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노선 치닫는 태안 기름 유출 사태…삼성 5000억 배상 할까?

 

지난 2007년 12월 삼성중공업의 기름유출 사건으로 말미암아 청정해역이었던 태안이 기름찌꺼기로 뒤덮이는 재앙이 시작됐다. 당시 삼성은 피해지역 발전기금으로 1000억 원의 출연금을 제시했지만 지역주민들은 5000억 원을 요구하며 수령을 거부했다. 김동완(당진) 의원은 10년 전 GS칼덱스의 시프린스호 사건을 예로 들며 “당시 GS는 삼성의 5분의 1밖에 기름유출이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1000억 원을 출연한 바 있다”면서 “삼성이 출연금을 1000억 원으로 측정한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건희, 뒷짐 지고 있지 말고 앞으로 나와라

지난 26일 삼성중공업의 본사 앞에서 열린 ‘삼성 규탄 집회’에 서해안유류피해민 연합회 회원 800명이 운집한 가운데 국응복 회장은 “삼성이 충남 태안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지금의 삼성은 대한민국 국민이 만들어 준 기업인데 정작 국민에게 하는 짓을 보면‘당나라’기업인 것 같다. 네명의 태안 주민들은 좌절감에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며 할복을 시도했다. 국응복 회장은 삼성중공업 측에 대한 서한문 전달이 막히자 자해를 시도했으며 서울 성모병원으로 이송돼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안희정 지사, 박수현 의원, 황우여 대표, 등 여·야의 의원들이 찾아가 국 회장을 위로했지만 정작 사건의 당사자인 삼성 측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유류피해민 연합회는 지난 5년 동안 ‘삼성중공업’과 수차례의 대화를 통해 피해보상과 사고수습을 논의해왔으나 실제로 진행된 바가 없었다. 이에 유류피해민 연합회는 “문제 해결의 의지도 권한도 없는 삼성중공업 말고, 결자해지의 정신으로 삼성그룹과 이건희 회장이 직접 나설 것”을 요구했다.

연합회 측의 요구는 다섯 가지로 압축된다. 삼성 측의 공개적인 사과, 이건희 회장 국회 유류피해특위 증인 출석, 그룹차원의 피해주민 지원 대책 마련, 피해지역 해양 생태계 복원, 피해지역 발전기금 증액 이다.

유류피해 연합회 소속 주민들은 삼성 측이 기존 출연금을 포함해 최소 5000억원을 지역발전기금으로 출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노인식 삼성중공업 대표는 피해대책특위 회의에 증인으로 출석해 “5000억 원에 준하는 금액을 내놓을 수 있느냐”는 김태흠 피해대책 의원의 물음에 “그에 준하는, 상당하는 부분을 검토해 보겠다”고 답하며 청신호(?)를 밝힌 상태다.

협의체는 삼성과 특위의 사탕발림?

국회 태안유류피해대책특별위원회(이하 태안특위)는 지난 25일 충남 태안을 방문, 피해지역을 살펴보고 주민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이건희 회장과 노인식 대표를 증인으로 채택하고 이들을 4차 특위 회의에 출석시켜 지역 피해보상 및 지역발전기금 조성과 관련 보고를 받기로 의결했다.

하지만 29일 국회에서 열린 피해대책특위 회의에 이건희 회장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태안특위 측에 확인한 결과 “당초 이건희 회장의 증인 출석이 확정된 것이 아니고, 일차적으로 노인식 대표를 증인으로 채택하고 부족할 경우 추가로 이건희 회장을 증인으로 세운다는 계획”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25일 이건희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한다는 의결안의 내용이 수정되어진 것에 대해서는 “(이건희 회장의 해외 출장 등)상황이 달라짐에 따라 일부 조정이 있었다”고 짤막하게 덧붙였다.

만약 채택된 증인들이 출석에 불응할 경우, 위원회는 국회법에 따라 고발할 수 있다. 하지만 처벌 수위가 약하거나 실제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사례도 많아, 설령 이건희 회장이 다음번 회의의 증인으로 채택될지라도 출석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따라서 향후 사태 추이에 따라 노인석 사장을 중심으로 소수의 인사만 책임지는 수순을 밟을 공산이 높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어 특위측에 재계 일각에서 주장하는 삼성 봐주기식 조사를 하는게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거대한 삼성이라는 글로벌 기업과 줄다리기를 하느라 여러 가지 고충이 많다는 게 특위 측의 설명이다.

홍문표 태안특위 위원장은 “특위활동을 통해 삼성의 책임 있는 보상을 이끌고 정부차원에서 피해주민들에 대한 지원 대책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4차 회의 결과 국회와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피해 주민, 삼성중공업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김태흠 의원측도 “조만간 합의체를 통해 구체적인 보상 방안을 세울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5차 피해 회의에 대한 진행여부와 그에 따른 이건희 회장의 출석 가능성에 대해서는 “협의체의 상황을 지켜봐야 안다”며 “이건희 회장의 증인출석 여부 역시 협의체의 방향에 따라 결정 날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삼성중공업 노인식 대표은 “협의체가 구성되면 거기서 내놓는 안을 따르겠나”라는 물음에 “합리적인 판단이 되면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측이 “피해 보상에 대한 미흡한 부분은 향후 종합대책 세워서 하나하나 실행하겠다”고 국회에서 밝힌 만큼 어떠한 방법으로 태안사태의 종결을 찍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삼성은 삼성중공업만의 대응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그룹 차원에서 책임지고 지역민들 요구에 답을 내놔야 할 것이다.

재벌 삼성, 주민 줄 돈은 없다니 웬말

민주통합당 박완주 태안유류피해특별위원은 서해안 유류피해와 관련해 삼성중공업이 중국에서 허베이호와 과실률을 다투는 재판을 진행하면서 1천만달러의 화해비용을 주고 과실률을 5:5로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박완주 위원은 “지난 10월 23일 삼성중공업은 중국과의 2심까지의 소송비용으로 700만달러(77억원)를 사용해 만약 3심까지 가게 되면 소송비용으로 1400만 달러가 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중국과 과실률을 합의하고 1000만(110억원) 달러를 화해비용으로 지급했음을 밝혔다”고 전했다.

이어 박 위원은 “삼성이 잘못이 없었다면 중국과의 재판에 떳떳하게 임했을 것이며 화해비용으로 110억 원까지 돈들이지 않았을 것”을 지적하며 중국 업체와의 화해를 위해서는 재빠르게 주머니 속 쌈지 돈을 지불하면서 태안주민들에게는 대응이 늦어지는 사태를 비난했다.

태안문화원장인 김한국씨는 “삼성이 올해 12월 영국에서 열리는 IAVE 세계자원봉사 회의에 스폰서로 참여한다”며 “글로벌 기업을 표방하는 삼성이 태안기름사고 피해 주민들의 삶은 5년째 돌보지도 않은 채 단지 기업이미지 창출을 위해 세계자원봉사 회의에 스폰서 역할을 한다는 것은 태안주민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격”이라며 이해할 수 없는 작태라고 비난했다. IAVE 세계자원봉사대회 스폰서에 앞서 태안군민들에게 진정한 사과와 봉사를 하고 보상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선행도 안 된 상태에서 IAVE 세계자원봉사대회를 후원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행위로 국제적으로도 망신을 자초할 수 있다.

한편 태안 지역 주민 출연금 지원에 대한 삼성의 입장은 한결같다. 외부 시각과 달리 어려움이 많다는 것. 노인식 삼성중공업 대표는 “자본금의 10% 이상을 기부할 때는 이사회 등을 설득해야 하는데 이런 과정에서 난관에 부딪혀 왔다”며 “앞으로 협의체가 구성되어 국회가 법안을 마련하면 성실히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고는 삼성이 내고 피해복구는 국민 혈세로여기는 삼성공화국

태안에 기름이 급속도로 유출된 2007년 겨울, 사고가 발생한 지 한 달 사이에 50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매서운 바닷바람 속에서 기름덩이를 제거하는 데 동참하였고 집계된 자원봉사자의 수는 123만명에 달한다. 가가호호 동참해 국민의 손으로 직접 환경재앙을 이겨내는 사이‘또 하나의 가족’이라 외치는 삼성은 구경만 하고 있었다는 지적이 팽배하다.

국회태안특위 박수현(민주통합당) 의원은 “태안의 관광객은 유류 오염사고 이후 2011년 61% 감소하고 수산물 판매도 50% 이상 줄었다”며 “사고 이후 태안을 찾은 자원봉사자의 교통비와 일당을 계산하면 약 1200억원에 달하는데, 삼성중공업이 내야할 돈을 국민이 대신 낸 셈”이라고 삼성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박완주 의원은 “사고책임은 삼성중공업과 허베이호가 5:5, 배상책임은 예인선을 배로 인정해서 56억 원인데 반해, 국민들의 자원봉사 참여와 모금액은 390억 원, 정부의 피해민 생계안정 등 지원에 6388억 원, 특별해양환경복원 계획으로 4786억 원, 지역경제 활성화사업 추진에 1조1285억 원 등 국민의 혈세만 2조2849억 원이 들어갈 예정”이라며 “삼성중공업의 2007년~2011년까지 당기순이익은 3조6229억 원에 이르고 있지만, 출연약속 1천억원은 아직까지 이행조차 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재계 전문가들은 삼성이 5000억원 이상을 내놓아도 모자랄 판에 1000억원을 가지고 아웅다웅 하는 모습은 결국 제살 깎아먹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MB정부와 삼성은 이심전심

태안 유류피해 사고를 낸 삼성중공업이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가운데, MB정부는 여전히 삼성의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태안 피해 주민은 삼성중공업이 계속 안고 가야 하는 문제인 만큼 기업은 물론 정부의 결단도 필요한 시점인것은 분명하다.

김동완 의원(새누리당)은 “태안유류피해가 장기화 되고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정부의 소극적인 자세” 라고 꼬집었다. 정부의 태안유류피해지역 복원사업인‘지역경제활성화 사업’에는 국비지원의 근거가 명확히 명시돼 있지만, 구체적인 시행방안을 시행령 및 시행규칙으로 마련하지 않고 국비를 지자체에 특별회계로 일괄 지원하면서 피해지역 복구사업을 지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박수현 의원(민주통합당)은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내 이건희 회장을 만나 태안 기름 유출 사건을 직접 해결하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정부와 정치권은 피해주민 지원과 환경복원을 힘써야 할 긴급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미지근한 태도로 일관하며 5년째 보상금 지급을 미뤄지는 것에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있다.

결국 삼성과 정부의 쌍둥이 같은 안일함이 삶의 터전을 잃고 절망에 빠진 피해주민들을 죽음으로 인도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피해지역의 보상 및 지역경제활성화 사업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통해 실질적 지원방안이 마련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박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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