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조선 비상…수출중소기업들, 생존 경쟁 내몰려

 

▲ 23일 원-엔 환율이 903원까지 뚝 떨어지는 등 엔저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우리나라 수출에 비상등이 켜졌다. ⓒ뉴시스

원-엔 환율이 900원선까지 떨어지는 등 엔저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우리 나라의 수출에 큰 타격이 예상되고 있다. 

23일 재정환율인 원-엔 환율은 903원까지 떨어지며 2008년 2월 28일 이후 7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 우리 경제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재정환율이란 원화와 엔화를 직접 맞바꾸는 외환시장이 없기 때문에 각각의 달러 대비 환율을 기준으로 간접 산출하는 방식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원-엔환율이 900원대로 하락하면 연평균 총수출은 4∼8%까지 줄고 수출기업의 영업익은 3% 이상 감소한다. 엔저로 현재보다 수출이 악화되면 경제성장률은 2%대로 하락하게 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원-엔 환율이 1% 하락하는 경우, 우리나라 총 수출은 0.92%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품목별로는 철강과 석유화학, 기계 수출의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됐다.

또한 이처럼 엔저 현상이 가속화됨에 따라 대일 수출 등 한일 교역이 크게 줄고 있으며,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과 수출 경합도가 높은 업종과 기업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지난 1분기 중 석유제품(-54.3%), 철강판(-33.1%). 금형(-19.3%), 철강관 및 철강선(-19.0%), 정밀화학원료(-17.8%), 합성수지(-17.6%) 등의 수출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원-엔 환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은 일본이 지난 2012년부터 시작한 ‘아베노믹스’를 더욱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금융위기 전 900~1000원 수준에서 움직이던 원-엔 환율은 세계 금융위기 직후 2008년 하반기부터 2012년 말까지 1200~1600원선에서 상승세를 보여 왔다. 하지만 일본이 아베노믹스 등의 양적완화를 강화하고, 더불어 미국이 양적완화를 종료하면서 금리인상 시기를 살피고 있는 상황이 맞물려 엔화 약세 흐름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엔저 현상은 기본적으로 한국 수출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악재로 작용한다. 상대적으로 원화 값이 올라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국수출입은행 조사에서도 수출기업들은 일본과 수출경합이 높은 기계류(8.7% 감소)와 일본 수출 비중이 높은 문화콘텐츠(6.7% 감소), 석유화학(6.3% 감소), 선박(4.7% 감소) 등이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 원-엔 환율은 2012년까지만 해도 1200~1600원선을 유지했지만 아베 신조 총리가 양적완화를 강화화는 아베노믹스를 꾸준하게 밀어붙이면서 엔저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뉴시스

◆자동차·조선업, 일본 업체와의 경쟁에 울상
특히 일본 업체와 세계 곳곳에서 경쟁을 펼치는 자동차업계는 울상을 짓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1∼3월 국내 완성차업체는 73만5635대를 수출하면서 수출량이 전년 동기 대비 6.6% 감소했다.

반면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엔저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도요타를 필두로 스즈키·마쓰다·미쓰비시·후지중공업 등 일본 자동차 업체 5곳은 지난해 4~12월 영업이익이 나란히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들 기업은 2014 회계연도(2014년 4월~2015년 3월) 전체로도 기록적인 실적개선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기아차는 1분기 미국 판매량이 6.9% 증가하면서 점유율은 7.8%에서 7.9%로 상승하는 데 그쳤다. 반면 도요타는 올해 1분기 미국 판매량이 10.5% 늘면서 미국 점유율이 1년 전 13.9%에서 14.6%로 높아졌다.

아시아 지역의 가장 큰 시장인 중국에서도 현대·기아차(점유율 10.5%)가 선전하고 있지만 일본 기업들이 엔저에 따른 원가절감을 무기로 마케팅비용을 뿌려댄다면 장기적으로는 타격이 예상된다.

일본·중국 등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조선업계도 엔저 직격탄에 난감한 기색이다. 일본 조선업체들은 엔저를 등에 업고 지난 1월 월간 선박 수주량에서 7년 만에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조선업계는 엔저로 일감 확보에 비상등이 켜졌다. 수주가뭄으로 국내 조선업계가 2018년 이후 일감을 아직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본 업계에 일감을 빼앗기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최근 조선업의 불황을 타개할 해결책으로 주목받고 있는 고부가가치 선박 액화천연가스(LNG)선 수주 물량을 일본 업체들이 꾸준히 늘려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우리 나라 조선업계를 위협하고 있다. 가뜩이나 중국 업체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우리나라 조선업계로서는 일본 조선업체들의 부각이 부담스럽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술력과 노하우가 뛰어난 일본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까지 갖춰 경쟁이 한층 치열해졌다”고 전했다.

◆중소기업들, 생존 경쟁 내몰리나
대기업들이 경쟁력 약화를 고민하고 있다면 수출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들은 그야말로 생존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다. 대기업과 달리 환율 위험관리 능력이 취약한 상황에서 엔화 가치가 급추락, 아예 수출 포기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업체와의 경쟁이 심한 자동차.철강.금속.기계 등 수출 제조업종의 관련기업들은 가격경쟁력 유지에 비상이 걸렸다.

일본 수출 비중이 높은 금형업체의 한 관계자는 “엔저에 따른 채산성 악화로 우리나라 금형업계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며 “엔저현상이 계속될 경우 수출 경쟁력이 전반적으로 악화돼 일본은 물론 전 세계 금형 수출에 악영향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특히 현재 일본이 주력 시장인 수출 기업들은 심각한 실적악화가 우려되고 있다. 중소기업의 경우 우리와 일본의 산업구조가 비슷한 데다 전체 중소기업의 15% 정도만 환위험 관리를 하고 있어 엔저의 충격을 고스란히 입게될 상황이다.

중소기업연구원 관계자는 “일본과 경합하고 있는 철강 금속 기계 등의 분야에서 수출 위축이 상대적으로 크다”며 “단기적으로는 수출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지원 방안이 필요하고, 장기적으로는 환리스크 관리 능력을 높일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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