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재부-한은 엇갈리는 대책 방향…컨트롤 타워 절실

▲ 가계부채 총액이 11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가계부채의 증가폭이 너무 가파르다며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가계부채가 한국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pixabay

가계부채 총액이 11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가계부채의 증가폭이 너무 가파르다며 크게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위와 기재부, 한은이 내놓은 가계부채 대책은 각각 다르다. 그조차도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가계부채 문제를 책임질 ‘컨트롤타워’가 절실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1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분기중 가계부채 총액은 1099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4월 한 달 동안 예금은행과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의 전체 가계대출 잔액은 765조2000억 원이다. 이는 전달보다 10조1000억원 증가한 수치다. 5월 중 은행권 가계대출이 7조3000억원 늘어난 점까지 감안하면 현재 가계부채 총액은 이미 1100조원을 훌쩍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가계 소득 증가율을 추월한 가계부채 증가율은 4~5월 사상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고, 이 추세는 지금도 꺾이지 않고 있다.

국내 소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미국 중국 독일 등 주요 선진국보다 높은 수준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81%로 미국(77%)보다도 높고,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지난해 기준 164.2%로 치솟아 OECD 평균치(135%)를 뛰어 넘었다.

더욱이 저소득·저신용층에서 대출이 늘고 있는 현상도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사상 최저로 떨어졌는데도 오히려 제2금융권의 신용대출은 증가하고 있다.

지난 4월말 은행권의 마이너스 통장 대출 등 기타대출이 한달 새 5000억원 늘어나는 동안 제2 금융권의 기타대출은 1조6000억원 증가했다. 고금리에도 불구하고 신용대출이 늘어났다는 건 은행권 대출이 어려운 소득 계층 가운데 생계 자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빌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면 가계 부채의 질적수준은 급속도로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폭주하는 가계 부채…증가속도 ‘과속’

문제는 가계빚이 쌓이는 속도다. 빨라도 너무 빠르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 과거 10년 동안 명목 GDP가 연평균 5.4% 증가한 것에 비해 가계부채는 연평균 8.2% 증가했다. 2015년 들어 예금취급기관 대출금 기준 가계부채 증가 속도는 9.3%로 과거 10년 동안 연평균 증가율인 7.7%보다 더 가팔라지고 있다. 미국, 일본, 영국 등 선진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감소한 것과는 대조적인 현상이다.

특히 지난 1분기 가계부채 증가율은 7.3%로 이미 가계소득 증가율(2.6%)의 약 3배에 달하고 있다. 돈을 버는 속도 보다 빚이 쌓이는 속도가 그 만큼 빠르다는 뜻이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현재 가계부채는 구조개선이 쉽지 않은 수준”이라며 “가계 가처분 소득보다 부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한계에 도달하는 계층부터 점차 부실 위험이 확산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선태 KB금융경영연구소 거시분석실장도 “일단 상반기까지는 정책 당국에서 가계부채를 어느정도 관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본다”면서도 “하지만 GDP(국내총생산)가 늘지 않는 상황에서 가계부채의 증가세를 볼 때 위험 언저리에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가계부채 총량이 사상 최고치를 갱신하는 것은 당연하게 볼 수 있지만 문제는 증가 속도”라며 “명목 GDP와 가계소득의 증가 속도는 3~4%에 불과한데 가계대출 증가 속도는 7~8%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위, 총량규제보다 질적 구조 개선?

▲ 금융위는 총량규제 없이 질적 구조 개선을 통해 가계부채 문제에 대응하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 사진 : 홍금표 기자

금융위는 총량규제 없이 질적 구조 개선을 통해 가계부채 문제에 대응하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11일 여의도 금감원 11층에서 열린 통합연금포털 오픈 행사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가계부채 리스크 총량규제의 경우 “기존의 입장과 달라진 것은 없다”고 언급했다. 임 위원장은 지난 4월 “가계부채의 총량을 감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총량을 감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현 시점에서 경제를 더 어렵게 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총량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4월말 기준의 연체율이 0.38% 정도에 그치고 있고, 늘어난 대출이 건전성이 양호한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이란 점에서 아직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이러한 판단 아래 가계부채의 총량규제 보다는 질적 구조 개선에 우선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금융위는 오는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현황보고에서 가계부채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아나가는 '분할상환대출 관행 정착'을 최우선으로 실시키로 했다. 또 올해 하반기중 상호금융권의 토지 및 상가담보대출에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유사한 규제를 도입한다.

아울러 금융위는 시중은행이 스스로 분할상환 대출을 취급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여러 개의 안을 놓고 기획재정부와 국토부, 금융위, 금감원, 한국은행 등이 참여한 가계부채관리협의체에서 고민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다만 아직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또 상호금융권의 토지 및 상가담보대출은 억제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토지 및 상가 담보가치의 일정비율 이하로 대출금액을 제한하는 토지·상가담보대출 담보인정한도가 하반기 중 도입된다. 또 비주택 담보평가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연체율은 0.78% 정도,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0.45% 정도 되는데 미국의 경우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이 4~5%나 된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으로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여러가지 여건들을 고려할 때 가계부채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며 “일각에서 총량 관리를 말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총량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와 관련, 한 전문가는 “이제는 가계부채의 상대적 비율을 선진국과 비교해서 위험하지 않다는 논리는 접어야 한다. 예를 들어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중, 원리금 상환부담 비율 등이 대표적이다. 각 국의 경제 환경이 다를 뿐만 아니라 선진국의 경우 이미 가계의 금융자산 축적도가 높다는 차이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은, “부채 총량 관리 적극 나서야”

이 같은 입장은 한국은행과 정반대의 방향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11일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 이후 통화정책방향 기자 간담회에서 금통위원들과 공유한 내용을 직접 공개하며 “가계부채가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발전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부채 총량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 이주열 한은 총재는 “가계부채가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발전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부채 총량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 사진 : 홍금표 기자

그동안 이 총재가 가계부채 증가세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적이 있지만 금통위원들의 인식까지 공개하며 적극적인 대응 마련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금융권에서는 특히 가게부채의 총량 관리를 ‘콕 집어’ 주문한 점도 이례적이라고 평하고 있다.

이 총재는 그 동안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소득 증가율과 함께 바라보면서 '부채 증가율 억제는 소득 증가율 이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가계부채의 절대 수준을 줄이는게 능사는 아니라는 견해였다. 하지만 이 총재는 최근 이와 같은 입장을 뒤집었다. 그만큼 가계부채가 지닌 문제를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실제로 이 총재는 “가계부채의 빠른 증가세가 지속될 경우 가계소비를 제약하고 금융시스템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가계부채에 대한 경계심을 높여야 한다”며 “정부와 감독당국 등과 긴밀히 협력해 가계부채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이조차도 ‘모범 답안’이 아닐 수 있다는 입장도 있다. 전문가들 역시 총량규제를 두고 관측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 전문가는 “올해 3월에 이어 6월에도 금리인하를 단행하여 기준금리가 역대 최저 수준인 1.5%를 기록했다. 이 정도면 국민들이 아무런 부담없이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총량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총량 규제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 교수는 “총량관리를 하려면 결국 정부가 창구 지도를 해야 하는데 저신용자들의 은행 대출 문턱이 높아지고 관치 논란이 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8월 LTV와 DTI를 완화하고 그 이후 4번 기준금리를 내린 것은 가계부채 증가를 감내하더라도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의도였는데 (총량 관리는) 이런 흐름과 배치된다”며 정책의 일관성 훼손을 우려했다.

◆컨트롤 타워가 없다

금융위와 기재부, 한은, 그리고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부채 대책이 저마다 제각각인 것은 이 문제를 책임질 ‘컨트롤타워’가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금융당국과 관련업계에 따르면 ‘가계부채관리협의체’는 각 부처간 의견이 엇갈려 3개월이 되도록 구체적인 대책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3월, 정부는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으로 가계부채 관리협의체를 구성해 가계부채에 대한 현황과 인식을 공유하고 안정적인 관리 방안을 모색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협의체 반장은 기재부 차관보, 반원은 기재부·국토부·금융위·한은·금감원 등 국장급 이상으로 구성하고 필요하면, 한국개발연구원(KDI), 금융연구원, 주택금융공사, 신용정보사 등 관련 연구원과 기관도 참여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속도가 비정상적이라는 데에만 인식을 같이할 뿐, 총량이라든지 통제 가능한 수준인지, 가계부채와 관련된 통화정책이나 거시정책에선 시각차가 크다”며 “가계부채관리협의체의 반장 역할을 기재부가 하다보니 가계부채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다는 애기가 금융당국 내에서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소비심리와 경기부양 의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가계부채 뇌관을 제거하기 위해선 일관된 정책을 끌고 나갈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시사포커스/성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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