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中에 샌드위치…고급화·다양화·친환경 전략 펼쳐야

 

▲ OECD는 한국 조선업을 향해 “심각한 시험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그 말처럼, 한국 조선업은 중국과 일본 사이의 ‘샌드위치’ 신세가 된 것. 이를 증명하듯 지난해 조선3사의 실적은 곤두박질쳤다. ⓒ뉴시스

한국 조선업이 위기에 처해 있다. 저가를 무기로 삼은 중국과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 사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국내 조선3사 중 대우조선해양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세계 1위 현대중공업은 지난 한 해 창사 이후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세계 2위 자리를 지켰던 삼성중공업도 같은 기간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각각 80.0%, 76.7% 감소했다. 이같은 상황에, 전문가들은 고급화·다양화·친환경 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 조선업이 “심각한 시험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OECD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 조선업이 금융위기 여파로 수익성·유동성이 타격을 받았다며 이같이 평가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형 상장 조선사들의 핵심 수익성 지표인 매출액 대비 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EBITDA) 비율은 2012년 현재 5.1%로 2008년(약 11%)의 절반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 같은 비율은 같은 해 일본(7.4%), 중국(9.1%), 독일(10.6%)의 경쟁사들에 모두 뒤처진 것이다.

이들 조선사의 EBITDA 대비 부채 비율도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에는 1.5배 미만이었지만, 2012년에는 6배 이상으로 부풀어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간주되는 3배를 훌쩍 넘어섰다.

또 일본 조선사들의 단기채 비중이 27%에 그치고 대부분이 장기채인 반면, 한국 조선사들의 단기채 비중은 50% 이상이다. 이에 따라 모든 대형 조선사들이 자금 손실을 메우기 위해 외부 자금 조달에 나서야 했는데, 이는 장기적으로 부채 증가와 투자 저하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지적이다.

실제로 조선업계 경영이 악화하는 과정에서 산업은행이 대형 조선사들의 대주주가 되는 등 정부 기관의 조선사 지분 소유가 늘었다. 이를 기반으로 향후 조선업계 실적이 더 나빠질 경우 정부 재정에 미치는 리스크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보고서는 대형 조선사들이 재무적 압박에 처할 경우 심각한 고용 문제로 직접 이어질뿐더러 금융계의 간접비용 부담도 키워 한국경제 전반에 ‘도미노 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보고서는 정부의 조선업에 대한 개입 정도와 위험 노출도가 커짐에 따라 정부가 공평한 경쟁 환경을 유지하면서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이 핵심 과제가 됐다고 관측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조선업에 대한 리스크를 분산해 위험 노출도를 투명하게 하고 정부 재정에 큰 위험성이 되지 않도록 하면서 업계 경쟁에서 중립을 지키는 데 신경 써야 한다고 보고서는 권고했다.

또 정부가 대형 조선사에 구제 신호를 보내는 것은 도덕적 해이 문제와 기업들이 구조개편을 미루도록 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으므로 공적 개입의 비용과 효과를 조심스럽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日·中에 샌드위치…위기의 조선업
11일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조선산업의 글로벌 위상 변화와 향후 전략’에 따르면 한·중·일 3국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2000년을 기점으로 확연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한국이 하락세에 접어든 반면 중국은 현상유지, 일본은 상승세로 반전했다.

낮은 가격과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업은 중국과 엔저의 기세를 탄 일본 사이에서 한국 조선업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선박엔진을 포함해 기자재 자급률 등 조선산업 인프라와 함께 연구개발, AS 및 품질보증 등 품질 면에서 3국 중 가장 우월한 것으로 분석됐다. 선박금융 등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내수 선박 비중이 한국에 비해 4배가량 높은 점도 장점이다. 반면 한국은 지난해 유동성 위기 탈출에만 몰두해 자국 선사의 발주 물량이 0건이었다.

국제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1월 일본 조선사는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의 45.9%를 차지하며 2008년 3월 이후 7년 만에 세계 1위로 올라섰다. 한국은 30.9%로 2위, 중국은 17.6%로 3위를 기록했다.

1950년대부터 2003년까지 줄곧 세계 1위를 달렸던 일본은 한국에 패권을 내줬지만 최근 엔화 약세에 따른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재기를 꿈꾸고 있다. 특히 최근 일본 내 조선사 간 합병과 공동출자 등 구조조정이 진행되며 5개사 중심의 대형화 체제를 갖춘 뒤로 영향력이 더 커지는 모양새다.

중국은 가격 측면에서 경쟁력이 월등했다. 선박 생산의 30~40%를 차지하는 인건비의 경우 한국과 일본의 40% 수준으로 나타났다. 주 원료인 후판 가격도 한국과 일본에 비해 각각 톤당 6달러, 14달러 가량 저렴했다. 다만 생산성과 신뢰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건조능률은 한국과 일본의 절반 수준에 그쳤고, 납기지수는 80% 수준에 머물렀다.

다만 중국 조선업체들도 기술력 부족을 정부의 탄탄한 금융지원으로 만회하며 벌크선과 컨테이너선 등을 고르게 수주하고 있다. 저가선 부문에서는 사실상 중국을 당해낼 경쟁자가 없는 게 현실이다. 빠르게 기술을 쌓고 있는 중국은 점차 초대형 컨테이너선이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에도 뛰어들며 국내 조선업계를 위협하고 있다.

 

▲ 지난해 국내 조선3사 중 대우조선해양을 제외한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웃고, 삼성·현대重 울고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국내 조선3사 중 대우조선해양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3분기 매출이 4조2228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5.4%, 영업이익은 1350억원으로 16.6% 각각 증가했다. 당기순이익만 103억원으로 89.0% 감소했다. 3분기 연속 흑자다. 회사 관계자는 “영업이익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액화천연가스(LNG)선과 컨테이너선 부문에서의 사업 호조로 영업이익이 증가했다”며 “전년 대비 환율 변동이 심해져 당기순이익은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지난해 경쟁사들이 ‘어닝 쇼크’로 우울한 연말을 보냈던 것과 대비된다. 세계 1위 현대중공업은 지난 한 해 매출이 52조 5824억원으로 전년 대비 3.0% 감소했고 영업손실 3조2495억원, 당기순손실 2조2061억원이라는 창사 이후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세계 2위 자리를 지켰던 삼성중공업도 같은 기간 매출(12조8791억원)과 영업이익(1830억원)이 전년보다 각각 80.0%, 76.7% 감소했다. 두 회사는 지난해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대규모 공사손실충당금이 발생해 어려움을 겪었다. 일반 상선의 건조 물량이 줄어든 것도 매출 감소에 악영향을 줬다.

삼성중공업은 2013년 영업이익이 9142억원으로 업황이 침체된 와중에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으나 지난해 들어 영업이익이 1830억원 수준까지 떨어졌다. 1년 사이 영업이익이 80%나 줄어든 것이다. 작년 1분기에만 3625억원의 영업손실과 2724억원의 당기 순손실을 기록하며 부진의 늪에 빠졌다. 지난해 기록한 연간 수주액은 대우조선해양의 절반 수준인 73억 달러였다. 연초 목표로 했던 150억 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업계 전문가들은 대우조선해양의 ‘선택과 집중’이 빛을 본 결과라고 평가한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선박보다 수요가 안정적인 해양 플랜트의 수주 비중을 확대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이후 유가 폭락으로 급변한 세계 시장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 계획을 수정했다.

LNG선 등 가스선 위주로 수주 포트폴리오를 재편한 것 업계 다른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에만 37척의 LNG선을 수주했는데 조선 업체 한 곳이 한 해에 LNG선을 30척 넘게 수주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지난해 세계 LNG선 발주 물량이 66척이었으니 과반수를 수주한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기간 현대중공업은 6척, 삼성중공업은 5척의 LNG선을 수주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유가 폭락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해양플랜트 발주가 크게 줄어들면서 경쟁사들이 타격을 입는 동안, LNG선으로 눈을 돌렸던 대우조선해양은 상대적으로 타격을 덜 입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통상 해양플랜트 부문에서는 유가 하락 시 채산성이 떨어지면서 발주량이 급감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업계는 해양플랜트 사업의 손익분기점이 되는 유가를 배럴당 80달러 정도로 보고 있다. 작년처럼 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훨씬 밑도는 경우 막대한 손실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해양플랜트를 버리고 가스선 등을 택했던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해양플랜트를 1기만 수주하고도 경쟁사보다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 전문가들은 국내 조선사들이 고급화·다양화·친환경 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한다. 국제유가 급락세가 진정되고 있는 데다 각국의 중앙은행과 정책 당국이 경기부양 정책을 강화하면서 글로벌 경기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형성되면서, 올해 조선업 업황이 나아질 것이란 기대도 있다. ⓒ뉴시스

◆고급화·다양화·친환경 전략 펼쳐야
한편, 산업연구원은 한국이 고부가 선종 위주의 수주 전략을 추진해온 덕분에 수주 선종별 구성 면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일본과 중국의 수주잔량이 벌크선에 집중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초대형컨테이너선, 유조선, LNG선, 해양플랜트 등 상대적으로 고른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점이 강점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다양한 포트폴리오 구성이 조선업 장기 침체를 견딜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란 주장을 내놓고 있다. 고른 포트폴리오 구성이 곧 차별화된 경쟁력이란 얘기다. 더불어 수많은 건조경험도 차별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선사들이 발주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건조경험에서 앞서 있어, 이는 곧 수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의미다.

업계 관계자는 “경쟁자원 요소만 놓고 비교했을 때는 중국과 일본에 비해 부족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침체된 조선시장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수익성 위주의 수주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이 전세계에서 처음 시도하는 선종이나 프로젝트가 많아 리스크가 큰 것처럼 보이지만 그만큼 조선시장을 선도하는 능력이 있다는 의미”라며 “끊임없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내는 능력이야말로 진정한 차별화 전략”이라고 말했다.

신동식 한국해사기술 회장은 “벌크선 시장을 놓기보다 수익을 낼 방안을 찾아 일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탄소배출권 규제 등 환경정책 흐름에 발맞춰 친환경 선박에 대한 관심도 요구된다. 홍 연구위원은 “친환경 선박 수요는 지속되므로 친환경 엔진이나 첨단소재 개발을 통해 시장을 이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올 들어서는 조선업 업황이 나아질 것이란 기대도 있다. 국제유가 급락세가 진정되고 있는 데다 각국의 중앙은행과 정책 당국이 경기부양 정책을 강화하면서 글로벌 경기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달 초 기준 조선업의 영업이익 증가율 컨센서스(시장 예상치)는 전년 대비 5.7%로 건설업(14.2%)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실제로 한국 조선업은 2월 수주실적 1위를 탈환하는데 성공했다. 5일 국제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달 전세계 선박 발주량은 118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 46척)으로 2009년 9월(77만CGT)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척수 기준으로는 2009년 5월(18척) 이후 최저치다.

세계 조선시장의 규모가 급감한 가운데 한국 조선사들은 이 가운데 58.1%인 68만7천CGT(21척)을 수주하며 중국(38만6천CGT, 19척)과 일본(8만5천CGT, 3척)을 따돌리고 1위 자리에 복귀했다. 한국은 작년 10월부터 3개월 동안 월별 수주실적에서 1위를 유지했으나 지난 1월 일본에 밀려 2위로 내려앉은 바 있다. [ 시사포커스 / 정주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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