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에 내놓은 경영구상, 하반기 어떤 영향?

여름 휴가시즌은 대개 8월 1일을 전후로 시작된다. 직장인들은 알토란같은 휴가를 어떻게 하면 즐겁고 보람 있게 보낼지 꿈에 부풀어 있지만, 막상 우리나라 경제에 막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재계 총수들은 휴가다운 휴가를 계획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바로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재계를 향해 바짝 조여오고 있는 ‘경제민주화’라는 거대한 전운 때문이다.

재벌 총수들, 경제민주화 바람으로 여름휴가 자제?
정몽구·구본무 회장 등 자택에서 하반기 경영구상
총수 수감된 CJ·한화·SK, 공개적인 휴가언급 꺼려
살얼음판에도 “직원들은 여름휴가 제대로 즐겨라”

▲ (왼쪽부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뉴시스

해마다 여름휴가 시즌이 다가오면 재계 총수들이 여름휴가를 어떻게 보낼지 관심이 쏠린다. 아무래도 ‘재벌’들의 삶은 일거수일투족 일반 국민들의 관심을 모으기 때문이다.

휴가는 잠시 미뤄

서민들은 나라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재계 거물들이 여름휴가를 어떻게 지내는지 보며 ‘역시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구나’ 또는 ‘우리와 별다를 게 없구나’ 등의 상반된 감정을 품는다. 그리고 이 느낌을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삶에 투영해 본다.

그렇지만 올해는 재계 인사들의 여름나기를 헤아리며 부러움에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 같다. 재계에 따르면 올해 여름 재계 총수 대부분은 특별한 일정을 따로 만들지 않고 자택에서 휴식을 취하며 하반기 기업을 어떻게 이끌어갈 지 골몰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재벌 총수 상당수가 올 여름 칩거의 길을 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점점 압박으로 다가오는 ‘경제민주화’ 바람이 최우선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현재 최태원 SK그룹 회장·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구속 수감된 상황에서 볼 수 있듯, 재계 전반에 깔린 분위기는 말 그대로 살얼음판이다. 오늘만 해도 천하를 호령하고 세계를 누비며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노라 자신해도, 당장 내일 어떤 시련이 닥칠지 어느 누구도 모르는 상황이다.

더욱이 최근 주요 기업에 대한 규제 움직임이 다양하게 일어나는데다 MB정권 시절 최대 수혜기업으로 꼽히는 롯데쇼핑에 대한 세무조사 확대까지 현실화되고 있다. 경제위기 못지않은 위험 상황에 각 기업은 사실상 ‘비상경영’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

이런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기업 총수가 여름휴가를 즐긴다는 구실로 해외로 나간다든지 골프장에 상주하는 모습을 보이면 하나도 좋을 것이 없다는 게 재계 전반에 만연된 시각이다. 자칫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행동으로 꼽히는 ‘위화감 조성’이라는 치명적 혐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폭풍전야의 배경 속에서 재계 총수 대부분은 사실상 휴가를 반납하거나 설령 휴가를 떠나더라도 자택에 머무르며 올 하반기를 별 탈 없이 통과할 수 있는 지혜와 해법을 짜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자택에서 하반기 구상

우선 우리나라 재계의 간판스타라 꼽아도 손색이 없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현재 일본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귀국과 여름휴가 시기가 언제일지는 아직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6월 20일 일본으로 떠난 이건희 회장은 프랑스 파리·벨기에 브뤼셀 등 유럽 각지를 방문한 뒤 현재 일본에 체류 중이다. 이건희 회장의 향후 일정에 대해서는 ‘국내에 귀국해 여름휴가를 보낼 것’이라는 설과 ‘해외에 머물면서 하반기 경영에 대해 구상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특히 재계 일각에서는 올 상반기 삼성전자 실적과 관련해 긍정보다는 부정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어, 이건희 회장이 여름휴가 중 다진 구상을 바탕으로 하반기 위기극복 안을 전격적으로 단행할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아직 공식적인 여름휴가 일정을 정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시류가 유동적인데다가 최근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희망버스’ 폭력사건, 부분 파업 등이 벌어지는 등 상황이 어수선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정몽구 회장은 올 여름 특별한 일정 없이 자택에서 경영에 대한 구상에 전념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관계자는 “정몽구 회장은 이번 7~8월에 아직 특별한 일정을 잡아놓은 상황이 아니다”고 첨언했다.

아울러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자택에 머물며 독서와 경영구상으로 여름휴가를 보낼 것으로 전해졌다. 올 하반기 LG그룹은 특히 스마트폰에 사활을 걸 것으로 보인다. LG전자는 올 하반기 기존 스마트폰과는 궤를 달리하는 혁신적인 기능과 디자인의 제품을 내놓을 준비를 다져나가고 있다. 올 여름 구본무 회장의 하반기 구상은 이와 관련된 내용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허창수 GS그룹 회장 역시 올해 여름에는 자택에서 휴식을 취하며 하반기 경영구상에 들어갈 것 보인다. 전경련 회장도 맡고 있는 허창수 회장은 7월 24~27일 제주에서 열린 전경련 제주포럼에서 동료 경영인들과 함께 하반기 경영구상을 가다듬은 것으로 휴가를 대신할 것으로 전해졌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올해는 여름휴가를 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신 회장은 그동안 여름휴가 때마다 가족과 일본에서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휴가까지 떠날 심적 여유가 없어 보인다. 롯데 주요 계열사들이 세무조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 측에서는 “정기적인 세무조사”라고 밝혔지만, 그래도 언제 무슨 결과가 나타날지 모르는 노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동빈 회장은 올 여름에는 일단 국내에 머물며 하반기 경영구상과 대처 방안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여름휴가 기간 동안 포항제철소 등 국내외 소재 생산현장을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포스코와 관련한 공장에서 안전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정준영 회장은 원래 여름휴가를 꼬박 챙기는 타입은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정 회장은 지난 2009년 포스코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여름휴가를 단 두 차례만 다녀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해에는 해외출장을 여름휴가로 대신했다는 일화까지 있을 정도다.

박용만 두산 회장의 경우는 8월 초에 여름휴가를 갈 예정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다른 기업 총수와 마찬가지로 정확한 휴가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박 회장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휴가를 조용히 보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직원들은 여름휴가 즐겨야

사정상 여름휴가 자체를 아예 생각하지 못하는 재계 총수들도 상당수 있다. 특히 항공 관련 기업 회장들이 그렇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지난 7월 6일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발생한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사고를 수습하는 데 전념하느라 여름휴가는 생각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와 아울러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주요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성수기가 전통적으로 여름휴가 시즌인 만큼 휴가 유무에 상관없이 경영 극대화에만 온힘을 기울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총수가 수감돼있는 기업들의 경우 여름휴가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사실상 자제된다. CJ그룹 5인 비상경영위원회 위원장인 손경식 회장의 경우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그만둔 뒤 아직 구체적인 여름휴가 일정을 잡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수감 중인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연관이 있다는 게 재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김연배 한화그룹 비상경영위원회 위원장 또한 아직 여름휴가 계획을 잡지 않았다. 김승연 회장의 수감으로 그룹 전체가 비상경영 상황인 만큼, 이에 발맞춰 김 위원장은 현장 중심으로 다잡는 경영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김창근 SK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역시 수감 중인 최태원 회장의 항소심 공판 등 중요한 현안을 앞둔 관계로 여름휴가 계획을 추후로 미룬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경영진이 여름휴가를 철회하거나 미뤘다고 직원들의 휴가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 기업 총수들은 “이번 여름 무더위가 굉장한데 여름휴가를 제대로 지내야 하반기 업무 효율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임직원의 휴가를 전폭 독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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