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또 하나의 가족 CJ와 제사날조차 다퉈…현대판 예송논쟁 재현

삼성과 CJ는 故 이병철 회장은 안중에도 없었다. 지난 19일 열린 故 이병철 선대 회장의 추모식 참가를 두고 양측은 초등학생 같은 신경전을 벌이며 기싸움에 몰두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과 이맹희 제일비료 전 회장의 상속분쟁으로 깊어진 골은 결국 장손의 할아버지 묘소 참배를 가로막는 지경까지 이르렀고 덕분에 이날 추모식은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뉴스의 발원지가 되었다. ‘신줏단지 모시듯’ 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조상의 제사를 중시했던 효의 정신은 생전 성균관 직함을 가졌을 만큼 유교정신을 중시했던 故 이병철 선대 회장의 자식들로 인해 잊혀져 가고 있다.

반쪽추모는 공경없는 퍼포먼스

제사의 의미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살아 생전 못 다한 효도를 하는 것이고, 둘째는 친척들이 한 자리에 모여 화목을 도모하는 것이다. 하지만 故 이병철 선대 회장의 기일에 열린 추모식에서는 둘 다 찾아볼 수 없었다. 성균관 관계자는 “이번 제사는 유교법의 기준으로 보자면 제사라고 말할 수 조차 없다”며 “가장 중요한 조상에 대한 효와 공경 그리고 가족들간의 화목이 빠진 채 싸움만 일삼은 헤프닝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우리의 전통 관례법과 유교 역사상 제사를 지내는 것은 제주의 권리이자 의무다. 범(汎) 삼성가의 경우 CJ 이재현 회장이 제주로서, 그의 집에 모여 제사를 지내는 게 옳다. 하지만 차남인 이건희 회장은 제주 이재현 회장의 집에 들르지도 않았고 심지어 제주가 오는 것도 막은 채 호암에서 그들만의 묘제를 시행했다. 성균관과 향교 관계자는 “묘제는 바른 법이 아니다”며 미풍양속을 제대로 해쳤다고 지적했다. 이어 “삼성과 CJ는 돈만 있으면 양반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번 행동으로 그들은 천민만도 못한 불효를 저질렀다”고 분개했다. 

삼성과 CJ는 거대한 추모식 행사로 국민들의 눈과 귀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 했겠지만 상속분쟁에 눈이 멀어 혼백을 기리고 위로해야 하는 날조차 효를 내팽켜 친 것은 엄연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다.

자존심 상한 CJ 결국 불참

재산상속 분쟁으로 신경전이 한창인 삼성과 CJ의 갈등이 또 다른 양상으로 표출됐다. 경기도 용인 선영에서 열린 삼성 창업주 故 이병철 선대 회장의 추모식 준비과정에서 장소출입과 추도방식을 두고 극명한 입장 차이를 보인 것. 결국 당초 어머니 손복남 고문과 함께 오후 2시에 선영을 찾을 계획이던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 24년 동안은, 故 이병철 회장의 추모식에 범(汎) 삼성가 사람들이 함께 모여 대외적으로 화목한 가족행사 분위기를 연출해왔다. 하지만 올해 상속재산을 놓고 소송을 이어온 점이 장손인 이재현 회장의 추모식 불참사태를 양산하며 깊어질 대로 깊어진 갈등의 골이 여실히 드러났다.

추모식 행사 주관자인 삼성 호암재단이 CJ측에 △통상 진행해 왔던 가족행사는 진행하지 않음 △오전 10시 30분~오후 1시 삼성그룹 참배 △타 그룹 오후 1시 이후 참배 △정문 출입 불가 △선영 내 한옥(이병철 회장의 생전 가옥) 사용 불가를 통보하면서 갈등이 재점화되었다.

이번 일로 삼성가의 장손으로 자부심이 대단한 이재현 회장이 매우 불쾌해 한 것으로 알려 졌다. CJ측은 “가족 간 사전 조율없이 이뤄진 삼성의 통보는 선대 회장의 업적과 뜻을 기리자는 추모식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으로 심히 유감스럽다”고 성토했다.

CJ그룹 관계자는 삼성이 호암미술관의 정문 출입과 이 선대회장의 생전 가옥인 ‘영빈관’ 사용을 끝내 허락지 않았음을 지목하며 “이 선대 회장의 제사는 지난 19일 저녁 서울 필동 CJ인재원에서 별도로 모셨다”고 밝혔다. CJ는 필동 인재원에서 따로 제사를 지냄으로써 한국 관례법상 故 이병철 선대 회장의 장남인 CJ 그룹이 제사를 모시는 것이 옳음을 강조했다. CJ측은 “자존심보다 선례를 남겼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로 생각한다”면서 “24년간 한 차례도 빠진 일이 없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서 유감이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 마이바흐 타고 참석

지난 19일 오전 10시 41분 께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마이바흐 차량를 타고 추모식장에 나타났다. 호암재단이 주최하는 故 이병철 선대 회장의 추모식은 삼성일가에게는 가장 중요한 가족 행사로 이건희 회장은 11시 추모식 20여분 전 선영에 도착했다. 이건희 회장의 뒤를 따라 1분 후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도 선영에 들어갔다.

이어 이부진 호텔신라·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담당 사장, 차녀인 이서현 제일모직·제일기획 부사장 등 삼성 오너 일가와 삼성 계열사 사장 등 80여명이 연이어 선영을 찾아 단란한 삼성공화국의 모습을 증명했다. 이 밖에도 故 이병철 선대 회장의 장녀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과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 20여명이 추모식을 가졌다.

추모식은 오전, 오후로 나눠 진행됐다. 오전에는 삼성이, 오후에는 CJ 그룹 임원과 한솔 일가가 시간차를 두고 별도로 추모식을 가졌지만 CJ 그룹 이재현 회장, 신세계 이명희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 참석조차 하지 않은 허울뿐인 추모식이었다. 삼성과 CJ는 부모의 추모식 날 다같이 모여 밥 한끼 먹는 걸 피할 정도로  껄끄러운 사이라는 걸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동안 삼성과 CJ, 신세계, 한솔 등 범(汎)삼성가는 집안에 갈등이 있더라도 이 선대회장 추모식 등 집안 행사를 통해 만남을 갖고 이를 풀어왔다. 하지만 삼성과 CJ는 앞으로는 별도참배 할 뜻을 내비치며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취임 25주년을 맞은 이건희 회장은 추모 25주기일인 이달 19일부터 삼성공식블로그에 이 회장의 발자취를 그린 연재를 시작했다. 이어 21일 그룹 공식 페이스북에 “환하게 웃고 있는 이 소년은 누구일까요” 말과 함께 이 회장의 어린 시절 사진을 공개했다. 삼성이 평소 언론노출을 꺼리던 이건희 회장의 어린시절을 공개한것은 매우 이례적인 사안으로, 언론을 통한 홍보보다 친근함이 강조되는 SNS의 특성을 이용해 전방위적인 홍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이 외부적으로는 애플과 특허전, 내부적으론 유산을 둘러싼 형제간 내홍을 겪자 경영자로서의 리더십과 비전, 정통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고 분석했다. 

한편, 삼성과 CJ의 유산상속 소송에 대한 1심 판결은 내년 1월로 예정되어있다.

“건희 건희”부르지 말라며 시작한 다툼

대선에 밀려 별다른 이슈거리를 찾지 못하던 언론들은 이날 추모식 다툼을 두고 맹비난을 쏟아냈었다. 이 소식을 접한 시민들도 “재벌가보다 못 배운 나도 부모의 제삿날 갖춰야 할 기본자세는 안다”며 형제간의 다툼으로 제사를 각자 뜻대로 지내는 대결구도를 벌인 치졸함을 두고 “콩가루 집안이 아니냐”고 조롱했다.

삼성과 CJ의 대립은 故 이병철 선대 회장 장자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동생인 이건희 회장이 차명으로 보유해 온 선대회장의 주식 중 상속분을 달라며 지난 2월 소송을 제기하며 시작됐다.

이에 이건희 회장이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며 일명 ‘막말발언’을 해 갈등이 더욱 확대되는 듯 했으나 여론의 뭇매를 의식한 탓인지 한동안은 잠잠했었다. 하지만 이번 추모 사건으로 삼성과 CJ의 사이는 건너올 수 없는 강을 건너 완전히 갈라진 게 아니냐는 의견이 팽배하다.

이건희 회장의 ‘막말발언’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며 재벌가의 ‘형제의 난’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다. 지난 4월 재산다툼 소송이 시작되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한 푼도 내줄 생각이 없다”며 형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에게 직격탄을 날린 바 있다. 특히 이맹희씨가 자신을 ‘건희’라 부르며 ‘이건희 회장의 탐욕이 소송을 불렀다’고 비난한 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이맹희씨는 감히 나보고 ‘건희 건희’라고 할 상대가 아니다. 바로 내 얼굴을 못 쳐다봤던 양반이다”라고 말했었다.

이에 관해 이맹희 씨가 보도자료를 내어 “건희가 어린애 같은 발언을 하는 것을 듣고 몹시 당황했다. 앞으로 삼성을 누가 끌고 나갈 건지 걱정이 된다”고 맞대응 했다. 

이병철 선대 회장의 둘째 딸 이숙희씨 역시 동생인 이건희 회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나는 이건희 회장 소유한 차명주식의 존재도 몰랐기 때문에 차명주식에 대해 일체 합의해준 바가 없다”고 밝혔었다. 이숙희씨는 25년간 동생 이건희 회장이 숨겨왔던 자신의 재산을 되찾겠다며 소송을 건 상태다. 이숙희씨가 구인회 LG 창업주 셋째 아들인 구자학 아워홈 회장과 결혼하며 친정인 삼성과 전자산업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자 故 이병철 선대 회장은 “눈 밖에 난 딸”이라고 독설하기도 했었다.

▲ 삼성 故
선영 가는 길, 삼성 앞문 CJ 뒷문

이건희 회장의 발언대로 이번 추모식을 주관한 삼성 호암측은 이병희 회장 일가를 “이미 집에서 퇴출당한 사람”격으로 여긴 듯 행동했다. 삼성은 CJ에게 선영의 정문은 물론, 이 선대회장의 가옥인 영빈관도 사용하지 말라고 전했지만, 무엇보다도 분쟁의 핵심은 선영으로 향하는 길목 이었다.

정길근 CJ그룹 홍보실 상무는 “24년간 갔던 그 길을 어느 날 갑자기 사용하지 말라며, 더 멀리 돌아 후문으로 오라는 것은 장손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이에 관해 삼성 그룹 관계자는  “이재현 회장에 제안한 읍청문은 후문이 아니며, 선영에서 가장 가까운 길을 추천한 것이다”며  “삼성 사장단과 CJ 사장단 모두 도보출입구인 홍살문을 통해 조문했다”고 강조했다.

삼성 측은 “결국 이재현 회장이 추모식에 참석할 의사가 있었다면 동선 문제를 가지고 자존심을 내세웠겠냐”며 CJ측의 주장을 묵살했다.  이어 “선영 참배를 유도하는 호암미술관쪽 입구가 가장 가깝고 간편한 동선인데 왜 그걸 문제로 삼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호암 선영에는 정문이니 후문이니 하는 표현이 없음으로 CJ측의 주장은 결국 생트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삼성이 오버했다”고 표현한다. 삼성과 참배 시간을 피하도록 한 정도는 이해할 수 있으나, 정문출입과 생전 이 회장의 가옥인 한옥 출입을 금지한 것은 CJ의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삼성은 대놓고 이맹희 가족과 CJ그룹을 배척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모로 가도 선영만 가면 되는 것을…

삼성이 왜 상속분쟁의 당사자도 아닌 이재현 회장을 배척하려 드는걸까?

이는 이재현 회장과 CJ일가를 어떤 식으로든 故 이병철 회장과의 거리감을 형성해 국민들에게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상속재산 소송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의도로 짐작할 수 있다.

삼성의 호암 정문 길 통제와 한옥 사용 제한에 대한 부분 역시 이건희 회장과 상속재산 소송을 벌이고 있는 이맹희씨의 아들을 삼성의 사유지와 선대회장 소유의 집에 들이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또한 우리 집에 오려면 정문이 아닌 후문을 이용하라는 식의 차별적인 대우로 삼성가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생색을 내고자 하는 것은 유치한 발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사족을 하나 덧붙이자면, 제사방식을 운운하며 혈육간에 정면충돌하는 천태만상을 지켜보니 조선시대 골육상쟁인 예송논쟁이 떠오른다. 실제로 삼성과 CJ같은 재벌가 사이에서는 상속다툼으로 제사나 추모를 따로 지내는 경우가 아직도 허다한 실정이다. 국민의 은혜에 힘입어 성장한 한국 굴지의 대기업들이 추모식이라는 볼모를 통해 孝는 버리고 富를 취하려는 모습은 국민들을 실망시키는 일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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