롭게도 현재 투자 결정 과정 등에 대한 논란 탓에 최근 감사원의 감사를 받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안홍철 사장에 대한 비난 여론으로 폐지 가능성까지 대두돼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안팎으로 악재들이 연달아 펀치를 날리고 있는 셈이다.

9일 감사원은 지난 6일부터 국부펀드 한국투자공사에 대한 감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 감사는 지난달 1일 국회에서 제출한 감사요구안이 접수되면서 시작됐으며, 안홍철 사장을 풍전등화의 위치로 몰아넣는 결정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 감사의 쟁점은 무산된 미국 프로야구 구단인 LA다저스에 대한 투자 결정 과정과 안홍철 사장의 호화 출장 논란, 부동산 투자 등이다. 국회는 안홍철 사장 취임 이후 부동산 투자, 위탁투자운용세칙 운영, 각종 대체투자 사업의 수익성과 리스크 검증 등에서 문제점이 제기됐다면서 감사원에 관련 감사를 요구했다.

특히 LA다저스 투자 건은 박찬호, 류현진 등 덕에 유명해진 LA다저스의 위상 때문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결국 숱한 논란 끝에 투자가 무산된 건이다. 이번 국회의 감사원 감사 요구의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적자 상태인 LA다저스 지분 인수를 추진해 오던 한국투자공사는 지난 4월 지분 19%를 4000억원에 인수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구단주인 구겐하임 파트너스와의 협상에 나섰지만, 적자 상태인 LA다저스에 투자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결정이었냐는 의문이 잇따라 제기됐다.

한국투자공사는 “지분 19%를 4000억원에 사들일 예정이며 최소 3%의 수익률을 보장받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이는 한국투자공사의 평균 수익률인 10%~15%의 반도 되지 않는다. 더구나 투자 계약 조건 상 10년간은 3%의 보장수익을 전혀 회수할 수 없고, 구겐하임 파트너스가 향후 5년 정도 추가 적자를 예고한 것으로 확인돼 파문이 확산되기도 했다.

가뜩이나 수익률 3% 및 10년이라는 조건을 고려하면 적금이나 연금보험과 다를 바도 없는데 굳이 위험한 투자를 왜 하려고 하느냐는 얘기다. 가뜩이나 한국투자공사는 앞서 메릴린치 투자로 7억2000만달러의 손해를 본 지 얼마 되지 않은 전력도 있던 상황이었다.

◆‘풍전등화’ 안홍철 사장, 감사 결과에 운명 달려
결국 숱한 논란 속에 한국투자공사는 LA다저스 투자 계획을 철회했지만 곧바로 안홍철 사장의 호화 출장 논란이 뒤를 이었다. 자료에 따르면 안홍철 사장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14개월간 24차례 걸쳐 115일간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 출장비로 총 2억1681만원을 쓴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총 72일의 숙박비용이 4159만원에 달했다. 이는 해 하루 약 58만원 꼴로 국무위원급에 허용되는 51만3000원보다도 많다.

특히 안홍철 사장은 지난해 11월 싱가포르에서 사흘 밤을 머무르면서 225만원을 내 1일당 75만원을 지불했고, 올해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하얏트 호텔, 뉴욕 그랜드하얏트 호텔, 런던 사보이호텔 등에서 3박씩 머무르면서 각 호텔당 140만~200만원을 지출했다. 고급 렌터카 이용비도 총 1722만원이 별도로 들어갔다.

한편 감사원은 예비감사를 거쳐 지난 6일부터 한국투자공사를 방문해 주요 자료를 수집하고 현장 인터뷰를 하는 등 실지감사에 돌입했다. 감사원은 오는 21일까지 실지감사를 마칠 예정으로, 이후 적발사항에 대한 한국투자공사의 의견을 듣고 감사보고서를 작성한 뒤 감사위원회 의결을 거쳐 감사 결과를 확정하게 된다.

관련법상 국회에서 요구한 감사사항의 경우 기본 3개월간 감사를 실시하고 필요할 경우 감사기간을 2개월 연장할 수 있다. 따라서 빠르면 10월까지는 감사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의 분위기를 볼 때 연달아 논란에 휘말리고 있는 안홍철 사장의 운명도 감사 결과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안홍철 사장은 ‘친박 낙하산 인사’라는 꼬리표에 고 노무현 대통령 등 야권인사에 대한 막말 트윗 논란으로 그간 숱한 여야의 사퇴 요구에도 버티기에 돌입, 소위 국회에서 ‘찍힌’ 상태다. 정치권 및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라 안홍철 사장의 운명이 결정될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한국투자공사법에는 사장 신분보장 규정이 있어 경영상 이유 외에는 해임이 불가능하다. 안홍철 사장의 버티기에 질린 국회는 한 때 한국투자공사를 폐지하는 법안까지 추진하기도 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