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자는 말이 없고 의혹만 소용돌이



이호성 부친 묘자리 옆에서 발견된 시신 4구, 하필이면 왜
아파트 CCTV 판독 끝나지 않았는데 단독범행 잠정결론?
해외도피 계획, 파라과이행 항공편 문의한 사실 드러나
김씨 전남편 사망, 사라진 동업자 사건과도 관련 있나?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이대로 묻힐 것인가.’ 마포 일가족 살인사건은 용의자의 자살로 점점 미궁 속에 빠져들고 있다. 용의자 이호성은 자신의 내연녀 김모(47·여) 씨와 그의 세 딸을 무참히 살해한 뒤 자신의 선친 묘소 옆에 암매장 했다.

그 후 20여일을 잠행했던 그는 경찰의 수사가 공개수사로 전환되자 심리적인 압박감을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와 용의자가 모두 사망한 셈이다.

따라서 사건의 정확한 내막은 꼬리를 감춰버렸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 측도 난감하단 반응 일색이다. 공개수사로 전환하면서 급물살을 탔던 경찰 수사는 이호성의 죽음으로 한 순간에 침체 됐다.

결국 경찰은 지난 3월12일 공범 존재 여부를 밝혀내지 못한 상황에서 이호성의 단독범행으로 잠정결론 지었다. 그러나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들을 곳곳에 남아있다. 사건의 전모와 미스터리의 내막을 들여다봤다.

경찰은 지난 3월11일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다음날인 12일엔 자살한 용의자 A씨가 단독범행을 저지른 것 같다며 잠정결론 지었다.

지난 3월8일, 서울에서 어머니와 딸 등 일가족 4명이 20일째 연락이 두절,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서울 창천동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던 김씨와 21살, 19살, 13살인 세 딸 등 모녀 4명이 지난 2월15일부터 자취를 감춘 것이었다. 김씨 오빠의 신고로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집안 3곳에서 혈흔을 발견했다.

김씨 오빠는 김씨에게 수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김씨의 휴대전화는 이미 꺼진 상태. 아이들은 개학할 시기가 다가오는데 김씨와 아이들의 행방은 묘연했다. 남편과 사별한 김씨는 세 딸과 살고 있었으나 서울 모처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등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았다. 이들이 사라진 이후 금품을 요구하는 연락도 없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사나흘 여행 다녀올게”

행방불명되기 전 김씨는 자신이 운영하던 식당 종업원들에게 “여행을 다녀오겠다”며 가게 일을 돌봐줄 것을 부탁했다. 그 후 김씨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찰 조사 결과, 사건 전날인 17일 오후 5~6시쯤 김씨의 둘째딸과 셋째딸이 집으로 귀가한 뒤 12시쯤 김씨가 귀가 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지난 2월18일 밤 9시50분에서 10시30분 사이 아파트 1층 현관에 설치된 CCTV에는 검은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성인 한 명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여행가방 4개와 이불보, 여행용 손가방 등을 5차례에 걸쳐 카트에 싣고 나가는 장면을 포착해냈다.

이 남자가 처음 카트를 들고 들어간 시각은 밤 9시50분, 그리고 6분 뒤 여행가방을 들고 나왔다. 이 남자는 이후 들어갔다 나오기를 4번 더 반복했다. 김씨 집은 7층이었다.
이 일로 경찰은 단순 가출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경찰은 이웃 주민의 중요한 진술을 확보했다.

“(CCTV가 찍힌 다음날) 한 남자가 아파트 앞에 흰색 SM5 차량을 세워두고 커다란 여행가방들을 싣는 모습을 봤다"는 것이었다.

확인 결과 그 차는 실종된 김씨 소유였다. 이 승용차는 이웃 주민이 진술한 때와 같은 날인 19일 오후 3시쯤 전남 장성 구간 고속도로 톨게이트의 CCTV에 포착됐다. 그리고 바로 하루 뒤인 20일 오후 8시쯤. 다시 김씨의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한 남자가 이 차를 세워놓고 황급히 자리를 뜨는 장면이 CCTV에 찍혔다.

또 휴대전화 위치추적으로 네 모녀의 위치를 확인 했다. 경찰은 “이들의 휴대폰이 18일 밤늦게, 서로 다른 시간에 전원이 꺼진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위치는 전남 화순이었다.
이호성의 주변인물에 대한 조사도 이루어 졌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이호성과 김씨가 내연관계임을 확인, 첫째 딸 친구들의 진술은 이호성이 ‘네 모녀 실종 사건’과 관련이 있음을 명백히 드러냈다.

사건의 윤곽

이들이 실종한 것으로 알려진 18일 오후 첫째 딸이 친구들에게 “엄마가 결혼할 아저씨랑 여행 가기로 했다”고 말한 것을 확인한 것이었다.

경찰은 이호성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지난 7일, 출국금지 조치했다. 이호성은 90년대 프로야구 선수로 활약하면서 여러 차례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하는 등 야구 스타로 인기를 누렸지만, 은퇴 후 사업에 실패해 사기 혐의로 수배된 상태였다.

경찰은 용의자가 일산에 머물고 있다는 첩보를 토대로 수사망을 좁혔으나 검거에 실패했다. 출국금지 조치한지 3일이 지난 10일, 경찰은 끝내 이호성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해 오전 10시 수배전단을 뿌렸다. 이호성을 공개수배한 것.

경찰은 당시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라고 판단해 용의자를 최대한 빨리 검거하기 위해 내린 조치”라면서도 “아직 실종자들이 사망했다는 증거가 없어 ‘실종사건 용의자’로 수배했다”고 말했다. 동시에 서울지방경찰청 1개 팀과 광역수사대 1개 팀 등을 포함한 66명의 수사팀을 꾸리는 등 수사팀을 확대했다.

그러자 사건은 급진전했다. 같은 날 오후 3시8분쯤 한강 반포대교 북단(한남대교 방향으로 400m 떨어진 지점)에서 친구 3명과 함께 고무보트를 타고 있던 신모(36) 씨가 시신 한 구를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곧 출동했다. 지문 감식 결과, 시신은 이호성인 것으로 확인됐다. 발견 당시 시신에서는 공중전화카드 3장과 휴대폰 배터리, 마스크가 같이 발견됐다.

같은 날 밤 김씨 모녀 4명 역시 전남 화순의 한 공동묘지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곳은 이호성의 부친 묘소가 있는 공동묘지였다. 김씨 모녀 시신은 큰 가방 4개에 각각 담긴 채 땅 속에 묻혀 있었으며 부패 정도는 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미스터리 [1]
‘몇십억원 빚진 이호성, 1억 7000만원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

경찰은 이 씨가 지난달 18일 김 씨에게 1억 7000만원을 가로챈 직후 네 모녀를 살해하고 이 씨가 천만 원을 빚진 이모(여) 씨와 내연녀로 추정되는 A씨 등에게 돈을 건낸 정황으로 미뤄 이씨의 범행동기를 경제적 이유 때문인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수백억 원의 돈 문제와 얽혀있는 이 씨가 1억 7000만원 때문에 이들 모두를 잔인하게 살해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김씨는 실종되기 사흘 전인 지난달 15일 정기예금 1억 7000만원을 해지했다. 김씨가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전세자금을 내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10월말 계약한 이 집에서 김씨는 이호성과 함께 살 계획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씨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종종 이호성과 재혼하겠다는 말을 남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가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소개해 준 아파트 중개업자도 “김씨가 이씨를 남편으로 소개했고 함께 살 집을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이호성은 김씨와 가까운 사이로 발전하자 자주 돈을 빌려 썼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호성은 김씨의 남편이 숨진 뒤 화곡동 집을 처분한 3억 7000만원 가운데 일부를 빌려 쓴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김씨가 전세자금을 내는 과정에서 이호성에게 그동안 빌려간 돈을 갚으라고 독촉하자 피해자를 살해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다른 돈 문제와 여자문제 등이 얽혀있는 이호성이 부채 때문에 일가족을 살해했다고 보는 시각에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김씨가 인출한 현금 1억 7000만원 중 7000만원의 행방이 묘연해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미스터리 [2]
‘내연녀 A씨 그는 알고 있다?’

경찰 수사 결과, 빚독촉에 시달리던 이호성은 전국 각지를 돌던 중 여기저기 내연녀들을 만들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이호성은 피해자 김씨 일가족을 살해한 뒤 도피하면서 A씨와 수 차례 접촉했다. 그는 지난 3월7일 경기도 일산의 한 경륜장에서 A씨와 만났고 같은 날 오후 9시 30분께 A씨에게 광주로 내려가겠다며 떠난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파악됐다.
그는 다음날인 8일 밤 12시 A씨와 다시 만나 서울의 한 호텔에 투숙했다. A씨는 이 때 TV 뉴스에서 나온 ‘네모녀 살해 사건’을 보고 “당신 아니냐”고 물었으나 이씨는 “아니다”라고 하고 TV를 껐다고 알려졌다. 이씨는 9일 오후 11시 택시를 타고 성수대교 부근에서 내렸고, A씨는 곧장 그 택시로 귀가했다. 이호성은 이날 자정께 A씨에게 전화를 걸어 귀가를 확인한 뒤 곧바로 한강에 투신한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A씨가 이호성이 투신하기 직전까지 동행을 한 셈이다. 일산의 화상 경륜장에 자주 출입했다는 한 목격자는 “이호성은 항상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과 함께 있었는데, 그 여성과 매우 다정해 보였다”고 말했다.
이호성이 살인 후 편취한 피해자 김씨의 1억 7000만원의 일부도 A씨에게 흘러 들어간 정황이 나왔다. 경찰은 “이호성은 지난 8일 광주에서 채권자 이모 씨를 만나 옷가방 3개와 편지 및 5000만원이 입금된 자신 명의의 통장을 주면서 1000만원은 갖고 나머지 4000만원은 A씨에게 입금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밝혔다.
그는 투신 사흘전인 7일 A씨와 함께 있다가 광주로 내려가서도 A씨에게 줄 돈을 마련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재 아직까지 내연녀 A씨와 이호성의 관계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이 점도 의혹으로 남아 있는 상태다.

▲미스터리 [3]
‘공범의 존재 여부’

“아직은 CCTV 판독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경찰 관계자의 설명이지만 풀리지 않은 의혹은 더 있다. 경찰은 수사 발표 당시 “이호성이 은행에 가서 돈을 출금할 때, 하얀색 승용차 조수석에 탄 채로 사라졌다”면서 공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CCTV 판독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이호성의 단독범행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는 것에는 의구심이 남는다.
피해자 김씨의 빚독촉이 범행동기로 파악되고 있지만, 일가족 4명을 한꺼번에 살해했다는 점에서 이호성은 치밀한 계획을 세워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네 모녀에게 “여행을 가자”는 말을 건넨 뒤 피해자 김씨가 은행에서 1억7000만원을 인출한 지난달 18일 당일 김씨와 김씨의 둘째 딸 셋째 딸을 잇따라 목졸라 숨지게 하고 외출 중이던 큰 딸의 소재까지 파악해 둔기로 내려쳐 살해한 것으로 파악된다. 살해 직후 행보도 촘촘했다.
지난달 19일 오전에 인부들을 불러 전남 화순군의 한 묘지에 구덩이를 판 다음, 사체를 암매장했다. 이호성은 또 지난달 20일 오후 4시에 발신번호를 김씨의 번호로 조작해 자신의 휴대전화로 김씨가 운영하는 횟집 종업원에게 “식당을 잘 부탁한다”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이호성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지난달 18일 한 여행사에 전화를 걸어 파라과이행 항공편을 문의했다고 알려져 해외도피도 염두에 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미스터리는 아직 남아 있다. 사건 발생 이틀 뒤 김씨의 차량을 아파트에 두고간 인물은 이호성이 아닐 가능성이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이날 김씨의 차량을 두고간 인물은 이호성과는 체격이 다른 것으로 전해진다. 게다가 김씨의 돈 일부의 유통경로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어 제3자가 범죄에 가담했을 가능성은 남아있다.
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지난 2005년 8월 실종된 이호성의 동업자 조모 씨의 부인이 “남편이 실종 직전 이씨를 만났다”고 밝힘에 따라 3년 전 실종 사건에 대해서도 재수사에 들어갔다.

▲미스터리 [4]
사망한 김씨의 전남편과 사라진 이호성의 동업자

지금까지 김씨의 전남편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김씨는 전남편이 숨지기 5개월 전 이호성과 알고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더욱이 김씨는 남편이 숨지자 이호성과 곧바로 결혼할 사이라며 지인들에게 얘기 한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이호성이 김씨의 전남편 사망 사건에도 연루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또 이호성은 지난 2005년 순천 화상 경마장을 설치하려 자금을 끌어들였다가 시민단체의 반대로 경마장 승인이 나지 않자 100억원대의 부도를 낸 바 있다. 당시 이호성은 사기 혐의로 구속됐고 최근까지도 부정수표 단속법 위반 등 7건의 혐의로 수배된 상태였다.
당시 이호성은 자금 유치를 맡았던 동업자 조씨의 실종 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내사를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당시 경찰은 조씨가 주변에 진 빚이 많아 잠적했다는 결론을 짓고 내사를 끝냈다. 하지만 조씨의 부인 한씨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편은 2005년 8월 3일 저녁 6시경 친구와 함께 이호성을 만나러 나갔고 이호성은 경찰 조사에서 ‘밤 9시경 조씨를 만나 차에서 10여분 정도 얘기를 나누다 포장마차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봤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은 돈 때문에 남편이 잠적한 것으로 봤지만 나는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 미스터리 [5]
이해할 수 없는 잔혹성

경찰의 시신발굴 결과 김씨와 두 딸은 실내복 차림에 신발도 신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돼 이들이 집안에서 한꺼번에 변을 당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집안에 있던 컴퓨터조차 끌 새가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는 것.
그러나 이호성이 ‘빚 독촉’을 하던 김씨에게 앙심을 품었다고 해서 굳이 어린 자녀까지 한꺼번에 살해했다는 설명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또 이호성은 범행 뒤 시신을 차량에 실은 채 대담하게 서울 도심으로 진입해 당시 외출했던 큰 딸까지 찾아나서는 집요함을 보였다.
그러나 경찰은 이와 같은 범인의 집요함과 잔혹성을 설명할 근거를 마땅히 대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이호성이 김씨를 살해하는 장면을 자녀들에게 들키자 이들도 함께 살해했거나 또는 김씨에게 돈을 빌린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일가족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st35@sisa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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