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세와 처신의 정도가 아쉬워서

정치의 계절이라고 한다. 까만 후배 녀석이 찾아왔다. 총선에 출마하겠다는 것이다. 속에서 울컥 치밀었다. 아무리 쥐나 개나 다 해 먹겠다는 국회의원이지만 아니라고 생각한 녀석이다.

한다는 소리가 가관이다. 한나라 공천만 받으면 당선된다고 한다. 참여정부 때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상가 집 개처럼 떠돌던 인간이다.

절대로 넌 아니라고 나무랐다. 되받는 대답이 걸작이다. 어느 놈은 별 놈이냐는 것이다. 신청한 인간들 보니까 모두가 오십보백보라고 했다. 그러니까 한나라당 공천만 받으면 딱이라는 것이다.

제발 정치를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지만 막무가내기다. 밀어주는 실세가 있다는 것이다. 돌려보낸 후 참담했다. 정치가 이 지경이 됐구나. 한숨이 절로 났다.

꿈이야 누구나 꿀 수 있겠지. 그러나 정도 문제가 아닌가. 정치판에서 한나라당 인기가 상종가다.

공천신청 하는 걸 보니 대입서류를 제출하는 것과 같다. 북새통을 이룬다. 대기하는 모습은 명절날 열차표 사려고 기다리는 모습 같다.

카메라가 훑어가는데 깜짝 놀랐다. 철새가 날아 올 때가 지났는데 언제 날아 왔지. 욕할 생각도 없다. 참여정부에서 장관을 하던 자도 국회최고위직에 있던 자도 공천신청을 냈다. 거저 줘도 거절을 해야만 인간의 도리다.

한나라당 공천 신천자의 수가 1500명이 넘었다던가. 무려 5 대1이 가깝다고 한다. 나라를 위해서 일하겠다는 인재가 저렇게 많다니 얼마나 대견한가.

이 나라의 장래는 탄탄대로다. 순풍의 돛단배다... 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는데 한국정치의 비극이 있다.

정치판에서 한나라당의 인기가 높다는데 시비를 걸 생각은 추호도 없다. 대통합민주신당이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민노당은 반쪽이 나는 판에 한나라당이라도 잘 해 준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제 한나라당은 여당이 되고 국정의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정치의 중추세력이다. 격려와 편달을 해 줘야 한다. 잘만 한다면 국민들이 업고라도 다닐 판이다.

그러나 문제는 문전성시를 이루는 무리들의 면면이 어쩌면 옛날의 그 모습 그대로인가. 정치는 마약 같아서 한번 중독이 되면 좀처럼 끊기가 어렵다고 하더니 죽어야 고치나.

정치 때문에 몸 버리고 재산 날리고 처자식 고생시킨 정치탕아들의 비극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보았다.

한나라당의 공천만 받으면 무조건 당선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진 정치지망생들은 당에서 제대로 걸러내야 한다. 붕어인지 피래민지 거머린지 가리지 않다가 낭패를 당한다.

국민의 눈은 무딘 것 같아도 면도날처럼 예리해서 얼렁뚱땅 넘어가려다가는 큰 상처를 입게 된다. 한나라당이 설마 천막당사의 설움을 잊기야 했겠는가.

한나라당 공천신청자의 면면을 보면 정말 제대로 된 품성과 학식과 나라를 위하는 충정이 가득 찬 인물들도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하겠는데 이건 정말 아니구나 하는 인물들이 제법 섞여 있다.

특히 언론에서 밥을 먹었다는 인물들의 공천신청을 보면서 실망을 금할 수 없다. 공천을 신청한 면면들을 보면 참으로 잘도 모였다고 할 정도로 편향으로 일관된 인물들이라는 세평이다.

그들이 몸 담았던 언론사에서 조차 부정적이라면 당사자들은 아니라고 펄펄 뛰겠지만 조용히 한번 생각해 보면 스스로 알 것이다.

최근까지 활발한 활동을 했던 기자로서 사표를 내고 공천 신청을 한 것이 적절한 행위라고 생각하는가. 더구나 그들은 정치부 기자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이 현직이었을 때 행태는 일일이 말하고 싶지는 않으나 정치에 뜻을 두고 출마할 생각이었다면 적어도 양심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기간 동안 언론계를 떠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왜냐고 이유를 묻는다면 그들에게 당당히 답변을 요구해 보라. 교묘한 논리의 궤변을 늘어놓을 것이다. 바로 그런 궤변이 언론인을 추악한 이기주의자로 전락시키는 것이라고 믿는다.

언론인의 처신이 수도승과 같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상식의 수준에서 는 이루어져야 할 것이 아닌가. 이것은 공천신청을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 나라 국정을 책임져야 할 한나라당이 그냥 넘겨서는 안 될 심각한 문제다.

거기다가 얼마나 오만한가. 공영방송출신의 B기자는 한나라당을 선택한 이유로 “얘 보다는 쟤가 낫고” 운운 하는데 겸손은 아예 찾아보기를 단념했다. 오만이 철철 넘쳐흘렀다.

공천 신청자의 얼굴들을 보면 현직에 있을 때 지독히도 참여정부를 비판하던 사람들이 많다. 이들의 공정성은 늘 공정언론을 지향하는 시민언론단체들이나 인사들에 의해서 논란이 되어 왔다.

이제 그들이 공천을 신청하자 아하 그게 그렇게 된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미리 한나라당의 점수를 따 놓자는 의도에서 노무현과 참여정부를 혹독하게 비판했다는 오해를 받아도 변명하기가 어렵게 됐다는 사실이다.

과연 한나라당이 이들을 공천해서 얻을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심사위원이 결정할 문제지만 이들을 선택하느냐 안 하느냐는 한나라당의 신뢰를 가늠하는 또 다른 잣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솔직히 말해서 한나라당은 이른바 벌금형과 관련된 김무성의 공천배제를 번복함으로 공천과 관련된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도대체 이런 식의 국민사기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이러면서 한나라당이 공천한 후보를 선택해 달라고 국민에게 요구할 수 있는가.

하기야 우리나라 정당의 국민 사기극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제 한나라당은 10년 만에 정권을 되찾은 정당이다. 더구나 이번 4월 총선에서 과반의 의석을 넘어 개헌 선까지 기대하는 정당이다.

오만해서는 안 된다. 오만은 바로 자살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 계파에서 무슨 소리를 해도 원칙을 지켜야 할 것이다. 사람을 바꿔야 한다. 왜냐면 정치는 바른 인간들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거가 있는 것이 아닌가.

대통합민주신당에 대해서는 할 얘기도 없다. 다만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헤맨다는 것이다. 손학규와 박상천이 아무리 머리를 맞대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차라리 감나무 밑에서 연시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게 나을 것이다.

손학규와 정동영의 만남도 진실이 하나도 안 보인다. 아무리 입으로 그럴듯하게 말을 해도 국민들은 이미 그들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잘못을 고백하고 회개하는 인간은 신뢰를 회복한다. 스스로 자문을 해 보라. 자신들이 고백은 진정한 참회인가. 국민도 알고 자신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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