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계 파워게임 1라운드 ‘이상득 판정승’

한나라당에 심상찮은 전운이 감지되고 있다. ‘친이계’ 인사들의 내홍이 심화되고 있는 탓이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선 ‘청와대 인선 배후설’이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 인선에 ‘직속 이명박 라인’(원로파) 인사가 개입돼 있고 이를 두고 ‘소장파-이재오’ 라인 인사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는 것이 ‘배후설’의 골자다.

실제 이재오 의원은 최근 이상득 부의장 공천과 관련,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정치권 핵심 인사는 이에 대해 “지금 한나라당 내부 갈등은 권력 다툼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당내 MB라인 간 서로의 팽팽한 견제가 불러온 결과”라고 분석했다.

그는 “소장파 측에선 인선 배후로 박영준 대통령기획비서관을 지목했다”면서 “사실 청와대 내에서 박 비서관의 파워는 막강 그 자체고, 이것을 알고 있는 소장파에선 위기감을 느낀 나머지 그를 통해 원로파 의원들을 축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이명박계 인사들의 ‘파워게임’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 내막을 파헤쳐봤다.


인사파동 박영준에 대한 문책은 결국 이상득 사퇴 유도하려는 의도

7월 전당대회서 이재오 견제 위해 이상득 쪽 ‘정몽준 카드’ 꺼냈다?

박 비서관에게 또다시 정관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 당시부터 주목받아오던 인물. 그가 또다시 주목받은 이유는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실무진 인사에서 박 비서관이 추천한 인사의 기용이 크게 늘어 실세를 과시했다는 것. 이것이 배후설의 진원지인 셈이다.

한나라당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 비서관이 속해있는 원로파는 이미 정부의 조각과 청와대 인선을 장악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배후설의 근본적인 의미는 결국 당권장악을 놓고 계파간 벌이는 권력 암투”라면서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 싸움의 승자는 박영준이다”고 못 박았다.


‘배후설’의 정체


청와대에 따르면, 지난 1월말부터 청와대 비서관 행정관 후보인선을 주도한 정두언 의원, 김백준 청와대총무비서관, 추부길 홍보기획비서관 등은 호남출신을 중심으로 추천했으나 결국 박 비서관이 추천한 ‘TK’(대구 경북)출신이 대거 청와대에 입성했다.


이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박 비서관의 인선안에 대해 이 의원과 최시중 고문 등도 반대하지 않았고 특히 이번 박 비서관의 인선 안에 대통령의 의중이 포함됐다는 시각이어서 정 의원을 비롯, 인선 제시 책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따라서 대통령 주변인사들은 “TK가 많이 늘었다”고 할 정도로 정두언 계보와 호남인맥 기용이 최소화된 반면 박 비서관이 추천한 인사들이 대거 기용, 향후 박 비서관의 정권 내 영향력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이번 인선안에서 물을 먹은 정두언 의원에 대해 “과도하게 설치고 말조심을 못한다”며 ‘제2의 안희정’이란 소리까지 나오며 부정적 시각도 늘고 있다는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상득은 곧 박영준, 박영준=이상득’으로 불리어지며 지난 대선의 일등공신으로도 공인된 박 비서관의 ‘막강 파워’는 어느 정도 일까. 한나라당의 한 인사는 “그는 대통령의 총애와 신임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박 비서관은 청와대 직원들에 대한 복무 감사 권한을 가지고 있어 청와대 각 조직은 그의 평가를 받아야만 한다”면서 “청와대 주요 회의 또한 박 비서관의 손을 거치게 돼 있다”고 덧붙였다. 즉 수석비서관회의, 확대비서관회의 발제 격인 상황보고가 모두 박 비서관의 몫이었던 것이다.


평범한 보좌관에서 ‘실세’로


박 비서관은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 부의장을 보좌하던 보좌관 출신이다. 그는 11년간 이 부의장 곁에 있었다. 그런 그가 본격적으로 ‘이명박호’에 승선하게 된 것은 지난 2005년, 이 부의장의 권유로 ‘서울시청’에 입성하면서 부터다.


이 때문에 박 비서관은 ‘S라인’(서울시청 출신)으로 통한다. 그는 당시 국장급 정무담당 보좌관으로 시청과 여의도의 눈높이를 조율하며 채널을 맞추는 역할을 담당했다.


서울시청 인연 외에도 이 대통령과 박 비서관은 고려대 동문이다. 그 또한 이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모교 후배들을 잘 활용하기로 유명하다.


박 비서관은 고대 출신 의원 보좌관 모임의 회장도 역임했다. 그러면서 당내 고대 출신 보좌관들과 두터운 신임관계를 형성, 지금도 보좌관들은 그를 ‘큰형님’처럼 여긴다. 지난 대선 때 물밑에서 이 대통령을 지원한 고대교우회 비선조직을 관리한 것도 바로 박 비서관이었다.


박 비서관이 철저하게 관리해 온 인력풀은 ‘이명박 후보’의 대선 승리를 이끌어내는 데 적잖은 기여를 했다는 평가다. 이런 점은 그가 대선 승리의 일등공신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의 외곽 캠프인 안국포럼을 꾸린 장본인이기도 한, 박 비서관은 전국을 돌며 지역 명망가들을 중심으로 지역조직을 형성해 그들의 연대를 이끈 바 있다.


탁월한 인력풀 형성, 관리 능력을 인정받은 박 비서관을 두고 당시 정가에선 “공천은 따 놓은 당상이다”는 얘기를 할 정도로 그의 권력은 성장했다. 대선 당선 이후에도 그의 활약은 계속됐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노무현 정권 이호철 대통령국정상황실장을 연상케 한다”고 했다.


본격적인 세력다툼


한나라당내 ‘친이’ 진영은 크게 세 부류로 분류된다. 이 부의장, 최 고문 등으로 대표되는 ‘원로그룹’, 정두언-박형준 의원으로 상징되는 ‘소장그룹’과 ‘이재오 그룹’으로 나뉜다.

이들은 자신의 세력기반을 다지기 위해 대선 전부터 저마다 내각과 청와대 인선 등을 암암리 모색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 지난해 11월 여의도 정가에선 “이명박의 비선조직이 청와대 인선작업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얼굴 없는 비선조직 참모들이 서울 강남과 서대문 모 호텔에서 청와대 인선작업을 진행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소식통들에 따르면, 강남 A 호텔에서는 직속 MB라인인 이상득-박영준 측 조직(강남팀)이 움직였고, 서대문 B 호텔에선 이재오-정두언 측근(서대문팀)들이 각각 인선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이를 두고 “이 일이 파워게임의 시발점”이라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었다.


‘자기사람 심기’에 한껏 기대감이 부풀러 있던 각 진영으로선 실망과 위기를 복합적으로 느낄만한 소식이었다.


한나라당의 한 주요 인사는 최근 기자와의 만남에서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결론적으론 (새 정부로) 영입된 인사들 상당수는 ‘강남팀’이 천거한 이들이었다”면서 “청와대 비서진 인선은 물론이고 장관들 기용 문제도 이때부터 이미 그쪽(이상득 박영준 쪽)에서 그림 그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인사의 말대로라면 ‘이재오-정두언’ 라인이 염두에 둔 인선 구상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셈이다. 실제로 정 의원을 위시한 소장파는 현재 조용하다.

정 의원의 경우 대선 승리 직후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지만 인선 작업이 진행되면서 언론의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다. 당시 항간에선 정 의원이 자신의 세력을 다지기 위해 인력심기를 추진한다는 얘기가 회자되기도 했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현재 한나라당은 공천문제로 뒤숭숭한 분위기지만 물밑에선 벌써 당권 신경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권력암투는 ‘박근혜-이재오-정몽준’의 3파전으로 압축되고 있는데, 총선 직후부터 7월 전당대회 때까지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부터 진행된 ‘내 사람 심기’ 경쟁, 또 청와대 인선과 내각 구성 과정에서 벌어진 논란과 좌절, 그리고 공천 과정 등은 당권 경쟁과도 연계되고 있는 셈이다.


이번 공천 결과에서 위기감을 느낀 이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공천에서) 내 주변사람도 많이 떨어졌다”면서 “이는 ‘친박 죽이기’가 아니라 ‘이재오 죽이기’”라고 주장하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이재오의 ‘반란’


이 의원은 “내가 ‘친박 죽이기’를 주도했다는 박근혜 전 대표 측 인사들의 의혹 제기에 대해 억울하다”면서 “우리가 영입한 52명이 공천에서 탈락한 것은 적은 수가 아니다”며 공천 개입설을 강력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이 의원은 이 부의장의 공천 문제에 대해선 사실상 반대 입장을 보였다. 무엇보다 당권을 노리고 있는 이 의원 입장에서는 ‘대통령의 형’인 이 부의장과 인선 작업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박영준 비서관 등을 큰 ‘장애물’로 여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나라당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재오의 이런 반응은 피해의식에서였을 것”이라면서 “인선 배후설, 그러니까 권력 핵심부 인선과 공천 인선을 통해 당권을 챙기겠다는 의혹을 제기한 근원지는 바로 이재오 쪽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재오가 요즘 ‘공천에서 우리 사람 많이 떨어졌다 억울하다’고 하는 이런 말들은 실세로 부각하고 있는 박영준과, 또 더 나아가선 이상득 부의장을 겨냥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인선 파문과 관련해 박 비서관을 옹호하는 입장도 분명히 있다.


고려대 출신의 한 유력 인사는 박 비서관을 향한 비난여론에 대해 “인선 발표 이후부터 장관 후보자들의 사생활 문제가 거론되면서 인사파동을 겪어 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인선 결정을 한 것은 박영준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박영준 쪽에서 만든 인선라인이 대거 기용되면서 그에게 화살이 빗발치고 있지만 이는 사실상 이상득 부의장을 노린 것 같다”면서 “사실상 인선 결정을 내린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기 때문에 이번 인사파동은 결국 대통령의 독선적인 아집에 의한 인적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몽준 vs 이재오’


이 대통령은 ‘당-정-청’ 체제를 구축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우선 청와대 인선 작업은 마무리가 끝났으나 그의 입장에선 당권 장악 문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정치권에선 ‘이상득-박영준’ 라인이 당권에 영향력을 행사할 절묘한 카드로 ‘정몽준’을 택했다는 설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다. 정 의원을 내세워 ‘이재오 파’를 무력화시키겠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과거 민중당 출신으로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강부자’(강남의 부자) 등 이명박 정부 인선라인과는 전혀 성격이 맞지 않는 출신성분을 갖고 있다. 이 의원은 ‘군사정권의 딸’ 박근혜 전 대표와도 ‘물과 기름’ 같은 관계를 보여왔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선 “이재오가 살아온 정치 성향상 볼 때도 그렇고, 지금 살고 있는 소탈한 모습도 그렇고, 그런 부분에서 권력핵심부로 속속 들어간 청와대 수석들이나 각 장관들과 코드가 전혀 안 맞다”는 말들이 나온다.


이 관계자는 이어 “그런 맥락에서 ‘이상득-박영준’ 라인은 당권이 정몽준 쪽으로 넘어가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을 것”이라면서 “이재오에 대한 견제는 이미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실제로 이재오 측근인 ‘김문수(경기지사) 라인’ 인사들이 이번 공천에서 대거 탈락했는데 이상득 쪽의 견제 때문이 아니었겠나 하는 말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총선을 앞두고 ‘아전인수’ 격의 진흙탕 싸움이 당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압승하지 못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나라당이 과반수 이상 의석을 차지한다면 ‘과반 정권’을 넘어 ‘독과점 정권’까지 노려볼 수도 있다. 이는 ‘당-정-청’ 이론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정치권 관계자들은 한나라당의 총선 압승에 대해 고개를 젓는다. ‘턱도 없는 소리’라는 것이었다. 이 대통령의 ‘당-정-청’ 계획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