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尹, 당장 공식 철회하라”…대통령실 “상식적이고 원론적인 말”

4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로이터통신 외신인터뷰를 진행하는 모습. ⓒ대통령실
4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로이터통신 외신인터뷰를 진행하는 모습. ⓒ대통령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외신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 관련해 적극적인 입장을 내놓은 데 대해 더불어민주당에서 날선 비판을 하고 있어 정치권 이슈로 부상하고 있는데, 미국 순방을 앞둔 시점에 윤 대통령이 갑자기 우크라이나에 대한 조건부 군사지원 가능성을 시사한 이유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하루아침에 나온 게 아니다? 취임사에서도 밝힌 尹 외교 기조

주위를 대부분 강대국들이 둘러싸고 있어 사실상 ‘조용한 외교’ 외엔 선택권이 좁은 우리나라 외교안보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간 역대 대통령들은 ‘동북아 균형자론’, ‘한반도 운전자론’ 등 독자적으로 주도권을 행사할 만한 입지를 확대해보고자 여러 시도를 해왔었는데, 윤 대통령의 경우 지난해 5월 10일 대통령 취임식 당시 취임사에서 “우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그룹에 들어가 있으며 자유와 인권의 가치에 기반한 보편적 국제 규범을 적극 지지하고 수호하는데 글로벌 리더 국가로서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며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시민 모두의 자유와 인권을 지키고 확대하는데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외교 기조를 밝힌 바 있다.

‘자유와 인권 가치에 기반한 국제 규범을 지지하고 수호하는데 글로벌 리더 국가의 자세를 갖겠다’고 공언한대로 지난달 27일 재외공관장들을 초청한 청와대 영빈관 만찬에서 윤 대통령은 한미동맹 발전과 한일관계 정상화를 예로 들어 “자유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왔다”면서 “자유와 법치에 기반한 국제 질서의 수혜자로서 국제사회가 기대하는 바를 능동적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한 뒤 공적개발원조 규모를 대폭 확대하는 것은 물론 개발협력 범주를 인력양성·기술 공동개발·해외시장 공동진출까지 확대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지난달 29일 우리나라가 공동주최국으로 참석한 제2차 민주주의정상회의에선 본회의 첫 세션을 주재한 윤 대통령이 “규범 기반의 국제질서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권위주의 세력들의 진영화에 민주주의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해 민주주의를 확고히 지키기 위한 연대를 강력히 지지하고, 행동할 것”이라고 공언했고,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 회의에서의 발언과 관련해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모두 달성한 한국이 이번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주관함으로써 앞으로 각종 다자외교를 통해 국제사회의 자유연대를 주도하고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지금까지 내놓은 윤 대통령의 이런 메시지들에 비추어 ‘권위주의 세력의 진영화’에 맞서 ‘자유연대’를 주도하는 적극적 행보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풀이되는데, 다만 단순히 과거 냉전시대처럼 이념적 측면에서 접근하겠다는 의미만은 아닌 듯 늘 ‘자유와 인권의 가치에 기반한 보편적 국제 규범’이란 표현을 우선 내세웠으며 지난 2019년 12월 이후 열리지 못하고 있는 한중일 3국 정상회의를 다시 가동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지난달 27일 밝히기도 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 공개된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도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만약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라든지, 국제사회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대량학살이라든지, 전쟁법을 중대하게 위반하는 사안이 발생할 때는 인도 지원이나 재정 지원에 머물러 이것만을 고집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불법적인 침략을 받은 나라를 지켜주고 원상회복을 시켜주기 위한 다양한 지원에 대한 제한이, 국제법적으로나 국내법적으로 있기는 어렵다”고 입장을 내놨고, 대만 해협의 긴장 상황에 대해서도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 때문인데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반대한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 러·중 반발 속 “尹, 발언 철회하고 사과하라” 촉구한 野, 왜?

20일 송갑석 의원, 이원욱 의원, 김홍걸(무소속) 의원, 정성호 의원, 김병주 의원이 국회 소통관에서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3) [사진 /오훈 기자]
20일 송갑석 의원, 이원욱 의원, 김홍걸(무소속) 의원, 정성호 의원, 김병주 의원이 국회 소통관에서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3) [사진 /오훈 기자]

이 같은 윤 대통령의 발언은 조건부지만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해석돼 존 서플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나토와 우크라이나 국방연락그룹에 대한 한국의 기여를 환영한다”고 입장을 내놨으며 반대로 러시아에선 20일(현지시간) 스푸트니크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외무부 성명을 통해 “무기가 어디에서 오든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은 반러시아 행위로 간주한다”고 경고성 메시지를 내놨다.

특히 러시아는 전날에도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을 통해 윤 대통령의 발언을 겨냥 “무기 공급 시작은 특정 단계의 전쟁 개입을 간접적으로 의미한다”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연방안전보장회의 부의장은 텔레그램에 쓴 글을 통해 “우리가 그들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북한에 최신 무기를 제공한다면 한국 국민들이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 뿐 아니라 중국도 윤 대통령의 대만 관련 언급에 불편한 반응을 보였는데,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0일 정례 브리핑에서 “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중국인 자신의 일이고 타인의 말참견은 허용하지 않는다. 대만해협 정세와 지역의 평화·안녕을 수호하려면 대만 독립과 외부 간섭에 명확히 반대해야 한다”며 “북한과 한국은 모두 유엔에 가입한 주권국가로, 한반도 문제와 대만 문제는 성질과 경위가 완전히 달라 서로 비교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 측이 중한수교 공동성명의 정신을 제대로 준수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엄수하며 대만 문제를 신중히 처리하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러시아와 중국 측 반응 속에 야당에서도 윤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하고 나섰는데,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그동안 우리가 물자와 인도적 지원 원칙을 고수한 이유는 국익과 안보를 최우선에 놓고 외교적, 경제적 실리를 따진 결정에 기반한 건데 이 원칙을 하루아침에 허물어버린 윤 대통령 발언은 사실상 제3국 전쟁 관여도 가능하다는 말과 같다”며 “군사적 지원이 시작되면 당장 우리 기업부터 직격탄을 맞게 된다. 러시아 현지에 법인을 두고 있는 우리 기업만 현대차, LG전자, 삼성전자, 팔도 등 160여개가 넘는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박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발언이 스스로 내린 결정이라기보다 미국의 요구에 따랐다고 봤는데, “이로써 미국이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과 김성한 전 안보실장 간 대화를 도청한 것은 명백한 사실로 확인됐다. 한국이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어길 수 없으니 공식적으로 해당 정책을 바꾸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던 이 전 비서관의 말대로 윤 대통령은 입장을 바꿨고, 대통령의 워싱턴 국빈 방문과 우크라이나 살상무기 제공에 관한 입장 변경이 겹치면 ‘국민이 두 사안 간 거래가 이뤄진 것으로 여길 것’이라던 김 전 실장의 우려도 현실화됐다”며 “회담 시작도 전에 또 미국 요구를 따르며 스스로 운신의 폭만 좁혔다”고 비판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같은 당 김민석 정책위의장은 “미국과 얘기가 된 ‘하청 발언’이라면 미국도, 윤 대통령도 용납될 수 없고, 알아서 긴 선제적 굴종이라면 즉각 공식 취소하고 러시아에 공식 해명하고, 국민에게 공식 사과하라”며 “헌법정신을 감안할 때 이런 국가 중대사에 관해선 최소한 국민투표에 준하는 민심 확인을 거칠 것을 요구한다”고 촉구했고, 이재명 대표는 20일 자신의 SNS에 대만 발언까지 꼬집어 “대통령의 사기꾼, 양안, 군사 지원 세 마디에 3천만 냥 빚을 졌다. 중국과 대만 간 문제는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이 아니고 우크라이나 문제로 대러 관계가 심각하게 훼손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글을 올렸다.

◆ 대통령실 “민간인 살상 가정한 상식적 발언…러시아 행동에 달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사진/뉴시스 제공)
서울 용산 대통령실. (사진/뉴시스 제공)

하지만 대통령실에선 같은 날 윤 대통령의 발언은 “상식적이고 원론적인 대답이었다”고 반박했는데, “국제사회가 심각하다고 여길만한 민간인 살상이나 인도적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런 가정적 상황에서 한국도 그걸 어떻게 가만히 지켜볼 수 있겠나 하는 가정형으로 표현했다”며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선 러시아의 행동에 달려있다고 거꾸로 생각할 수 있다”고 ‘조건부’ 발언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고위관계자는 “우리나라 국내법에 바깥 교전국에 대해 무기 지원을 금지하는 법률 조항이 없고 외교부 훈령을 봐도 어려움에 빠진 제3국에 군사 지원을 못한다는 조항이 없다”며 “우리가 자율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 이유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국제 사회 대열에 적극 동참하면서도 한·러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 관리해야 한다는 숙제를 동시에 균형 맞춰 충족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는데, 한편으로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러시아를 규탄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목소리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는 국제적 압박 기류 속에 ‘돌파구’로 내놓은 발언이란 의미로도 비쳐지고 있다.

그간 대외적 압박이 있었다는 사실은 야당조차 밝혔는데, 민주당 김병주 의원은 2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윤 대통령의 해당 발언에 대해 “치밀한 계산에 의해 나왔다고 보인다. 밀실에선 이미 한미 간 협의 됐을 것”이라며 “미국과 나토는 끊임없이 우크라이나에 우리 살상무기 지원을 요구해왔던 게 사실이다. 미국이 계속 압박을 넣었고 얼마 전 폴란드 총리가 ‘우크라이나에 탄약이 부족해 이걸 해결하는 것은 한국의 재고량을 쓰는 것인데 한국은 중국, 러시아 눈치를 보니 미국이 안전보장을 하고 한국을 설득시켜 달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바이든 대통령도 요구했고 한미정상회담 앞두고 이걸 풀어주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나”라고 관측했다.

다만 김 의원은 윤 대통령실이 군사 지원 가능성을 조건부로 내걸었다는 지적에 대해선 “윤 대통령이 얘기한 민간에 대한 대규모 공격은 이미 이뤄졌고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대량 학살이 자행된 것으로 계속 뉴스 나오잖나. 러시아군이 전쟁법을 많이 위반한 사례들도 나오고 있는데 이 조건으로 한다면 지금도 살상무기를 지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러시아를 적대국으로 만들면 지금도 북한의 핵미사일로 어려운데 두 개의 적대국에 우리가 어떻게 안전을 보장할 수 있겠나. 앞으로 북한의 핵미사일을 해결하는 데 있어 유엔 안보리 이사국인 러시아의 도움 없이는 북한을 고립에서 탈출시켜주는 꼴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이 거의 없어질 뻔했을 때 자유세계가 달려와 한국의 자유를 지켜줬는데 우크라이나가 지금 그런 처지에 있다면 한국이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된 고마운 마음을 되새기면서 지금의 우크라이나를 바라볼 필요도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는데, 일단 내주 이뤄질 미국 순방 결과를 통해 윤 대통령의 발언 취지가 진정한 ‘군사 개입’에 있는지, 아니면 서방 등 국제사회에 보여주려는 ‘립서비스’ 수준이었는지 분명히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